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폭탄 돌리기
이창현이 인터뷰를 하러 나갔다고 해서, PER 팀원들이 대기실에서 아무것도 안 하며 기다리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대기실 한 면에 붙어있는 거대한 모니터로, 이창현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야…… 오늘 경기. 그 질문은 꼭 나오겠지?”
“그 질문?”
“이번 경기의 핵심이라고 하면 마나장비인데. 그 이야기가 안 나오겠어?”
“근데 그거…… 좀 노골적으로 물어보기 좀 그렇지 않은가?”
한지수의 말은 뿌지지지직- 하는 소리가 난 이유를, 과연 캐스터가 자기 입에 담기까지 하며 물어보겠냐는 뜻이었다.
“그니까 노골적으로는 안 물어보고 넌지시 간접적으로 한 번 물어보겠지. 근데 경기 본 사람들은 다 알 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
확실히. 윤한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캐스터에게서 질문이 흘러나왔다.
[캐스터 : 맞습니다! 이번 PER의 특별전술은 시청자들에게 굉장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어떤 전술인지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창현 : 다들 보시다시피, 별 건 아닙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싸울 때, 가스를 살포하고 그 가스로 상대를 제압해서 이기는. 뭐 그런 간단한 전략이죠.]
“간략하게 설명해서 넘어가려는 모양인데…… 이게 보는 사람들이랑 화제성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니까?”
“누가, 어째서, 왜. 그런 음향을 내는 마나장비를 썼는지까지. 그게 다 중요한 마나장비라고. 안 그래 김도준?”
“그건 그래.”
김도준이 팀원들의 따가운 눈총에 슬쩍 웃으며 눈을 피했다.
그런데 솔직히, 즐거워하는 것은 김도준뿐이 아니었다.
평소에 쩔쩔매는 모습조차도 잘 보여주지 않는 이창현. 이 남자. 이 상황에선 어떨까.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똥은 엉뚱한 곳에 튀었다.
[캐스터 : 그 전략은 혹시…… 이창현 선수가?]
[이창현 : 그럴 리가요. 이 모든 아이디어, 그리고 심지어 장비까지도! 저희 팀에서 담당한 한 선수가 있습니다. 이미 유명한 별명도 가지고 있는 친구죠.]
[이창현 : 아실까 모르겠어요. ‘눈뽕 빌런’이라고…… 3부 때부터 이름 좀 날렸던 친구이긴 한데.]
[이창현 : 이번 경기의 핵심 전술의 정체성인 그 선수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으니. 한 번 이 인터뷰 자리에 불러보죠.]
MVP 요청을 받은 선수가, 실은 다른 선수가 공로자라면서. 인터뷰를 떠넘겨 버린 것이었다.
이창현의 이글거리는 눈빛의 뜨거움이, 화면 너머까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야. 야 뭐해. 얼른 가라.”
“내가?”
“그럼 김도준 너 말고 누가 있냐?”
물론 표적이 바뀌어도 팀원들은 사실 상관이 없는지. 아니, 오히려 더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김도준의 몸을 문 바깥으로 밀었다.
“인터뷰 잘 하고 와.”
***
……그렇게 끌려나오게 된 것이었다.
‘아…… 그래도 눈뽕빌런은 3부에서 있던 별명이라 이제 잊혀졌을 거고. 1부에서 이런 식으로 이미지가 굳어버리면 안 되는데…….’
어차피 창현이는 자기가 했다고 하더라도 워낙 멋진 모습이 많았기에, 그런 이미지를 계속 가지고 있지도 않았을 테고.
머리를 빠르게 굴려야 했다.
하지만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캐스터 : 안녕하세요 김도준 선수! 어떻게. 인터뷰 괜찮으실까요?]
생각하려는 찰나의 시간도 주지 않고, 김도준이 나온 걸 보자마자 캐스터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캐스터 : 많은 시청자분들이 이 마나장비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 소리도 약간 특별하던데, 왜 그런 소리를 내게 된 것인지. 어떤 마나장비인지 그런 것들을 조금 설명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올 게 왔구나.’
이창현이 쓰기로 하면서 이창현에게 공이 넘어갈 줄 알았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냥 팀 전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고 숨겨야 하나? 아니, 어차피 경기는 이미 다 봤고, 이대로 오히려 해명을 안 하고 그대로 끝나면 나만 똥꾸릉내 뿜는 마나장비를 만드는 놈으로…….’
그래. 저 마나장비는 폭탄이었다. 선수의 이미지를 작살내는 폭탄.
이대로 가지고 있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이미 넘어온 공, 이창현한테 다시 넘길 수도……
‘아…….’
생각해보니 이 마나장비를 만들 때, 완전히 혼자 만든 건 아니지 않은가?
‘미안해요 오스틴…….’
거짓말을 치는 것도 아니고, 오스틴은 명성도 높으니 큰 해는 없으리라. 좀 특이한 사람이겠구나 하겠지.
그리고 제자의 위기를 스승의 이름으로 좀 넘길 수 있었다고 하면, 스승도 좋아하지 않겠는가?
[김도준 : 사실…… 이 마나장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제가 제작한 건 아닙니다.]
[캐스터 : 그럼…….]
[김도준 : 제가 일전에 미국 헌터스 리그의 팀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오스틴에게 조금 도움을…….
그 순간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무대 앞 술렁거림이 이곳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긴, 헌터스 리그에 관심이 있다면 오스틴은 모르기 힘든 선수였으니까.
[와 역시 외국헌터들은 고정관념이라는 게 없네. 근데 이번에 뿌지지직 소리 난 건 자유로워도 너무 자유롭지 않냐?]
ㄴ 헌터스 리그에 대한 내 로망 돌려줘~
ㄴ 검 번쩍이면서 상대 눈 지져서 이겼던 눈뽕빌런 볼 땐 있었고? ㅋㅋㅋㅋ
ㄴ 근데 진짜 오스틴이 저 마나장비 다 만든 거 맞냐? 오스틴 장비 중엔 저런 거 없었던 것 같은데.
ㄴ 확실히 장비 자체가 스펙이 굉장히 좋아 보이긴 했어.
사실 뿌지지직 소리가 나는 건, 내가 그냥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 상대 팀 꼴받으라고 넣은 건데……오스틴. 다시 한번 미안합니다.
이창현의 반응 또한 꽤나 재미있었다.
이걸 또 이렇게 홀라당 오스틴에게 공을 던져버린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는지.
어이없어 기가 막히면서도 웃기다는 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김도준 : 사실 특별한 마나장비는 아닙니다. 활동성이 높은 불안정 마나를 잔뜩 압축해서 담아놓고, 그걸 좁은 곳에 넣어놓은 후. 풀어놓는 장비거든요. 오히려 더 신경 쓴 건, 이걸 걸러낼 수 있는 방독면 쪽이겠네요. 일반 방독면은 불안정 마나를 못 걸러내니까요.]
또 이럴 때는 나름 전문적인 지식 좀 풀어주고.
분위기 좀 환기해야 한다.
[캐스터 : 오……그렇군요. 오히려 그 마나장비보다는, 방독면이…… 그런 원리로 이루어졌었군요. 흥미로운 이야기. 감사드립니다.]
후…… 여기서 이제 내 역할은 끝인가.
하고 물러나려던 시점. 의외로 캐스터가 이대론 아쉬운지 더 말을 건네왔다.
[캐스터 : 아이디어도, 팀의 합도. 다 너무 대단한 경기였습니다. 전술을 완성시키는 팀 간 신뢰와 실행력까지도 너무 뛰어났네요.]
[캐스터 : 그런데…… 김도준 선수. 이창현 선수는 어떤가요. 팀원으로서, 그리고 감독이자 구단주로서. 이렇게 사실 완전히 다른 여러 개의 업무를 하면서 배우고 있는데, 사실 비슷한 나이잖아요? 팀원들 막 괴롭히고 그러진 않나요?]
캐스터가 짓궂게 웃으며 물어봤다.
‘일단 눈치를 좀 보고…….’
오늘 경기에서 잘못한 것도 있으니. 이창현 얼굴을 슥 보자. 내 눈을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뜻이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뜻일까?
[김도준 : 그럴 리가요. 창현이는 좋은 말만 해줘요.]
이창현이 그 말에 나름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거면 되겠지.’
관객석에서도 오오~ 하면서 띄워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게.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캐스터 : 그럼 생각나는 좋은 말 있나요?]
해줬던 좋은 말들?
뭐가 있었지. 이창현이 해줬던 수많은 말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뭐, 아무거나 답하면 되겠지.
[김도준 : 좋은 말 할 때 연습해라, 좋은 말 할 때 하지 마라……
앗. 생각해보니 이건……
[이창현 : 야!]
건너편에 앉은 이창현의 얼굴이 보였다.
웃고 있었다. 입꼬리만.
동시에 채팅창도 난리였다.
[와 ㅋㅋ 이창현 찐텐으로 놀란 거 처음 봄 ㅋㅋㅋ 경기할 때도 몰려도 보통 무표정이었는데.]
ㄴ 저 다급한 외침 진짜 너무 웃기네 ㅋㅋㅋㅋ
ㄴ 야!(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
ㄴ 이창현이 만약에 소리쳐서 저 말을 끊지 않았다면, 이어서 무슨 말이 나왔을까.
ㄴ 근데 내가 저 자리에서 김도준한테 저 소리 들었어도 이창현처럼 소리쳤을듯 ㅋㅋㅋㅋㅋ
***
수박도 두 쪽 내버릴 각성자의 딱밤이 김도준의 머리에 작렬했다.
“아니 왜~ 진짜 했던 말 맞잖아~”
“좋은 말 할 때 입 다물어라…….”
“봐봐. 또 그러네 또~”
“야. 야. 김도준. 너 그러다 또 맞는다.”
윤한결이 김도준을 비웃으며 만류했다.
“그 뭐냐. 창현아. 그래도 아직 차 안이니까…… 이따 홈에 가서 해.”
후…… 그래. 아직 밖이라 참는다.
어쩐지 첫 말이 정상이더라.
[김도준 : 그럴 리가요. 창현이는 좋은 말만 해줘요.]
거기서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하지만 저놈은 꼭 사고를 친다.
마나장비 잘 만들어놓고도, ‘그’ 소리를 넣어버리질 않나.
그래도 좋은 점은 팀의 이미지 하나는 1부 헌터스 리그의 팬들에게 제대로 꽂아넣었다는 느낌은 들었다.
눈뽕 귀갱에 이어 똥냄새 뿌리고 다니는 마나장비까지 개발해버린 마나장비 기행의 달인이 있는 팀…… 그리고 ……아니 그래도 나는 승강전 때, 1대 7 그 기적적이고 아크로바틱한 사격의 주인공으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까?
뭐, 사실 경기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번 경기로 맞붙어본 SAA……만만치 않았어.’
아니, SAA가 아니라 진수혁이라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이번에 김도준이 준비해준 그 마나장비가 아니면 1대1에서는 속절없이 밀릴 수밖에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 나는 것보다 마나도 훨씬 빨리 빨려나가고, 운신의 폭도 많이 좁아.’
에어앵커나 에어비트로 과감하게 날아다니거나, 기동하기는 어려울 성 싶었다.
에어대시 정도로 빠르게 끊어서 치는것이 아니라면.
이민솔은 여차저차 해서, 결국 마나장비로 랭크전을 이겼지만. 과연 진수혁도 그렇게 이길 수 있을까? 이번엔 정체를 숨기기 위해 김도준의 그 가스 마나장비도 쓰지 못할 텐데?
앞으로 랭크전은 확실히 산 넘어 산. 계속 쉽지 않은 싸움이 지속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전에 청산하고 넘어갈 게 하나 더 있긴 했었지만.’
“야, 도준아.”
내가 부르는 소리에 김도준이 움찔거렸다. 이번엔 아까 그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 아닌데. 딱밤을 너무 많이 때렸나?
“다른 게 아니라 휴대폰 보라고.”
“휴대폰?”
김도준이 의아하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그래, 휴대폰. 우린 아직 해결해야 할 거 하나 더 있잖냐.’
[이창현 : 오늘 경기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라…… 있잖아. 우리 랭크전.]
[김도준 : 아…….]
김도준은 내 흉내를 내며, 가면을 쓴 의문의 랭크전 랭커에게 1대1 싸움이 걸렸었다.
[이창현 : 그거 슬슬 끝내야지.]
이후로는 계속 이제 랭크전의 최상위 랭커를 상대해야 할 텐데. 신경 쓸 겨를도. 시간도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