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압도
“윤한결…….”
이창현이 자신을 노리는 승냥이 떼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물어왔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그래도 뻔뻔하게 나가야 했다.
‘이길려면 진짜 오늘뿐이야.’
오늘의 이창현은 평소랑 달랐으니까.
윤한결이 볼 때에도 가면을 쓴 녀석이 물론 만만치 않긴 했고, 창현이도 능력 없이 검 한 자루만으로 싸우긴 했지만. 평소에 비해 창현이가 확실히 덜 매서웠다는 건 분명했다.
‘창현이가 적당히 하는 건…… 아닐 테고. 검을 최근에 많이 안 써서 그런가? 아니야. 평소에 잘 안 써도 예리했어. 그럼 역시 컨디션 문제가…….’
평소의 매서운 약점찌르기를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의 경기력이었다.
수준은 높았지만, 이창현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물론 검 쓰는 수법이나 검술을 생각하면 창현이의 그것이 맞긴 하지만.’
그리고 그건 윤한결에게 확실한 기회였다.
[헌터스 더 넥스트제네레이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한 번도 뒤집힌 적 없고, 이긴 적 없는 상대인 이창현.
감독이자 주장으로서, 선수로서 존경하는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어쩌면 유일무이할 기회.
치사하다고 욕해도,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얼굴에 철판을 깐다는 심정으로, 창현이를 물어뜯는 랭크전 승냥이 떼에 합류했다.
“너도 나한테 1대1을 신청하려고 온 거야?”
이창현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을 크게 끔뻑였다.
“그래. PER팀원이긴 하지만, 나도 랭크전의 랭커로서 한 번 도전해 볼 수 있지 않겠어?”
옆에 있는 승냥이 떼들도 나까지 낀다고 하자 든든했는지, 나를 거들었다.
“왜. 장점도 약점도 잘 파악한 팀원까지 상대하려니까 겁나나? 이거, 주장으로서의 면모가 안 사는구만 푸하하.”
창현이의 명성을 노리고 짐승마냥 몰려든 이 녀석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어차피 저런 녀석들에게 꺾일 이창현이 아니니까.
중요한 건 나였다.
오늘의 컨디션을 가다듬고, 이창현을 이기는 것. 그 기회가 바로 코앞에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나까지 껴있는 걸 알았으니, 혼자서 이녀석들까지 모두 상대한다고 하진 않겠지? 역시 1대1을 여러번 하는 쪽으로 가게 될 텐데…… 유리하려면 역시 마지막 차례인가?’
고민하고 있던 찰나.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헤에. 윤한결까지? 뭔가 나한테 쌓인거라도 많은 모양인데, 그래 좋아. 상관없으니까. 다 한꺼번에 올라와서 덤벼.”
아니, 아무리 창현이라고 해도 이건.
미친 건가?
상대는 나를 포함해 랭크전 4천점대 후반인 녀석들이다.
게다가 오늘 컨디션도 별로 안 좋았을 텐데……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창현을 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볼 수 있었던 건 평소와 다름없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지만.
***
한편, 랭크전 통합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은 이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게 원래 싸움구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쟤네들……설마 창현이한테 1대1 신청하는거야?”
이창현과의 싸움을 정리한 후 돌아온 김도준에게, 이연주가 물었다.
“그런 것 같은데. 창현이가 요새 한국 헌터스 리그에서 제일 떠오르는 신인이기도 하고, 한 번 꺾기만 하면 얻을 게 많잖아?”
몰래 빠져나온 김도준이 대답했다.
‘후우……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네.’
이창현과 이창현으로 변장한 김도준의 연극이 끝난 후.
이창현이 가면을 벗고 본 모습으로 나와 다행이었다.
“그런데 뭘 저렇게 많이 우루루 몰려가서…….”
이연주는 여러 명이 창현이를 둘러싸고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 듯, 이창현 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김도준이 막아 세웠다.
“잠깐 기다려 봐.”
“…….”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김도준이 예상한 대로,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다 한꺼번에 올라와서 덤벼.”
이창현이 하나하나 상대해 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폭탄발언을 내뱉은 것이었다.
현 랭크전 1위를 달리고 있는 진수혁이라도 하기 쉽지 않은 발언을.
이연주도 듣다가 놀랐는지, 김도준을 뿌리치고 이창현쪽으로 가려고 했지만 김도준의 연이은 말 한 마디에 멈춰섰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야. 그보다, 창현이가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했는지 궁금하진 않아?”
승산 없는 전투를, 먼저 걸 만한 녀석이 아니니까.
***
쉬운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작다.
하지만 어려운 싸움을 한다면, 큰 걸 얻을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
쉬운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거나 작다.
만약 내가 1대1로 시비를 걸어오는 저 녀석들을 꺾는 것도 그렇다.
비록 내가 랭크전을 대외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헌터스 리그 1부에서의 활약으로 이름값이 높아진 상태.
녀석들을 쓰러뜨려도, 내가 얻는 건 없다. 단순히 재검증받고 확인받을 뿐이지.
그러니 덤벼오는 녀석들을 자빠뜨리려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함부러 덤벼오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지금까지 검증된 것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특별 룰, 랭크전 전장이 개설됩니다.]
[이창현 vs 윤한결, 오정환, 하진서, 안성준]
또한, 이런 일을 당연하게도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회귀 전에는 전무후무한 랭크전 1위, 그리고 헌터스 리그의 업적을 달성했는데. 이런 일이 없었겠는가?
이런 시비가 걸려서 생기는 다인전부터, 이벤트성으로 열리는 상위 랭커와의 다인전까지.
이미 경험이라면 충분했다.
차이라면, 그때는 [만개]를 개방했고, 지금은 하지 않았다는 것뿐.
“덤벼.”
물론 그때 없지만 지금 있는 것들도 있었다.
[만개]를 오래 개방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서 얻은 다른 재능개화 능력들.
“덤벼? 지금 어느 쪽이 후달린지 아직도 모르겠어?”
안성준이 경기가 시작되자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인원이 많아서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걸까.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확실히 그런 면은 있었다. 각성자라 한들, 마나는 한정적이고, 상대할 수 있는 적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압도적 일격으로, 적은 마나를 써 상대를 빠르고 적은 코스트로 죽이던지. 혹은 압도적 마나량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수적 우위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숫자가 많다고 해서, 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쉬리리릭 ㅡ.
샤아아악!
윤한결의 이기어검과, 오정환의 부메랑과 같은 날 무기. 차크람이 날아왔다.
최상위권 랭크전 랭커답게 둘 다 경로는 매서웠지만. 몇 번 방향을 바꾸며 피하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채애앵 ㅡ !
위협적으로 날아다니던 차크람과 이기어검이 서로 부딪힌 것이었다.
“아. 뭐 하는 거야!”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평소에 연계해서 행동하는 것을 기본으로 움직이는 헌터스 리그와 달리, 랭크전에서 강세를 띄는 녀석들은 개인단위의 행동이 기본이었다.
각자의 능력의 궁합은 물론, 서로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 것. 상대를 몰아넣는 합동전술 따위는 머리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거기에, 이기어검과 차크람이 부딪힌 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기어검을 날린 윤한결과 차크람을 날린 오정환을 제외하고, 하진서나 안성준은 근접전투가 특기.
그중에서도 레논과 유사하게 [거대화]능력을 지닌 안성준으로서는 이 싸움에서 치고 들어와 지원해줄 만한 방법이 없을 거다.
인원이 넷이라고 해 봤자, 힘이 네 배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아니, 오히려 서로의 공격이 서로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간단하다.
상대의 힘을 방금처럼 역이용하다가, 빈틈을 노려 쐐기를 박아넣으면 될 뿐이니까.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미친듯이 여러 개의 동그란 차크람이 날아오는 순간, 림보를 하듯 상체를 눕혀 피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 불안정한 상태를 노려오는 하진서의 날카로운 칼끝을 피해내기 위해, 상체를 눕히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대로 덤블링했다.
[완전한 몸]의 신체의 유연함과 [꿰뚫는 눈]의 상대의 공격궤도 읽기.
외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강점 중 하나였다.
덤블링과 동시에 에어비트를 밟아 공중으로 날아오르면, 이제 상황은 간단해진다.
“최근 들어서 상대방이 다 한 끗 있는 녀석들이라, 많이들 착각하는데 말이야.”
헌터들이 총을 쓰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마나를 담기도 어렵고, 어떻게 만들어서 쏜다고 한들 특성상, 그 파괴력이 근접무기나 투척무기에 비해 훨씬 떨어진다는 점.
그래서 마나실드에 쉽게 막힌다는 단점 때문에 안쓰는 거다.
나도 회귀 후 [만개]를 개방하지 않아서 종종 상대의 방어에 막히게 되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공중 입체기동을 통해 상대의 방벽을 피해가면서 쏘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만개 - 재능개화]로 파괴력을 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사전에 마나 프로텍터정도는 설치해두지 않는 이상, 막을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잔챙이들은 원래 다 한 방 컷이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헌터, 각성자. 이런 것들이 생겨나기 전 현대전에서 대인전 최강의 무기는 무엇이었는가.
검? 활? 아니. 그냥 총이다.
진수혁처럼 묶어두고 마나를 쪽쪽 빨아가는 사기적인 능력이나, 일정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을 모조리 베어버리는 강준혁의 마나전개같은 사기적인 것들이 없다면.
나머지는 그냥 샌드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검에서 변한 쌍권총이, 서로의 공격에 엉켜 잠시 엉거주춤 하는 상대를 향해 불을 뿜었다.
‘확실히 최근에 광대 짓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아니면, 나인 척 하며 가면을 쓴 나랑 랭크전을 했던 김도준의 어설픔이 화면 너머로도 전해졌던 걸까.
사실, 이유야 아무래도 좋았다.
얕잡아보인 만큼 되돌려주면 될 뿐이니까.
‘회귀 전이었으면 시비 거는 것도 상상도 못했을 텐데.’
확실히 아직까진 그렇게 절대적으로 보이지 않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오정환과 하진서의 머리를. 안성준과 윤한결의 심장을 쏜다.”
맞추는 곳에 대한 예고로, [만개 - 재능개화]가 발동해 파괴력이 배가 된다.
타타타탕!
제대로 연계되지 않은 공격에, 서로의 동선이 꼬인 것에 대한 댓가는 컸다.
총탄을 막을 수 없으면 피해야 할 텐데. 에어앵커와 에어비트로 기동전을 해도 모자를 판에, 서로의 공격에 엉켜 멈추면 과녁판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털썩.
상대방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새삼 허탈하면서도 시원한 게, 괜히 능력이랑 무기를 봉인하고 랭크전을 하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제대로 했으면 어려웠을 법한 상대는 강준혁이랑 진수혁 정도밖에 없었을텐데…… 그래도 뭐, 아까 생각한 것처럼 어려운 싸움일 수록 얻을 수 있는게 많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일격에 모든 곳을 제대로 탄알을 박아넣었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은 채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여기서 나를 가장 오래 봐 온 사람 중 하나인 윤한결이 아직 살아있었다.
그려러니 했다.
지금껏 내 공격도, 파괴력도, 성장도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대책은 한 두가지 가지고 있을 법 했으니까.
제대로 생각하고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제대로 가슴께에 맞았고, 검으로 탄알을 튕겨낸 것도 아닌데…….’
윤한결이 씨익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