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본 경기 시작
적당히 헌터 서바이벌의 탈을 썼던 경기가 끝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베트남 주력선수들과, 한국 주력선수들의 충돌이 마무리 지어지자, 연쇄작용이 일어나며 형세가 크게 기울었으니까.
필연적으로 경기가 한국 선수단에게 크게 기울어 금방 마무리 될 수밖에.
경기가 끝난 직후, 재미있는 점은 몇몇을 제외하면 예상하지 못한 손님이 대기실에 와 있다는 점이었다.
‘이근택 회장님……?’
“허허. 강준혁 선수. 경기는 재미있었나? 검으로 거 시원하게 쓸어버리던 게 내 왕년이 다 생각날 정도였는데. 껄껄.”
옆에서 진땀을 흘리며 눈치를 보는 베트남 선수 총괄과, 위풍당당하게 앉아있는 이근택을 보니.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절로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까지는 LTD가 국제전 경기에서 항상 죽을 쑤고, 폐 끼쳐드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이 오니 기분이 미묘했다.
그것도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내 후배인 이창현이 신묘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렇게 된 것이었으니까.
옆으로 지나가는 이창현을 보니 생각이 더욱 많아졌다.
‘지금껏 PER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저 녀석때문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 경기로 더더욱 확실해졌으니까.
‘완벽했어.’
강준혁이 지금껏 그리던 기술적 이상. 혹은 전술적 방향이나, 그런 것들보다도 한 단계 진화되어 있었으며, 그건 승리를 위한 가장 최단 거리를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개인의 기량과 약점을 파악하는 것부터 설계를 들어가, 실행까지 물 샐 틈 없이. 리스크가 큰 것을 여의치 않고 성공적으로 해낸다.
압도적인 기술과 능력은 차치하고서, 저 녀석의 심장은 무슨 강철로 되어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렇게 이창현이 단호하고 확실하게 중심을 잡아주었기 때문일까?
지금까지의 국제전과 달리 마음이 편안한 것은 둘째치고, 지금껏 내 능력을 활용한 것 중 제일 멋진 장면이 펼쳐졌다고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까진 내가 [검의 영역]을 백분 활용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 녀석이 강준혁 자신보다, 더 그 능력을 사용할 줄 아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껏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혹은 족쇄에 붙잡혀.
무엇인지 원인도 모를 것에 발이 묶여있던 과거와는 달리…… 확실하게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는 것이 느껴졌으므로.
이창현과의 경기가 즐겁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아직 국제 교류전의 일정은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강준혁은, 그 국제 교류전의 매 순간이. 다가올 위험과 긴장의 순간들이 기꺼울 정도로. 조금 두근거리고 있었다.
***
베트남 선수단 측에서 굉장히 이상한 꿍꿍이를 벌이고 연습경기를 망쳤음에도, 생각보다 큰 마찰이나 충돌은 없었다.
경기가 끝난 후 대기실로 나와, 이창현이 나서려고 했으나.
이근택이 제지했기 때문이었다.
언뜻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에. 막 팀 숙소에 도착한 한국 선수들에게서 여러 이야기나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걔네 그런 식으로 대놓고 배 째라 하면서 더러운 짓 하는데. 뭐라도 항의를 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이근택 회장님은 왜 그런 거지?”
누군가 한 명이 질문했지만, 사실 대다수의 선수들이 똑같이 궁금해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아도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았기에. 그냥 의미 없는 잡담이나 오가고 있을 무렵……
김도준이 입을 열었다.
“다들 간과하는 게 있는데…… 이근택 회장님이 1세대 헌터인 건 다들 아실 테고.”
“응. 그렇지?”
갑자기 무게를 잡고 시작하는 이야기에, 내심 궁금했던 것일지. 떠들썩하던 숙소가 조용해졌다.
“그러니까…… 탑 안에서 베트남 선수에게 목숨을 빚진 적이 있는 거지.”
“오오…….”
있을 법 하다고 생각했었던 것일까?
긴가민가하면서도 꽤나 괜찮은 호응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선수가 구해주니까. 이근택 회장님이 보답을 하려는데. 베트남 선수가 이러는 거지. ‘보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당신이 베트남 선수가 위기에 빠지거나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걸 도와주는 것으로 해요.’ 근데 딱 이 말을 한 사람이 완전 미인인 거…….”
다들 김도준이 하는 헛소리를 꽤나 재미있게 듣고 있었지만, 더 이상 그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냐면.
따악 ㅡ!
김도준의 머리를 울리는 청명한 딱밤 소리가 울려퍼졌으므로.
이근택 회장님도 깝쭉거리는 김도준에게 딱밤은 못 참았던 걸까?
소리를 들어보니 꽤 큰 것이, 많이 아프겠다 싶었다.
“아으으…….”
“베트남 미녀가 목숨을 구해주기는 무슨. 네 녀석들이 받아오지 못할 것들까지 쫙 뜯어온 것을.”
‘뜯어왔다고?’
그제서야 한국 선수단의 선수들은 아까 왜 그렇게 원만하게 마무리가 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애초에 계산을 끝내, 청산해서 마무리할 것이 없었구나?’
이근택이 경기를 같이 보면서, 셈할 것은 셈 하고. 이 불합리한 경기에 대해서 받아낼 것은 받아낸 것이리라.
“자. 세계 선수들에게서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아무도 관심 없는 너희들에게 가져온 연습경기 일정과 정보다.”
이근택이 내민 서류덩이에 든 정보가 꽤나 상당했다.
‘베트남 선수단의 이번 국제교류전의 연습경기까지 포함한 모든 데이터와 정보. 분석 레포트파일에…….’
거기까지는 솔직히 내가 따져서 받아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받아낼 것이라고 생각한 정보와 똑같았기에 별 생각은 없었지만. 진국은 바로 다음 부분이었다.
‘그 정보 제공을 3년간 하겠다고?’
뭐…… 우리 측에서야, 부족한데 얻을 곳은 없는 방대한 국제전 데이터 수치를 받아볼 수 있어. 엄청나게 좋았지만.
상대입장에서 보면 불합리도 이런 불합리가 따로 없었다.
연습경기 한 번을 제대로 깽판쳤다고, 3년 동안 내부 기밀정보나 다름없는 이걸 주겠다고?
물론 베트남 자국 선수들의 능력이나 전술 같은 거야, 적당히 숨기고 주겠지만…… 역시나 가치 있는 정보는 베트남 선수들이 연습경기로. 혹은 정규 국제전에서 치룰 상대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였으므로.
이건 엄청난 돈을 주고도 사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통째로 갈취해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까지 뜯어도 되는 거예요?”
“힘 좀 써봤다. 모처럼, 비상하려는 참인데. 상대의 어처구니없는 예상 외 전략으로 자빠질 수는 없지 않겠느냐?”
이근택이 씨익 웃어보이는 것이, 그리 믿음직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기도 했고 말이다.
국제전의 가장 큰 변수. 잘 모르는 전술이나, 선수. 능력들로 인한 변수. 그 변수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타 팀과의 커넥션을 이용하거나 도는 소문들로 미리 대처하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한국 선수단의 총괄인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한 마디에, 강준혁과 이민석. 또 몇몇을 제외한 선수들의 얼굴이 벙쪘다.
하긴. 헌터협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바쁠 텐데 여기에 시간을 내어 올 이유가 저것 외엔 없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구보다도 든든한 우군이라는 점이리라.
능력, 지위, 명예. 경력과 연륜까지.
모든 걸 커버해줄 수 있는 최고의 호흡과 조합이, 이번 국제교류전에서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일본 팀에게서 상호 교류하기로 한 정보랑…… 베트남 팀이 가져오는 정보를 모아서 짜 맞춰보기로 하고. 전력 분석관이 분석해서 레포트를 짜 줄 테니. 그걸 위주로 해 보도록 해.”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번 국제 교류전은 지금껏 빌빌대어 별 기대도 안 하고 있던 한국 헌터스리그 팬들에게, 가장 특별한 경기가 될 것 같다는 점이리라.
***
확실하게 갖춰진 연습시설. 누구보다 뛰어났던 헌터의 지위. 그리고 강력한 연습상대가 널려있는 환경.
시간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함께 합을 맞추고, 다양한 선수 출전 조합을 연구하고. 상대의 능력을 분석하고 카운터 칠 준비를 하는 동안.
어느덧 국제 교류전의 첫 경기인 태국 전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지금까지 베트남, 일본과 함께한 연습경기와 데이터를 보면 태국은 그리 경계할 건 없는 팀이지만…….’
제작년에 더해 작년 국제교류전까지 한국 선수단에서 아쉽게 패배했던 팀이더랬다.
‘태국에서 강준혁 선배를 성공적으로 봉쇄해서 아쉽게 패배당했다고 했던가.’
강준혁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도, 효과적으로 봉쇄에 성공해 매번 이겼다는 것을 보면. 확실히 국제무대는 국제무대다 싶었다.
“그래서 이번 태국전에서는 저번에 카운터를 당했던 검의 영역이 파훼되지 않도록 해 보려고 합니다.”
전술 분석가의 발표가 이어졌다.
하지만…… 첫 경기인 만큼, 밍밍하게 가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나는 손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이렇게 가는 건 어때요?”
그 뒤에 나온 말에 강준혁은 분개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내 말을 듣고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결국은 고개를 끄덕이며 묘한 표정에 휩싸였다.
그래, 결국 경기는 선수에게 있어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관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이기도 하니까.
‘이길 수 있는 경기라면 최대한 멋지게.’
보고 있는 사람들이 환장할 수 있도록, 경기를 달아오르게 만들 작정이었다.
***
경기 당일. 평소 한국에서 헌터스리그 경기를 뛸 때와는 달리, 경기장이 부쩍 부산스러웠다.
복도에 잠깐 나갔다 하면, 카메라와 마이크인지. 무슨 장비를 마구 실어 나르며 준비하는 직원들이 보였고.
간혹 복도에서 타국 선수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네……,’
사실 한국 헌터스리그만큼이나 이쪽도 정겹고 익숙하던 풍경이긴 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인데, 당연히 우리나라 취재진이 없을 리는 없었고.
아니나 다를까, 일부러 돌아다니던 도중. 적당히 알아보는 취재진이 있었다.
“어……혹시 이창현 선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저희는 NEVER 스포츠에 기사를 쓰는 오지원 기자인데요, 간단한 인터뷰 요청 가능할까요?”
그렇게 시작된 즉흥 인터뷰.
꽤나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모습이기도 한 만큼. 재미있는 대답을 해 주리라고 생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하게 정규 리그 후 근황부터, 식사나 시설은 괜찮은지. 하는 잡다한 질문부터……
곧이어 본 질문이 시작되었다.
[오지원 기자 : 지금까지 다른 선수들과 맞춰본 소감은 어떤가요? 좀 잘 맞던가요?]
[이창현 : 뭐, 유명한 이민석 선수도 있고. 강준혁 선수도 있고, 케어해주시는 이근택 회장님도 있고.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죠.]
[오지원 기자 : 그 중에 누가 제일 잘한다! 이런 건 없나요?]
[이창현 : 제가 다 이깁니다.]
[오지원 기자 : 오오……굉장한 자신감입니다만, 지금껏 한국은 국제전 성적이 그리 좋지 못한데요. 해외 팀 상대로는 연습 성적은 괜찮았나요?]
[이창현 : 연습성적……연습성적이라.]
원래 연습 성적은 구체적으로 인터뷰에서 잘 말하지는 않는 편이긴 한데.
약간 자극적으로 가 보는 김에, 이런 것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이창현 : 이미 연습경기에서 저 혼자, 메이저 팀인 베트남과의 연습경기에서 다수의 상대를 쓰러뜨린 적이 있다. 이 정도만 말씀드려도 괜찮을까요?]
어차피 그 경기. 잘못한 건 베트남 팀이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