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도달
강준혁과의 싸움으로 강한 피로감이 느껴진 후. 체력이 방전되어 움직이지 않은 채로 얼마나 지났을까?
확실하진 않지만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던 것 같다.
우리 팀의 승리로 판정이 내려진 것은.
‘아무래도 각자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 건 아닌가 보네.’
그래도 결국 결과는 승리.
특히나 오늘의 승리는 어느 때보다도 값진 승리였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에서의 귀환을 알리는 익숙한 느낌이 온몸을 따스하게 감쌌다.
이번 경기. PER의 팀원이 다들 힘을 내줬구나.
어떤 전투가 이루어졌는지 리플레이로 돌려보면서 샅샅이 해체하며 피드백해줘야겠다 싶었다.
이런 치열한 전투일 수록, 성장에 가장 적합한 전투였을테니까.
***
미로가 무너져내리며 암전했던 경기장 속의 풍경과 달리, PER의 팀원들이 있는 대기실로 돌아가자 환하게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곳에 있다가 너무 환한 불빛을 마주했던 것일까.
잠깐 눈이 부셔 약간 어버어버하는 사이, 나를 눈치챘는지 팀원들의 환호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창현!”
“왔나.”
“나라면 이길 줄 알았어.”
“멋졌어요. 강준혁 선수 이긴 거.”
저마다 한 마디씩 소감을 전해오는 녀석들. 아직 환한 불빛에 적응이 되지 않아, 누가 한 말인지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말투와 목소리만으로 구분이 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제 막 밝아진 풍경에 눈이 적응되자, 갑작스레 앞에 달려들면서 질문하는 김도준이 보였다.
휙 ㅡ
‘갑자기 달려들어서 깜짝 놀랐네.’
“왜 피해…… 행가래라도 쳐줄려고 했더니.”
“이 좁은 곳에서 행가래는 무슨.”
김도준 녀석. 경기를 뛰지 않아서, 몸을 움직이고 싶어 미치기라도 했나?
“그건 그렇고……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우리한테 지금까지 어떤 능력이라도 감춘 거야?”
“맞아. 이번에 그거. 한 번도 안 보여준 거였지?”
윤한결이 부드럽게 웃으면서, 하지만 눈을 빛내며 물었다.
음흉하긴. 나는 저번에 몰래 원기옥을 모아 나에게 비수를 찌르려고 했던 것이 윤한결이라는 것을 아직 잊지 않은 상태였다.
뭐, 그래도 계속 데려갈 윤한결이 스스로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좋은 일이겠지만.
‘일단 여기선 시치미를 떼둘까. 다음에도 또 성공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고.’
“감추긴 뭘. 그러면 내가 불철주야 가르치는데 너희만 점점 잘해지면, 나도 억울해서 살겠냐? 그냥 실력이 좀 늘은 거지.”
내가 그 말을 하며 피식 웃자, 그걸 보던 윤한결과 김도준은 어이가 없었던 걸까.
“아니 뭐 실력이 는다고 없던 능력이 생겨? 거기에 팀 홈에선 연습하는 모습도 잘 안 보이던데? 진짜 실력이 늘어서 생긴 것 맞아?”
“연습을 안 하길 뭘 안 해.”
마나장비를 이용해서 랭크전에서 차력쇼도 잔뜩 하고, 미국까지 가서는 기록까지 쌓고 왔구만.
꼭 팀 홈에서 연습한 것만 연습이 아니거늘…… 쯧쯔……
물론 실제로 내가 팀원들에 비해 연습량이 적은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긴 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이미 나는 섭렵할 만한 기술은 모두 다 섭렵했는데.
오늘 성공시킨 그 기술까지.
그래서 나는 자꾸만 궁금증에 들이대는 김도준을 꾹 밀고, 말했다.
“그건 그렇고. 이럴 때가 아니지.”
“…….”
“이제 곧 인터뷰가 시작될 테니까.”
아마 내 예상대로라면…… 이번 인터뷰는 다른 경기들이랑은 조금 다를 테니까.
***
정규시즌에 일반적으로 인터뷰는 한 명 또는 같이 전투한 두 명 정도를 꼽아 진행하지만, 간혹 이례적인 경우가 있었다.
특별히 치열해서 소위 ‘꿀잼 매치업’이었거나 혹은 상위권 매치업의 격렬한 한판 승부업이었을 때 종종 승자 팀 전체를 불러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인원 수가 지나치게 많은 만큼 거의 손에 꼽을 정도긴 했지만……
분명한 건 이번 PER대 LTD전은 그 둘을 모두 충족했다는 점이었다.
[캐스터 : PER대 LTD. LTD대 PER. 오늘 그 경기의 승자는~ PER입니다! 선수들을 큰 환호로 맞아주세요!]
1부인 만큼 환호성이 빠르고 강하게 퍼졌다. 이렇게 전부가 무대에 올라오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인터뷰를 생각하지 못한 팀원들은 약간 당황했으리라.
지금만 보더라도 옆에 있는 이연주가 굳어있었다.
이연주가 지금까지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또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굳어있지……
아. 생각해보니 저번 인터뷰 때 제대로 흑역사를 썼었구나.
클로징 멘트로 앞으로도 열심히 자빠뜨리겠다고 했었던가.
이번에도 그렇게 하도록 내비둘 순 없다는 생각에 옆에 있는 이연주를 보지 않고 슬그머니 속삭였다.
‘이연주. 그렇게 긴장하다가, 또 저번처럼 흑역사 만든다.’
이연주도 그 말에 과거가 떠올랐던 걸까. 표정이 시뻘겋게 변하는 것이 조금 우스웠다.
삐졌는지 대답도 안 하는데, 어쩌면 괜한 것을 건드렸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인터뷰는 이미 시작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전투가 진행되었으니, 각 전투의 하이라이트 장면별로 돌아가며 짚어주는 모양이었다.
[캐스터 : 네! 윤한결 선수, 이성태 선수 먼저 모셔보겠습니다!]
환호가 함께 쏟아지며, 윤한결과 이성태의 전투장면이 화면에 띄워졌다.
적은 LTD의 이지훈과 이가람이었다.
초반 이성태가 혼자 2대1로 몰려 불리했지만, 불리함에도 끝내 버티고 버티다 윤한결의 증원으로 승리…… 인가.
‘중간에 LTD가 이지훈의 버프능력을 극적으로 사용해서 반격에 나섰지만 잘 받아쳤구나.’
저번엔 나에게 사용했던 그 김도준의 마나장비 트랩이리라.
그 고지식한 윤한결의 변화가 새삼 느껴졌다. 저번 전투 때도 느끼긴 했지만.
옆으로 캐스터와 윤한결, 이성태가 조잘조잘 인터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보니, 이성태는 이번이 PER에서의 첫 MVP인터뷰일 텐데. 기분이 꽤나 좋아 보였다. 윤한결과 이성태. 둘의 포지션은 꽤나 겹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꽤 괜찮은 조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디 한 곳은 졌을 텐데…… 윤한결이랑 이성태 듀오는 이겼으니. LTD에 진 쪽은 이연주가 있는 쪽이려나?’
아무래도 무력이 부족했으니 이기기 힘들었으리라. 그럼 납득이 되지.
그런데 다음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것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캐스터 : 그런데 사실 모든 소규모 교전에서 PER이 승리한 건 또 아니거든요! LTD와의 교전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혈전을 벌이며 상대를 상처입혔던 류재준과 한지수 선수의 이야기도 조금 들어볼까요?]
류재준이 있는 쪽이 졌다고?
조금의외였기에, 류재준을 흘겨보자, 얼굴을 바로 돌리고는 마이크를 쥐고 바로 관중석을 향하는 것이. 어째……
‘뭐 실수했나?’
아니나다를까, 바로 이어지는 화면에서의 경기장면을 볼 수 있었다.
류재준의 인터뷰의 대답을 들으면서 함께 보기 좋게도 말이다.
[류재준 : 정말이지,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느낌으로, 온 능력. 힘을 다한 혈전이었습니다.]
굳은 표정, 샤프한 얼굴로 냉철하게 또박또박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사이긴 한데.
‘저건 아니지 않나?’
정작 화면에서 나타나는 류재준의 경기 장면은……
어째서인지 천장에 붙어 상대방인 민정을 열심히 손으로 붙잡으려고 손을 휘적이는 류재준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절도도 없고, 강렬한 능력이 보이지도 않는 것이. 이게 무슨 장면인가 싶을 정도였는데, 분명 이렇게 띄워준 걸 보면 굉장히 승리의 분기점이 된 능력일텐데……
[한국 헌터스리그 1부 올해의 개그상 줘야댐ㅋㅋㅋㅋㅋㅋㅋ]
ㄴ 아 ㅋㅋ 이 장면 또 나오네. 위에서 못잡고 손 휘적거리는거 왜캐 웃기냐
ㄴ 이거 꼭 애기가 엉거주춤하게 기어다니면서 팔 휘적거리는거 같지 않음?
ㄴ 근데 킬포인트가 저거임. 민정이 그냥 호로로로로록 굴러다니는거 ㅋㅋㅋㅋㅋ
ㄴ ㄹㅇ 둘은 시트콤 상 줘야 한다.
저 싸움에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아무리 봐도 여자애들 드잡이질 하면서 머리끄댕이 잡는 것보다도 저질 같아 보이는데.
역시나 류재준을 흘겨봐도, 눈을 피할 뿐이었다.
그야말로 가슴이 옹졸해질 정도로 웅장한 전투라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류재준과 한지수가 졌다는 걸 깨달으니 또 다른 의문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럼 류재준 페어가 졌는데 우리 팀원들이 결과적으로 판정승이 났다는 건…… 남은 이연주와 김유현이 이겼다는 건가?’
그 둘은 전투력이나 클러치 플레이가 상당히 힘들 수밖에 없는 능력이라 도망치는 것 정도나 할 수 있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게다가 남은 LTD의 상대는 아현과 이준서였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그 무렵. 다행히도 자연스럽게 바톤은 이연주에게로 이어졌다.
[캐스터 : 마지막으로 일종의 주장전이라고 할 만한 이창현 선수의 전투를 빼면, 가장 화제가 되기도 했었던 이연주 선수와 김유현 선수의 전투?장면인데요. 한번 보시죠.]
그 장면을 보니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지 깔끔하게 의문이 풀렸다.
미로를 이런 식으로 사용해 상대를 교란하고 가둔다니. 김유현이라면 도망만 가려고 했어도 충분히 갈 수 있었을 텐데. 확실히 전보다도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사고를 할 줄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우습기도 한 것이. 결국 갇힌 채 벽을 두드리다 출구를 찾지 못한 LTD의 팀원들이 강준혁의 검격에 의해 무너진 미로의 잔해에 깔려 리타이어되어버린 부분이리라.
[캐스터 : 그건 그렇고, 어떻게 이렇게 기상천외한 생각을 하실 수 있었던 건가요? 이연주 선수. 김유현 선수. 어떤 비결이 있나요?]
[이연주 : 아 그건요…… 실은 저희 팀에 이상한 쪽으로 머리 굴리는 스페셜리스트가 있거든요.]
[김유현 : 그쵸. 그……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 그 선수 있잖아요? 지금 인터뷰 자리엔 안 나와 있지만. 큼.]
눈뽕빌런에 귀갱까지 시켰던 김도준을 말하는 것이리라.
우리 팀의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탓일까. 그런 이연주와 김유현의 말에 관중석은 그야말로 웃음바다가 되어버렸다.
어느샌가 내 생각보다도 훨씬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니, 이제 1부 리그의 정규시즌 1등을 달리고 있는 팀이니, 팀원 한 명 한 명이 유명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왜냐하면, 이제 정말 PER은 한국의 대표 팀이 되기까지 한 발자국만 남았을 뿐이었으니까.
***
그렇게 평소보다 약간은 부산스럽고, 분량이 많은 인터뷰를 나까지 모두 끝낸 후.
팀 홈에 들어오자마자 팀원들을 격려해주고, 회식을 끝낸 후.
팀원들의 눈에 띄지 않게 빠르게 자리를 옮겼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오롯히 혼자 연습실을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연습실을 이용하기 위한 이유는 뻔했다.
그야……
[스킬]
[만개 : A]
: 만개 스킬레벨의 증가로 스테이터스 성장가속이 이뤄집니다.
: 만개 스킬레벨의 증가로 개화된 키워드 스킬들의 성능이 강화됩니다.
그렇게나 안 오르던 만개의 랭크가 올랐던 만큼, 덩달아 다른 능력들도 변화하거나 늘었으리라 생각할 수 있었기에.
확인을 안 하고 배길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만개의 랭크가 오르자, 당연히 뒤이어 다른 능력들도 강화되었다.
일단 대부분의 능력들은 랭크가 A로 바뀐 후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대충 위력이 강해지는 선에서 변화한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다고 특별히 변화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만개 - 재능개화 : 완전한 몸 (증강 : 랭크 A)] : 자신의 몸을 다루는 것을 통달합니다. 이미지하는 것, 동작의 체화에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몸을 한계상황에서 다루더라도 다루는 능력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 [완전한 몸 : 한계 가속 (숙련도 : C)] : 완전한 몸을 극한으로 이용했을 때, 인간이 가속할 수 있는 한계를 돌파할 수 있습니다. 체내 마나량이 많아질수록 난이도가 증가합니다.
[꿰뚫는 눈 : S(S+)]
[마도공학 무기변환 : A]
[힘 : 7.5->8.2]
[반응속도 : 9.6->10.0]
[유연성 : 8.2->10.0]
[지구력 : 8.0->8.7]
[재생력 : 7.4->7.8]
[마나량 : 9.0->10.0]
이번 경기, 강준혁과의 대결에서 성공했던 기술이, 새롭게 능력으로 생겨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아무래도 몸이 기억한다는 것이고 조금 더 쉽게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괄목할 만한 스테이터스의 압도적인 성장이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반응속도와 유연성의 변화는 아무래도 그, 완전한 몸의 영향 같았지만. 마나량의 변화는 아마 만개의 랭크업으로 인한 영향으로 보였다.
사실 그런 자잘한 수치 변화가 어떻던가는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다만, 9.0부터 10.0까지. 사실상 엄청나게 넘기 힘든 경지를 넘어, 마나가 10.0에 도달했다는 것은, 드디어 회귀 전의 전투 스타일을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정도의 마나라면 어쩌면…….’
지금껏 마나의 문제로 사용하지 못했던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리라.
총을 쓰면서도, 회귀 전에는 [말하고 때리는 사람] 능력이 없어도 파괴력으로 인한 고민을 전혀 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던.
압도적인 파괴력의 능력을.
다가올 국제 교류전이 기대되는 시점이었다.
‘아…… 근데 뭔가 자꾸 빠뜨린 것 같지?’
끝내야 할 일이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