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약자의 방식
경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LTD 대기실에서의 긴장감은 계속 높아만 가고 있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전투.
그중에서 가장 일찍 끝이 난 이가람과 이지훈의 전투는 패배로 막을 내렸다.
PER의 상대. 이성태를 전투불능으로 만들고, 윤한결에게도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그렇기에 한참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다른 곳의 교전에서는 부디, 패배가 이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설령 다른 모든 곳에서 패배하더라도 강준혁이 모두를 쓰러뜨리는 결말 또한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최선은 거기까지 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가운데, 완전히 몰아붙였던 오제헌과 민정에게 갑작스럽게 승부수를 띄우는 상황은 완전히 몰입될 수밖에.
그것도 완전히 긴박한 건곤일척의 승부처였다.
[캐스터 : 한지수 선수!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능력입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새로운 활용법이라도 깨달은 걸까요? 아아…… 이건 큽니다!]
완전히 반전되어버린 중력의 방향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건 감각이 예민한 헌터로서도. 아니, 감각이 더 예민하기에 혼란이 더 클 수밖에 없으리라.
오제헌과 민정이 에어비트를 밟지도 못한 채, 공중으로 하릴 없이 빨려들어가 천장에 들러붙어버렸다.
몸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헌터스 리그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장면이었다.
거기에 류재준이 달려들자, 가슴이 철렁했다.
“아…… 안 돼!”
[파동]을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막아낸 민정이다. 하지만, 무언가 새로운 방법으로 타격을 가한다던지, 근접한다면 무언가 알지 못하는 방법이 있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걸까. 민정은 천장에 눕혀져 있었지만, 놀라운 몸놀림으로 옆으로 마구 구르며 류재준의 손짓을 피해냈다.
그렇게 벌어낸 시간은 오제헌의 운석으로 인한 일발의 역전이었고, 결국 소규모 교전의 결과는 오제헌 한 명이 살아남은 LTD의 승리.
그야말로 등 뒤에 식은 땀이 가득한 승리였다.
여기에서까지 패배하면, 사실상 팀 체급에서 밀린다고 생각했던 PER에게 완벽한 일격을 맞은 채로 경기가 진행되는 것이었을 테니까.
[해설자 : 아주 뜨거운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부분이 남는군요. 마지막 PER의 뒤집기, 그거 충분히 해볼 만한 시도였고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그런데 역시. 선수가 모든 부분에서 뛰어날 수는 없다는 걸 보여주듯, 마무리인 류재준 선수의 체술이 아쉬웠군요.]
장면이 다시 리플레이 되자 심장이 또 벌렁거릴 정도였다.
[와 ㅋㅋㅋ 이걸 뒤집을 뻔. 저력 오지네]
ㄴ 근데 류재준 천장에 들러붙은 적을 못잡는거 웃음벨이네 ㅋㅋㅋ 허당느낌 오졌다.
ㄴ 천장에 들러붙은 모기를 잡으려고 휘적거리는 나.GIF 보는 느낌임.
ㄴ 결국 모기는 못잡고? 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쪽은 PER의 승리……또 한 쪽은 LTD의 승리. 어떻게 되는 거냐?]
ㄴ 어떻게 되긴. 강준혁이 이기면 다 의미 없이 그걸로 끝일듯.
ㄴ 확실히 이미 서로 타격이 큰 상황이라 강준혁 상대할 사람 없어보이는데 ㅋ
ㄴ 응 아니야~ 난 갓창현 무패기록 믿어~
ㄴ 악질 빠돌이들이 벌써부터 붙었네 ㅋㅋㅋㅋ
무엇을 예상 못 했었는지 모르겠다.
팀 체급 자체가 꽤나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팀의 컨디션이 저조한 걸까?
‘아니…… 그게 아니다. 이건 오히려 저 녀석들이.’
PER이 저번 연습경기 때의 데이터와 비교할 수 없이 성장한 것이었다.
***
한편, 류재준과 한지수의 전투가 한참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을 무렵.
비슷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위기 상황을 맞이한 쪽도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평소 같으면 위치 감지 능력으로 상대를 잘 피해 갔을 이연주가 LTD의 인형술사라 불리우는 아현과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적인 것 같아서 계속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번 맵이 미로였던 점이 문제였다.
반대로 간다고 해도 길을 따라 갈 수밖에 없는데, 막다른 길을 마주한다던가 혹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옆으로 휘어진다던가 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멀어지기가 어려웠으니까.
건너편으로 걸어온 아현과 눈이 마주쳐 숨을 수 있는 인비저블 클록이라도 장착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
아현으로서도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인비저블 클록을 장착하려고 하는 게 어이없었는지 순간 벙찐 모양이었다.
물론 다음 수순에 자비는 없었지만.
우우웅 ㅡ. 철컥
아현의 속에서 무언가가 잔뜩 쏟아져 나오더니, 마나가 유입되고 형태를 갖춰 거대한 하나의 로봇 같은 형태가 되었다.
아현이 자랑하는 마나장비였다.
‘도망가야 해…….’
이전처럼 무언가 틈을 노려 속박으로 묶는다 한들, 일격을 허용하지 않는 능력의 상대였다.
이연주로서는 빠르게 도망치며 팀원과의 합류를 노려볼 수밖에.
다행히도, 주변에 위치가 감지되는 팀원은 있었다.
다만, 역시나 3차원적으로 꼬인 미로였기에 위치가 가깝다고 실제로 가까운 경로의 거리에 있는지는 미지수였다는 점이 문제였다.
우웅 - 타탓!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 건 이연주였다. 1부에 올라오면서 짬짬이 시간을 내어 이창현에게 에어비트의 요령이라도 필사적으로 배워두었던 것이 다행이었던 걸까.
쾅 ! 쾅 ! 쾅 !
첨단 로봇같이 생긴 인간형 마나장비가 강해봤자, 뭐 어때. 저런 식으로 멍청하게 걸어서 따라오는 방법으로는 절대 따라잡지 못하는……
“…….”
우우웅 ㅡ! 슝!
순간적으로 큰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말도 안 되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 거대한 마나장비가 아현을 태운 채로, 발바닥에서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하며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저게 무슨!”
그래. 분명 남자아이가 보면 좋아했을 법한 로봇의 로망이라는 게 저런 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잠시.
에어비트를 쓰며 달아나는 이연주의 속도를 점차 따라잡아 가까워지는 걸 보고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김유현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긴 한데…….’
만약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지만, 엇갈린 길이라면 이대로 잡혀 끝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이젠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 점차 거리가 좁혀지던 찰나. 이연주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옆에 나 있는 샛길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어이없게도 환하게 웃음지을 수 있었다.
위기의 순간, 급하게 살 길을 찾아 꺾어낸 방향에 김유현이 서 있었으니까.
“후우…… 이제야 살았네. 다른 애들은?”
“다들 각자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이제 반격인가? 어때, 김유현. 포탑은 준비됐어?”
후후…… 그 아현의 마나장비도 김유현의 포탑지대를 쉽게 뚫지는 못하리라.
반격의 서막이 시작될……
“그게…… 조금 곤란한데. 사실 나도 쫓기고 있어.”
쾅! 콰쾅!
김유현의 뒷쪽으로 무언가 폭발음과 함께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하필 그 뭐냐…… 마나 사용 못하게? 만드는 능력 가지고 있는 애 있었잖아. 이준서였나.”
이건 또 무슨.
***
이번 경기가 시작된 후. 김유현은 꽤나 큰 고민에 빠졌다.
김유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력이자 장점. 그건 지역장악능력이었다.
지형을 조절하거나 포탑을 만들어내는 능력, 비폭력지대 생성 같은 능력이 김유현의 능력이었으니까.
그래서 평소 같았으면, 팀원들과 합류한 후에 지역을 장악하든 혹은 먼저 합류지점을 장악하든 했을 텐데.
지금 같은 경우는 합류가 가능할지 불가능할지조차 불확실했다.
단순히 생각해서 그러면 포탑을 마구 만들고 안전지대를 만든 후 팀원을 부르는 것이 좋을 텐데, 만약 상대방이 여럿 합류한 상태로 이곳을 들이닥치면 여럿을 상대로 막을 자신은 없었다.
‘흠…… 그래도 일단 계속 고민하는 것보단 움직일까.’
그래서 경기를 시작하고, PER의 팀원들과 소통해가며 결정한 것은 단순했다.
일단은 포탑을 잔뜩 설치하고 안전지대를 형성해놓자. 그럼 별일이 없을 것이다.
LTD의 상대 한 명이 덮쳐도 강준혁이 아니라면 이길 만하고, 두 명이어도 어느 정돈 버틸 수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상이 생기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놀랍게도 상대는 뚜벅 뚜벅 김유현 쪽으로 걸었을 뿐이었는데, 포탑이 마치 고장 난 것마냥 미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나가…… 멈춰 있어?’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 너머로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과거 1부에서 강력한 능력자들의 카운터로 이름을 날렸던. 이준서라는 사실을.
쾅! 콰쾅!
이준서가 걸어가는 발자취에는 후환을 내버려두지 않기 위해서인지 포탑의 잔해만 남을 뿐이었다.
…………
“이렇게 된 거야.”
이연주가 상황을 설명하자 경악했다.
겨우 팀원이 합류해 유리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둘 다 쫓기고 있다는 걸 깨달아 그 낙차로 충격이 더 커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털썩 앉아있는 이연주를 두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럼 양 쪽으로 조여오고 있을 텐데.
싸우는 건 무리고……
“도망치자.”
이연주도 한 마디에 정신을 차렸는지 벌떡 일어섰다.
이준서가 뒤쫓아오고 있을 지금 이 길에서 벗어나 원래 길로 돌아갔다.
다행히도 공중에서 쉽사리 추진력을 줄이지 못한 것인지, 아현은 앞길로 다소 샌 모양이었다.
“반대로 뛰어!”
물론 언행일치하지 않고 에어비트를 마구 밟아가며 이연주와 김유현이 날아갔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다행히 미로였기에, 아무리 기동성이 빨라도 쉽사리 따라잡히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러 갈래 길이 많이 펼쳐져 있는 상황. 한 번 상대가 틈을 보여준 만큼 전투를 피하기 쉬운 맵이기도 했다.
“헉…… 헉…… 따돌렸나?”
코너길 모퉁이에 앉아 김유현이 옆을 힐끔 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걸 정확히 아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쪽으로 오고 있긴 해.”
이연주의 위치추적 능력이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미로였기에 정확한 경로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같은 경로로 겹친 상대였기에.
경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깊숙하게 도망갈까?”
그렇기에 이연주는 조금 더 도망치자고 이야기를 하던 도중. 김유현이 대답하지 않아 고개를 돌려 물끄러미 쳐다보니.
김유현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턱을 만지고 있었다.
“김유현?”
“……아니? 안 그래도 될 것 같아. 여기 아까 내가 이준서랑 추격전 벌이던 곳인데 아마도 여기는…….”
“…….”
이연주는 김유현이 뒤이어 한 말에 꽤나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맵이 미로니까, 그런 식으로 오히려 이용해 상대를 골탕 먹일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사만이 나왔을 뿐.
“그래. 우리 둘이서 상대를 쓰러뜨려야만 이기는 게 아니야.”
전투를 보조하는 헌터들이, 결코 전면에 나서는 헌터보다 못해서 나서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역할에 따라 서로 최선의 포지션과 역할에 위치할 뿐.
그들은 그들의 전투방식이 있었다.
“시작하자.”
김유현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그 시작을 알렸다.
아현과 이준서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