257화 피할 수 없는 함정
“이건 좀 놀랍군…… 국제 교류전에 이렇게 많이 신인을 끼워넣을 줄이야. 새롭게 능력 있는 유망주를 대거 뽑은 걸까?”
“감독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유망주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조금 더 미래를 보고 ‘경험치’를 채워준다는 차원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국팀의 감독. 차나팁 송크라신은 그 말을 듣고는 표정을 찡그렸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국제전에 나서는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자국 리그에 통하는 알량한 무력이나 실력 따위가 아니었다.
큰 싸움에 강한 담력과 승부력. 그리고 경력과 연륜. 다양한 전술을 겪고 넘어서 온 힘. 그런 것들이 훨씬 중요했다.
그런데 한국 팀에서 저런 새내기. 그것도 가장 해볼만할 경기인 태국과의 경기에 데려왔다는 것은, 그저 이번 국제교류전을 포기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쉬운 점은, 평소라면 먼저 태국팀에 와서 연습경기 요청을 했을 텐데, 이번은 다른 상대를 구한 것인지. 연습경기를 요청해오지 않아 이번 한국 선수단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경험치…… 경험치라.”
코치의 조언을 곰곰이 곱씹어보니, 자기라도 그랬을 것 같긴 했다.
한국에서 [마나전개]를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선수는 ‘강준혁’뿐이라고 들었는데.
어차피 다른 선수들은 그럼 강준혁 선수를 보조하기 위한 발사대가 될 뿐. 그런 부품이 조금 바뀌어도 경기 자체엔 큰 변화가 없을 뿐더러, 거기에 더해 애초에 이미 앞선 시도로 많이 실패했던 발사대라면. 그 발사대를 바꾸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겠는가?
“경험치도 맞겠지만, 강준혁을 더 잘 보조할 수 있는 선수들을 뽑았을지도 모르겠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코치나 감독이나 할 것 없이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작년에 우리에게 진 것이 강준혁이 아쉽게 막히는 바람에 그렇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한국 선수단이 저번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을 엉뚱하게 해. 이번 경기를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하. 더 좋은 발사대로 갈아치워서 더 멀리 날려봤자 뭐하나. 강준혁 선수 자체를 더 완벽히. 완전하게 봉쇄할 카드가 있는데.”
물론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민석은 경계가 되긴 했지만, 결국은 메인딜러가 아니었으니.
태국팀은 낙승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민석과 강준혁을 제외하면, 팀의 절반 이상이 국제전은 데이터도 없을 정도로 데뷔무대인 신삥녀석들.
‘강준혁을 완벽하게 봉쇄하고, 우리의 비장의 카드를 확실하게 꽂아넣는다.’
“까윈한테는 단단히 일러뒀지?”
“네.”
첫날 경기부터 예감이 좋았다.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이번에도 똑같이 이겨주마.
***
한편, 한국에서는 저번 이창현의 인터뷰와 이전과 달리 완전 새롭게 짜인 한국 선수단으로 인해 기대감이 꽤 올라오고 있었다.
그뿐만인가. 한 순간이었고, 실력의 한계로 결국 중간에 나오게 되었지만.
하위리그에서 PER과 함께했던 정혜연의 경우. 특별히 감성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더니. 진짜로 성공해버렸으니까.
그뿐만인가? 정혜연 자신도, 덕분에 이번 국제교류전에 전 PER멤버로서 객원해설로 참여할 수 있었다.
[캐스터 : 허어……그러게요. 분명 저번 출국 인터뷰 때에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솔직히 입국 후, 연습 경기를 겪어 다른 팀들과 조우한 후에도 이렇게 인터뷰 하리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오늘 인터뷰에서 이창현 선수가 ‘베트남 팀과의 연습경기에서 혼자 다수의 상대를 쓰러뜨렸다’고 발언했는데. 어떻습니까?]
[해설자 : 사실 이창현 선수의 경우 한국에서도 폼이 절정이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베트남 선수가 호락호락하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연습경기에서 혼자 다수의 상대를 쓰러뜨렸다.라는 말을 구태여 한 건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캐스터 : 전 동료이자 PER의 팀원이었던 정혜연 선수가 보면 어떻습니까?]
[정혜연 : 사실 처음 PER에 왔을 때도 PER이 무승팀이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창현 선수가 처음 PER에 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땐 심지어 무승 팀이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 때 꽤나 파격적인 발언을 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사실 이창현 선수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선수들이 다들 난리였거든요. 저 말 어떻게 할 거냐고.]
정혜연의 그 말에 중계 데스크에 작은 웃음이 터졌다.
[캐스터 :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정혜연 : 근데 놀랍게도 이창현 선수가 온 이후, 첫 연습경기에서 무승 팀이었던 저희 팀이 바로 이기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지금 와서 보면, 기적적이죠. 요새 세간에서 이야기되는 PER미라클의 원류랄까.]
PER미라클. 최근 무승 3부 팀에서 1부 정규리그 1위 팀까지 무섭게 올라온 PER을 두고 이르는 말이었다.
[정혜연 : 그렇기에, 저 연습경기. 보지는 못했지만, 이창현 선수의 인터뷰만큼이나 재미있는 일이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나중에 저 부분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캐스터 : 그렇군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인터뷰어에게 미리 귓뜸을 해놓아야겠네요.]
한편, 중계 데스크에서 꽤나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는 가운데, 실시간 채팅이 올라오는 창은 그리 분위기가 좋진 않았다.
[설레발만 오지게 치죠? 매번 올해는 다르다고 해놓고 실제 근 3년간 태국이랑 한국 전적 3 : 0이죠?]
ㄴ 3대^떡^ 그저 1세대 헌터 시절 물로켓
ㄴ ㄹㅇ 강팀들도 아니고, 좀 할만하다던 태국한테 개같이 썰리는거보고 이악물고 욕했음.
ㄴ 나도 그거 실시간으로 보는데 멘탈 갈리긴 함 ㅋㅋ
ㄴ 너희가 뭐가 멘탈이 갈리냐? 강준혁이 실시간으로 갈려나갔겠지.
원인은 단연 지금껏 한국이 국제전에서 죽을 쒔던 것에서 있었다.
한국이 지금껏 노력을 안 했던 것도 아니었고, 매번 선수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지급하거나. 1세대 헌터를 특별 코칭 스태프로 붙인다던가.
‘이번엔 다르다’, ‘올해는 다르다’를 시전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멤버에 이창현과 이민석이 들어가고, 이근택이 총괄로 갔다고 해도. 어~ 이번엔 그렇구나. 하는 수준에서 마는 것이었다.
‘하아…… 아쉽네. PER에 있을 시절. 창현이도 경기 전에 반응 같은 것 자주 확인했었던 것 같은데.’
꽃길을 깔아주고, 응원해줘도 모자를 망정에. 벌써부터 개같이 패배할 거라고 말을 내뱉는 네티즌들을 보며 실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평소처럼. 그래, PER에서 보여줬었던 것처럼 태국팀을 상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첫 경기에서 확실하게 국제전 데뷔 경기를 치룰 수 있다면.
그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후. 마침내 잡다한 일들이 끝나고, 선수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첫 국제전, 그 시험대의 시작이었다.
***
멀리 보이는 관중석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는 PER선수들이 보였다.
이번 로스터의 경우는 정규멤버로 출전했기에 참가하는 PER멤버는 나와 이연주, 윤한결 뿐.
나머지는 저 멀리에 앉아 열심히 손이나 흔들고 있었는데, 빛나는 검을 나름 형광봉 마냥 휘두르며 응원하는 김도준. 그리고 그를 만류하는 PER 팀원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반응은 예상했지만 그리 좋진 않네.’
자신감 있고 패기 있게 나름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올라오는 반응들이 썩 좋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달랐다.
‘회귀 전엔 이것보다 더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지금처럼 대대적인 변화도 별로 없었고, LTD의 팀원들이. 거기에 강준혁도 없이, 대신 내가 들어가 나갔기에.
지금보다도 변화가 없는 걸로 비춰져 욕을 꽤나 먹었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첫 경기부터 뒤집어놔서, 그런 말은 쏙 들어갔지만 말이야.’
선수는 결국 경기로 보여주는 법.
“얘들아. 화이팅하자!”
주장인 이민석을 중심으로, 나, 강준혁, 이지훈, 윤한결, 이연주 + 1명 LTD팀원 누구였지? 이 모여 손을 모은 후, 힘차게 들어올렸다.
“첫 승. 스근하게 챙기고. 나머지도 연습경기처럼만 가자.”
이민석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는 바로 시작되었다.
“맵도…… 마나장비 장착도. 변수는 없군.”
태국 선수단 관계자들을 위해 마련된 대기실에는, 고요한 희열이 돌고 있었다.
맵과 각 팀의 마나장비 현황이 공개되었을 때.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선수별로 떨어져 각개전투를 치르게 되는 맵이면 변수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해, 경계 중이었지만.
이번에 뽑힌 맵은 평범한 갈대숲 평원.
중립 몬스터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으며, 유물은 존재하지만 찾기 어렵기로 손꼽히는 맵이었다.
그럼 남은 것은 결국 힘대 힘 대결뿐.
7대 7 전면전이 펼쳐지리라고 경기의 흐름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게 경기가 흐른다면 필시 태국 팀의 의도대로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리고 실제로 나타나는 경기양상도 그러했다.
[캐스터 : 역시나 이번 맵…… 힘대 힘의 대결이 중요한 만큼 7대 7의 대규모 한타가 일어나리라고 예상이 되는군요. 각 팀, 합류를 우선합니다! 이미 서로 합류가 문제없이 끝났어요!]
‘시작된다…….’
태국 팀이 노리는 전략의 첫 단추는 하나. 합류 후 대규모 한타가 일어나게 된다면, 강준혁을 배제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마나전개] 보유자의 전력차로 태국에게 기울어지게 되니까.
그리고 지금껏 이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국제리그와 달리, 한 개뿐이지만. 선수단이 가져온 ‘유물’의 사용을 허락하는 국제교류전의 룰.
이걸 이용하면 태국이 가진 ‘봉쇄석’을 이용해 쉽게 강준혁 그 자체를 봉인할 수 있었으니까.
‘녀석이랑 전투를 벌일 필요도 없이, 녀석이 흘린 마나의 잔재만 있어도 돼……’
그리고 실제로 이제껏 한국 팀은 그런 태국 팀의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왔으니.
작년에 [검의 영역]을 펼친 강준혁을 고꾸라뜨린 것도.
그리고 올해, 이번에는 그것을 펼치기도 전에 고꾸라뜨리는 것도. 어렵지 않을 테니까.
이건 아무리 [마나전개]가 강력하다고 한들, 그 특성이 기본적으로 광역 공격에 있는 강준혁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으므로.
마침, 화면에 그 장면이 비춰졌다.
[캐스터 : 아앗! 여기서 태국 선수단이 자랑하는 유물 ‘봉쇄석’이 등장하나요!! [검의 영역]으로 유지되고 있던 전선이 밀리기 시작합니다!]
힘 싸움은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
거기에 태국은 아직 사용조차 안 한 비장의 무기까지 숨겨두고 있었으므로.
승리를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허…… 여기에서 사라흐의 마나전개를 보여줄 필요까지는 없겠네. 덕분에 전력을 숨기고 베트남과 싸울 수 있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흐흐.”
자신들이 생각하는 계획이 틈이 없어. 완벽히 잘 맞아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의심조차 하지 못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