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괘씸한 녀석
아직 이창현이 밀리고, 마나장비를 꺼내지 않았을 때. 잠자코 이창현이 쓰러진 걸 보고 있었을 때.
PER팀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김도준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경기에서 김도준과 이창현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그래서 지금 잠자코 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이제 앞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니 미국에서 그런 마나장비를 개발했단 말이야?”
“개발은 무슨! 거의 나 혼자 한 거나 다름없는데. 약간 폭발력이나…… 뭐 그런 것들만 조금 도움을 받은 거지…… 메커니즘이나. 기술이나 그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창현이 절체절명으로 몰렸다고 생각한 순간. 진수혁이 가장 가까워진 순간. 이창현의 가스살포가 시작되었다.
이창현의 작전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와 함께.
“GAS,GAS,GAS”
그리고 김도준은 미리 챙겨온 방독면 몇 개를 주섬주섬 팀원에게 나눠줬다.
“이제 슬슬 우리도 움직여야겠다.”
“야! 그런데 왜 내 건 없어?”
방독면을 못 받은 이연주와 한지수, 윤한결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그래봤자 없는 건 안 나온다.
“부피도 있고…… 원거리에서 지원할 수 있잖아?”
“이성진의 [빙결 지대]도 해제되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상대팀도 창현이를 방해하러 올 테니까 바로 가자.”
그렇게 다시금 김도준이 중심을 잡고 메인오더로 면을 세우려던 순간.
이연주가 그래도 이건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는지. 맥을 자르고 입을 열었다.
“근데 저 가스를 내뿜는 마나장비…… 소리도 네가 조정한 거야?”
차마 들어주기 힘든 소리였으니까.
그야말로 소리만으로도 꺼려지는 마나장비였다.
“으……응? 그렇지?”
“대체 무슨 이점이 있다고 그런 짓을…….”
“그야…… 재밌으니까?”
순간이라도 김도준의 마나장비를 보고 놀랍다고 생각했던 팀원들의 평가는 다시 곤두박질쳤다.
‘쉽지 않네…….’
***
한편, 분석데스크와 시청자 반응은 약간 엇갈리고 있었다.
그야 헌터스 리그는 어느 리그의 어느 경기를 보아도 가스를 이용해 상대를 공격한 경우는 없었다.
[해설자 : 전쟁이라면 어떨까요, 생화학 무기는 확실히 많은 사람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가 헌터라면, 가스는 별로인 무기거든요.]
[캐스터 : 그 이유가 뭘까요?]
[해설자 : 우선은 웬만큼 치명적이어도, 마나를 다룰 줄 알기에, 오래 노출시키지 못한다면, 걸러낼 수 있는 힘이 있어요 헌터는.
그런데 헌터는 가스에 노출되면 그걸 느끼고 벗어날 수 있는 힘까지 있죠.]
[캐스터 : 에어앵커나 에어비트 같은 마나장비라면 이동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이긴 합니다. 그럼 이번 PER의 회심의 전략이 막히리라는 것인가요?]
[해설자 : 하지만 이번 상황은 다릅니다.]
해설자가 이번의 경우 무엇이 다른지 하나하나 근거를 들기 시작했다.
서로 멀리 벗어날 수 없는 진수혁의 능력. [원형투기장]이나, 호흡을 깊고 자주 쉴 수밖에 없는 맵의 특성까지……
실제로 진수혁은 궁지에 몰렸다는 걸 입증하듯이, 팀원들을 모조리 증원하여 이창현을 추적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네가 나가리가 되더라도, 남은 팀원 6명은 살려서 7대 6이라도 걸어봤어야지.’
저렇게 되면 전멸이다.
강준혁은 굳은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와……쟤 네 진짜 칼을 갈고 나왔는데요? 저거 완전 1회성 전술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다음에 우리 경기할 때도 저렇게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네.”
LTD의 대기실에서 경직된 분위기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야 지금껏, 우회해서 저 진수혁의 1대1 전략을 벗어난 팀들은 있어도.
결국 에이스대 에이스로 붙어서 저런 식으로 정면돌파한 경우는 없었으니까.
“저번 우리랑 연습경기할 때도 턱밑까지 따라와서 준혁이 쓰러뜨렸던 팀이야. 긴장하고, PER전은 신경 써 둬.”
“네.”
물론 경기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전혀 다른 온도감으로 경기를 느끼고 있었지만.
[아니 ㅋㅋㅋㅋ SAA팀원들 다 코잡고 거품물고 쓰러지는거 왜캐 웃기냐]
ㄴ 확실히 헌터스리그에서 볼 만한 광경은 아닌듯ㅋㅋㅋㅋㅋ
ㄴ 근데 난 왜 저 뿌직거리는 소리만 들어도 저 사람들의 마음이 공감이 가는 거지.
ㄴ PER인가 저 팀 에이스도 진짜 골때리네.
ㄴ SAA는 저런 팀한테 발리냐. 에휴.
아마 이 경기에서 일어난 높은 전술적 완성도와 연습. 연구들을 직접 닿으면 볼 수 있는 거리에서 보지 않았기에.
선수가 본 것과 시청자가 본 것의 괴리가 생기는 경기였다.
***
진수혁과 나의 싸움에 이번 경기의 승패가 갈린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탓인지. 상대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 떨어져나간 몇 명을 제외해도 지금 당장 따라붙는 녀석이 서너 명.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디버프가 걸려있어 힘들겠지만.
슈웅 ㅡ.
지금은 [에어대시]로 공격만 요리조리 피해도. 상대는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방독면 너머로 상대 팀원들의 얼굴이 보였다.
실시간으로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는 건 예삿일이고.
눈물 콧물을 질질 짜다 못해, 아예 엎어져버린 녀석들도. 엎어져버린 녀석을 가스 바깥으로 끌고가는 녀석도 있었다.
애처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이것도 결국은 눈뽕, 귀갱에 이은 시리즈 아닐까.
김도준의 순수한 악의가 느껴졌다.
‘아무리 헌터라도, 이렇게 되면 게임 아웃이지.‘
참고로 김도준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살상력이 있는 가스는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 대신 그에 준할 정도로 고약하다나.
보아하니 전투력이 상실되는 건 맞아 보였다.
게다가 한번 발동시켰을 때 퍼져나가는 이 연기의 양은 그야말로 전율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진수혁의 [원형 투기장]을 거의 메워버렸으므로.
그리고 경기장을 그렇게 누비던 것도 잠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따라오는 사람도 하나도 없었다.
‘이번 경기는 이렇게 됐나.’
어찌되었든 승리를 지켜냈고, 팀원들도 다들 제 몫을 잘 해줬으니.
뿌듯한 마음이 올라왔다.
뿌지지지지지직 ㅡ.
이 멈출 것 같지 않은 도저히 계속 들어줄 수 없는 똥 싸는 소리를 빼면.
‘똥 싸는 소리 한 번 내고 상대를 쓰러뜨리면 값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네.’
김도준 이 새끼가 나를 지랑 똑같은 놈으로 만들어버려?
이윽고 마지막까지 경기장 한 쪽에서 이어지던 기척까지 모두 사라지고, 경기의 끝을 알리는 부저 소리가 들렸다.
***
최근 들어 헌터스리그 경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오히려 랭크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던 도중이었기에.
꽤나 재미있는 경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도준이한테 갑작스럽게 이야기 들어서 했을 텐데. 제 역할 잘 해줬다.”
“그런 가스를 살포하는 마나장비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솔직히 오늘 질 줄 알았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대체로 PER팀원 대기실의 분위기는 좋았다.
쉽지 않은 혈전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순탄하게 지나가서 좋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기분이 좋다 못해, 방방 날아가려는 녀석도 한 명 있었고.
“창현아. 고생했다. 오늘 네가 에이스로 경기를 휘어잡아서 MVP는 네가 받겠지만.”
김도준이 평소에 안 하던 덕담을 하면서 내 어깨를 토닥였다.
아무래도 이번 인터뷰에서 내가 고생 꽤나 할 것을 상상해보니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물론 이대로만 당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물어보긴 물어봐야겠다.
“너, 그 마나장비를 사용할 때 나오는 그 소리. 그거 일부러 그런 거지?”
경기장의 코멘트란을 더럽혀버린 당사자에게 직접 들어야겠다.
“그게…… 원래는 내가 사용할 예정이었어서, 그렇게 둔 건데. 그게 검토를 하면 할수록 사용 조건이 제한적이더라고.
기동력도 좋아야 하고. 상황도 맞아야 하고. 그래서 썩혀두다가 너 준 건데, 그 소리를 까먹고 안 고쳤네.”
까먹었다라……
이 중요한 경기, 온갖 마나장비를 검토하는데. 직접 사용하려는 마나장비의 사양을 검토를 안 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따지려던 찰나.
“오늘 MVP는 이창현 선수입니다!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처음으로 보는 사람 앞에 부끄러울 경기를 내놓고 나가게 생겼다.
***
관객석도, 분석데스크도. 그냥 경기장 전체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훨씬 가벼운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경기 자체가 희극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겠지.
3부나 2부도 아니고…… 1부가.
아니나 다를까, 캐스터도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응대했다.
평소의 환하게 맞아주는 웃음이랑은 뭔가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별 수 있겠는가.
[캐스터 : 안녕하세요 이창현 선수! 같이 무패로 선두를 달리던 SAA를 꺾었습니다. 소감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처음은 평범한 질문. 가볍게 서두를 여는 그런 질문이었기에 별 생각은 안 들었다.
[이창현 : 아. 어려운 팀을 꺾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이제 순항하리라고 생각하구요. 특별 전술을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고전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어차피 물어볼 부분이기에, ‘특별 전술’을 썼다고 강조하며. 다음 질문으로 물어보라고 대놓고 던졌다.
‘뭐 어차피 물어볼 질문이야 뻔하겠지.’
[캐스터 : 맞습니다! 이번 PER의 특별전술은 시청자들에게 굉장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어떤 전술인지 조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창현 : 다들 보시다시피, 별 건 아닙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싸울 때, 가스를 살포하고 그 가스로 상대를 제압해서 이기는. 뭐 그런 간단한 전략이죠.]
[캐스터 : 그 전략은 혹시…… 이창현 선수가?]
여기다. 여기가 갈림길이었다.
나는 그 뿌지직 ㅡ. 하는 소리와도. 동시에 그런 소리를 내뿜으며, 가스로 사람을 질식시킨다는 아이디어와도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저격으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상대를 쿨하게 맞추고, 쌍권총으로 날아다니면서 영화 같은 액션을 하는 선수가 내 정체성이란 말이다.
[이창현 : 그럴 리가요. 이 모든 아이디어, 그리고 심지어 장비까지도! 저희 팀에서 담당한 한 선수가 있습니다. 이미 유명한 별명도 가지고 있는 친구죠.]
[캐스터 : 오…… 그런 선수가 있었나요? 마나장비로 유명한 선수는 PER에 딱히 별로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하하…… 제가 공부가 부족했군요.]
아, 지금껏 1부 경기에 김도준이 활약한 경기가 별로 없었던가.
뭐. 그래도 이름을 모르지 인지도가 없는 건 아니리라.
왜냐면, 그 녀석의 경기 동영상. 3부 때부터 조회수가 어마어마했으니까.
[이창현 : 아실까 모르겠어요. ‘눈뽕 빌런’이라고…… 3부 때부터 이름 좀 날렸던 친구이긴 한데.]
거기까지 말하자 캐스터도 기억나는 게 있는 듯, 갑자기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
[캐스터 : 아…… 아! 그 선수가 PER에…….]
생긴 오해는 되도록 바로바로 지우는 게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창현 : 이번 경기의 핵심 전술의 정체성인 그 선수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으니. 한 번 이 인터뷰 자리에 불러보죠.]
‘김도준…… 네가 싼 똥은 네가 뒤집어쓰도록 해라.’
눈뽕과 귀갱까지는 괜찮아 보이더니. 막상 좀 자기가 하기엔 꺼려 보이는 가스분출은 나한테 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