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전력 차
“아니 근데 어떻게 그 사이에 껴서 창현이를 공격할 생각을 했어? 너 같은 팀원 맞냐?”
문제의 랭크전 연습이 끝난 후, 팀 홈에 돌아오자 진풍경이 펼쳐졌다.
화제가 크게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가면을 쓴 나와 김도준이 적당히 맞춰가며 1대1을 했던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는 그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윤한결이 승냥이 떼에 껴서 같이 합세한 것이었다.
“아. 근데 생각보다 쩔쩔매던데? 그 가면을 쓴 녀석보고 인터뷰에서 원시적이니 어떻느니 막 그랬었잖아. 이거, 무승부로 끝나서 역풍 좀 불겠어.”
한지수는 아무래도 그후의 윤한결과 승냥이 떼의 1대 다인전보다, 그 앞의 경기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윤한결이야 여기서도 맨날 창현이한테 후두려 맞고, 쩌리들한테 당할 녀석이 아니니까 애들 덤벼들 땐 별 생각 안 했지만 가면 쓴 녀석한테 이기지 못한 거. 그거 괜찮은 거냐?”
이게 본심인 듯했다.
확실히. 나랑은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인터뷰에서 홧김에 내뱉은 말의 수위가 좀 세긴 했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겨봤자, 지는 것도 난데.
‘이걸 말할 수도 없고…….’
그래도 정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 녀석도 능력이랑 무기를 안 썼다지만, 그건 나도 거의 마찬가지니까.”
사실상 서로 본신의 힘을 쓰지 않았다. 뭐, 그런 식으로 나중에 인터뷰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긴 했다.
나중에 인터뷰 요청 들어오면 서로 상대를 존중하는 척 하면서, 나중에 가면을 쓴 녀석이 목표를 이루면 전신전력으로 싸우자고 제안이라도 하면 되겠네.
‘물론 그럴려면 계속해서 정체가 탄로 나지 않아야겠지만.’
사실 그런 부분은 팀원 녀석들도 거의 다 인지하고 있어서일지, 주류는 여전히 윤한결에 대한 이야기가 뜨거웠다.
“맞아…… 어? 어떻게 그렇게 뒤에서 검을 숨기고 있다가. 창현이를 찌를 생각을 하고 말이야. 음흉하긴.”
“아니 음흉하다니. PER훈련할 때, 맨날 얻어터지는데, 기회 한 번 잡아서 한 번이라도 이겨보려는 게 잘못이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윤한결이 계속되는 포화에 반박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그리고 오히려 저 편이 실력향상에 도움이 된다. 상대가 나니까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지레 포기해버리는 것보다, 나한테 맨날 패배하더라도 계속 나를 연구하고 공부해서 기어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집념.
승부사의 집념이 있는 쪽이, 팀을 위해서도 더 이로우니까.
‘물론 그건 그거고 가소로운 건 가소로운 거지만.’
“맨날 얻어터져서, 기회 한 번 잡아서 이겨보겠다니…… 정정당당하게 1대1로 신청했다면 모르겠는데~ 흠. 다굴로 이겨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지~“
윤한결의 항변이 일부러 안 들린다는 듯. 귀를 후비적거리면서 말했다.
이건 괘씸죄다.
“그게… 창현아. 그게 아니라…….”
윤한결이 뒤늦게 후회했는지, 온 몸으로 미안하다는 듯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지만. 오랜만에 잡은 건수인 만큼, 두고두고 써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윤한결이 짜온 전략이 이전보다 훨씬 빈틈없는 점은 꽤나 놀라웠지.’
물론 틈틈히 이근택 회장이 가지고 있던 유물 [가능성을 닫는 함]을 팀원들이 접한 이후로 [꿰뚫는 눈]으로 잠재능력이나 새 능력이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능력 외적인 부분. 팀원들의 실질적인 전투능력이나, 선수로서의 성장. 변화에 대해서는 조금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한결만 하더라도, 가장 큰 결점. 고지식하고 직선적인 전투를 한다는 점을 김도준의 마나장비를 이용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메워버렸으니까.
‘어쩌면 다른 녀석들도…….’
곧 LTD전이다. 그런 만큼, 팀원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리고 오늘 시간이 좀 늦긴 했는데. 곧 LTD전인 거 알지? 오늘 랭크전 할 때도 내 경기 보느라 다들 좀 쉬엄쉬엄 했을 텐데. 마지막으로 2층 훈련실에서 개인훈련 조금만 하다가 끝내도록 하자.”
어쩌면, 녀석들이 내 생각보다 더 많이 성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
회귀 전, 막 선수로서 빠르게 치고 올라가던 시절 가졌던 생각이 하나 있다.
여느 스포츠가 그렇듯, 헌터스 리그도 원래 태어나면서 가지는 선천적 속성. 각성자로서의 능력 같은 것들로 선수의 한계점이 정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것.
‘그런데 최근에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지만도 않네.’
헌터스 리그는 단순한 전투가 아니다. 이른바 헌터로서의 ‘종합 평가’였다. 전투능력, 전술과 전략을 짜는 지능, 그리고 마나장비를 이용하는 잔머리 굴리는 실력. 중립몬스터나 맵을 이용해 전투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지식의 축적……
전투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많았고, 전투능력이 좋다는 것은 그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 나는 2층 연습실에서 그것이 증명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애들 다들 잘하지? 연주랑 길한이 빼면 다 네가 데려온 녀석들인데. 다들 하나같이 잘해. 옛날엔 1부 올라가서도 잘 할까 걱정도 많이 했었는데……
이종규가 옆에서 말했다.
그래. 내 회귀 전 생각대로라면. 원래 선천적으로 능력의 한계치가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면.
하위 리그에서 돈과 인력풀이 부족해 울며 겨자먹기로 뽑았던 선수들은 지금쯤 팀에서 실력적으로 도태되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연습실에서 나오는 데이터. 그리고 훈련의 모습을 보면 어떠한가.
단순히 위치를 읊어대는 GPS에 불과했던. [속박]이라는 능력을 얻어도 겨우 1인분을 했던 이연주가. 상대 한 명 해치우기 어려웠던 이연주가, 이젠 능숙하게 마나장비와 자신의 능력을 연계해 상대의 발을 꽁꽁 묶으며 임무를 완수하고 있었다.
이길한의 멍청하리만치 무모했던 플레이는, 누구보다도 엉덩이 무겁게 지긋이 전장을 지켜보며 적재적소에 들어가는 판단력으로 다른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한지수도. 윤한결도. 김도준도. 상위리그로 올라가며 새로 합류한. 이미 빛나는 재능을 보여주며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던 선수들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 날카롭고 노련한 부분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와…… 근데 넌 진짜 보면 볼수록 놀랍네. 어떻게 전투할 때 그런 생각을 하냐. 나는 무력으로 다 해치우는 타입이라 그런가?”
오히려 테크니컬의 극한을 찍는 창술을 보여주던 이성태가 이연주에게 역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갈고 닦았냐고 물어볼 정도로.
“……그러게요. 이종규 코치님.”
1부에 올라가서 잘 할지 걱정했고, 승급하면서 몇몇 선수는 방출하며 나아갔던 만큼. 고민했었지만.
[이상동몽의 지휘관]으로 센스를 가르쳐주고. 어깨너머로 내 전술과 사고방식을 배우며. 꾸준히 넘기 힘들어보이는 벽인 나를 상대로 포기하지 않고 덤벼왔기에.
아마 이렇게 변화한 것이 아닐까.
이어 연습이 끝나고, 다들 연습 데이터를 보기 위해 다시금 대기실로 모여들었다.
데이터를 보며, 평소처럼 왁자지껄한 팀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흐흐…… 김도준. 너 이제 싸우면 나한테도 지는 거 아니야?”
“뭐……? 뭔. 넌 전투포지션도 아니잖아! 어딜 내 자릴 넘봐. 확 씨 이 검만 있으면…….”
“원거리에서 [속박] 한다음 마나봄버 던지면 검이 닿을 일도 없어.”
그 말에 대기실에 함께 있던 팀원들의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전투에 벌벌 떨던 이연주는 이제 없었다.
모두가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다들 생각보다 폼이 많이 올라왔네.”
아마 요새 조금 랭크전을 열심히 했다던지.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리라.
지금껏 해왔던 연습들. 헌터 서바이벌. 팀 연습. 그리고 [이상동몽의 지휘관]으로 감각적 피드백까지 받아가며 했던 개인 연습.
……그리고 실전에서의 ‘승리’까지.
‘우리 팀…… 생각보다 강해져 있었구나.’
“그야, 네가 알려줬잖아. 어떤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고. 이런 움직임을 할 땐 이런 감각이라고…… 직접 하나씩 짚어가면서.
좀 많이 틀려서 힘들긴 했었는데. 그래도 뭐 어쩌겠어, 구단주니 감독이니, 주장이니. 혼자 몇 가지 일을 하는지도, 자기 수면 시간은 잘 챙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녀석이. 1대1로 밀착해가면서 한 개라도 더 가르쳐주겠다는데.”
한지수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순간 눈을 감아, 암흑이 뒤덮인 시야로 회귀 전의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났다.
[만개]를 개방해,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도, 그 때는 경험이 부족해 엉뚱하게. 혹은 상대의 함정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 땐 오히려 내가 후배여서. LTD의 녀석들에게 도움을, 경험을 이어받았던 일이 있었다.
비록 류재준을 제외하면 인간적인 교류는 많이 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젠 내가 누군가를 이끌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실력도. 준비할 여력도 충분했다.
이전 LTD에게 연습경기에서 패배했지만, 이번엔 이기리라.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래도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상대가 LTD인데, 오늘 랭크전처럼 설렁설렁 연습하지 말고. LTD전까지 타이트하게 관리할 거니까 말이야.”
1부 리그 정규시즌 1위가 멀지 않았다.
***
“상대 팀의 폼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는 건 맞습니다만. 아직도 꽤나 차이가 있습니다.”
LTD의 전략실에 분석팀장이 한 첫 마디였다.
“저번 PER과의 연습경기 때의 데이터입니다. 준비한 전술은 하나도 먹히지 않았으며, 악재가 겹치고 오히려 저희 전술이 꼬여 저희 발목을 잡았는데도 이겼습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데이터 말이야. 지금 시점에서도 괜찮은 거 맞지? 저번에도 한참 분석데스크에서 SAA의 승리를 점쳤는데 PER이 이겼잖아.”
이진한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분석팀장은 단호했다.
“LTD가 이번 시즌에 흔들리는 경기력을 보여준 때가 있었습니까?”
“그건 아닌데…….”
“강준혁 선수가 갑자기 부상으로 [마나전개]를 하지 못하겠답니까?”
“컨디션은 괜찮다던데.”
“그런게 아닌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LTD의 분석팀장은 확신한다는 듯. PPT를 넘겼다. PER과 LTD의 지표였다.
킬, 데스, 어시스트부터 그 능력이 가져오는 변수에 따른 가능성.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시나리오. 그리고 카운터당할 수 있는 능력들의 목록까지.
1,2,3부에 모두 팀을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팀인 만큼, 어마어마하게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이루어진 데이터였다.
“뭐…… 다른 건 다 그렇다고 치고.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도 강준혁 선수의 [마나전개]라는 비대칭 전력이 있습니다.”
비대칭전력이 있다는 것은, 변수만 없다면 무조건 이긴다는 뜻.
그리고 이번 LTD의 전략은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변수만을 차단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리고 저번 연습경기에서 강준혁 선수를 몰아세웠던 방법도 모두 분석이 끝난 상태입니다. 강렬한 마나 파동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마나전개에 쓰인 마나들을 몰아내는 방식을 사용……빈틈을 이창현 선수가 꿰뚫었죠.”
이진한은 그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건, 상대방의 패에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두 번은 안 당하는 잡기술입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원거리에서만 검격을 쏘는 방법도 있고, 혹은 그 능력을 쓰는 선수는 다른 LTD의 선수가 마크하도록 해도 되니까.
“LTD는. 이번 정규시즌에 무패로 1등을 달성할 겁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분석팀장의 PPT가 꺼졌다.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과하게 위축되어 있었을 뿐. 이게 원래의 LTD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