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트러블
국제교류전 선수단 출국 당일.
공항으로 가는 길, 이연주가 국제교류전 선수로 뽑혔을 때 좋아하던 장면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능력이 생기면서 솔직히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텐데…… 그렇게나 좋아하다니.’
소심한 게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엄청나게 좋았던 모양이었다. 하긴, 3부 무승 팀에서 꾸역꾸역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교류전의 멤버?
그야말로 땅부터 하늘까지, 인간승리라고 보아도 무방했으리라.
그러니 예상했어도 그만치 좋아할 수밖에.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도 정말 인상깊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평소엔 소심한 녀석이……
‘우… 우와…… 아아아앗!’
무슨 언어인지 감탄사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괴성을 내며, 오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으니까.
김도준은 심지어 그 광경이 얼마나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 휴대폰으로 영상촬영을 하고 있었다.
분해하기보다 그런 거에 집중하는 걸 보면, 완전히 흥미 위주로 산다니까.
반면 윤한결의 경우. 자신이 뽑힐 것이라 예상했는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 한 번 하고 말아서 싱거웠다.
‘이래서 잘난 놈들이란…….’
교체를 위한 대기 멤버로 들어온 류재준의 경우는 아쉬운 듯해도, 새 능력을 얻은 둘에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건 그렇고, 결국 전지훈련을 겸하고 있기에 결전지까지 PER팀원 전체가 함께였지만.
이전보다도 팀원이 계속 늘어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완전히 복작복작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1부에 들어온 선수만 해도 꽤 많았고, 지금만 해도 그렇다.
원래는 대충 대형차를 타고 다녔거늘. 이제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다니지 않는가?
새삼스럽게도 팀이 커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공항으로 도착한 순간.
국제교류전 선수단이 모인 곳이 보였다.
전지훈련을 겸사겸사 다른 팀원들까지 바리바리 데리고 온 PER과 다르게, 다른 팀들은 딱 출전하는 선수만 와 있었다.
그리고 국제교류전 멤버에 예상치 못한, 반가운 얼굴도 있었고.
“와…… 팀원 전체가 가는 거야?”
국제교류전에 참가하기 위해, 시간을 내어 해외리그에서 잠시 돌아온 이민석이었다.
“선배!”
더 헌터스 제네레이션 오디션 때 시작된 인연이, 여기에서 또 이어질 줄이야. 나중에 국제리그에 나가서나 경기에서 얼굴을 마주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외에도 멤버는 짱짱했다.
LTD의 강준혁과 강준혁을 압도적으로 서포팅해 줄 이지훈. 그리고 교체 멤버로 온 이준서.
SAA의 1대1 스페셜리스트 진수혁. 그리고 이민석까지.
한국에서는 올스타라고 할 수 있을 법한 라인업이 꾸려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PER이 양심 없이 많이 가져가긴 했네…….’
나와 윤한결, 이연주에 대기 멤버로 류재준까지.
4명이나 인선을 가져갔으니까.
하지만, 당당히 한국 헌터스리그 1부의 정규리그 1등을 달리고 있는 팀이니 괜찮지 않을까?
“다 왔나. 그럼 출발하지.”
이근택이 평소 내게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튼, 부산스럽고. 꽤 혼란스러운 국제교류전 선수단과의 첫 조우였다.
‘이 멤버로 팀을 이룬다라…….’
아무래도 국제교류전은 꽤나 재미있을 듯했다.
***
비행기 안에서 다른 PER 팀원들은 당연하게도 선수단이 아니었기에, 좌석이 따로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옆자리만 하더라도, 한 쪽은 이민석. 한 쪽은 강준혁. 이렇게 타 팀의 선수들만 있었으니까.
물론 그래서 더 재미있기도 했지만.
“창현이는 국제 경기도. 다른 팀의 선수랑 합을 맞춰보는 것도 처음이지?”
“뭐, 그런 셈이죠.”
“그 어정쩡한 대답은 또 뭐야. 자신이 좀 있나보다?”
이민석이 놀리듯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성적이 안 좋다보니, 긴장이라도 풀어 주려고 말 걸어주는 모양이었는데.
긴장은 무슨, 짬이 얼만데.
“그야 자신은 없죠. 질 자신이.”
이민석은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나저나, 오히려 궁금한 쪽은 이쪽이었다.
“그보다 이민석 선배야말로 원래 한국 국대나 그런 거 잘 참가 안 하시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국제교류전엔 참가하셨네요? 좀 의외라.”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회귀 전에도 참가를 딱히 안 했던 걸로 안다. 무엇이 그의 선택을 바꿨던 것일지. 새삼 궁금했다.
그런데 답변을 듣자, 그 질문을 한 것을 후회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너랑 해 보고 싶어서.”
또렷하게 두 눈을 응시하면서 대답하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진지하게 대답해줘서 의미 전달은 제대로 되었지만.
이 사람도 약간 변태스러운 모습이 있다 싶었다.
어쩌면 더 헌터스 제네레이션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부터, 같이 경기를 뛸 날만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이가 없어 벙 찐 내 모습을 캐치했는지, 추가 설명을 덧붙였지만.
“그것도 있지만…… 평소엔 내가 껴도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 그런데 이번엔 좀 느낌이 다르달까?”
“성적을 거둔다라……그럼 성적은 승률 몇 할을 예상하시는데요?”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 자리에선 나 다음으로 해외리그에 대한 이해가 깊고, 경험이 많은 이민석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그리고 그 대답은 꽤나 놀라웠다.
“아직 합을 안 맞춰봐서 모르겠지만…… 5할 즈음?”
“이민석 선배…….”
그런데 그 말에 더 놀란 건 나보다도 강준혁인 모양이었다.
“이번 선수단 전력이 지난 번보다 강력할 수도 있는 건 맞지만. 5할의 승률이 나오려면 중국이랑 일본 팀에도 3분의 1 이상은 경기를 이겨야…….”
“그것까지 포함한 거야.”
“이번 중국 선수단엔 웨이가 껴 있는 것도 알고 계시구요?”
이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강준혁이랑은 다른 의미로 놀라웠다.
‘5할이라…….’
내가 회귀 전 [만개]를 개방했을 때. LTD의 멤버들과 함께 국제교류전이라는 첫 국제무대에 나가서 얻은 승률이었으니까.
그때는 물론 이민석과 강준혁이라는 걸출한 카드가 없긴 했지만.
과거에 내가 실제로 겪었던 데이터와, 이민석의 예측이 얼추 맞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일단 확실한 것 하나는, 그때보다도 지금이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었다.
이민석은 5할이라고 했지만, 만약 내가 과거에 [만개]를 개방했을 시절만큼만 활약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과거보다도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을 테니까.
***
해외에 도착하고 난 이후, 경기장과 인근 시설까지 가는 것까지 일사천리였다.
헌터스리그가 한국보다 흥행한 일본인 만큼, 경기시설도. 관련인프라나 접근성도 많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경기장이 더 많기도 하고.’
그 외에도 인구 자체가 많기에, 시장이 더 큰 것도 있으리라.
물론 함께 온 PER의 팀원들은 다른 곳에서 놀라고 있었지만.
“우와…….”
“진짜 개쩌네.”
미국에 갔을 때와는 또 다른 놀람이 있었다.
압도적으로 거대한 전각 형태의 외관.
그리고 마치 관광지에 온 듯한 세련되고 정통적으로 디자인 된 경기장의 외관이 그야말로 장관이었으니까.
물론 옆의 한국 선수단 전부 무덤덤한데, PER 녀석들만 입 벌리고 감탄하고 있는 광경이 약간 쪽팔리긴 했지만.
“야…… 야. 입에 파리 들어가겠다.”
미국도 갔었으면서. 게다가 한국도 디자인이 조금 현대적일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은데. 어디 오지산간에서 온 것처럼 반응을 보이고 있으니 원.
그러던 와중. 멀리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민석!”
놀랍게도 나도 아는 얼굴이었다.
“타쿠미.”
일전 한국에서도 한 번 손을 섞은 적 있는 일본의 에이스 원거리딜러. 미나미노 타쿠미였다.
“이번엔 웬일로 나왔구나. 기른다던 유망주도 함께.”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으니,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걸?”
“하핫. 기대하지. 그건 그렇고 이번에는 일본팀도 상당히 긴장 중인데.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은근슬쩍, 일본 팀과 한국 팀이 같이 시설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었는데.
타쿠미와 이민석의 말이 신경 쓰였다.
‘무언가 회귀 전이랑 또 달라진 게 있나?’
“올해 특히 중국이 교류전 팀 선발에 힘을 썼다고 하더라고.”
‘……’.
회귀 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정보였다.
중국은 보통 국제리그에나 힘을 쓰고, 국제교류전은 주로 2군과 1군 에이스 선수 몇 명이 들어가 활약하는 식으로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좀 다른 모양이었다.
“웨이야 뭐…… 항상 나왔지만, 이번엔 위메이. 하이옌. 젠화. 그런 창창한 선수들을 다 외국에서 불러들였다고 하더라고.”
전부 아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무게감이 달랐다.
중국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애초에 시장도 크고, 자국에서 얻을 수 있는 명성이나 페이도 커 정말로 실력과 힘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은 이상 외국 리그로 잘 안 나가니까.
외국에서 불러들였다는 것은, 중국의 알짜배기들. 즉, ‘진짜 실력파’라는 의미였다.
“웨이에 하이옌. 젠화같은 선수까지라…… 이번엔 일본도 좀 힘들겠는걸?”
“그러게 말이야. 큭큭. 그래서 공동의 적이 있으면 같이 해치우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찾아온 거지. 연구도 같이 하면 더 좋으니.”
‘그런 이유였나.’
한국이 아무리 지금 언더독. 약팀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지만, 중국팀과 경기를 하면 어찌되었든 경기에 대한 데이터가 남는다.
그리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면 당연히 더 좋을 수 있으니, 함께 힘을 협력하자. 한국에게 다른 어드밴티지를 줄 수 있다. 그런 제안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어드밴티지는 보통 일본 팀과의 연습경기를 잡아주겠다…… 그런 것일 텐데.’
솔직히 내가 보기엔 좀 구미가 당기는 제안은 아니었다.
해외에 전지훈련을 가면, 상대적 약팀들은 연습경기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건 사실이었다.
약팀들은 강팀에게 줄 것은 없는데 비해, 강팀은 정보가 새어나가고, 그들을 키워줄 기회를 주는 것의 어드밴티지가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번 국제교류전에서 ‘한국’이 약팀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물론 이민석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민석이 대답했다.
“꽤 괜찮은 이야기인…….”
옆에서 갑작스레 들리는 고성에 대화가 끊겨버렸지만 말이다.
‘타이밍 괜찮네.’
근데 갑자기 선수와 관계자들만 있는 이곳에서 고성이 오가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고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니……
‘우리…… 팀?’
이곳 저곳 조금씩 돌아보면서 가고 있었는지, 조금 떨어졌던 PER의 팀원들이 다른 선수들이랑 고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이 엮여있다는 걸 알고, 그쪽으로 달려가 확인한 순간.
그 상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팀…….’
중국팀인 걸 알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자동 번역음성이 나오기 전, 중국어로 말을 내뱉고 있었던 것.
그리고 고성을 높이는 사람들 뒤에, 다른 곳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웨이가 보였으니까.
그 앞에는 이정훈과 어떤 중국 선수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내가 틀린 소리를 한 것이 있는가? 소국의 촌 동네에서 왔는지, 관광객 마냥 싸돌아다니는 것이 선수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한 것이.”
그 한 마디에 상황이 딱 그려졌다.
다른 나라의 경기 시설에 와서 이것저것 신기한 부분들을 구경하고 돌아다니는데, 저 중국 선수가 지나가며 비웃거나 핀잔을 준 모양이었다.
우리 팀원들은 그것에 반응한 것일 테고.
‘중국에선 체면이 중요하다고 듣긴 했는데…… 중국인이 아닌 선수가 헌터의 체면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할 줄이야…….’
생각보다 그 범주가 넓은 모양이었다.
물론 이정훈이 그 말에 당하고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러신가요? 그래도 우리가 한국에 관광객으로 와서 진상을 부리는 중국인들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지금 네가 감히 중국과 중국인을 모욕한 것인가?”
대화가 거기까지 오가자, 후끈한 열기가 오가는 가운데.
내가 끼어들기 전에 웨이가 한숨을 쉬며 먼저 끼어들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꼬맹아. 하이옌이 먼저 잘못한 것은 맞지만, 네 말이 또한 중국과 중국인 전체를 모욕한 것도 맞다. 사과해라.”
“먼저 저 사람이 잘못했는데 왜 사과를 내게 요구하시나요? 웃기네요.”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지? 국제정치도. 경제도. 그 외의 모든 것도 힘의 논리에 따라 굴러가지. 세상은 결국 힘의 논리에 따라 굴러간다.”
흥미로운 말이었다. 회귀 전에도 웨이랑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는데. 이런 인물이었나?
“우리는 너에게 사과를 요구할 힘이 있지만, 너는 그것이 없을 뿐이다.”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해야지. 그게 무슨…….”
“하아……어 린애 상대는 어렵군.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단순하게 말하지. 헌터스리그에서 입지도 없는 나라. 그것도 그 나라의 선수인지도 아닌지도 모르는 녀석에게 차릴 예의는 없다는 거다. 만약 이의가 있다면, 하이옌에게 대련을 신청해라 꼬맹이. 그럴 힘이 있다면 말이지.”
‘힘이 정의…… 라.’
“그런데 저도 저 아이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 어떻죠? 제가 저 하이옌이라는 사람한테 대련을 신청하면 되나요?”
내가 웃음을 띤 채 이정훈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거,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