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54화 (254/270)

254화 완벽한 순간

이창현이 함정일 수 있다는 이 경기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안 순간.

그리고 끝내, 실제로 경기에서 이창현을 감싸고 수많은 베트남 선수들이 같잖게 술수를 꾸미며 들이닥치고 있다는 걸 안 순간.

이근택은 이 경기를 중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 그랬을 텐데.

타앙! 탕 탕!

‘저건……?’

이근택은 베트남이 이창현에게서 정확히 캐내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캐내려고 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근접 사격 한 방에, 한 명씩 떨어져나가는 저 모습에.

그리고 옆에 앉아 같이 보고 있는 베트남 선수단 총괄의 표정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국면이 흥미롭게 흐르고 있군…….’

심지어는 참지 못해, 베트남 선수단이 숨기지 않고 단체로 정면에 나섰지만.

한국 팀도 눈치가 느리지 않았던 것일까?

이민석과 강준혁을 비롯한 선수들이 증원에 나서, 어느덧 이창현의 등 뒤를 든든히 받쳐주고 있었다.

그 순간, 이근택은 이 경기를 중단시키려고 했던 것을 그만두었다.

베트남 팀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겠다고 직감한 것은 둘째치고. 이민석과 강준혁. 그리고 이창현.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이 트리오가 보여줄 광경이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 나타난 베트남 팀은 정규 멤버에다가, 중국, 일본과도 어느 정도 견주어 줄 수 있는 꽤나 강팀.

……하지만 이근택은 왠지 한국의 세 에이스가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

경기가 끝나기 전에 눈치챌 것이라고 예상은 한 듯했지만…… 그 시점이 그들의 생각보다도 빨랐던 것일까?

베트남 선수들이 이민석과 강준혁이 증원을 끌고 온 것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감이 좋군. 하지만 네 녀석들이 온다고 해도 크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베트남 선수들이 서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종의 사인이었을까.

숲과 작은 마을의 경계.

이미 이창현과 몇몇 베트남 선수들의 전투로 인해 이곳저곳이 부서진 그 마을에서, 노을이 끝내 완전히 지평선을 지나 져 버렸을 무렵.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전투가 시작되었다.

강준혁과 이민석은 상대의 목표가 내 쪽에 있다는 것을 짐작한 듯, 내 쪽으로 붙었고. 나머지 인원은 베트남 선수들의 각개전투 호흡에 맞춰 전투에 나섰다.

“상태는?”

“아직 풀 컨디션이죠.”

“베트남 선수들…… 쉽지 않을 텐데. 경기 중단 요청할래? 바깥에 베트남 선수단 총괄만 있어서 받아들여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니요.”

이민석의 제안에서 걱정이 묻어났지만, 이창현은 되레 웃었다.

그래, 오히려 이건 기회였으니까.

헌터 서바이벌 룰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은 모여서 패싸움.

헌터스리그랑 비슷하게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이렇다면 결국 어차피 국제 경기를 치르기 전 경험해봐야 할 연습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일은, 이번 국제 교류전에서 가장 메인 전술이자 키가 될 세 명의 호흡.

이민석, 강준혁, 이창현. 세 명의 호흡을 맞춰볼 좋은 기회로 삼으면 그만이리라.

***

경기 시작도 전부터, 이창현을 만류한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었다.

7대 7 헌터스리그 연습경기를 잡을 때에도, 전략 유출의 우려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잡는데…… 그것도 아니고 헌터 서바이벌 경기를?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민석은 그랬기에, 국제 경기 경력이 부족한 이창현을 말렸지만. 결국은 그의 굳은 의지에 한걸음 물러났었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나?’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녀석에게 선택을 하라고 자유를 줘 봤자, 그건 올바른 선택이 아니듯.

길을 바로잡아주든, 충분한 정보를 더 제공할 노력을 하든 해야 했던 것일까?

강준혁의 말을 들은 후.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예상했지만……

수많은 베트남 선수와 이창현이 대적하고 있는 것을 보니 솔직히 숨이 턱 막혔다.

‘베트남 팀…….’

한국팀과 달리 국제전 성적도 꽤나 나쁘지 않고, 하나하나의 능력도 뛰어난 편이었기에, 솔직히 이렇게 증원을 끌고 들어왔다고 한들.

승리할 자신이 솔직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다 못해 원래 몸 담그고 있던 팀의 안젤라와 스콧이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사실상 호흡을 처음 맞춰보는 새 팀이나 다름없었으므로.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싸움이 벌어진 것을.

이창현이 설령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꺾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최선을 다한 후여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민석은 오더를 시작했다.

“나랑 준혁이, 창현이. 셋이서 일단 한 팀으로 상대하자.”

베트남 팀은 더 많은 인원이 습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핵심 선수 셋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한국 선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름이 생소하고 길어 외우기 어려울 테니, 왼쪽부터 A,B,C 선수라고 할게.”

그때부터 초속으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이미 국제 경기 경력이 꽤 있는 선수들인 만큼 능력도 다 알려져 있었으므로.

A 선수. 마나봄버를 이용한 트릭과 자폭병 소환. 그 외에도 상대의 에어비트를 교란하는 등 베트남 팀의 공격을 만능으로 서포팅하는 선수.

B 선수. 어마어마하게 무기를 순간적으로 길거나 크게 만드는 마나전개를 사용해, 상대를 일격사하는 데 특화된 선수.

C 선수. 마나전개 후 일정 영역 안에서 초속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신속의 보정을 받을 수 있는…………

하지만 브리핑은 다 끝나기도 전에 종료될 수밖에 없었다.

콰콰콰콰쾅!

순간적으로 녀석이 휘두른 검의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길어지며 마을을 통째로 휩쓸었다.

우스울 정도로, 쉽게 갈려나가는 마을 건물들의 모습에서 그 강력함이 쉽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긴장 상태에 있었던 것일지, 강준혁과 이창현 모두 잘 피했지만……

상대의 능력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장 상황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 브리핑이라는 건 애초에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진작에 다 끝내놓아야 하는 게 상식인데.

‘제기랄…… 거기에 상대 능력은 고사하고, 내 능력도 알려줘야 우리끼리 어느 정도 맞출 수 있을 텐데. 설명할 시간이……’

“뭘 그리 속닥거리는 건가. 아까 무례하다고 할 때의 포스는 어디가고, 전투가 시작되니까 쫄리나 보지?”

비겁하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테니. 구태여 하지 않았다.

대신 임기응변으로 치러야 하는 전투태세. 그 상황에 맞춰 더 빠르게 오더를 내리기 시작했을 뿐.

“방금 그 무기가 순간적으로 커지는 공격은, 미리 그 녀석의 행동을 주시해 아직 작은 상태인 무기를 휘두르는 궤도를 보면, 미리 공격을 읽고 피할 수 있어. 그리고 다른 녀석들한테 조심해야 할 건…….”

그렇게 일단은, 상대의 공격 중 치명적인 일격을 맞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할 것을 브리핑 하던 도중.

놀랍게도 이창현이 끼어들었다.

“상대능력은 대충 다 알고 있어요. 그보다. 저 녀석들이 노리는 건 저인 것 같은데.”

“아니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정확한 대처 방법을 알지 않으면, 국제 수준의 경기에선 ㅡ…………”

말을 씨알로도 안 듣는 듯, 제 할 말을 묵묵히 하는 게. 참 마이웨이다 싶었다.

“저한테 조금. 맞춰 주실 수 있죠? 선배니까요.”

“하아.”

강준혁도 어이가 없었는지, 한숨을 내뱉었지만…… 뭐 별 수 있겠는가?

‘적들이 노리는 건 창현이니까 녀석의 경기 설계 능력이 좋다면야 창현이한테 맞춰 주는 게 최적의 전략이긴 할 텐데……’

상대의 능력을 안다고는 해도 표면적으로. 그리고 팀원의 능력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뭐, 어차피 이번에 헌터서바이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여 준 건.

이창현에게 이번 한 번을 맡겨서 경험을 쌓아주자는 의도였으므로, 결국은 들어줬지만.

“그래. 한번 마음대로 날뛰어봐. 맞춰줄 테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은 이렇게 해도 잘 될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민석의 허락이 떨어지자, 이창현은 놀랍게도 상대 베트남 선수단 삼인방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이창현…….”

당황한 마음에 소리쳐보지만,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그런 것이 의미가 있을 리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던 베트남 팀의 공격이 날카롭게 이창현을 노렸다.

마나봄버를 단 자폭병들을 에어비트에 퉁기기라도 한 것인지, 이창현을 향해 날아들었고.

이창현이 피하거나 요격을 할 것을 예상한 것인지. 나머지 두 베트남 선수 또한, 피할 곳을 예상해 공격을 조준하는 것이 한 눈에 보였다.

당장 이민석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이창현이 무모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뿐.

그래서, 당장 전선에 합류해 이창현에게 합세하려는 순간.

이어폰에 이창현의 오더가 들려왔다.

“바로 합류하지 말고, 제 말 들으세요.”

“?!”

이창현이 마나봄버를 단 자폭병들을 하나하나 권총으로 격추하며 말을 이어갔다.

“민석 선배는 칠지도로 들키지 않게, 상대의 발을 묶은 후, 합류해 저와 시선을 끌어주세요. 그리고 강준혁 선배는…….”

이민석은 곧바로 이창현의 말대로 따라줬지만, 그 다음 오더는 순탄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창현이 피하는 것을 예상한 경로에, 뛰어든 베트남 선수가 [마나전개]를 펼치고는 그 영역 속에서 초속으로 움직이며 급소를 노리는 협공이 이어졌으니까.

그 상황에서 그나마 유일한 방법은 에어비트로 그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일 텐데.

그마저도 순탄해 보이진 않았다.

이창현이 막 에어비트를 생성해 밟고 그 영역에서 벗어나려던 찰나.

에어비트의 방향에 왜곡을 가한 것일까.

분명 이창현은 한 번 휘젓고 빼려는 심산으로 에어비트를 생성했을 텐데, 그 방향이 오히려 적진. 그것도 베트남 선수가 저격하기 좋은 위치로 변환되어 있었다.

거기에, 문제는 울며 겨자먹기로 영역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창현으로서는 밟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다행히 그걸 밟아 조금의 시간이 난 것일까.

“강준혁 선배는, 완벽하게 상대의 공격이 끝난 타이밍에 마나전개를…….”

슈우우우욱 ㅡ!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유도된 이창현의 경로를 따라, 압도적으로 거대해져 그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이 하늘을 갈랐다.

치지지지지직 ㅡ.

물리적으로 피할 수 없는 각도였다.

베트남 선수 세 명의 완벽한 호흡이 만들어낸 하모니.

공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하는 경로까지 예측하여 만들어낸 최후의 일격.

……하지만.

동시에 이민석은 알 수 있었다.

상대의 휘두르기도 힘든 거대한 검이 한 번 휘둘러지고, 한 번 만들어진 자폭병이 모두 격추당했으며. 이미 한 번 [마나전개]를 시도해, 위치가 굳어지고 힘을 소모해버린 상대에게.

가장 적절하고, 완벽한 반격 타이밍이라는 것을.

이창현이 어찌 되었는지. 상대가 그래서 결국 원하는 것을 가져가도록 해 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상대와 아군의 능력조차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을 이창현이.

어찌 이렇게 완벽하게 그렸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서로의 목적과 꿍꿍이를 떠나 헌터스리그 경기의 한 장면으로만 본다면. 정말이지, 완벽한 장면이었다.

이창현이 굳이 보이스로 오더를 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분명 이 한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모든 오더와 행동이 의도되었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준혁!”

지금껏 국제전에서 그 위용을 제대로 발현한 적이 없는 [검의 영역]이 가장 완벽하게 펼쳐질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