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진화의 발판
“모두 조용히. 선발인원 3명은, 나를 포함해 외부의 선수와 전문가를 초빙해서 고를 거야.
그 동안은 모두 개인훈련에 전념하도록 하고.”
그 말을 들은 PER 팀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이제 꽤나 오래 알고 지내서일까.
이미 나를 꽤 잘 알고 있는 몇몇은 그 말에 바로 개인훈련을 하러 들어가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제 내 의도를 꽤나 잘 읽을 줄도 알게 되었네.’
국제 교류전에서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음을 입증해라.
개인 훈련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이나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라.
지금 연습실로 들어가는 몇몇은 내 그런 의도를 정확히 읽었음이 틀림없었다.
물론, 핵심이 아닌 부분. 외부의 선수와 전문가를 초빙해서 고른다는 말에 집중하고 있는 녀석도 있었지만.
“외부 선수? 전문가?? 누굴 초빙할 건지 정도는 알려줘야지.”
‘으이구…….’
김도준은 가끔 똑똑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줘도. 이럴 때 항상 점수가 팍 깎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맘이다 이 자식아. 가서 훈련이나 해.”
김도준의 머리를 쥐어박자, 슬슬 회의실에 있는 팀원들은 제각기 목적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 남아 있는 녀석들도 있긴 했지만.
“근데…… 창현이 형. 그거 국제교류전 하면 외국 갈 텐데. 그거 거기 참가하는 사람만 가는 거예요?”
이정훈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했다.
‘귀엽네.’
귀염성이라고는 없고, 뻔뻔한 질문만 날려대는 김도준을 보다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학습 의욕이 짱짱한 후학을 보니 가슴이 든든해졌다.
확실히. 따로 공지하지 않아 궁금한 사람이 꽤나 많을 부분이긴 했다.
실제로 이정훈을 제외하고도 몇 명. 남아서 그 질문에 꽤나 관심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아니. 국제교류전이 열리는 국가엔 다 같이 간다. 그 나라에 가면 국제 교류전 한다고 온갖 나라, 온갖 팀들이 올 텐데. 거기에서 친선전이라도 하면서 경험을 쌓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이정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고 보니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댔나?
‘사실 이정훈이 지금 1부 정규 리그 PER 로스터에 올라와 있었으면 얘를 끼워넣었을 텐데…… 아쉽단 말이지.’
회귀 전이랑 지금은 국제교류전 멤버 구성이나, 상황 자체가 꽤나 달라지기도 했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번 국제교류전에는 꽤나 유망한 선수들이 많이 나올 테니까.
‘물론 아쉽게도 아시아 지역 국제교류전이라 북미나 유럽 쪽 선수들과는 교류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이번 국제교류전은 엄청 치열할 수밖에 없었기에.
3부 시절 마주쳤던 미나미노 타쿠미가 있을 일본 팀이나, 능력과 유물빨로 밀어붙이는 중국 팀.
그리고 기상천외한 전략들을 종종 들고 나오는 다크호스. 동남아 쪽 팀들까지.
일종의 ‘지역시드’ 갯수를 두고 경쟁하는 일종의 친선전이었다.
그 지역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면 국제리그 팀 출전권의 개수가 상향되는 식으로.
지금 한국이 국제리그에 가지고 있는 출전권은 단 한 장이었으니 떨어질 곳은 없긴 하지만.
아무튼 한 가지는 확실했다.
완전한 국제리그만큼 세계 최고급 팀들이 모두 참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귀 전, [만개]를 개방했을 때에도. 겨우 절반의 승리밖에 따내지 못했던 수준 높은 경기가 가득한 곳이라는 것.
‘[만개]……는 하지 않았는데. 회귀 전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강준혁이라는 전 회차에 없는 강력한 카드가 있더라도 그건 미지수이리라.
하지만. [만개]가 개방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만의 새로운 무기들을 많이 갖췄을 뿐더러.
‘어쩌면…… 이번에 ‘가능성을 닫는 함’의 효험을 아직 보지 못한 녀석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을까?’
새롭고 재미있는 전술이 쓰여질지도 모른다는 점. 회귀 이전보다 훨씬 박진감 있고, 역동적인 경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리라.
***
[……해서 선배에게도 의견을 물어볼까 하는데요. 괜찮으시다면 부디 부탁드립니다.]
‘하…… LTD대 PER전을 그렇게 이겨놓고 이런 문자를 보내다니.’
강준혁은 이창현으로부터 온 문자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항상 한국 리그의 최전선을 이끌어왔고. 가장 뛰어난 선수라는 찬사와 왕좌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가 너무 고독하고 무거웠던 것일까.
오히려 내려놓음으로써 더더욱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자신을 꺾은, 최고의 유망주. 어쩌면 국제리그에서도 활약을 보여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후배가 자신을 이렇게 대우해주는 것이 내심 고맙기도 했고.
‘더 헌터스 데이 파티 때도 그렇고, 경기 때도 그렇고…… 막상 만날 때는 도발도 잔뜩 하고, 자신만만하지만. 또 이렇게 문자나 메일을 보낼 때는 깍듯하게 리스펙을 담아 보낸다니까…….’
문자의 내용은 단순했다.
PER에서 이번 국제교류전에 참가할 선수들을 선발하려고 하는데, 강준혁 또한 함께 골라달라는 것.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어느샌가 PER의 홈에 차가 도착해 있었다.
“여긴가.”
팀 홈을 벗어나 본 것은 오랜만이라 조금 긴장하던 찰나.
우당탕탕!
“야! 이정훈! 거기 안 서?”
“아니, 창현이 형이 도준이 형 마나장비 몰래 한 번 써보면서 익히는 것도 좋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럼 들키지를 말았어야지!”
멋들어진 PER의 팀 홈. 정원에서는 어이없게도, 헌터스리그 1부 선수라는 것의 술래잡기가 이어지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이가 없어,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지만.
뭐,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냥 몰래 지나쳐 들어갈 뿐이었다.
‘PER은 생각보다 분위기가 훨씬 자유롭구나…….’
LTD처럼 각이 딱 잡힌 연습과 훈련 프로그램. 선수 통제가 상대적으로 덜 이루어지는 모양이었다.
조금 의외였던 부분은, PER의 선수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엄청 빡세고, 조금은 경직된 분위기에서 훈련이 진행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PER의 팀 홈에 들어가 지나다니며 보게 되는 훈련은 그렇게 분위기가 무거워 보이지도. 엄청 막 한계를 시험하는, 타이트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체계성은 돋보이지만, 약간은 자유로운 그런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잠깐 둘러보던 도중. 이창현이 내려왔다.
“아. 와주셨군요.”
가끔 반말할 때도 있더니. 또 이번엔 존댓말이다.
‘참 재미있는 녀석이란 말이지.’
“후배가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지. 거기에 결국 나도 참가하는 ‘국제교류전 멤버’선별에 관한 건데.”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그 말을 듣고 활짝 웃는 것이. 거리낌이 없어 보이는데. 우리 팀, LTD를 패배시키고도 이렇게 부르다니. 눈치가 없는 건지,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아무튼 재미있는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확히는 뭘 해주면 돼? 단순히 내가 마음에 드는 녀석을 뽑으라는 건 아닐 테고.”
“대화가 빨라서 좋네요. 사실 내부적으로 정한 룰이 있습니다. 팀에는 일단 훈련 기간 동안 ‘제일 많이 성장한 녀석’을 데리고 가겠다고 공언했거든요.”
‘이기기 위해 팀 궁합에 좋다거나, 가장 뛰어나게 잘 하는 선수가 아니라…… ‘제일 많이 성장할 수 있는 녀석’을 데리고 가겠다라…….’
국제교류전에 참가하는 선수의 입장으로서는 눈살이 찌푸려질 만도 하지만, 강준혁으로서는 오히려 흥미와 감탄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 모든 경기를 이기기 위한 것보다도 선수를 성장시키는 수단으로서 더 크게 바라보고 있구나.’
국제교류전은 PER에게도 의미가 클 수밖에 없는 경기일 텐데.
거기에서 더 큰 활약을 할 수 있는 선수보다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선수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상당한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으니까.
국제교류전은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자국의 팀을 응원하게 되는 경기. 특히나 매년 죽만 쒀온 국제리그보다는 승점을 챙길 수 있는 경기였다.
그렇기에 못하는 선수는 표적이 되어 조리돌림을 당하며 욕을 먹고, 이기면 국가적 영웅이 되어 돌아오는. 그런 경기인데……
그런 경기에 ‘이기는’선수가 아니라 ‘성장성이 높은’선수?
이건 선수의 성장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혹하다는 것까지도 생각이 미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국제교류전에 나도 나가는데, 승리보다는 자기 팀원 승리에 신경을 더 쓰겠다니. 그거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그렇기에 내가 이 말을 한 것도. 모든 선수를 생각해서 한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는 성장성이 높은 선수도, 발을 헛디뎠을 때 트라우마가 되어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런데 되돌아온 질문은 의외였다.
“제가 승리에 신경을 덜 쓴다구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제 머릿 속에 든 건 승리밖에 없는데…….”
내가 이창현의 말을 듣고 읽은 그의 의도와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대충 넘기려는 것일까?
아니면……
‘팀원의 성장에 집중시키면서도, 그런 선수들로 이기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인가……?’
그건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일. 정말 만에 하나의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이창현이 3부에서부터 걸어온 행보처럼.
국제교류전에서마저. 그 둘을 동시에 성공시킨다면.
지금 태연하게 말하는 저 한 마디를 진짜로 실현시킬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군.’
1세대 헌터들의 성지였던 한국이. 다시 헌터스리그에서 날아오르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리라.
***
“휴…… 드디어 갔네. 근데 저거 진짜 다 보여줘도 되는 거야?”
이종규 코치가 와서 강준혁 선수를 보낸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팀 홈의 시설이나 훈련 방식. 그런 것들은 타 팀에 잘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에, 우려되는 모양이었다.
“뭐, 그렇게 특별한 걸 보여준 것도 아닌데요 뭘.”
“그렇긴 한데…….”
그 부분만 보고도 강준혁은 큰 감명을 받은 것 같긴 했지만.
“그것보다. 애들 상황은 어때요? 다들 잘 훈련하고 있나…….”
“그게…… 요새 능력 숙련도라고 해야 하나…… 특히 좋아진 애들이 몇 있긴 했어. 기술 코치님들이랑 이야기해 보는데, 그런 경우가 없어서 특이하다고 하시더라고.”
“특이하다…… 라.”
아무래도 염두해 두고 있던 일이 생긴지도 모르겠다.
‘가능성을 닫는 함’의 효험은 아무리 늦더라도 나타날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그 좋아진 애들이 누구죠?”
이종규가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연습실을 지나다니며 이종규에게 브리핑을 부탁하는 동안, 옆쪽 연습실에서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비춰지고 있었으므로.
‘저건 대체…….’
회귀 전. 윤한결이 1부리그에서 A급 선수로 분류되었을 때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 연습실 안에서 보이고 있었다.
덩달아 그 능력을 이용해 아주 재미있는 전략이 떠오른 것은 덤이었다.
“아주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