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이 정의…… 라.’
중국 선수가 잘못하긴 했지만, 솔직히 웨이의 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와 있는 헌터스리그조차 그러한 경향이 강했으니까.
누구나 강팀과 연습경기를 잡으려고 하고, 약팀은 연습경기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뿐인가? 대부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아도, 국제교류전쯤 되는 이벤트에 와 있으면 서로 각 리그의 수준이나 평이 어떤 줄 알기에 은연중에 급을 나눠 행동하는 일도 태반이었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헌터스리그라는 스포츠는 애초에 근간부터가 그러했기에 사실 특이한 일은 아니긴 했다.
‘어찌 보면 탑에서 관례처럼 일어나곤 했던 유물 쟁탈전이자 살육전이 근간에 있는 만큼 저런 웨이의 이야기가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심신을 단련하고 자기수양의 목적이 있는 태권도 같은 것과 비교하자면 특히나.
하지만 그런 웨이의 말에 동의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냥 척 보아도 선수의 체면을 깎아먹는다느니, 오지랖을 부려대면서 시비를 걸어온 것은 저쪽 아닌가. 그것도 우리 팀 팀원을 타겟으로.
“그런데 저도 저 아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 어떻죠? 제가 저 하이옌이라는 사람한테 대련을 신청하면 되나요?”
내가 웃음을 띤 채 이정훈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그 모습에 웨이는 한 발 물러서더니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중국’이라는 거대 헌터스리그 메이저 리그의 이름을 등지고 말하면. ‘대련’이라는 말로 무게를 얹으면 물러서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렇다. 너 또한 네 말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 힘을 증명한다면 말이지. 하이옌, 대련을 받아들이겠는가?”
하이옌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볼 것도 없는 긍정의 표현이었다.
이정훈은 자신 때문에 싸움이 났다고 생각했는지, 내 옆에서 불안한지 손을 꽉 쥐었지만.
나는 되레 이정훈에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오히려 기회가 필요하던 참인데. 잘 됐으니까.’
옆 쪽에선 이민석을 비롯한 한국 선수단과 일본 팀원들이 구경하러 다가오고 있었다.
무대는 갖춰졌다.
***
“뭐? 창현이가 하이옌이랑 대련을 한다고?”
이민석이 PER의 선수들에게 전후 사정을 다 들은 후, 꽤나 놀란 듯 소리쳤다. 국제적으로 다양한 팀이 모이는 이곳에서 대련을 하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중국 팀인 데다가, 하이옌의 선수로서의 면모를 아는 이민석으로서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그 선수…… 많이 강한가요?”
자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는지, 꽤나 걱정스러워하는 이정훈이 이민석에게 물었다.
“강하고말고. 그보다 중국 팀에 대표 자격으로 나올 정도면…… 말 안 해도 알지?”
이민석이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국제적으로 ‘꽤 괜찮은’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웨이’라는 불세출의 유명 헌터를 보유한 중국의 저력을.
“사용하는 무기는 도끼. 압도적으로 강한 체술과, 마나를 실어도 검이 잘 박히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몸. 그야말로 파괴전차 같은 녀석이라고 보면 될 거야.”
“마나를 실어도 검이 안 박힌다구요? 그럼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죠?”
“……그야,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지. 그보다도 강한 공격을 꽂아넣던가. 아니면 상처입히지는 못하더라도 생포해버리던가. 본신의 무력이 약하지 않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이민석이 골치 아픈 듯 말했다.
다행히도 1대1 대전 맵으로 랜덤하게 나온 것이 ‘보석 광산’맵이었기에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창현이 그걸 눈치챌 수 있을까?
그래도 이민석은 이창현의 가능성을. 그리고 그의 영리함을 믿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직접 상처입히지 않아도 이길 수 있는 맵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때나 타쿠미를 이겼을 때처럼 이창현이 맵의 특성을 이용해 전장을 뒤엎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기지는 못해도 분전하거나, 무승부 이상의 성과는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반면, 꽤나 놀란 듯. 그리고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한국 선수단. 그리고 PER선수들과는 달리 일본 선수들은 꽤나 흥미로운 듯 지켜보는 눈치였다.
오히려 타쿠미에게서 ‘이창현’의 기적적인 능력과 퍼포먼스만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결국은 강 건너 불 구경이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켜보는 사람의 심정이 어찌되었던 간에, ‘힘’을 증명하는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었다.
***
애초에 경기장 실내였기에, 대련은 지체되지 않고 바로 시설에서 시작되었다.
맵은 랜덤 선택. 그중에서도 ‘보석 광산‘이 나왔는데…….
이것 참. 지금까지 써 왔던 전술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듯한 맵이었다.
이것만큼 무너뜨렸을 때 효과가 큰 맵은 잘 없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하이옌‘이라…….’
마주쳤을 때는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꿰뚫는 눈]으로 아까 바라보았을 때 능력을 보고 난 후에야 기억이 났다.
먼 미래까지도 중국을 비롯한 국제리그에서 꽤나 활약하는 선수였으니까.
무기는 압도적으로 물리력에 강한 능력을 바탕으로 한 근접 전투.
특이사항은 몸 자체가 무기나 다름없어 신체 자체에 강력한 방어능력, 내구력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저번에 [만개]의 랭크가 올라간 후. 진수혁과의 싸움은 꽤나 싱거운 감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상대도 상대인 만큼 조금 재미있게 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 경기는 단순하게 시비가 걸려 시작된 경기가 아니었다.
시작은 비록 하이옌의 시비에 의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밖에서 이 대련을 보고 있는 것은 한국 선수들. 중국의 웨이뿐 아니라, 일본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이 경기는 일종의 쇼케이스다.
한국 팀에는 이렇게나 굉장한 선수가 있다. 한국 팀은 이제 더 이상 옛날과 같은 약팀이 아니다.
그런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지금의 한국 헌터스리그의 국제적 위상은 압도적 약팀. 연습경기를 잡는 것조차 상대방의 어드밴티지를 설명하고, 이권을 쥐어주지 못한다면 불가능하지만……
‘내가 압도적으로 하이옌을 이기게 된다면 어떨까.’
이 시합의 이해당사자가 아닌 일본 팀의 입을 통해 이 일이 다른 나라의 팀들에게도 퍼질 테고.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이 국제교류전 속에서도 꽤나 입지를 다질 수 있으리라.
중국 팀이. 중국 팀의 선수가 가지는 무게감이라는 것은 그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렇기에 상대가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지금 등장하는 것만 보아도 그랬으니까.
쿠쿠쿠쿠쿠ㅡ. 콰콰콰쾅!
마치 땅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 그리고 온갖 동굴의 암석들이 떨어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하이옌이 나타난 것은 길이 아닌, 하이옌의 강력한 힘으로 부숴지며 길이 생긴 ‘벽’이었다.
하이옌이 내게 손도끼를 내밀며 씨익 웃었다.
“찾았다.”
***
중국이 세계 헌터스리그 1위 국가는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었다.
바로 세계의 그 어느 나라도 중국의 헌터스리그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점. 그들이 무슨 말을 한다면 굳이 거스르지 않고 인정하려 한다는 점.
‘그것이 힘을 가졌다는 것이겠지.’
간혹 이번처럼 굽히지 않고 거스르는 경우도 분명 있기는 했다. 웨이도 그런 상대를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저렇게 자신감을 내비치는 적을 본 것은 분명 처음이었다는 것. 그것은 확실했다.
‘국제리그도 아니고, 내가 이름을 아는 세계구급 선수도 아닌데 저렇게 행동할 줄이야…….’
그게 과연 자신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오만일지. 아니면 뛰어난 실력에서 오는 자신감일지.
웨이는 그것이 궁금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싸움 구경은 언제나 즐겨하는 편이기도 했고.
‘보석 광산‘으로 맵이 지정되고 경기가 시작되자, 하이옌은 시작부터 상대를 탐지하고,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감히 길을 돌아서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강력한 힘. 그게 하이옌의 특성이기도 했으니까.
동굴이 무너지든 말든. 암석이 뭐 딱딱하면 얼마나 딱딱하냐는 듯. 두부를 뭉개듯 한국 팀의 녀석에게로 나아갔다.
그렇기에 도착하는 것도 일순간.
아직 상대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생각하는 동안, 하이옌은 한국 녀석 눈앞에 서 있었다.
‘자…… 그럼 어떻게 나온다?’
녀석의 첫 시도는 우습게도 ‘총’을 쏘는 것이었다.
‘총…… 이라. 에단을 제외하면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괜히 아무도 안 쓰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무기였어도 막혔겠지만. 저 봐라. 하이옌에게 상처는 커녕 흠집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금 특수한 탄과 능력을 사용해 능력을 보조하는 듯싶었지만, 그 한계는 뚜렷했다.
‘에단’처럼 말도 안 되는 마나량으로, 총이 아니라 파괴광선을 쏘는 수준의 무언가였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녀석은 생채기 내는 것에 지나지 않을 권총을 난사하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지속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발악?
‘웃어…….’
순간적으로 실성했나?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웨이로서도 그 한국 녀석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하이옌의 저 금강불괴와도 같은 육체는 마나봄버로도 생채기가 나는 정도에서 그칠 텐데. 모든 총알을 비비탄처럼 씹어넘기는 데도 웃고 있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무언가 더 숨겨둔 것이 있는 모양인데……
‘총을 저격총으로 바꿨나.’
저 정도라면 아주 실망이었다.
분명 파괴력은 권총 형태의 그것과 차이가 크겠지만. 의미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지금 보면 모르겠는가?
‘하이옌은 봐주고 있다.’
일부러 맞아주고 있는 것이다. 저 손도끼를 휘두르면 끝날 수 있는 것을. 별다른 제스쳐를 취하지 않고서.
상대에게 최대한 굴욕적인 패배를 선사하기 위해서.
그 와중에 한국 녀석의 사격 솜씨가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긴 했다.
몸놀림도 아주 능숙할 뿐더러, 얼핏 보기엔 저격총이 하이옌의 정확한 관절과 약점들을 노려 견제에 성공해 추격하는 것을 막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이젠 끝이었다.
‘슬슬 끝을 내려는가 보구나.’
하이옌이 금색 손도끼를 꺼내들고는 총을 맞는 것을 감수하며, 몸을 앉았다 일어나며 용수철처럼 날아갔다.
에어비트를 통한 반동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도 빠른 이동속도.
반응했다 하더라도, 손도끼의 거리를 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끝이군.’
하이옌의 손도끼는 마나실드는 물론, 마나 프로텍터까지 순두부마냥 잘라버리는 강력한 힘이 담겨있었으니.
그것을 막을 방법은 웨이로서도 별로 생각나지 않았다.
거기에 상대는 대처할 준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다.
‘기대했건만…… 자신과 상대의 차이조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는 잔챙이였나.’
아니, 중국이라는 나라의 헌터가 대단한 것이리라.
웨이가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고 박수를 치려는 순간.
화면에 하이옌과 한국 녀석의 거리가 초 근접전에 달한 순간.
거대한 굉음과 함께,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