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능력 테스트
점수를 올려감에 따라 진수혁과의 충돌은 필연적이자, 이 랭크전의 마무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 것은 아니기에, 내 점수가 올라갈수록 랭크전 대기실에 상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우연히 진수혁과 눈이 맞아 동시에 랭크전을 돌리고, 심지어 매칭이 돌린 이 때에.
사람이 아주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진수혁과 매칭이 잡혀, 경기장으로 입장하는 순간. PER 쪽이 잠깐 눈에 밟혔는데, 김도준이 나에게 힘내라며 눈을 찡긋이고 있었다.
‘내가 김도준 때문에 방금 진수혁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데…….’
그래도 뭐. 모처럼 팀원이 해준 응원인데 즐겁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겠다.
***
“이창현이의 PER이 LTD로부터 승리를 따내다니…… 허 참.”
“평소에 그리 이창현이 이길 거라고 말하고 다니더니만, 실제로 이기니까 당황스럽기라도 한 건가.”
조준호가 감탄사를 탁 내뱉으며 실실 웃는 이근택에게 말했다.
웃긴 것이 평소에 그리 이창현 자랑을 해대고, LTD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기가 말하더니.
막상 이기고 나니, 이길 줄 몰랐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웃기지 않는가?
“어허. 실제로 이기니 당황스럽다니. 이건 당황이 아니라 행복한 웃음인걸을…… 끌끌. 이번 국제교류전은 참 인선이 풍부하겠고만.”
“자네가 보낸 서류. 나도 봤네. LTD에서 3명. PER에서 2명. 진수혁. 조아라. 이렇게 7명을 정규 멤버로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몰라. LTD에선 강준혁이, PER에선 이창현이가 올 텐데. 그러면 딜러만 너무 많으니까.”
그 말에 조준호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근택이 저 말을 하는 숨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진수혁이나 조아라를 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PER을 제외하면 아직 확정된 건 없지. 정규멤버로는.”
그러니까…… 진수혁, 조아라, LTD는 모두 소집에 관련해 연락을 취하긴 했지만, 실제로 그게 정규멤버일지 어떨지는 아직 미정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강준혁 정도는 단연 정규멤버로 참가하겠지만…… 지금껏 몇몇을 제외하면 크게 변동이 없던 국제전 멤버의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은 틀림없었다.
“거기에. 아직 한 자리 냄겨둬야지.”
“뭐? 또 있다고?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
이 정도면 챙길 것은 다 챙겼거늘.
PER이야 이창현도 그렇고 명분은 있다고 보는데 이번엔 또 뭘……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뭐를…….”
이근택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랭크전 1위. 아직 진수혁이로 확정이 나지 않은 것을.”
때마침 이근택이 설정해둔 알림이 울린 것인지, 자동으로 협회장실 벽면에 있는 티비에 불이 들어왔다.
화면에 비춰진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가면을 쓴 녀석과 진수혁의 랭크전. 그것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창현이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저번에 보니까 같이 경기를 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해도 랭크전이랑 헌터스리그가 다른데. 그 녀석이 1등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제교류전 정규멤버로 뽑아서 데리고 가겠다고?”
이건 어마어마한 특혜였다.
팀적으로 활약할 수 있는 능력인지, 그런 경험이 있는 선수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특혜를 주다니……
조준호는 머리가 아득해졌다.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긴 했다.
이근택이 이번 랭크전 1위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했으니. 그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으니까.
“이러쿵저러쿵 할 것 없이 한 번 보자고. 녀석을. 쓸 만한 녀석인지 어떤지.”
조준호와 이근택의 시선이 중계 중인 화면으로 향했다.
***
어제 연습실에서 몸을 움직여보았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확실히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었다.
기초체력인 스테이터스가 확 올랐다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마나가 굉장하게 흘러넘치는 것이, 이 상태면 진수혁의 능력으로 마나가 조금 빨려 나가더라도 상관이 없겠다 싶을 정도의 마나량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당해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진수혁은 역시나 시작하자마자 자신의 능력을 걸어왔다.
[원형 투기장 (S)] : 자신, 상대 모두 벗어날 수 없는 투명한 원형 투기장을 생성합니다. 그 후, 원형투기장에서 발생한 마나 사슬이 뻗어나가, 한 명의 상대의 이동을 제약하고 마나를 빨아들입니다.
저번 SAA와의 경기 때 매운 맛을 제대로 보았던 능력이었다.
그야말로 1대1 능력에서는 최강의 능력이라고 할 법 했지만……
‘그 메커니즘은 이미 다 파악했다.’
[꿰뚫는 눈]덕택이었다. 저 원형 투기장이란 능력이 상대로부터 빨아들인 마나로 유지되는 능력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은.
그렇기에.
샤샥 ㅡ.
처음 원형 투기장이 생성되고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상대에게 부착되려고 하는. 저 촉수 같은 마나 사슬이 부착되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스스로 무너지는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저번에 피하지 못했던 만큼, 피하기가 쉬운 건 아니었지만……
[완전한 몸 : 한계 가속 (숙련도 : C)] : 완전한 몸을 극한으로 이용했을 때, 인간이 가속할 수 있는 한계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체내 마나량이 많아질수록 난이도가 증가합니다.
강준혁조차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움직였던 그때의 기억은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황.
물론 [만개]의 랭크가 높아지며 마나량이 증가해 컨트롤이 더 어려워졌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피하는 데 온몸을 움직일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휙 ㅡ.
원형 경기장에서 계속해서 뻗어나오는 무형의 마나 사슬을 [꿰뚫는 눈]으로 감지하고, 살며시 어깨를 비틀어 피했다.
아마 관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빠르지도 않은 적당하게 느릿한 속도로 보이지도 않는 뭔가를 피해 움직이는 거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진수혁은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뭐…… 뭐야. 너.”
그래. 차라리 LTD대 PER전처럼, 강준혁이 눈 한번 깜빡하기도 전에 뒤를 잡아버렸으면 그건 그것대로 경악했겠지만, 가만히 있다가 순간 가속으로 몸을 조금만 비틀어 모조리 공격을 피하는 것도 결코 이해의 범주 안에 있는 플레이는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꽤나 재미있었다.
저번처럼 순간적으로 온 몸을 가속시켜 속도의 우위를 잡아 상대를 압도하는 것보다도, 일부분만 가속시켜 마치 똑같이 움직이는데 상대가 못 맞추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더군다나 피했던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한 진수혁으로서는 충격이 더 크겠지?’
당황한 진수혁이 마나를 끌어올려 [원형 투기장]의 족쇄들이 수도 없이 엄청난 속도로 추적해왔지만 역시. 의미는 없었다.
“어떻게…… 그걸…….”
진수혁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리라.
보이지도 않고, 무지막지하게 빠른 그 족쇄들을 모조리 피해냈으니.
하지만, 그만큼 강력한 능력이기에 분명 부착하기까지 드는 마나량은 적지 않을 터.
진수혁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저 땀방울들이 그 증거였다.
“치사하게 그런 거 쓰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자고. 이쪽은 능력도 숨기면서 싸우는 판인데 말이야. 랭크전 1위라는 양반이.”
뭐, 사실 아예 능력을 안 쓴 건 아니고 내가 이창현이라는 걸 들키지 않게끔 적당히 한 것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런데 그 말이 직격타였던 것일까?
“오냐.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전력으로 상대해주려고 했을 뿐인데 치사하다는 말을 들을 줄이야. 하.”
진수혁이 무기를 빼들며 말했다.
“네 능력.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어주마.”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닌 듯, 진수혁이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는 쪽으로 변했다.
한 손엔 날카로운 검술로 찔러대며 거리가 벌어지거나 한 숨 돌리겠다 싶은 순간 비도를 날려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템포가 달라졌다.’
과연 랭크전 1위를 장기집권한 선수라고 해야 할까. [원형 투기장]의 능력이 없어도 강력하기는 역시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기에 내가 가진 [꿰뚫는 눈]이랑 비슷한 녀석의 능력. [이형의 후각 (S)]로 위험의 냄새를 감지해 피해내는 것도 지분이 크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당히 대련해주는 것도 여기까지다.
‘완전한 몸의 랭크업이 가져다주는 디테일한 플레이…… 그리고 마나량의 변화를 몸에 익히는 건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마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새롭게 쓸 수 있게 된. 하지만 가장 익숙한 무기를 보여주는 건 굳이 지금일 필요는 없었다.
이런 순간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인 순간, 가장 위험한 적에게 써야 했으니까.
아직은 숨겨두는 편이 옳았다.
‘무엇보다, 지금 그걸 쓸 필요성이 전혀 없기도 하고.’
진수혁의 검을 막고, 또는 주먹을 내지르며 근접 전투를 이어가던 도중.
나는 갑작스레 행동을 멈추곤 말했다.
[완전한 몸] 같은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얻었을 때, 꼭 해보고 싶은 대사가 있었으니까.
이건 회귀 전에도 할 수 없었던 능력이었기에. 나름의 로망 같은 것이었다.
그땐 초인적인 능력을 내는 헌터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하지만 이제 나도 할 수 있었다.
“빛의 속도로 차여본 적 있나?”
“…….”
아……진수혁은 모르는 건가.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건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거지, 진수혁에게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안 중요하니까.
진수혁의 검과 비도를 피한 채로, 한 발이 바닥에 붙어있는 상태.
남은 한 다리가 디딘 발을 축으로 삼아 몸을 회전시키며 발차기를 날렸다.
“…….”
무언가 [이형의 후각]으로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일까.
진수혁의 대처는 한 발 빨랐다.
아까처럼 마나실드나, 적당히 무기로 막는 행동따위를 하지 않고 본격적인 가드를 올린 것이었다.
‘마나 프로텍터…….’
저번에 내가 저걸로 비도를 막은 걸 응용해서 이젠 자기가 준비해 둔 건가.
자기자신을 계속 향상시킬 뿐 아니라, 남의 무기까지 참고해서 수련을 계속한다……
진수혁도 우리 팀이었으면 크게 되었을 놈인데.
‘아쉽네.’
“가드를 올린다는 건 좋지만, 반쪽짜리 답이다.”
그도 그럴것이……
“빛의 속도로 차는데 마나프로텍터로 막을 수 있을 성 싶은가.”
발차기가 돌아가는 궤적이 심상치 않았다.
평범하게 근접전을 벌이다가, 발차기를 시작하는 순간, [완전한 몸]으로 몸에 시동을 걸었으니까.
시작은 평범한 발차기였으나, 점차 말도 안 되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그것이 극에 달해 말도 안 되는 힘이 붙었다.
단순히 저번 랭크전 때, [에어 비트]의 반동을 이용해 가속시킨 것이랑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판때기를 만들어줬으면.’
격파해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콰콰콰콰쾅!
단 한 번의 발차기.
근접 전투 중 자연스러운 체술로 일어난 별 전조가 없던 발차기 한 방이, 마나 프로텍터를 반으로 쪼개고, 진수혁의 머리를 날려버린 순간.
어느덧 길고 길었던 랭크전의 여정은 끝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