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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35화 (235/270)

235화 능력의 이해

“그건 그렇고. 선배. 싸울 생각 없죠?”

이창현이 검을 들고 어슬렁거리는 강준혁에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쯤 되면 눈치챌 수밖에 없었으니까.

싸우려면 한참 전에 시작해서 이미 끝이 났을 만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강준혁은 적당히 전투태세를 취하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그 말에 나온 강준혁의 답은 꽤나 의외였다.

“싸울 생각이 없긴. 나한테 선전포고하고 아득바득 올라와서 내 자리까지 넘보는 녀석인데 당연히 화끈하게 꺾어줘야지.”

“그럼…….”

“그저, 기다리는 거야.”

순간적으로 강준혁이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기다릴 만한 것은 전혀 없었으니까.

PER도 LTD도 각 팀원들은 전부 각자 어디선가 마주쳐 소규모 교전에 들어갔고, 결과가 어찌 나더라도 지독한 수준으로 얽힌 미로 맵이기에 지원은 늦을 터.

결국 이곳은 나와 강준혁의 1대1로 끝날 테니까.

강준혁은 내 의아함을 눈치챘는지,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우리 팀. 그리고 너희 팀 중에 어디가 더 강하다고 생각해?”

“…….”

그제서야, 등줄기에 짜릿한 번개가 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 강준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른 어느 것도 아니라. 단순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와 강준혁. 둘을 뺀 PER과 LTD의 전투 결과를.

“나는 우리 팀이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해. 훌륭한 분석팀. 좋은 재능을 가진 팀원들…… 하지만 몇 번이고 국제리그에 갈 때마다 느낀 점이 있었지.”

강준혁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회귀 직전에 느꼈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나를 제외한 우리 팀원들은 한국리그에선 나름 강하지만, 국제리그에서는 한없이 약자라는 사실을. 그때 나는 느껴버린 거야.

어쩌면 국제 교류전에 나가는 것도. 항상 국제리그에서 져왔던 우리 LTD의 팀원들과 나가는 것보다, 너희 팀. PER의 몇몇과 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요컨데 강준혁은 속으로 LTD 팀원들이 오롯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국제교류전에 참가할 만한 녀석들이라는 걸 증명해주길 바라는 것이었다.

이 싸움을 끝내고, 자신이 지금 교전 중인 LTD에 합류하면 쉽게 LTD가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즉, 강준혁은 이 싸움을 일부러 미루면서. 결과를 내지 않는 채로 팀원들이 스스로 증명하도록, 자신들끼리 싸워 결과를 내기 전까지 합류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재밌는 점이 하나 껴 있네…….’

“음…… 근데 선배. 그 말은 즉, 저를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고 계신가봐요.”

불쾌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재미있었다. 회귀 전 과거의 나였다고 했어도 분명 저랬을 테니까.

마치 과거의 자신과 만나는 기분이 드는 것만 같았다.

“여기엔 저번처럼 널 도와줄 류재준도 없어.”

전투의지를 드러내는 나를 보고는 기다릴 요량이었던 강준혁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리고 너로서도 천천히 싸우는 게 좋을 텐데? 알고 있다시피 나는 언제라도 [마나전개]를 할 수 있게 주변에 마나를 쏟고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확실히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실제로 강준혁의 마나가 적어져 유리해지리라.

하지만……

“선배. 근데 저는 이빨 빠진 호랑이를 잡는 건 관심 없어요.”

팀원이 못미덥고, 그들이 각자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어쩌고. 그건 강준혁의 사정일 뿐이다.

나는 강준혁의 의도대로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

[캐스터 : 혹시 ……이걸?]

류재준의 강렬한 파동이 민정이 있던 자리를 휩쓸어 먼지구름이 화면을 가렸다.

그 파동에서 느껴진 진동. 그리고 소음만으로도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해설자 : ………… 평소에는 전방향으로 파동을 쏘아내는 경우가 다수여서 그것만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만……저런 식으로도 사용이 가능했군요. 어쩌면 류재준 선수가 숨겨왔던 자신만의 필살기를 드러냈다고 봐도 좋겠습니다.]

[와 ㅋㅋㅋㅋ 레이저빔 마냥 화려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공격하는 거 봤냐?]

ㄴ ㅇㅇ 먼지구름 갈라지면서 진동 퍼지는거 개신기하네

ㄴ 저걸로 한 명 컷인가?

ㄴ 이걸 또 이렇게 PER이 뒤집나 ㅋㅋㅋㅋ LTD 물로켓 푸슈~

[해설자 : 이걸로 민정 선수가 쓰러진다면……

[캐스터 : 아니, 민정 선수. 이게 어찌 된 일이죠? 조금 먼지 구름으로 많이 더러워지긴 했지만 멀쩡합니다! 강렬한 PER의 필살기가 전혀 먹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동시에 건재하다는 걸 드러내듯.

바닥에 흩어져있는 흙먼지와 부서진 바윗덩어리들이 다시금 전투인형으로 잔뜩 만들어져 류재준과 한지수를 둘러쌌다.

[캐스터 : LTD. 한 치의 변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

1부 리그. 그중에서도 상위권 팀들끼리의 싸움 즈음이 되면, 상대가 쓰는 기본 기술 정도는 다 알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고서 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어디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자신만의 비기. 혹은 전에는 쓰지 못했지만 훈련하면서 만들어낸 신기술.

그런 것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었으니까.

아무튼 요점은, 상위권 팀들은 그런 것들을 미리미리 다 예상하고 간다는 의미였다.

‘직접 물질을 뒤흔드는 게 아니라, ‘마나’를 뒤흔드는 것이라는 분석팀의 예측이 맞았어.’

민정이 류재준의 강렬한 일점 파동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도 그 탓이었다.

류재준이 파동을 쏘아낸 순간.

미리 준비해놨던 대로, [물질조작]으로 만들어낸 마나입자의 움직임이 ‘부동’상태로 고정된 흙덩이로 막아 내, 거의 모든 충격을 흡수시켰으니까.

물론 생각보다도 더 강해, 먼지 속에 파묻히긴 했지만.

“……어때? 계속 싸울 수 있겠어?”

파동을 막아내고, 충격에 한 번 엎어졌던 탓인지. 오제헌이 미묘한 표정으로 민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연하지. 뭐 이 정도 엎어진 걸 가지고. 그런 생각할 시간 있으면, 반격하는 거에나 더 집중해.”

민정은 의지를 다잡았다.

‘저 정도의 능력을 썼으면 분명 마나가 바닥에 가까울 테니. 역습을 들어가면 반드시 이긴다.‘

민정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으므로.

국제리그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선수로서의 존재감이 삭제되고.

강준혁을 상대의 전장에 밀어넣어 주기도 전에 쓸려버렸던 그때처럼 무력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몸을 추스르고 다시 민정이 일어나자, 먼지와 돌덩이들 또한 다시 전투인형으로 일어났다.

전보다도 한참 많은 숫자였다.

“오제헌.”

“?”

“강준혁 선배…… 이번에 헌터협회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경기 중에 괜히 할 이유가 없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어려운 순간을 한 번 견뎌냈기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이번 PER대 LTD. 그니까 이 경기에서 PER이 이기면, 이번 국제교류전 멤버에 PER선수들을 많이 뽑을 수 있다고.”

오제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긴. 팀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돌던 말이긴 했다. 그만큼 녀석들이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이상하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그걸 직접 공식적으로 들었다는 것의 무게감은 완전히 달랐다.

“이건 순전히 우리 때문이야. 알고 있지?”

민정은 생각했다. 국제리그에서 LTD가 형편없이 져 왔던 것. 그건 강준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강준혁을 뒷받침하는 선수들. 즉 민정을 포함한 팀원들이 부족해서라고.

그래서. 헌터스 리그에서도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그렇게 국제교류전 멤버를 바꾸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민정이 이겨야 하는 이유는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개인적인 욕심이기도 하니까.’

강준혁은 분명 뛰어났다. 한국 헌터스 리그 선수 역사상 몇 없는 [마나전개]가 가능한 선수.

국제리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무력의 소유자.

그런 강준혁이 국제무대에서 이기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강준혁이 국제리그에서 LTD가 꼴사납게 패배하고, 주저앉아 괴로워하는 모습을 봤다.

그런 모습을 이젠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러니까, 국제리그도 아니고 그 전 계단일 뿐인 한국 1부리그에서 엎어질 순 없었다.

설령 강준혁이 없어 6대 7이라도 이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오제헌. 이기자. 거의 끝났으니까. 마지막까지 긴장 풀지 말고.”

그게 민정이 예민해진 이유이자, 이번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

LTD의 민정이 완전히 몸을 추슬렀는지. 잠깐 동안 멈춰있었던 전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황은 PER 측인 류재준과 나의 압도적 불리.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말했다.

반쯤은 류재준이 필살기를 요구하며 떠밀어서 한 말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막 빔을 쏘거나, 네 [파동]처럼 강력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런데 어쩌면 아주 완벽한 ‘틈’정도는 만들어 볼 수도 있을 테고, 여기에 네가 완벽한 타이밍에 끼어들면 한방 역전승이 가능할지도 모르지.”

분명, 중력능력이니 강력하게 틈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럼 그때, 내가 마무리를 해라? ……그런데 봤다시피 아까 쏜 [파동]도 막아낸 녀석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직접 꽂아넣으면 되잖아.”

그 말에 류재준의 눈이 커졌다.

확실히. 류재준이 상대를 직접 손으로 타격하여 상대방과 닿은 동안 [파동]을 일으킨다면.

그런 걸 막아낼 도리는 없을 테니까.

물론 류재준의 근접 격투술이 괴멸적이라는 문제는 남아있었지만.

“내가 능력으로 어떻게든 완벽한 틈만 만드는 데 성공하면 충분히 해 볼만한 전략이야.”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말했다.

“근데…… 네 중력능력으로 그게 가능하겠어? 상대방의 운신을 이연주의 [속박]마냥 아예 묶어버리진 못할 텐데.”

“그게 내가 할 일이지.”

아직 정확한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했지만, 성공해내지 못한다면 결코 이길 수 없었으니까.

“……알겠다.”

류재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방법이 없으니 나를 믿는다는 느낌인데……

‘미안하다 류재준.’

사실 자신감 있게 말한 것치곤, 별달리 특별한 필살기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류재준을 던져놓고 도망가겠다는 심산은 아니었다.

선수가 자신의 가치도 증명하지 못한 채, 도망가는 것은 몸 값 인상을 바라는 입장에선 최악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적당히 내 능력으로 상대에게 틈을 만들어보면 어떻게든 되겠다고 능력을 쓰며 계속해서 상대를 압박해 보았는데……

원래 쳐맞기 전까진 오만가지 전략이 있다고, 쉽사리 먹혀들어가고 있지 않았다.

“한지수……! 아직이냐?”

중력능력으로 상대를 강하게 눌러도, 상대는 이미 예상한 부분인지 에어비트의 반동으로 움직이든, 에어앵커로 몸을 지탱해 움직이든 잘 대처해 빈틈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거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류재준은 물 샐 틈 없이 꽉 들어찬 전투인형과 운석을 열심히 마나장비를 타 가며 피하고 있었으니, 직접 공격을 손으로 꽂아넣기는 커녕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위험하다 싶으면 중력 능력으로 상대를 견제하지 않고, 류재준에게 위협적인 것을 강하게 눌러 줘 최소한의 길을 열어줬지만 딱 온 힘을 다해 현상유지하는. 그 정도였다.

‘평소처럼 중력을 강하게 해서 운신을 어렵게 한다고 달라지는 건 크게 없는 상황이야. 사고를 바꿔야 하는데…….’

능력이 자그마치 중력을 강하게 하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상대의 발을 묶거나 빈틈을 크게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내가 찾지 못했을 뿐, 방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그래서 그게 뭔데?

어떤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건데?

시간이 가고 있었다.

류재준의 전투력은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고. 상처 또한 점점 늘어가는 것이,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지도 몰랐다.

“야! 한지수!! 언제까지 묶어둬야 하는데! 이젠 더 이상 안 돼!”

류재준이 내게 소리쳤다.

곳곳이 상처투성이였다. 아무래도 더 이상은 절대 버틸 수 없는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길을 열어야 했다.

중력의 힘을 이용해 주변의 전투인형과 운석을 강하게 눌러 류재준이 오제헌과 민정에게 닿을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류재준이 녀석들을 향해 에어비트를 박차며 날아갔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일순간 이렇게 류재준을 접근시켜주더라도, 녀석들도 내 중력을 견딘 후. 그저 에어비트를 밟고 거리를 한 번만 벌리면 저들의 승리였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작스레 에어비트가 눈에 밟히며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류재준의 일장을 위해 완벽한 빈틈을 단 한 번만 만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걸 위해 상대를 꼭 강한 중력으로 ‘묶어놓아야만’ 하나?

생각해보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상대를 당황시켜 벙찌게 하든. 무게중심을 어긋나게 해 넘어뜨리든. 맞게 만들 만한 상황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까.

‘어차피 강한 중력으로 묶이지 않는 녀석들이야. 낙사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원래부터 강한 중력으로 발걸음을 옭아매는 건 의미가 없었어.’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기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중력을 아주 약화시켜버린다면?’

아니, 정확히는 내 능력으로 중력을 약화시킬 순 없으니. 지금 정상적으로 가해지는 중력과 반대 방향으로 중력을 강하게 가한다면?

‘빙고.’

정답은 중력이 아래로 향할 걸 생각하며 에어비트를 향해 점프해 착지하려는 순간.

오히려 반대로 끌어잡아당겨지는 힘에, 무게중심을 잃고 무방비하게 공중으로 치솟게 된다ㅡ.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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