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시험받는 무대
선수들에게 헌터스 리그 선수가 된 이유를 물어보면, 그 이유는 아마 제각기 다를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각성자가 되어서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다양하리라.
하지만, 한 가지. 헌터로 뛰어본 선수들이 모두 공감하는 것이 있었다.
막상 시작을 할 때는 다양한 이유로 시작했어도, 계속 헌터로 뛰게 되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 하나는 경기 자체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착착 맞아들어가는 전술, 상대의 공격을 한 뼘도 차이 나지 않는 틈으로 피하는 것. 극한의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접전과, 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움. 폭발하는 아드레날린.
경기를 이긴 후, 뿜어져 나오는 관객의 환호. 열광.
경기 한 번 한 번 자체가 평범한 사람이 일생 동안 느끼기 쉽지 않은 위험, 긴장, 그리고 흥분, 열광이 모두 깃들어 있으니.
그걸 한 번 느낀 사람은 헤어나올 수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리라.
특히 줄타기가 일상이었던 선수라면 아마도 더더욱.
***
대기실에서 경기 시작 전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도, 딱히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가지고 있는 무기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들고 갈 마나장비를 고민하는 정도뿐.
오늘 경기에 참가할 7명도, 그리고 맵에 따른 전략 방향성도. 이미 어제 모두 정리된 것들뿐이었다.
‘하긴…… 애초에 경기 당일까지 그 경기를 고민하는 게 일반적이진 않긴 하지.’
보통 그런 경우는 몰려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경기를 진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전술은 전술. 그리고 시뮬레이션은 시뮬레이션일 뿐이었다.
항상 직접 전투가 일어나는 경기에서는 변수가 일어나며, 그 변수는 어떻게 경기를 뒤엎을지도 모르니까.
연습경기에서 맨날 이기는 팀이 정규리그에서 죽 쑤는 경우도 왕왕 있었으니,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었다.
‘……그것도 그렇고. 오히려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하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PER의 팀원 녀석들. 마지막으로 마나장비를 점검해주는 기술코치 임성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로의 긴장이라도 풀려는 듯 가볍게 대화하며 이야기하는 팀원들까지.
이제 곧 펼쳐질 경기가 남의 경기인 듯, 마음을 차분하게 먹었다.
아마 이기려면, 이번 경기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경기를 해야 할 것이므로.
“슬슬 시작 시간입니다! 선수들은 세팅 준비하고 나와주세요!”
스태프가 선수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크게 박동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
한편, 막 중계가 시작되어 한참 각종 데이터와 기록들. 그리고 이번 경기의 향방을 예측하며 정보를 전달 중인 중계진들에게서는 한참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캐스터 : 이번 PER 대 LTD전은 각자 재미있는 점들이 많네요. 우선 로스터…… 양 쪽의 경우 둘 다 지금까지 거의 뽑은 적 없는 팀원 조합을 들고 나왔거든요?]
[해설자 : 네 그렇습니다. PER의 경우, LTD의 팀 체급. 각자의 무력이 뛰어남을 고려했는지, 대인전이 강력한 선수들을 잔뜩 데리고 나왔고…… 눈여겨볼 것은 PER보다도 LTD입니다.]
ㅡ LTD 출전 선수 명단 : 강준혁, 오제헌, 이지훈, 이가람, 아현, 민정, 이준서.
[캐스터 : 이준서 선수가 있군요! 다른 선수들은 평상시랑 비슷해서 뭐가 다르나 했는데……
캐스터의 한마디에 관중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게, 잠시간 2부에 내려가 있어서 그렇지 유명도만 놓고 보면 강준혁 선수랑도 비빌 수 있을 정도의 선수였으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캐스터 : 일정 반경에 능력을 쓰지 못하게 해버리는 이준서 선수의 능력은 확실히 특별하죠. 국제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선수이기도 하구요. 2부에 내려갔을 땐 정말 이야기가 많았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는군요!]
[해설자 : 네 그렇습니다. 내려갔었던 이유가 역시 폼 저하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예상이 되네요. 한편 PER에는 굉장한 악재로 보입니다. 이준서 선수의 능력은 알고도 대처가 잘 안되기로 유명한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버리면 상대 입장에서는 아주 곤란하거든요.]
[캐스터 : 그나마 호재라면 호재는 있네요. 재미있게도, 2부에서 이미 이창현 선수와 PER은 이준서 선수를 상대해 본 적이 있거든요.]
[해설자 : 혹시 2부 LTD에서……]
[캐스터 :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팀원들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이준서 선수의 분전에도 패배했지만, 지금은 한국 최정상 급 헌터들이 함께하기에, 저번보다 훨씬 어려운 경기를 치르리라고 예상됩니다.]
“분석이 꽤 제대로네요. 저희 팀의 의도도 제대로 읽고 있고 말이에요.”
대기실에서 중계를 지켜보던 김 코치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해설이 한 말대로였다.
전체적으로 체급이 LTD가 높은 상황. 변수만 차단하면 쉽게 이길 수 있는 이런 상황.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는 선수는 불 보듯 뻔했다.
‘상대의 능력’을 봉쇄할 수 있는 이준서. 실제로도 2부 리그에서 PER과 싸울 때, 윤한결을 비롯한 PER의 뛰어난 선수들을 상대로 손쉽게 제압한 전적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 생각대로 될지는 모르지. 저 녀석들이 워낙에 맵이나 유물 같은 변수를 잘 사용하는 걸 김 코치도 알잖아? 그러니까 전장까지 살펴봐야…….”
1부 LTD의 감독 이진한이 그 말을 하는 사이. 어느샌가 맵이 발표되고 있었다.
“저건…….”
[캐스터 : 이번 맵은, 꽤나 많은 분들이 생소해하실 수도 있는, ‘차원의 미로’입니다!]
캐스터의 말과 함께 화면에 엄청나게 거대한 미로가 비춰지고 있었다.
단순하게 벽으로 둘러싸여 2차원적으로 움직이는 미로가 아니라, 계단으로 오르내리고, 위 아래로 꼬이며, 아주 복잡하고 입체적으로 꼬인 미로였다.
일견 초현실주의 미술에 오르는 동시에 내려가는 계단과 흡사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하게 나오는 맵은 아닌데. 저런 게 나와주네.”
이진한이 발표된 맵을 보고 나서 내뱉은 말이었다.
맵은 랜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탑의 정보를 반영하고 있기에, 모두 동등한 확률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매우 낮은 빈도로 등장하는 맵이 등장했기에,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하지만 그것도 잠시. 중요한 건 등장빈도 따위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 맵의 환경이 이번 LTD의 전술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것을 따져보는 것이 중요했다.
[해설자 : ‘차원의 미로’……생소하신 팬분들이 많은 맵일 것 같은데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상하좌우, 위 아래 양 옆으로 복잡하게 얽힌 미로구나! 하고 말이죠. 탑에서는 단순한 통로라 중립몬스터나, 별도의 이상 현상. 유물 등은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이진한의 머릿속에는 이 맵을 토대로 경기의 시뮬레이션이 새롭고,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현재 LTD의 로스터, 그리고 PER의 로스터. 이 맵의 특성에 따른 전투와 전술……
모든 정보가 갖춰졌으니 어렵지는 않았다.
[캐스터 : 그럼 이번 경기는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 한번 부탁드립니다.]
[해설자 : 복잡하게 꼬여있고, 각자 떨어져서 시작하는 만큼……
‘각개전투 또는 소규모 교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겠지.’
[해설자 : 각개전투 또는 소규모 교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날 것 같군요.]
이진한이 중계 화면을 보며 씨익 웃었다.
***
시작부터 생각보다 경기가 훨씬 정신이 없었다.
이번 시즌, 1부 LTD 경기에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이준서가 나오질 않나, 맵이 ‘차원의 미로’가 나오지를 않나.
그 정신없는 상황에, 선수들이 안정을 찾고, 대책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경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난장판이 벌어질 수밖에.
“와. 여긴 중력이 통로마다 제각각인가 본데? 지금 내가 딛고 서 있는 바닥 말고, 이연주가 천장에 붙어서 걸어가고 있어. 야, 이연주 너 나 안 보이냐?”
“어? 보여. 뭐지? 거기로 넘어갈까? …… 아? 뭔가가 막혀있는데? 뭐지…….”
“그래서 합류하려면 어디로 가야 돼? 위치 좀 불러줘 봐.”
“[237,23,957]지점 쯔음으로 오면 될 것 같아. 여기 지금 나랑 뭐…… 천장?에 붙어 있지만 한지수도 있어.”
“근데 이거…… 부숴서 길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로라서 어떻게 해야 그 위치로 갈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어폰이 팀보이스로 아주 시끌벅적하다.
하긴, 흔히 등장하는 맵이 아니라 팀원들이 모르는 것도 이상한 맵이 아니었으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슬슬 정리해야 했다.
“다들 그만. 이번 경기는 각개전투로 간다.”
“어? 그래도 괜찮겠어? 최소한 너랑 재준이랑 만나야 강준혁 선수를 상대할 만하지 않겠어?”
확실히 지난 연습경기처럼, 류재준과 호흡을 맞춰 상대하는 게 베스트겠지만…… 내가 알기론 이 맵은 특별한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길을 찾거나 원하는 대로 팀원과 합류하는 것이 불가능한 맵이었다.
단순히 2차원도 아니고, 복잡하게 3차원으로 얽힌 미로.
거기에 길을 찾는다 하더라도, 가는 도중에 적이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럼 결국 방법은 각자도생뿐.
새삼, 이전 우주정거장과 비슷하게 생겼던 맵에서 전투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았다. 비록 그때의 상대는 지금보다 훨씬 약한 상대였지만 맵에서 취해야 할 전술은 꽤나 비슷했으니까.
“헌터 서바이벌 했던 기억 나지? 그때처럼 혼자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조심조심 이동하면서, 팀원이랑 최대한 합류해. 전투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쪽으로, 다만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면 전투하는 것도 좋아. 합류를 목표로 할 필욘 없다. 최후의 1인을 노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 정도만 해도 팀원들은 아마 다 알아들었으리라.
대인전 능력이 뛰어난 녀석들은, 상대에 따라 싸워서 찍어누를 것.
그리고 그 능력이 부족하면 도망갈 것.
“알겠어.”
팀원들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팀 보이스가 조용해졌다.
“후우…….”
일단 팀원들을 안정시키고, 지침을 정해줘 오더를 내렸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잠시 미로에서 멈추고 선 사이, 온갖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서 돌아갔다.
어느 팀이 유리하지? 개인대 개인은? 소규모 교전은? 강준혁의 [마나전개]로 미로가 부숴져 길이 이어질 가능성은 없나? 우리 팀원들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과 소규모 교전 위주로 일어나는 맵. 그건 결국 팀적 호흡이나 전술보다, 개개인의 무력과 능력의 체급. 그게 싸움의 향방을 가를 것이라는 의미였고.
합류가 역대급으로 어려운 맵.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강한 무력을 가진 쪽이 상대를 한 명씩 각개격파하기 쉽다는 의미였다.
마치 줄줄이 소시지처럼, 입을 벌려놓고 마주하는 상대를 하나씩 제압해버릴 수 있을 테니까. 협공의 여지도 없이.
[마나전개]가 가능한 선수가 있고, 기본적으로 팀원들의 훈련을 축적해오며 체급을 쌓아온 LTD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애써 웃음 지어봤지만, 생각만으로도 등에서 식은 땀이 나는 것 같았다.
***
한편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PER 대기실에는 특별한 손님이 한 명, 같이 경기를 보고 있었다.
“레만 님, 연락도 없이 이렇게 한국에 있는 경기장까지 직접 오시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김성준과, 당황한 듯한. 경직된 모습을 보이는 이종규와 임성태. 편안해 보이는 건 레만뿐이었다.
특히, 중계진이 PER의 불리함을 설파하면 설파할수록 더더욱.
그런데 오히려 레만은 그런 쭈뼛대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이 경기를 중계진이 자꾸 불리하다고 짚어주니까 불편한가?”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근데 그건 말이야. 유불리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네.”
분명 코치진들이 레만보다 더욱 헌터스 리그의 전문가이고, 지금 위험 상황에 대해서도 더 잘 인지하고 있었지만, 반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른 분야이지만, 그 분야에서 엄청난 성취를 거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무언가 강한 무게감이 실려있었으므로.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항상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거든. 그렇지 않았다면 동네 구멍가게 수준으로 영세한 사업자였던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겠는가?”
“전제도. 진행 상황도. 이론도. 그 어떤 논리도. 축적되어온 결과를 이길 수 없네.”
레만이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