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환장의 듀오
“이번 국제리그가 망가진 것처럼, 국제 교류전에서도 참패하도록 냅둘 수 없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강준혁이 어두운 표정으로 이근택 회장의 물음에 답했다.
“지금껏, 웬만하면 국제교류전은 정규시즌 1위 팀의 팀원들을 과반이상 채용해서 진행해왔어. 합도 잘 맞고, 폼도 그럭저럭 괜찮았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된 게 없으니.”
이근택이 곤란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그 관습을 깨볼까 해.”
“회장님!!”
강준혁이 소리쳤지만, 이근택은 굳은 자세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으니까.
“너무 그러지 마. 네가 국제교류전 멤버에 떨어진다거나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여전히 주장직도 유지되고, 선수 뽑는데 의견도 들을 거야. 그러나 딱 거기까지야.”
평소에 너스레를 떨며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하던 이근택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건 회장으로서의 통보였으며, 결단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자리는, 이번에 랭크전에서 ‘두각을 보인 자‘를 선발하기로 했다.”
때마침, 이근택과 강준혁 앞에서는 랭크전 상위 큐 중계방송이 한참이었다.
최근 들어 화제인…… 가면을 쓴 녀석과, 이창현이 싸우고 있었다.
‘……이창현이?’
이근택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면을 쓴 녀석이 틀림없이 이창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보니, 가면을 쓴 녀석의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가 이창현이었다.
인터뷰 당시, 이창현이 쇼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실제로 가면을 쓴 저 녀석과 이창현의 대결이 성사되리라고 생각한 적은 전혀 없었는데.
‘그럼 저 가면 쓴 녀석은 대체…….’
이근택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왜 가면을 쓴 녀석이 이창현이라고 생각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움직임, 아래의 턱선. 그리고…… 그리고 또? 무언가 확신할 만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있는 상황에.
경기장에서 가면을 쓴 녀석과 싸우는 이창현은, 또 상대랑 동등하게 싸우겠다고 검만 쓰고 있는데. 이 또한 평소 이창현의 검술과 비슷했다.
평소보다 컨디션이 조금 별로인 것처럼 보이긴 했는데……
그렇게 되니 분간이 안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저 가면을 쓴 녀석은 이창현은 아니구먼.’
비슷하게 꾸민 것도 아니고, 얼굴을 저렇게 명확하게 드러내고, 검술마저 거의 복사한 듯 비슷하게 구사한다.
저건 이창현이 맞다. 그러면 저 가면을 쓴 녀석이 이창현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런데 가면을 쓴 녀석도 분명 이창현의 전투랑 비슷한 면모가 있는 것이…… 관계가 없는 녀석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 셈이었다.
“껄껄걸…….”
‘이창현이 키우는 녀석인가. 홈에 녀석이 키우는 녀석이 여럿 있었으니, 그런 녀석들 중 저런 출중한 녀석이 하나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가면을 쓴 녀석이 이창현인 줄 알고, 사라졌던 관심이 다시 되살아났다.
저 녀석이 쓰지 않고 숨기고 있는 능력은 무엇인지. 평소에 무슨 무기를 쓰는지. 헌터스 리그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이창현을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이근택이 이번 랭크전에 건 비밀 보상. 국제교류전 참가 멤버로의 선발이 딱 저 녀석을 위한 것이다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강준혁에…… 이창현이. 그리고 저 가면을 쓴 녀석까지. 그럼 남은 정규멤버자리는 넷인가.’
생각보다 출중한 모습을 보여주는 새 선수들의 비상으로, 이번 국제교류전은 꽤 좋은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입꼬리가 흐뭇하게 올라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심지어 이창현과 가면을 쓴 녀석의 1대1 결과도 무승부.
서로 진짜 자신의 실력이랄 법한, 능력이나 무기를 꺼내지 않아 약간 싱거운 면이 있었지만. 그 이창현을 상대로 저렇게 해낸다?
저놈이 제대로 월척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투 후 서로를 인정한다는 듯, 정중하게 악수를 하고 대기실로 나가는 모습까지.
이근택은 흐뭇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준혁은 그런 이근택의 반응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랭크전을 보고 표정을 굳혔지만,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올 리가.
이근택은 마음 같아선 지금 랭크전이 끝나고, 나오는 저 둘을 맞이하러 헌터연합훈련소에 달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여기에서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저 녀석들 봐라?
이창현이 경기가 끝나는 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랭크전의 점수가 좀 높은 하위리거들이 승냥이 떼처럼 이창현에게 대결을 요구하는 것이 중계되었다.
“허 참.”
이근택은 그 광경을 보고 한 마디 하려다가도, 새삼 또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창현은 1부에 올라오고 난 이후로, 랭크전을 별로 참여하지 않아 대인전의 강함이 덜 드러나기도 했고, 오늘 경기를 보아하니 충분히 승냥이 떼가 달려들만 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물론 그건 검만 써서 그렇게 보인 것일 텐데…… 허허.’
이창현의 명성을 널리 퍼뜨린 총이나 공중전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물론 유의하고 있겠지만, 제대로 그 수준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비가 걸리고 경기가 시작되자, 이창현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자비하게 상대를 도륙 냈고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창현이 랭크전을 하지 않을 뿐, 대인전 능력이 월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어…… 아직 서 있는 녀석이 있잖아? 근데 어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누군지 알았다.
헌터스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에서도 이창현과 함께 이근택을 대적했던. 그래. 윤한결이라는 이름이었다.
“껄껄껄”
같은 팀인데, 팀의 기둥을 물어뜯는 승냥이 떼에 섞여있었구나.
아무렴, 젊은 혈기란 그런 것이리라.
이기고 싶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상대가 어느 지위에 있든 간에 약해진 것 같은 틈을 타서라도 승리를 취한다.
“어렸던 녀석이, 진짜배기 헌터가 되었구나.”
헌터스리그에서 스포츠 선수로 살아가는 헌터가 아닌, 진짜 탑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헌터 같은 본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방향성은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이기려면 조금 더 생각을 해 왔어야지.”
끌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이근택은 즐거운 마음으로 젊은 후세대들의 격돌을 지켜보았다.
***
원래 쳐맞기 전까지는 다양한 계획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막상 실전이 되면, 아주 다양한 이유로 실패한다.
영상으로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상대해보니 그것보다 체감상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든지.
대응을 준비해오긴 했는데, 그게 잘 안먹혔다든지.
근데 실은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상대방의 대응연구에도 살아남았으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일 테니까.
‘그게 잔챙이들 특징이기도 하고.’
한 번의 난사에 쓰러진 세 녀석을 보니, 역시 그런 진리는 그대로이지 싶었다.
그런데 좀 의외였던 점은, 윤한결은 여전히 서 있었다는 점.
예상을 벗어난 게 직접 가르치는 팀원이라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달까.
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다.
심장을 맞춘다고 ‘선언’해 파괴력을 배가시키고, 그후 탄환은 분명 예상했던 부분에 정확히 맞았다.
‘그런데 안 쓰러진다고?’
PER팀원들의 상태는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있고, 윤한결이 방어능력은 평균 이하라는 건 확실했다.
이기어검으로 쳐냈다면 또 모르겠는데 이건……
그래서 뭔가 재밌는 걸 준비해왔나, 잠시 생각하던 도중. 먼저 움직인 건 윤한결이었다.
쿠쿵 ㅡ. 털썩.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며 윤한결이 몸에서 떨궈낸 것. 그건 다름이 아니라 마나 프로텍터였다.
SAA전에서 진수혁의 비도를 막아낸 수법을, 그대로 이번에 사용한 것이었다.
그때 비도를 막은 것과 달리, 한 번 더 맞았다가는 부서질 것처럼, 굉장한 금이 가 있다는 것이 차이였지만.
“하…… 하하. 쉽지 않네. 이걸로 두 번 막으려고 했다가는 부서져서 파편이 배에 박힐 뻔했어.”
윤한결이 당혹스러움을 감추며 말했다.
“그래도 기회 한 번은 벌어줬으니, 괜찮은 거 아닐까?”
씨익 웃는 윤한결.
새삼 윤한결도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만 하더라도 전투가 너무 고지식하고, 전술적인 센스. 잔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었는데.
이제는 뻔뻔스레 웃으면서 상대방의 전술을 훔쳐 쓸 수 있게 되었구나.
새삼 저만치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했던 팀원이, 실은 바짝 뒤에 서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 제대로 한 방 먹었네. 배운 걸 바로 적절하게 써먹을 줄도 알고. 근데 이제 그래서 어쩔 건데? 평소대로 해서 이길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거 아니야?”
하지만 그걸론 부족했다.
평소에 항상 훈련하면서 맞대고 싸워왔기에, 윤한결도 알고 있을 터였다.
결국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격을 상대에게 맞춰 쓰러뜨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한결에게 검을, 이기어검의 운용을 가르친 것은 나. 안 그래도 [꿰뚫는 눈]으로 궤적을 다 읽는 상황에 맞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건 윤한결도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를 준비해 왔다는 뜻인데……
그게 뭘까나?
윤한결의 이기어검이 번갈아가며 쇄도했지만, 나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해가며 권총의 사거리 밖으로 거리를 벌린 윤한결을 추격해갔다.
‘이기어검 운용 개수라도 늘려서 결정적인 순간에 쓰려고, 어디 숨겨두기라도 했나? 아니면 새롭게 얻은 테크닉이라도?’
점점 사정거리로 들어오고 있는데, 윤한결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자 온갖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윤한결은 오히려 탄환을 막아낼 작정인지, 검을 불러들여 방어적으로 돌릴 뿐. 공세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기에.
그냥 계획대로 에어대시로 마지막으로 거리를 확 줄인 후 땅을 박차며 권총을 쏘려던 순간.
“…….”
발이……바닥에 붙었어?
바닥을 바라보니, 무언가 마나가 새어나오는 무언가가 뿌려져 있었다.
아마도, 발을 묶기 위해 만들어진 마나장비의 일종. 혹은 마나를 써서 만든 그 무언가이리라.
당황해서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물론 스스로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정도였기에, 반사적으로 지체 없이 다음 행동을 했지만
타탕 ! 탕 !
놀랍게도 윤한결은 그것까지 모두 생각한 것인지, 미리 불러들였던 이기어검이 많았기에 검으로 막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되면 남는 상황은, 순간적으로 발이 묶인 나. 그리고 나를 향해 날아오는 맹렬한 이기어검 뿐.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윤한결이 이런 잡기술에 가까운. 껌딱지 같은 마나장비를 만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만들었다면 아마 김도준일 텐데……
체급 자체가 뛰어나 전투력이 좋지만, 너무 고지식하고 잔꾀가 부족한 윤한결.
경기를 날로 먹고 싶다는 사고 자체가 드러나는 마나장비를 만드는 게 업이 되어버린 김도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콤비인데, 호흡이 환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장하겠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