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충돌
“지훈아. 이번 연습경기 보고 느꼈지? [마나전개]같이 무지막지한 능력을 써대는 준혁이도 가끔은 쓰러질 수 있고 그런 판이야. 서포터인 네 움직임이 중요하다.”
“……네.”
“움직일 때 움직임 하나하나, 어떻게 서포팅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누구한테 붙었을 때 전투를 이길 수 있을지. 좀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다.”
LTD의 이진한 감독이, PER과의 연습경기 이후 서포터인 이지훈에게 준 피드백 때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맨날 똑같은 이야기만 하긴.’
이지훈으로서는 별로 와닿는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포터라는 거. 이지훈 자신의 능력이 꽤나 유용하고 좋다고 자부하지만. 절대 혼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으니까.
팀은 LTD가 1위로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이지훈이 원하는 모습은 전혀 아니었다.
MVP인터뷰까지는 아니더라도, 화제의 중심에 선다던가. 하이라이트에 나와 화끈한 활약을. 승리에 가시적인 기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연습경기가 아니라, 본 게임이 된 이 경기.
PER과 LTD의 중 승자가 정규리그 1위를 이어나가게 되는 이 경기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따로 떨어져서 전투하게 되는 맵의 특성.
상대적으로 땜빵 느낌이 강한 근위인 이가람.
공격력은 조금 모자랄 수 있지만, 자신의 서포팅 능력을 발휘해서 돋보일 수 있는, 활약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경기는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이가람! 뭐 하는 거야. 2대 1이고, 너는 피해를 입을 일도 없는데, 왜 그렇게 사려! 곧장 파고들어서 공격해!”
“아니! 그러고 있거든? 근데 작정하고 창으로 방어만 하는데 어떻게 하라고. 주먹으로 창을 부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공격이라도 하면 틈이라도 날 텐데.”
2대 1임에도 훨씬 지지부진한 상황.
물론 상대방인 이성태의 체력이 계속해서 깎여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거의 무적에 가까운 서포팅을 받으면서도 이렇게 막힌다는 사실에 이지훈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가람 말고 다른 녀석이 주변에 있었다면 달랐을 텐데…….’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결국 오롯이 혼자서 빛나는 모습을 연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이 들었다.
서포터는 무엇인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
공격력이 부족해? 방어를 완전히 책임져 줘서 공격만 하면 되는데 무엇이 어렵단 말인가.
심지어는 그렇게 이성태가 버티는 채로 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익히 보아왔던 윤한결의 이기어검이 나타났고, 곧이어 본체인 윤한결이 직접 나타났으니까.
‘2대1의 수적 우위도…… 무적에 가까웠던 방어력도 이젠 끝이다.’
이지훈의 능력 특성상 한 명으로는 어떻게 해서도 뚫기 무리였던 배리어지만, 둘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었으므로.
하필 게다가 두 명 모두 PER에서 무력이 가장 수준이 높은 둘이었기에, 이대로 부딪히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컸다.
온갖 선택지가 머리를 맴돌았다.
‘상황이 바뀌었어. 일단 후퇴할까? 미로니까 가능할지도…… 아니면 최후의 수단이라도 써 봐?’
갖가지 생각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오히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휩쓸었기에 그랬던 걸까?
또렷해지는 것은 단순한 욕망이었다.
서포터로도 특별한 활약을 해서, 전장을 휩쓸 수 있다는 것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본질적인 욕망.
강준혁의 뒤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서포팅만 깨작거리면서 돈을 받아간다는 비아냥 앞에서, 증명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실력에 대한 자신.
“이가람. 후퇴는 없다.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으로 들어가.”
“너 설마…….”
이지훈은 양팔을 걷고, 땅에 손을 짚고는 이가람을 바라보았다.
이가람의 주변에 동그랗게 금빛 휘광이 펼쳐지며 마나가 넘실거렸다.
‘마나과충전으로 승부를 본다…….’
패배해도 여기서 쓰러지겠다는 결사의 각오였다.
***
이지훈이 승부처라고 판단하고 마나과충전을 사용하기 전. 이성태는 이 승부는 이미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윤한결의 검 한 자루만 날아왔을 때도 반반 이상을 갔는데, 윤한결이 도착하고 그의 이기어검까지 다 날아온다?
‘그러게 1대2일 때 못 끝낸 녀석들 잘못이지.’
……그리고 아무것도 못한 채로 막기만 하다 패배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견뎌내고, 끝까지 버텨낸 이성태의 승리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랍쇼? 갑자기 이가람에게 금빛 휘광이 쏟아지더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들이박는 것이 아닌가.
“윤한결!!!”
체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인 이성태로서는 맞받아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정도였다.
곧바로 윤한결의 이기어검이 너덧 개 날아와 이가람을 쳐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깡!
강렬하게 울려퍼지는 쇳소리. 그리고 이기어검이 막아세운 것을 쳐낸 후, 이가람의 주먹이 이성태의 왼팔을 뚫어낸 후였으니까.
“커헉 ㅡ.”
다행이 오른팔은 아니었지만, 창은 한 팔로 휘두르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무기.
이성태에게서 더 이상 전투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리라.
하지만 윤한결은 갑자기 극도로 불리해진 상황에서도 눈을 찡그리며 투지가 섞인 웃음을 지었다.
“이성태! 조금만 더 버텨!”
저렇게까지 순간적으로 강력해지는데, 무언가 반동이 오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니 이 순간만 넘길 수 있다면.
이성태가 몸의 밸런스가 무너져 전투능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했는지, 이가람은 아예 이성태를 마무리 짓지 않고, 이번엔 윤한결 쪽으로 다가섰다.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
하지만 예상 못 하는 경로는 아니었다.
그래, 예상 못 하는 경로는 아니었다.
“…….”
모든 이기어검을 손날로 제쳐버리고, 초속으로 다가오던 이가람이 순간적으로 멈춰섰다.
아니, 멈춤당했다.
발을 뗄 수 없을 테니, ‘멈춤 당했다’고 해야 맞으려나?
이창현과의 대결에서, 그의 발까지 묶었던 김도준의 마나트랩.
뿜어내는 마나가 강해질수록, 흡착력이 강해지는 마나장비였다.
그런데 온몸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채우다 못해 마나가 넘실넘실 흘러넘치는 이가람은 발만 묶이다 못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질 수밖에.
털썩.
굉장한 진동이 일어나는 듯 보일 정도로, 엄청난 압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였다.
“으…… 으으으으”
이윽고 이가람은 발을 떼지 못한 채, 오히려 무릎을 꿇었고. 흘러넘치는 마나로 인해 점점 더 바닥에 들러붙게 생긴 채였다.
그리고 윤한결은 그 순간을 놓칠 생각은 없었다.
완벽한 빈틈이 나온 순간, 이가람이 다 쳐내 날아간 이기어검을 줍지 않고, 대신 이가람이 쳐내 윤한결 발치로 날아온 이성태의 창을 들었다.
“아마 우리 팀 첫 승전보 아니냐?”
윤한결이 힘들어하는 이성태를 보며 씨익 웃었다.
***
이성태는 이 승부의 끝을 보며, 결국 이렇게 생각했다.
중간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자신의 변화한 플레이가 맞았다고.
패배를 질질 끄는 것이라고. 꼴사나운 모습만 보인다고 생각했던 방어적인 태세는, 실은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추태를 보여서라도, 패배를 늦추고 또 늦추고. 괴로운 과정을 견디고 기다려서, 이길 찰나의 순간을 찾는 것.
그것이 분명 몰렸을 때, 멋진 마무리를 한다고 합을 나누며 쓰러지는 것보다 더 승리에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리라.
***
‘이가람이 쓰러지다니…….’
LTD의 이지훈은 허탈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교전은 졌다.
이제는 반등의 여지조차 없었으므로.
‘마지막에 뭐였지? 도대체 왜 발걸음을 멈춘 거지? 그때 마지막 일격을 날렸으면 분명…….”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절대로 이가람이 자의로 멈췄을 리는 없었고. 무언가 수를 썼으리라. 능력이라던가. 혹은……
‘혹시 마나장비를…….’
동귀어진을 각오한 전략이었는데, 이렇게 허탈하게 갈 줄이야. 허탈감에 혀를 찼다.
그리고 동시에 드는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그래…… 능력이 아니더라도 마나장비가 있었지.’
만약 저쪽에서 쓴, 저 정체를 모를 발을 묶는 장비를 내가 이성태에게 먼저 알아서 쓸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완전히 판을 뒤집어 둘을 모두 따로따로 해치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즐거워지는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입증하고 싶었다. 가치가 이만큼이라고, 해낼 수 있는 폭발력이 이 정도라고.
서포터가 전장을 뒤엎는 것을 충격적으로 보여주길 원했다.
‘하지만 승부는 잘 보이지도 않은 작은 트랩에 있었다는 건가…….’
그래. 어쩌면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보이고 싶은 마음에 두 눈이 멀었었는지도 모른다.
이 교전의 마무리를 짓기 위해 윤한결이 다가오고 있었다.
‘멍청한 경기였다.’
***
갑자기 교전에 난입한 윤한결. 그리고 우세해졌나 싶었던 PER을 갑자기 압도했던 LTD의 이가람와 이지훈 듀오.
마지막엔 마나장비를 통한 반전으로 이성태의 무기로 윤한결이 마무리 짓는 모습까지.
시청자의 채팅창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와 ㅋㅋ 진짜 짜릿하네. 난 윤한결 왔을때 걍 이기는 줄]
ㄴ 아니 근데 저 버프 걸어준 거 뭐냐? 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ㄴ 국제리그에서 강준혁 선수한테 걸어주려고 회심의 준비를 해둔거 아님?ㅋㅋㅋ
ㄴ 는 강준혁 국제리그에서 “^3초^”컷
ㄴ근데 서포팅 능력 진짜 미쳤네 ㅋㅋ
[캐스터 : 아아…… 이 교전에서 승부는 PER이 가져갑니다! 전반적으로 체급이 높다고 여겨졌던 PER이 오히려 승리를 가져갔어요!]
[해설자 :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교전입니다. 2대 1일때 이성태 선수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 것이 제일 크겠네요.
거기에 조합적으로도 LTD가 조금 불리했습니다. 냉정한 말이지만, 저 자리에 이가람 선수 대신 강준혁 선수가 있었다면 둘 다 줄줄이 소시지처럼 탈락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투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전투가 또 동시다발적으로 다른 곳에서도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특히 가장 많은 사람이 기대하고 있고, 가장 뜨거울 전장이.
[캐스터 : 아! 말씀하진 강준혁 선수. 지금 다시 화면에 비춰지고 있네요. 이창현 선수랑 대면한 상태로, 1대1이 예상됩니다만……
[해설자 : [마나전개]를 쓰면 압승을 예상합니다만, 완급 조절을 할지가 관건이군요.]
***
“이 미로. 무식하게 물리적으로 찾는 거 이외엔 방법 없지 않아요? 아니면 운 좋게 가까운 곳에서 시작한 건가…….”
“왜, 시작부터 날 만나서 반갑지는 않은 모양이구만 후배. 전에 파티에서 말할 때랑 딴판이네.”
강준혁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아니 뭐. 비법이 있다고 하면 나중에 경기 끝나고 한 번 물어보려고 그랬죠. 이거 원 무서워서 한 마디도 못하겠네.”
강준혁은 기세를 숨기지 않고 마나를 발산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마나전개]를 최대한 빠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장악하는 중이리라.
‘그래도 내가 강준혁이랑 마주쳐서 차라리 다행이네.’
PER멤버 중 다른 녀석들이 만났으면 시간끌기조차도 힘들었을 테니까.
물론 나라고 지금 당장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당히 지더라도 시간은 끌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으니까.
절대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싸움도, 실은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
찾아보면 반드시 방법이 있으니 그걸 지금부터 다시 찾을 뿐이리라.
“그보다 강준혁 선배야말로 파티 때 조금만 네가 더 일찍 데뷔했더라면…… 해놓고서, 막상 경기에서 마주치니 별로 달갑지 않아 보이시는데요?”
그렇기에 중요한 건, 어느 순간에도 치열한 사고를 멈추지 않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