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필살기
다들 교전이 시작된 것일까. 경기가 시작된 직후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화로 시끌벅적했던 것이 거짓말 같았다.
전장에 있는 것은 강준혁과 나뿐.
지독한 고요가 미로에 감돌고 있었다.
“그보다 강준혁 선배야말로 파티 때 조금만 네가 더 일찍 데뷔했더라면…… 이라고 해놓고서, 막상 경기에서 마주치니 별로 달갑지 않아 보이시는데요?”
“내가? 흠…… 사실 별로 달갑지 않기도. 조금은 달갑기도 해.”
조금 의외의 말이었다. LTD는 PER 때문에 전 시즌처럼 완전히 1황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조금은 달갑기도 하다고?
허세라고 생각했다.
혹은 이번 PER전에서 절대 질 리 없다고 생각하고 있거나.
그래서 약간 비꼬듯 대답하게 되었던 것 같다.
“뭐, 그야 이번에 PER이 이기면 잃는 게 많으실 테니.”
“……잃는 것만 있는 건 아니지.”
“?”
강준혁이 복잡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대신에 너랑 국제교류전을 같이 나가게 될 테니까.”
***
한편 이창현과 강준혁이 여유롭게 대화나 하고 있을 무렵. 다른 곳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빨리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계속해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하아…… 이게 특별한 시너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대로 괜찮은지 모르겠다. 그냥 후퇴하는 건 어떤가?”
류재준이 한지수에게 말했다.
근데 한지수는 어이없다는 듯. 민정과 오제헌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적이 시퍼렇게 눈 뜨고 있는데, 되겠냐? 무뚝뚝한 느낌으로 말하면서도 돌려까는 건 아주 선수라니까.”
그 말에 어이가 없었던 것은 한지수의 말을 들은 류재준뿐이 아니었던 걸까. 오제헌과 민정도 눈을 부라렸다.
“저것들이 아주……!”
한국 헌터스 리그 1부 팀들의 수준이 거의 다 비슷비슷 하다고 해도, LTD는 1황으로 군림하면서 더 잘 했기에.
다른 팀들은 경기에서 긴장과 집중. 그리고 진지함이 엿보였는데, 이 자식들은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민정은 녀석들이 허접스럽고, 경박하고. 그리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냥, 어린아이들과 다름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하여간 프로의식이 없는 녀석들이라고.
“……오제헌. 저런 녀석들 상대로 오래 끌 건 아니지?”
“그래.”
“빨리 정리하고 가자.”
비록 오제헌의 힘. 강점을 완전히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전장이지만. 이곳엔 오제헌의 힘을 빌어서 강하게 몰아붙일 수 있는 민정이 있었으므로.
둘은 더 이상 참지 않고, 다시 공격을 개시했다.
훨씬 강력한 방법으로.
오제헌의 운석 부스러기로 민정이 만들어낸 전투인형들이 힘을 쓸 차례였다.
도, 검, 창, 활 등. 다양한 무기를 든 인간의 형태를 한 인형들이 오제헌의 운석 부스러기에서 변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은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시너지도 미묘한데, 이대로 싸우자는 건가? 나도 최전방에서 상대랑 싸우는 스타일은 아니다만.”
“하이구…… 선비 나셨네. 너, 창현이랑 할 때는 잘만 전방에 침투하더만.”
“칫.”
류재준이 한지수의 일침에 혀를 찼다. 괜히 아픈 것도 싫고, 이길 가능성이 압도적이지 않은 이 상황에서 굳이 들어가고 싶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한지수는 뺄 생각이 없어 보였으므로.
“집중해서 보조해 줄 테니까. 그리고 기왕 출전했는데, 대기실에서 보고 있는 녀석들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냐?”
“……!”
그 순간 류재준은 무언가 중요한데 잊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눈빛이 바뀌었다.
달려드는 민정의 전투인형들에게 류재준의 강렬한 [파동]이 작렬한 것은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우우웅 ㅡ!
강렬한 파동과 함께, 사실상 원래 큰 의미없는 돌맹이나 다름없었던 민정의 인형들이 강렬한 타격을 받아 다시 모랫가루로 돌아갔다.
“하긴.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허접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까.”
류재준이 다분히 어디있을 지 모르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멋진 포즈를 취한 후 내뱉은 말이었다.
최근 류재준이 PER의 차원문 능력자 신입. 이서현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을 아는 한지수 입장에서는 혀를 끌끌 찰 수밖에.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옆에 있는 게 이 녀석밖에 없는데.
이제 본 게임의 시작이었다.
***
[캐스터 : 이번엔 이쪽입니다! PER의 류재준, 한지수 선수와 LTD의 오제헌, 민정 선수의 전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동시 다발적으로 전투가 일어나는 상황.
그럼에도 이미 한 곳은 PER이 소규모교전에서 승리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승리의 추가 PER쪽으로 더 기울어진다면, LTD의 강준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캐스터 : 이 전투는 어떻게 보십니까?]
[해설자 : 음…… 우선 PER은 중력 관련 능력을 써 팀원을 서포팅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던 한지수 선수. 그리고 이창현 선수와 종종 크랙으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던 강렬한 파동능력을 쓰는 류재준 선수인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약간 애매합니다.]
[캐스터 : 어째서죠? 두 능력 모두 범용성이 굉장히 좋은 편 아닙니까.]
[해설자 :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제 집단 전투가 되면 능력을 하나씩 보기보다는 시너지가 더 중요하거든요.]
그 말은 즉, 둘이 합쳐져서 특별한 시너지가 날 것 같지 않다는 뜻이었다. 이미 둘 다 비슷한 계열의 능력인 데다가, 특별히 둘이 붙어서 뭔가 콤비네이션을 보여준 적이 없었으므로.
[해설자 : 반면에 LTD의 둘. 오제헌 선수와 민정선수는 다릅니다. 평소에 자주 함께 힘을 합치진 않지만, 그 파괴력은 굉장하거든요. 지금 보시는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처럼요.]
해설자의 말을 근거하듯, 전투를 중계하는 화면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민정이 [물질조작]능력으로 만들어낸 마나 전투인형들을 류재준이 [파동]으로 강하게 뒤흔들어 모조리 부숴버리자.
오제헌이 새롭게 작은 운석들을 불러들여 날림과 동시에, [파동]으로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가수들이 다시 운석이 되어 근거리에서 덮치기 시작했으니까.
[캐스터 : 다 부숴졌던 전투 인형의 잔해들이 다시 운석으로……!]
[해설자 : ……애초에 저 전투인형이 어떻게 생성되었나요? 오제헌 선수의 운석 조각들이 산산조각 나버린 잔해들로 만들어 진 겁니다.
민정 선수의 [물질조작]능력이죠. 그러니 그걸 다시 오제헌 선수가 운석으로 만드는 것도. 다시 전투인형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캐스터 : 즉…… 아무리 파괴해도 오히려 LTD의 공격은 그대로이거나 더 강력해질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군요. 이런…….]
사실이었다.
이미 화면에서는 다가오는 운석들과 전투인형을, 류재준의 [파동] 그리고 한지수의 중력능력으로 틀어막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똑같은 공격이 이어졌으므로.
[무친 좀비 공격부대 ON ㅋㅋㅋㅋ]
ㄴ 결국은 그냥 본체를 공격해야 하는듯.
ㄴ 근데 저것들 다 뚫고 본체를 공격하기엔 둘다 원래 근접 딜러가 아니라서 그런지 돌파력이 좀 부족해보임…… ㅇㅇ
ㄴ 여기에 이창현이 있었으면 딱인데.
ㄴ 오히려 좋아. LTD랑 PER 팽팽하게 가네.ㅋ
계속해서 운석과 수많은 전투인형이 들이닥치고, 몰아내는 걸 반복하자, 슬슬 류재준과 한지수가 숨을 몰아쉬는 것이 화면 바깥으로도 보였다.
[해설자 : 이렇게되면…… 끝이네요. 상성이 너무 안좋았다. 이렇게 평할 수 있을 것 같은 전투인데……
그 순간 ㅡ.
전에 내뿜었던 파동들보다도 훨씬 강렬한 파동이 한바탕 LTD의 민정 방향으로 쏘아졌다.
운석도, 전투인형도 순식간에 쓸려나갈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순간적으로 경기장뿐 아니라, 관객석, 중계데스크. 모두에서 정적이 흘렀다.
아무래도 운석 부스러기가 날려 잘 보이지 않는 상태인데, 그 강렬한 파동이 휩쓸어 먼지구름으로 인해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
정적을 깬 것은 캐스터의 한 마디였다.
[캐스터 : 혹시 ……이걸?]
***
“해치웠나?”
짤짤이 같은 [파동]으로 적의 공격 수단들을 격추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사실쯤은 류재준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대가 방심하는 순간까지, 그리고 위기에 빠졌다는 상황까지 연출된 그 순간.
빈틈을 노려 완벽하게 한 명을 노린다. 그런 방식으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해 즉석에서 짠 전술이었다.
실제로 쏘기 바로 전 순간. [파동]이 퍼져나갈 때 상대방이 당황한 표정이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한지수는 뭐가 영 불만인 듯싶었다.
“꼭 괜찮게 하다가도 초를 친다니까. 잘 될 것 같은데도 안 되는 것들 보면, 나는 다 ‘해치웠나?’하는 새끼들 때문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니까?”
“헛소리는. 이번 한 방은 확실…….”
부스럭 ㅡ.
말하기가 무섭게, [파동]을 쏘아낸 곳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꽤나 강한 출력으로 쏘아냈기에, 일어난다고 해도 이렇게 금방 일어날 수는 없을 터였을 텐데……
“하아…… 봐봐. 그래서 그런 플래그를 세우는 말 하면 안 된다니까. 그건 그렇고, 뭐해. 쓰러진 건 아닌 것 같아도, 데미지는 입은 것 같은데. 해치우려면 지금뿐이야. 다시 한번 쏘는 거다.”
한지수가 류재준을 독촉했다. 하지만 류재준이 다시 [파동]을 쏘는 일은 없었다.
“아니. 그건 불가하다. 애초에 전투인형을 만드는 한 놈만을 노려 쐈던 것이기에, 운석을 던지는 놈은 멀쩡한 데다가…….”
“뭐 어때? 그 녀석이 몸으로 막아줄 것도 아닌데.”
한지수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역시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한 방에 상대를 보내버릴 정도로 압축시켜 쏘아낸 [파동]이다. 내가 에단도 아니고 그런 걸 난사할 수 있으리라.”
“……누가 난사하래? 한 번만 더 하면 확실하게 보내버릴 수 있을 것 같다니까? ……너 혹시…….”
건너편에는 어떻게 파괴력을 드라마틱하게 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잠깐 동안 다시 자세를 추스리고 민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모래 먼지로 좀 더럽혀지긴 했으나, 어딘가 크게 다쳐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 광범위로 강력하게 쏘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
“야 이…….”
한지수가 소리치고 있는 동안에도, 상대의 대열은 실시간으로 다시 갖춰지고 있었다.
전투가 지속되고 또 오래되어, 류재준과 한지수의 앞뒤를 둘러쌀 만큼의 민정의 전투인형들과, 공중을 떠다니는 오제헌의 운석들이.
그리고 그런 상황에 흐느적거리는 류재준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뭐라도 좀 해봐라. 이젠 [파동]으로 저것들을 몰아내는 것도 힘들어. 네가 뭔가 숨겨둔 비기 같은 게 있다면 지금이 그걸 쓸 때다.”
미친 새낀가?
그런 걸 일반적인 선수가 가지고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건 한지수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한지수의 중력 능력이 류재준과 궁합이 별로라 이 전투에서 별 활약을 못하긴 했지만……
‘이대로 끝난다고?’
LTD와의 경기에서 멋진 활약으로 압도적 연봉상승을 노렸던 한지수에게는 절대적으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경기를 지는 것보다도. 이목이 집중된 이 경기에서 별 활약을 못하고 지는 것이 더더욱 치명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절대 물러설 수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비기가 없다면 얄미운 김도준 녀석마냥 잔머리라도 써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려면 일단 류재준 녀석을 쓸 수 있는 곳까지 박박 바닥까지 긁어서 활용해야지.’
“후…… 어쩔 수 없네. 야 잘 들어 류재준. 비기? 필살기? 그런 걸 숨길 뿐이지 없을 리가 없잖냐.”
그런 게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류재준이 믿고 있었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그래. 그렇겠지. 각성자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그런 필살기를 갈고 닦는 게 보통이니.”
마음속으로 혀를 찼지만. 뭐. 류재준은 확실히 자신만의 필살기를 꽤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어느 정도는 그려러니 했다.
“대신. 그렇다고 해서 막 빔을 쏘거나, 네 [파동]처럼 강력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런데 어쩌면 아주 완벽한 ‘틈’정도는 만들어 볼 수도 있을테고, 여기에 네가 완벽한 타이밍에 끼어들면 한방 역전승이 가능할지도 모르지 ”
류재준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을 찡그렸지만 이내 대답했다.
“알겠다.”
몸값을 더 올려받기 위한 투쟁을 다시 시작할 때였다.
“그럼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