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화 설계라는 것
들키지 않게, 상대방의 발을 묶어달라는 이창현의 오더가 떨어진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이걸 어떻게……?’
이민석이 직접 이창현에게 알려준 적도 없는 능력을, 이창현이 훤히 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민석이 뛰는 경기는 유명한 리그였고, VOD가 모두 공개되었기에 알 수는 있을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아마 이창현이 바랐고, 원하는 기술은 대중 앞에서 잘 보여주지 않는. 혹은 은밀하게 사용하는 그 기술 같았으니까.
‘뭐, 좋아.’
어찌 되었든 지금은 한 팀. 오늘 하루는 이 건방진 후배의 말을 따라주기로 했으므로.
이민석은 자신이 들고있는 칠지도를 바닥에 꼽았다.
상대는 무모하게 파고드는 이창현에게 시선이 쏠린 상황.
아크로바틱하게 피하고는 있지만, 언제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 이창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빠르게 되어야 할 터였다.
바닥에 꼽힌 칠지도의 3형, 냉기가 바닥을 파고들어, 눈치채지 못하게 상대에게로 향했다.
그리곤, 혼자 버티고 있을 이창현에게 향했지만……
협공. 협공. 그리고 협공……
이창현이 자폭병을 격추해내고, 마나전개를 해 초속으로 공격하는 녀석에게서 달아나던 도중.
이창현의 이동경로로 압도적으로 무기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거대해지며, 휘둘러졌다.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타이밍이었다.
‘내가 더 빨리 가서 도와줬으면……!’
하지만, 그리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이거 어쩌면…….’
미리 꽂아둔 칠지도에서 내뿜은 냉기는 이미, 건물 위에서 이창현을 향해 자폭병을 날리는 선수. 그리고 무기를 거대화시켜 이창현을 저격하는 선수의 발 밑에 닿은 상태였다.
우리는 상대의 발을 순간적으로 묶을 수 있으며, 상대의 무기는 이창현에게 쏠린 상황.
게다가 저쪽 측이 사용하는 마나전개는 공수전환이 자유로운 마나전개도, 능력들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완벽한 순간…….’
이라고.
“강준혁!!”
그리고 그 사실을, 이창현의 오더를 들어 강준혁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미리 [마나전개]를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퍼뜨려놓았던 강준혁의 [검의 영역]이 순식간에 전개되며 강렬하게 마나가 요동쳤다.
그리고 그들이 휘두른 채, 그 거대한 검이 회수되어 태세를 정비하기도 전.
강준혁의 [검의 영역]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참격이 베트남 선수들을 향했다.
그들은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움직여 피하는 것을 순간적으로 시도했지만.
이민석이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땅에 심은 후, 은밀히 접촉시켰던 칠지도의 냉기가 순식간에 튀어나와 상대의 발목을 붙잡았다.
찰나. 그 찰나면 되었다.
강준혁의 [검의 영역]이 둘을 베어버리는 데 충분한 시간은.
‘이게…… 이창현이 그린 미래인가?’
이민석은 순간적으로 경탄스러웠다. 상대가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 전술적 목표. 이창현이라는 카드를 상대 측에 던져 주어, 몸이 쏠리도록 만들고, 혼란을 틈타 완벽히 역공을 설계한다.
아군의 능력과 역량을 파악해 시너지와, 전술을 구상해 가장 최적화된 결론을 도출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봤자, 결국 상대의 전술적 목표인 네가 끝장나면 상관없잖아. 이건 국제전 신인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가.’
헌터스리그 7대7 경기라고 생각한다면 좋은 선택이겠지만, 이건 결국 그 탈을 쓴 다른 무언가였다.
그렇기에 단단히 피드백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타아앙!
이창현과 공중전을 하느라, 공중에서 초속으로 움직여 격퇴하지 못한 마지막 베트남 선수가 있는 쪽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털썩.
‘이 소리는…….’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시선이 총성이 울려온 방향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엔……
마나전개를 펼쳤던 마지막 베트남 선수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으며. 그 위로는 이창현이 에어앵커를 붙잡고 고고하게 떠 있었다.
분명 아까 그 베트남 선수들의 연계는 모든 걸 걸었던 만큼, 완벽한 타이밍. 알아도 피할 수 없는 연계였을 텐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분명한 것 하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든 것을 파악하진 못해도.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완벽히 그려내면서도. 무엇하나 내어주지 않고 멀쩡히 에어앵커를 쥐고 떠 있는 이창현의 모습에 전율이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거 참,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후배구만.’
***
일반적인 강자끼리의 전투는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최대한 자신의 빈틈을 내어주지 않으면서도 상대의 빈틈을 노려 반격의 여지 없이 끝내려 하니까.
그런 교착상태에서 쉽게 경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답은, ‘일부러 빈틈을 보여주는 것……이겠지.’
승부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이 미끼를 물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빈틈.
그것을 보여줌으로 인해, 상대가 빈틈을 물기 위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고. ‘진정한 싸움’이 시작된다.
그 빈틈을 꿰뚫으면 경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뒤는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 공격은. 공격의 성공 여부를 제외한 그 무엇도 고려사항이 되지 않는다.
한 수 한 수가, 자신의 안위와 뒤를 고려하지 않는 공격이 되며.
그 공격의 실패에 대한 댓가는 서로에게 크게 돌아간다.
……물론 그 전제에 가장 필요한 것은 ‘매력적인 미끼’.
상대가 실수한 것이라고 확신하게끔 만들 만큼.
혹은 상대가 노린 것이라도 확실하게 처리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예를 들면 방금 혼자 뛰어들은 나처럼.
그리고, 거기에서 내 특기인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시작된다.
자폭병을 통한 시선분산과, 동시에 배후에서 [마나전개]를 펼치며 목을 노리는 헌터.
회피경로를 강제해 꺾어버린 후. 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완벽한 타이밍에 저격.
‘일반적으로 여기에서 끝났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직후. 마지막은 경기장 안에 있는 모든 선수들의 예상을 벗어남으로써 완성된다.
일반적으로는 순간이동이 아닌 이상 그 어떤 방식을 사용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
거기에 상대의 공격은 어떤 알량한 방어능력을 손쉽게 부숴버리는 [마나전개].
그곳에서 나는 내 능력을 한계까지 시험하며, 피할 준비를 마친다.
‘나라면 분명 이 순간에, 완벽한 공격을 가할 테니까.’
상대도 멍청한 선수가 아닌 만큼, 피할 경로 따위는 없었지만…… 그건 일반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선수의 상식에 한한 일이었다.
[완전한 몸]이 내 몸에 리미터가 해제된 듯, 한껏 펌프질하기 시작한다.
아쉽게도 에어비트까지 차단당해, 발을 디딜 곳은 존재하지 않기에. 폭발적인 속도를 내어 완전히 이 자리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몸이 림보따위를 넘어, 기이한 수준으로.
사람의 인체로는 불가능할 법한 수준까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휘둘러오는 그 거대한 검을, 뒤로 숙임으로써 피하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검이 점점 다가오고. 몸이 계속 숙여지고 있는 순간.
‘몸이…….’
한계가 느껴졌다.
아무리 능력을 사용한다고 한들, 그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에.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설령 어딘가가 망가지더라도, 저 검을 맞고 그대로 끝낼 수는 없는 참이니까.
뒤로 넘어가고, 또 넘어가고.
거의 눕는 수준으로. 온 몸의 근육과 뼈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무시하고 몸을 움직인 찰나.
그 위로, 거대한 검이. 압도적인 풍압이 몸을 휩쓸었다.
바람이 얼마나 강했는지, 귀에 찬 이어폰이 딸려나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민석은 역시나 짬밥이 있는지.
내가 오더를 내리지 않았지만, 동시에 내 의도를 완벽히 파악한 모양이었으니까.
그 다음 순간, 바로 상대의 발목을 몰래 붙잡은 이민석이 강준혁과의 합을 맞춰 적을 휩쓸었다.
‘물론 공중에 떠 있는 한 놈이 아직 남아있지만…….’
그건 저들이 처리했다고 확신하고 있는 내가, 뒤에서 마무리하면 그만.
타앙!
온 몸의 근육이 더는 못 쓸 듯 욱신거리지만. 한 손으로 에어앵커를 붙잡은 채, 샷건으로 뒤통수를 치기엔 충분했으니까.
그걸로 이 경기는 충분했다.
***
응우옌 콩 푸엉으로서는 상당히 곤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에 헌터 서바이벌을 하자고 먼저 제안을 한 것도 베트남 선수단.
거기에 결국 선수들이 결국 못 참고 전면전을 벌여버렸으니.
물론 그것까지라면 괜찮을 수도 있었다.
문제가 있었다지만, 이근택이 없었다면 그걸 덮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한국뿐 아니라, 1세대 헌터로서 명성과 지위가 있는 이근택이 옆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문제는 덮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니……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렇게 모든 걸 걸었던. 굉장한 피해까지 확정된 상황에 경기까지 말려버렸다……
‘저걸…… 살아남는다고?’
이 경기에서 믿었던 것은, 쓰러뜨린 사람의 능력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는 응우옌 쿠앙 하이의 능력인데……
놀랍게도 한국 선수단과의 대치에서 패배해버린 순간. 그건 불가능해졌다.
‘이럴 수가…….’
대체. 대체 뭐란 말인가.
응우옌 쿠앙 하이가 보기에도, 완벽한 전술이었고. 완벽한 계획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증원을 생각보다 빨리 온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까지 감안해도 이창현을 쓰러뜨리고 하이옌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계획이었단 말이다.
설령 팀이 게임에서 지는 것도 상관은 없었다.
온 선수가 달려들고, 이창현만을 바라보아 딱 한 번. 딱 한 번만 쓰러뜨리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니.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고. 연습경기에 대해서 사죄를 하는 건 상관없었으니까.
경기 내의 선수들도 그것을 알았으니, 그렇게 주 전력인 선수들이 합을 맞춰 몰아세웠던 것일 텐데.
……경기가 끝난 후. 베트남 선수들이 처참한 표정으로 대기실로 나오기 시작했다.
환하게 웃으며 농담이나 서로 주고받는 한국 선수들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물론. 이쪽도 그 분위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그 꿍꿍이는 잘 먹혀들었는가?”
“하하. 꿍꿍이라니요. 저희 선수들이 약간 혈기왕성해, 새로운 한국 선수를 보니 붙고 싶은 혈기를 참지 못했나 봅니다.”
“그러면 1대1을 신청하면 될 것을. 헌터 서바이벌을 신청해놓고는 태그매치도 아니고……아. 마지막엔 심지어 단체로 덤빌려고 했으니……끌끌.
베트남 선수들의 혈기라는 건 여럿이서 하나를 두들겨 패는 것인가 보구먼.”
웃고있지만, 안광이 흉흉한 것이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는 이근택의 의지가 느껴졌다.
아픈 곳만 정확히 찌르는 것이, 이 연습경기를 가볍게 끝내지 않겠다는 속마음을 은연히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연습경기를 하나 제멋대로 치렀다고 해서 선수단이 패널티를 받거나 하진 않겠지만…….’
국제 헌터 협회 등, 인맥도. 권력도 짱짱한 1세대 헌터 이근택에게 확실한 명분을 줌과 동시에 밉보였다가는 그 후환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연습경기라, 뭐……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겠고. 애들 싸움은 본디 애들끼리 알아서 해야 하니 넘어가야 하는 법이긴 하건만…… 또 애들이 단순히 혈기가 왕성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긴 한 것을…… 어째. 시시비비를 한 번 가려보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리고 역시나.
이근택은 이번 문제로 말미암아 확실한 보상이나 혜택을 받으려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