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시동 걸기
“아니. 이걸 이렇게…….”
진수혁은 SAA의 홈. 자신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본 한 헌터스 리그 경기에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LTD가. 그것도 PER한테 지지 않았는가?
그중 단연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강준혁이 이창현한테 패배한 것이었다.
“마지막에 그건 대체 뭐였지?”
슬로우비디오로 다시 보여주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빠른 속도로. 저런 세밀한 몸놀림을 보여줄 수 있는지.
그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몸놀림을 빠르게 해주는 [신속]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움직이는 헌터는 듣도보도 못했다.
그 능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반사신경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빨라진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움직임이 굼뜨고 디테일하지 못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그나마 비슷한 모습을 보인 선수라고 한다면, 국제 리그에서 명성을 날리는 유럽의 여제. 아나 정도가 떠오르긴 했는데…… 그것과도 미묘하게 달랐으니까.
그렇게 궁금증이 많았으니, 진수혁이 평소에 안 보던 인터뷰를 스킵하지 않고 하나하나 세세히 보게 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새삼스럽지만 PER의 인터뷰. 특히 이창현의 인터뷰를 보는데…… 마침 궁금하던 질문이 캐스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캐스터 : 이번 경기 자체가 굉장히 화제였던 건 아시나요? 정규 헌터스 리그는 아니지만, 랭크전에서 가면을 쓴 랭커랑 무승부. 그 이후에 겪게 된 싸움이 바로 강준혁 선수와의 LTD에서의 일전이었으니까요.
세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가면을 쓴 그 랭커랑은 무승부가 났으니 강준혁 선수보다 더 강한 것은 아니냐…… 하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좀 어떤가요?]
[이창현 : 흠…… 두 선수를 비교하라고 한다면…… 솔직히 어렵군요. 그때 가면을 쓴 그 선수는 자신을 숨기려고 능력을 쓰지 않기도 했고. 솔직히 서로 전력이라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강준혁 선수와의 오늘의 일전은 솔직히 꽤나 흥분되면서도 떨렸다고 할 수밖에 없겠네요.]
‘지루하기 짝이 없긴 해도. 맞는 말이긴 하네.’
진수혁은 이창현의 인터뷰를 그렇게 평했다.
어떻게 이겼는지는 아직 정확히 그 능력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강대한 능력을 지닌다 한들. 스케일이 그리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강준혁의 앞에서 긴장되지 않을 수 있을까.
근접 1대1에서 가장 사기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불리우는 진수혁 조차도, 강준혁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압도적인 힘에 전율을 느꼈을 정도니.
신인인 이창현은 그 이상의 긴장과 흥분을 느꼈으리라.
어쨌든 이창현이 이겼지만 말이지.
[캐스터 : 확실히 그렇습니다. 지금 이 영상을 보시면 강준혁 선수의 손짓 한 번 한 번에 맵이 그냥 무처럼 잘려나가거든요. 제가 이창현 선수의 자리에 있었어도 살이 떨렸을 것 같아요.]
[이창현 : 아뇨…… 그게 아니라.]
[캐스터 : ?]
[이창현 : 제 자신의 능력. 강함에 대해서랄까?]
진수혁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강준혁을 보고 긴장한 것이 아니었어?
제 자신의 능력에 흥분해?
‘미친 새끼인가?’
저런 말을 했다가, 다음에 LTD한테 패배하거나 혹은 다른 팀에게 졌다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을 못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창현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캐스터 : 강한 자신이 있으셨나 봐요.]
[이창현 : 뭐. 네. 그렇죠. 1부 헌터스 리그가 끝이 아니라, 세계. 국제리그. 최정상. 이 몸이 간다? 그런 느낌으로 지금까지 경기를 해 오고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진수혁은 이창현의 대답을 듣다가 심지어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거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창현: 자신감의 근원이라고 한다면…… 나라는 존재? 자신. 자만. 압도적 승리감?]
그리고 여기까지 듣자, 그 정체는 확실해졌다.
이거 어딘가의 예능에 나와서 화제가 되었던 에고이스트의 답변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있잖아……
진수혁은 이창현이 가진 능력의 정체를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켰던 인터뷰에, 정신이 어지러워지고 말았다.
물론 팬들은 즐거워하겠지만……
저 녀석은 무슨 이 인터뷰 자리를 어디 예능 프로그램 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확실히 빠와 까를 둘다 환장하게 만드는 것.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
LTD경기가 끝난 후. 다음 날 아침. 예상대로, 커뮤니티는 대 혼란이었다.
당연하게도 PER이 언더독으로 LTD를 이긴 것이 기본적으로 가장 큰 이야깃거리였고, 그 다음은 내 인터뷰에 대한 내용이었다.
어쩌면 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을 만한, 광기 넘치고 오만한 인터뷰.
하지만 그게 실은 어떤 한 예능 프로그램의 패러디라는 것을 알고는 그나마 이해해주는 분위기이긴 했다.
‘실제로 경기를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진짜로 압도적으로 이긴 것처럼 보였던 것도 크겠고…….’
이번에 어쩌면 나를 싫어할 만한 선수들이 많이 생겼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원체 사람이 태어나길 만인에게서 사랑받는 것은 불가능한 법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그렇다면, 이 한 몸 불태워 PER에 유명세도 좀 얻고, 팬들에게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불태우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선수의 훌륭한 쇼맨십 아니겠는가?
댓글들을 보며 흐뭇해하던 도중.
내 개인실에 노크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PER 팀 내외를 맡고 있는 김성준이었다.
평소엔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어쩐 일인가 하니.
“한국 헌터스 리그 협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국제교류전 선수 차출 협력 건’에 대한 문서입니다.”
딱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차출, 협력. 뭐 이런
다가올 국제 교류전이 기대되는 시점이었다.
‘아…… 근데 뭔가 자꾸 빠뜨린 것 같지?’
끝내야 할 일이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단어만 보면 얼핏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실은 경험. 그리고 국제리그를 노리고 있는 우리 PER의 팀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경험 중 하나였다.
어차피 국제리그에 나갈 팀이 되기 위해선 꼭 밟아야 하는 계단이기도 했고.
“몇 자리랍니까?”
“그게…… 정규멤버 2자리, 예비멤버 1자리라더군요.”
7명의 정규멤버와 예비멤버들이 함께하는 국제교류전에 몇 자리나 PER에게 할당되었나 하는 질문이었다.
2자리에 1자리라……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절한 인원수였다.
한 자리는 당연히 내가 갈 테고…… 남은 자리는 잘 생각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가든 큰 도움이 될 텐데. 기왕이면 크게 성장할 만한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이 좋으니까.
그런데, 김성준은 이상하게도 정해진 용건을 다 끝내고도 가지 않고 남아있었다.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는 듯 했다.
“혹시 뭐…… 더 있어요?”
“그. 별건 아니고, 오늘도 평소 스케줄과 같이 PER 팀원들과 ‘랭크전’ 장소로 이동하시나 해서요. 차를 대기시켜둬야 해서.”
“아…….”
겨우 그거였나. 그야 당연히 경기 한두 번에 일희일비 할 것도 없고 가야……
‘……!’
그제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제 [만개]의 랭크가 올라가서 성장한 능력들을 이것저것 시험해 보면서 뭔가 빠뜨렸다고 생각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랭크전!”
그래. 아직 가면을 쓰고, 신분을 감추며 진행하던 랭크전을 1위를 찍겠다고 해놓고서 진수혁을 남겨둔 채였다.
최근 연이은 1부 헌터스 리그의 경기가 빡세서였을까. 왜 이 중요한 것을 까먹었을까.
이제 슬슬 상위랭커들이랑도 점수가 벌려져서 언제든 매칭을 돌리면 진수혁이 나올 수 있는 상태인데, 상대할 방법을 따로 준비해두지 못했다니.
‘지금이라도 오늘은 랭크전 말고 팀 연습을 한다고 고지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순간 들었지만.
이내 당황스러움이 잦아들고, 진정한 후 천천히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가면을 쓴 채로 능력을 안 쓰고 올라가던 것은 수련하기 위함. 그리고 정체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정체가 드러나고 크게 숙련도도 늘지 않을 [마도공학무기변환]이나 [만개]의 몇몇 능력을 써서 이기는 건 의미가 없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만개]가 랭크업을 해, 얻게 된 신규 능력들은 어떨까?
그것들은 원래 없었던 능력이었기에 정체가 드러날 일도 없을 뿐더러, 수련하기 위함이라는 기존의 목적성에도 어긋남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한 놈 조지기에 특화된 진수혁을 한 번 겪어봤으니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런 녀석을 상대하려면 나도 무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랭크전이 어쩌면 꽤나 즐거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씨익 지었다.
“거, 랭크전. 평소에 가던 건데 조금 기쁜 날이라고 빼먹을 순 없죠. 준비하시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국제교류전이 시작되기 전에, 한 번. 몸이나 풀어보실까.
***
헌터들이 랭크전을 하기 위해 가장 많이 찾는 헌터연합훈련소의 대기실.
그 대기실에는 평상시보다 훨씬 많은 인원의 헌터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어제 LTD와 PER전으로 인해 몸이라도 달아올랐던 것일까?
하면서 의아해하고 있던 찰나.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진수혁이 대기실에 저렇게 대놓고 있네…….’
랭크전 상위권 선수의 경우, 인원 수가 적기에, 저격 매칭 등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 개인실에 들어가 대기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저런 상위권 랭크전 유저의 경우 이런 통합대기실에 얼굴을 비추지 않기 마련인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이런 떡하니 다 볼 수 있는 곳에 있는 것이었다.
다소 부산스러운 이 대기실의 분위기도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그 의도를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면을 쓴 녀석이 최근에 화제가 되는 가운데, 자기가 여기 있으니 한 번 돌려보라고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겠지.’
뻔하다면 뻔했다.
서열정리를 해주겠다는 그런 강자의 심리일 수도 일지도.
뭐, 어찌되었든. 자신이 저렇게 싸워주겠다는데,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새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손이 근질근질하기도 하고.
“오늘도 각자 랭크전 시작하자. 일 있으면 연락하고. 나도 이만 볼일 보러 간다.”
PER의 팀원들. 그리고 음흉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김도준을 뿌리친 후. 가면을 쓰고 옷을 갈아입은 채로 다시 대기실에 나왔다.
진수혁은 아까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상황.
내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틈을 뚫고 나와 매칭을 신청하자.
진수혁도 지지 않겠다는 듯. 걸어나와 자신만만하게 매칭을 신청했다.
그렇게 마주 보게 된 가운데. 진수혁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번에 이창현인가. 걔랑 무승부로 겨뤘다지? 그 녀석을 이겼다고 방심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요상한 장비로 가스를 싸는 잡기술 덕에 이긴 거지. 내가 이긴 거나 다름없는 경기였으니까.”
조금은 억울했다.
그때 그 마나장비의 도움으로 이긴 건 맞지만, 가스를 싼 건 순전히 김도준 때문인데……
내 이미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