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부러운 녀석들
경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이근택은 이창현의 압승을 예상했다.
이유야 단순했다. 아직 PER과의 인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만큼, 연습할 때 이창현과 윤한결의 대결 전적도 알고 있었고, 그리고 나머지 녀석들은 랭크전 점수가 아무리 높다고 한들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까보니 어땠는가.
비록 본신의 힘은 이창현한테 한참 밀려 패했을지 모르겠으나, 윤한결 또한 지혜를 짜내 꽤나 분전하지 않았는가.
“허허… …역시 걸출한 녀석이 하나가 있으면, 그 주변도 같이 덩달아 발전하는구먼.”
수준 높은 한 명의 천재. 트랜드세터가 수많은 팔로워들을 만들어내며 새 지평을 열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흔한 일이니.
지금은 비록 이창현. 그리고 이창현이 손수 가르치고 있을 팀원이 그 영향력 아래에 발전했을 뿐이지만 점차 그것은 더 퍼져나가리라.
그런 PER과 경쟁하게 되는 한국의 1부 팀들도. 그리고 그렇게 변화하는 1부 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하위리그 유망주들까지도.
[헌터스 더 넥스트제네레이션] 이후로도, 이창현은 분명 눈에 띄는 행보를 계속 보여줬지만. 이렇게까지 해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므로.
‘거기에 가면을 쓴 녀석. 그 녀석까지 치고, 창현이랑 발 맞출 녀석까지 치면……,’
이번 국제교류전에서 어쩌면 한국이 시드권을 더 따와, 국제리그에 더 많은 팀을 출전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시드권도 시드권이지만, 그건 한국 헌터스 리그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진다는 것 아니겠는가.
“흠흠…… 아무튼 손발을 맞출 녀석 한 두명 정도는 붙여줄 테니, 잘 고민해보도록 하고. 꼭 같은 팀원 아니어도 되니까.”
“……네 알겠습니다.”
이창현의 경기가 끝나, 대화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강준혁이 나갔다.
한 때, 한국 선수로서 최선봉에 서서 [마나전개]까지 보여주며 오롯이 빛났던 강준혁.
그가 답답해하고, 무서우리만치 빠르게 쫓아오는 이창현의 행보에 마음이 불편한 건 이근택도 이해할 수 있었다.
‘쯧쯔……차라리 계획대로 창현이가 올라가는 시즌에 해외 리그로 이적했으면 덜 아팠을 것을.’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며, 한국에 남았던 것일까. 이근택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강준혁은 이창현과 PER의 약진으로 전보다 부담감이 훨씬 커졌으리라는 것은.
***
“어때? ……역시 국제교류전 때문에 부르신 거야?”
1부 LTD의 감독, 이진한이 입을 열었다. 매년 LTD의 주장을 이근택이 이 시기 즈음에 부르는 이유야 뻔했으므로.
“네. 그런데, 평소랑은 좀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이진한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강준혁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시드권 배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제 교류전에 나가는 팀은 보통 거의 LTD팀원으로 이루어지곤 했으니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팀 스포츠인 만큼, 오래 호흡을 맞춘 팀원과 함께 경기할수록 유리하다던가. 준비하기 쉽다던가……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LTD팀원과 다른 팀의 유명 에이스들을 모아서 한 팀으로 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기에 보통 LTD팀원은 국제 교류전에 5명씩 들어가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는데……
“이근택 회장님은 변화를 원하고 계신 것 같아요. 이번 국제리그 때 성적이 안 좋았던 것도 있고…….”
“크읏…… 근데 뭐, 국제리그 나가서 우리만 죽 쒔나? 역대 다른 팀들 국제리그 나갔던 때에도 다 똑같았어!”
이진한은 억울했다. 지금껏 한국리그가 국제리그에서 힘을 쓰지 못한 것도 알았다. 그리고 이근택 회장이 변화를 통해 그것을 타파하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자신이 LTD의 감독을 맡고 있는 지금에야, 국제교류전 선수 선발의 관습을 깨어가며 LTD 팀원들의 선발이 줄어들게 만드는 것인지.
이근택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지금까지 성과를 못 냈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어떻게 그래. 국제전을 한 번 치르는 게 선수들한테 얼마나 큰 경험이고 자산이 되는데…… 너는 어차피 LTD 팀원 중 선발하는 인원이 줄어도 선발된다 이거냐?”
순간적으로 이진한이 욱했는지, 나온 말실수였다.
내뱉은 후에야 이진한은 그 말이 실수임을 인지했지만, 되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이미 강준혁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아무 말도 내뱉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가장 위기감. 초조함을 느끼고 있을 선수는 강준혁일 텐데.
왜 해외 리그로 나가려던 것을 나가지 않았나 하는 후회.
한참 후배고, 어린 선수들이 미친 듯한 속도로 따라잡고 있는 데에서 느끼는 초조함.
그리고 따라잡히다 못해, 추월당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평소에 강준혁은 온화한 편이었지만, 화나면 또 오래가는 편이었기에. 이진한은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미안하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강준혁의 반응은 오히려 화가 난 것 보다는 다른 쪽이었다.
괴로움, 회한, 기대…… 무엇이었을까.
“아니에요. LTD의 팀원들이 더 가지 못하는 건 저도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 녀석들은 저만 보고 이 팀에 왔을 텐데. 기대만큼 끌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요.”
이미 한국 헌터스 리그 제일의 선수인 강준혁은 자신의 부족함을 이야기했다.
“이 자리에 있다보면,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어요. 감독이나 코치진이랑은 좀 다르게. 국제리그를 갔을 때 다른 나라의 선수나 팀에서 오퍼가 오면서 같이 들려오는 이야기들이. 어느 나라의 누가 잘한다더라. 어느 팀에서 군침을 흘린다더라. 물론 한국 팀이나 선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죠. 변방 리그니까 그게 당연하고 평범한 건데. 한 명. 딱 한 명 이야기는 들리더라구요.”
이진한의 마음속에서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리그에 있으면서도 해외에 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분명 있다. 이민석이나, 진수혁이나…… 그렇지만 그런 녀석들의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이창현…….”
“네. 미국에 있는 제 친구가 이야기하더라구요.”
물론 미국이니 만큼 엄청난 신인이 나왔다! 이 선수로 헌터리그의 변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이런 말이 돌진 않았겠지만…… 단순히 국제리그나 교류전. 해외 리그에서 뛴 적도 없는 선수의 이름이 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국제리그에 매년 참석하는 LTD의 팀원들 중에서도 강준혁 정도만 해외 팀들이 기억하는 정도니까.
“녀석이 2부로 올라오는 헌터스 리그 파티 때. 제가 그 녀석한테, 5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럼 팀을 이루거나, 경쟁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랬었는데…….”
강준혁의 말은 그 뒤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이진한은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다.
LTD는 아마 국제교류전에서 전보다 적은 선수가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PER은 어떨까. 지금까지 이름도 몰랐던 팀이지만, 지금 순위로 보나 폼으로 보나 꽤나 참가할 수 있으리라.
강준혁은 개인으로 성공했으나, [마나전개]같은 개인기의 정점에 가까워졌으나. 팀을 정상으로, 더 높은 곳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런데 이창현은 그렇지 않았다.
개인의 성공? 이번 랭크전만 보더라도 4천점 후반대. 4대1을 해치워버렸다. 이견이 없는 압도적 성장과 성취를 이뤘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창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팀까지 바꿔놓았다. 구단주이자 감독이자 주장인 선수라는, 전례없는. 어쩌면 막무가내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서. 해내 버린 것이었다.
강준혁과 경쟁하거나 동등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개인을 넘어 팀까지 보자면 이미 더 나은 이상에 도달해 있는 것이었다.
“우습더라구요. 그런 말을 했던 제가.”
“아니야 그땐 분명…….”
2부에 막 승급한 루키의 팀이었고, 무모해 보였으니까.
그때도 한국 리그에서 최강자로 군림했던 강준혁이 하지 못할 말은 결코 아니었다.
“선수로서 자신이 가장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그만해라.”
“자신이 아니라 남한테 기대하는 거예요. 자기가 하지 못했던 걸, 팀원이 해주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녀석이 해주지 않을까? 뭐 그런. 근데 그 녀석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창현이라면…… 어쩌면 국제리그에서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저 녀석이랑 같은 팀으로 국제 교류전에 나가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실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찾아, 이길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뭐 이런…….”
“그만해.”
강준혁의 말에서 깊은 회한과 괴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진한은 이 대화를 어떻게든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느낌을 받고 있는지, 어떤 감정인지 공감할 수 있지만. 이제 PER과의 경기는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이제 다음 경기가 PER이다. 그래서 그런 녀석이니까 져주자고? 패배해도 어쩔 수 없다 뭐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라. 애초에 ……그 녀석이 생각보다 잘나가고, 네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모습을 구현한 것도 인정하지만, 그래서 뭐?”
미래가 어떻고, 추세가 어떻고. 그런거는 추측에 불과했다.
LTD는 현재 몇년 째 한국에서 명실상부 최고의 팀으로 군림해오고 있으며, 국제리그에서 조금 약한 모습을 보여줬을지는 모르나, 그건 한국의 모든 팀이 같았다.
“저번 PER과의 연습경기에서 고전했었던 건, 실험적인 전략을 채용했기 때문도 있고 그리고 기가 막히게 맵의 특성이 말려들어가 말렸기 때문이다. 전문 분석가들도 승점은 비슷하지만 LTD를 PER의 윗단에 두고 있어.”
그래,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LTD가 유리하고 수준이 더 높았다.
분명 이길 확률도 크게 더 높으리라.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걸 느꼈다구요.”
강준혁은 말을 삼켰지만. 이진한은 그 막간의 하고 싶은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만약, LTD마저도 이번 정규시즌에 PER에게 패배한다면.
그런 이변이 발생해 PER이 정규리그 1위로 달리기 시작해 한국리그가 새로운 측면에 돌입한다면. 오히려 국제 교류전까지도 강한 이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강준혁의 생각이.
“그런 일은 없다. 왜냐하면 이번에 무조건 이길 테니까.”
이진한은 그렇기에 선언했다.
국제교류전이고 승산이고 자시고. 그 무대에 가는 것도 LTD의 팀원들이 올라서야 이진한에게는 의미가 있었으니까.
“혼자 쓸데없이 계속 감상에 잠겨있지 말고, 회의실로나 내려가자. 전력분석관이랑 전술연구한 거나 마지막으로 경기 전에 팀원들이랑 봐야 할 거 아니야.”
“……네.”
“그리고 계속 그렇게 침울해진 상태로 있으면 콱 뒤통수 때려버린다. 지금 한국 헌터 간판이 너인데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 자꾸 그러면, 국제전 가면 질 때마다 헤엄쳐서 오라고 댓글부대 동원해서 악플 달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
그제서야 강준혁이 살며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새삼 모두 이진한 감독에게 털어놓고 보니, 강준혁은 층계를 내려가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처음부터 이창현과 같은 팀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실없고 선수로서의 프라이드가 부족한 생각을.
‘PER녀석들은 그냥 제대로 땡 잡았구만.’
부러운 녀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