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성장은 갑작스럽게
프로에게는 절대 패배해서 안 되는 경기가 있다.
그건 팀이 승강전에 참가해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일지도, 혹은 결승전에 올라 라이벌 팀과 우승컵을 두고 겨루는 상황일 수도 있으리라.
혹은, 지금 PER의 상황처럼 정규리그 1위의 갈림길이 되는 경기일 수도 있고.
그런 경기에는 보통 자칫하면 그런 경기에는 불필요한 힘이 잔뜩 들어간다.
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 그리고 그 패배의 여파가 가져올 고통스러움을 예상하게 되니까.
그리고 그건 나름 백전노장의 경험을 갖고 있는 나도 완전히 피해갈 수는 모양이었다.
아니, 오히려 회귀 전 뼈아픈 패배를 했기에 더더욱 피해갈 수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회귀 후 자신만만하다는 듯 인터뷰를 해 오고, 그리고 끊임없이 승리해왔다.
3부에서도. 2부에서도. [만개]를 개방하지 않아서. 팀원의 체급이 부족해서. 순간적으로 위험한 순간은 있었지만, 절체절명이라고 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위험한 순간에도, 항상 무언가 끝자락에 믿을만한. 해 볼만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런 것이 없는 이번 경기에, 나도 모르게 쫄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승산은 크지 않으며, 패배가 가져올 수 있는 여파가 큰 이번 경기를.
‘그러니 순간이나마 [만개]를 개방할 생각을 하며 쫄고 있었겠지.‘
패배하는 순간 지금까지 PER이 3부부터 쌓아온 전설적인 승리 기록에, 처음으로 패배가 적힐 것이리라.
한국 헌터스 리그에 계속 남기고 있었던 기념비적인 기록은 결국 끊길 것이며, 결국은 LTD를 빠르게 만나지 않았던 것이 행운으로 기억되겠지.
그뿐만인가. 한국 1부 헌터스 리그라고 한다지만, 결국 최종목표는 그걸 거쳐 국제리그나 올림픽을 통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과정일 뿐.
그런데 1부 헌터스 리그에서 패배한다면, 국제리그의 승산은 완전히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그렇지만. 그런 부담들을 다 짊어지고,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도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극한의 성장을. 이전까지의 자신을 초월하는 것을 믿고서 위기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으리라.
‘그러지 않아서는 회귀 전과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강준혁의 [마나전개]가 펼쳐지고, 검의 영역이 전개되며 수많은 참격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싸움의 시작이었다.
***
[캐스터 : 강!!! 준!!!!! 혁!!! 마나전개를 펼쳐 이창현 선수를 압박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바깥의 중계석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겐, 저번에 1부에 막 올라온 후 LTD와 연습경기에서 강준혁과 싸웠던 전투의 연장선상이었다.
‘새로운 건 없어.’
강준혁이 [마나전개]로 맞는 순간 몸이 반으로 쪼개질 참격을 마구 쏘아내고, 나는 [꿰뚫는 눈]으로 궤적을 예측해 모조리 피해낸다.
혼자 경기가 시작되기 전 수십 수만 번의 전투를 시뮬레이션 했던 그대로였다.
저격으로 일격에 끝내버려, 강준혁이 눈치채지도 못한 채로 이기는 것에 실패한 모든 경우의 수가 이대로 이어졌기에.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은 아니었다.
동시에 승리할 확률이 궤멸적으로 낮은 상황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든든한 팀원이 없어서 유감이겠는걸.”
강준혁도 이대로 가면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다.
‘……확실히.’
이번에는 틈을 만들어 줄 류재준도 없고. 그리고 총을 쏜다던지, 마나장비로 틈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들로 승리할 확률은 시뮬레이션 상 극도로 낮은 확률에 불과했다.
하지만, 꼴사나운 패배를 감수하고서 할 수 있는 최후의 한 수마저 존재하지 않는가?
그건 아니었다.
헌터는 싸움꾼이기도 하지만 몽상가이기도 하니까.
해내지 못했을 뿐. 이론상으로나 가능하지만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방법은 머릿 속에 오만가지 존재했으니까.
물론 그게 대부분 불가능한 수준의 난이도긴 하지만.
“1대 1 일기토에 팀원이 없는 건 오히려 축복이죠.”
각오를 다진 후. 강준혁의 무형 참격을 피할 수 있도록 궤적을 보여오던 [꿰뚫는 눈]을 해체했다.
***
각성자의 능력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해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헌터가 되면서 대부분은 한 번씩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끝을 시도해보곤 한다.
중력 능력이라면, 극한으로 강한 중력을 일으켜보거나, 다른 방향으로 쓸 수 없을지 시도해보기도 하고.
신속 능력이라면 어느 정도까지 빨라지는지, 어느 정도 거리를 움직이는 데 사용할 수 있는지 시도해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대부분은 그 능력의 한계라는 것이 흔히 생각할 법한 수준에서 멈춘다.
중력을 아주 강하게 만든다면, 그 능력으로 블랙홀마저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지만.
실은 마나의 한계, 혹은 재능의 한계일지도. 그것도 아니면 능력 숙련도의 문제로 ‘짓누르는 정도가 강하게 느껴지는 정도’에서 멈춰서는 게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한편 마나가 아주 많고 재능있는 헌터들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들이 신속 능력으로 어느 정도 이상으로 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그야 가속 자체는 가능하지만 그것들을 인지하고 대처하는 속도까지 빨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폭주기관열차가 될 뿐이었다.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따로 고안하지 못하는 것도 덤이었다.
즉, 마나의 양에 따라. 선수가 가진 신체적, 혹은 어떤 구체적인 문제에 따라 생각보다 능력이라는 건 제한되는 면모가 많은 것이었다.
그래서 다들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좌절하고, 더 효용성 있게 능력을 발현시킬 수 없는 것에 슬퍼하는 선수가 많은 때에.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헌터도 사실 재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넘치는 능력을 제어할 수 없는 거구나…….’
[마나전개]는 그런 불안정하고 정제되지 않은 능력들을, 시작 자체를 신체 외부에서 외부로 이용.
넘치는 능력을 변수 없이 완전히 장악한 외부 마나들을 기반으로 능력을 ‘온전히’ 컨트롤 하기에 강력한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사실 자신의 내면을 잘 컨트롤 할 수만 있다면.
[마나전개]에 준하는 능력을 실은 어느 헌터든 다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능력 중 한 가지를 떠올렸고, 그날의 밤이 새도록 팀의 개인 연습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물론 허황된 생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이론상으로나 가능했던 것일까?
우습게도 트럭에 치어 회귀하는 그 날까지도 단 한번도 연습실에서조차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
이대로는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전략을 바꿨다.
온 몸에 흐르는 마나입자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소모를 막기 위해 가장 강력한 자기 방어수단이기도 한 [꿰뚫는 눈]을 해체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건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니까.’
능력을 쓸 때 몸에서 이루어지는 마나의 형질변환. 그리고 그 움직임에 극한으로 집중했다.
증기기관차가 증기로 가열되고 곧이어 그 열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혼자 강준혁과 시뮬레이션을 해 봤던 수많은 이미지 트레이닝…… 그중에 역시나 아주 약간의 승산이라도 있는 건 이것 밖에 없다.’
[만개 - 재능개화 : 완전한 몸]이 발동되었다.
내가 가진 몇 안 된 실패로 점철된 시도.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실패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패배하게 될 가능성이 두렵지는 않은가?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았다.
이미 자신들의 싸움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준 팀원들. 그리고 이미 인정받고 쌓아온 것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켜줄 테니까.
몸의 감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조금 더 유연한 움직임. 세부적인 힘 조절 따위 같은 하찮은 변화가 아니었다.
몸의, 수축과 이완의 속도를 더 빠르게.
뇌에 전달되는 혈류는 압도적으로 증가하고, 사고하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진다.
“……!”
그에 맞춰, 신경전달물질이 이동하는 속도는 배가 넘고, 반응 속도의 격이 달라졌다.
얼굴을 움직이지 않았지만, 마치 엄청 덜컹거리는 자동차라도 탄 듯 시야가 마구 흔들렸다.
그 후 점차 잦아들자, 주변 모든 것의 시간의 흐름이 느려진 것만 같이 천천히 움직였다.
사고가, 움직임이, 반응속도가. [완전한 몸]의 극한의 작용으로 인해 자연계에 원래는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순간적으로 빨라졌기 때문이었다.
두근 ㅡ!
동시에 부작용 또한 바로 찾아왔다.
각성자라고 한들 견디기 힘든. 극한으로 몸 내부의 내구성을 시험하는 가속이 제동을 걸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꿰뚫는 눈]까지 해체하고 오로지 내면에만 집중하여 모든 내부의 마나를 관조하며 조정하고 있는 상태.
마치 혈관을 뚫을 듯 약동하는 그것들이, 몸을 파괴하지 못하도록. 몸 내부의 마나를 이용해 그 벽을 두텁게 조정했다.
마치 위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극도로 세심한 바느질을 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극도로 세심한 작업을 하면서도, 상반되게 몸의 무게 중심을 크게 바꾸며 균형을 맞춰야만 하는.
아이러니한 초감각이었다.
‘회귀 전에도 압도적인 후유증과 불완전성으로 인한 리스크로 제대로 경기에서 성공 한 번 제대로 시켜보지 못한 걸, 지금에서야 진짜 실전에서 성공할 줄이야.’
도전이지만, 도박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론상으로만 이해하고 완성한 것일 뿐, 단 한 번도 실현해내는 데에 실패했으니까.
‘게다가 아직 절반짜리 성공이기도 했고.’
어쩌면 회귀 전과 달리 [만개]가 개방되지 않아 체내의 마나가 적었기에 컨트롤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아무튼 감각을 유지하는 순간 순간이 가히 기적이라고 불리울 만 했다.
이제 나는 바느질로 내부를 봉합하는 것처럼 세심한 작업을 안정화시킨 가운데. 나머지 절반.
이번엔 세심하게 조율 중인 몸으로, 줄타기나 다름없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온 신경이 기울여 온 몸의 감각을 털 한올 한올까지도 느끼도록, 집중한다.
움직이면서도 몸 내부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도록 마나를 조정하면서. 동시에 강준혁을 쓰러뜨리기 위해 움직인다.
고요하다ㅡ.
집중 속에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모든 감각은 원래 그러해야 했던 것처럼 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은 수면 아래 백조가 분주히 발을 움직이듯.
폭주와 안정, 그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계속 이어지는 몸을 이끌며 움직이고 있었지만.
외부엔 그게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 그저 빠르게 움직이고, 반응하는 것으로 보이겠지.’
강준혁의 시선이 닿는, 아마도 검의 영역의 참격이 만들어질 부분을 예상해 피해낸 후.
마치 슬로우 비디오로 보는 세계를 혼자 자유롭게 유영하듯, 아직 반응도 채 못하고 이젠 내가 존재하지 않는 자리에 참격을 연신 날리는 강준혁의 뒤를 잡는다.
깨끗하고 완벽하게 잡은 상대방의 뒷모습.
눈이 크게 뜨이는 것만 같았다.
완전한 성공이었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된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나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전신의 호흡을 끌어다 쓰며 성공시킨 것은.
과거에 실패의 기억을 끌어안고, 다시 시도해볼 엄두도 내지 못한 것을 성공시킨 것은.
이미 이루었던 몇 번의 우승보다도 가슴을 뛰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두근. 두근.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내 눈 앞에 들어와 있었으므로.
시간이 끝났다.
슬로우 비디오처럼 흘러가던 세상이, 다시 제 시간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자신의 등 뒤로 이동한 나를 보고 강준혁은 꽤나 빠르게 뒤로 돌아서며 대처하려 했지만.
푹 ㅡ.
난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채였다.
마도공학무기변환으로 만들어낸 칼에 찔린 채로, 강준혁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바라봤다.
갑작스럽고, 가장 위급한 순간.
이고 있는 무게가 무거워 깔릴지도 모르는 순간에 성장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