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쌌다
1부 리그에 올라오고 나서 보통 가장 많은 팀들이 겪게 되는 고난. 그건 바로 상대팀에서의 분석이었다.
2부, 3부와는 달리 인력이 충분한 1부이기에. 처음 겪어보는 분석. 그로 인해 무기가 꽁꽁 묶여버리는 경우, 올라온 팀들은 쉽사리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사실 객관적으로 그렇다고 해서 1부 리그에 승급한 팀이 불리한 건 절대 아니었다.
‘분석은 상대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진수혁은 이미 [헌터스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때부터 [꿰뚫는 눈]으로 봐왔던 상대였다.
회귀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기록은 계속 갱신되고, 현재는 어떤지도 계속 분석해왔던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이형의 후각 (S)] : 본래 후각으로 느끼지 못했을 것들까지 후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에는 위기회피능력, 혹은 존재감을 느끼는 것 같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감각을 후각으로 느끼게 될 수 있음은 물론, 기존의 인간의 후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의 후각을 가지게 됩니다.
원형 투기장에 가두는, 흔히 알려진 능력뿐 아니라. 나는 진짜로 진수혁의 숨겨진 무기까지도 알고있었다.
거기에 지금 현재 우리가 있는 이 전장.
‘이번엔 운도 좋았어.’
맵 [공허의 지평선]이 가진 특징. 압력이 강하다. 이건 마치 공기중에 있음에도 물 속에 있는 것처럼 숨을 쉬기 쉽지 않고, 숨이 더 빠르게 찬다는 특징이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까지. 완벽에 심혈을 기울였다.
진수혁이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까지 숨죽이고, 또 기다려서.
“뭐야, 마나 프로텍터를 저런 식으로 쓴다고? 그걸 무거워서 뭘 어떻게. 별종이긴 별종이네. 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비도를 막아낸 마나 프로텍터를 벗었다.
동시에, 김도준에게 받은 마나장비를 매만지며. 얼굴에 방독면을 착용했다.
“……너!!!”
“빠져나갈 구석은 없어.”
진수혁은 그제야 내가 무슨 황당한 무기를 준비한지 깨달아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준비는 이미 끝났다.
변수가 있다면, 김도준이 준비한 마나장비가 생각보다 효과가 별게 없었다던지…… 그런 것이겠지만.
‘적어도 이것에 한해서는 그럴 걱정은 없겠지.’
마나장비 겉면에 써져있는 오스틴의 싸인.
아무래도, 미국에 있을 때 함께 이야기해서 만든 마나장비였던 모양이었다.
나는 팀원들과 소통하는 이어폰을 향해 이번 작전 시작을 알리는 문구를 내뱉었다.
“GAS,GAS,GAS”
물론 내 건너편에 있는 방독면도 없는 머저리들을 향해 한 말은 아니었긴 한데, 아마 약은 좀 오르지 않을까?
동시에 김도준에게서 받은 마나장비가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뿌지지지직 ㅡ.
역시 사용하기 전, 검토를 한 번 할 걸 그랬나. 망할 김도준 녀석 취향한 번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뭐…… 나쁘지 않네. 상대 입장에선 죽을 만큼 지독할 테니까.’
똥싸는 소리 한 번 내서 상대를 쓰러뜨리면, 값싼 거겠지.
***
보통 헌터스 리그에서 인기 있는 팀은 어느 곳일까.
뛰어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팀? 아니면 기상천외한 전략을 많이 짜는 팀? 물 새는 곳 하나 없이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팀?
아니, 사실 그런 것들은 하나의 특징일 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기를 극적이고 재미있게 보여줄 수 있는 팀이냐는 것이리라.
그리고 다른 것은 몰라도. 오늘 PER의 경기는 완전히 그걸 충족시켜주고 있었다.
[캐스터 : 아!! 이창현 선수!! 다운! 다운입니다! 몸을 움직이고는 있는데, 치명적인지 일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태생이 2부라 어쩔 수 없긴 해 ㅋㅋ]
ㄴ 그런데 솔직히 너무 맥없게 지는 건 아쉽네.
ㄴ 지금까지 잘 버텼다고 봐야지.
ㄴ 아니 근데 SAA 쟤네는 맨날 같은 전술 쓰는데 상대하는 팀들 왜 다 똑같이 당함? 진짜 수준낮네 한국 헌터스리그.
ㄴ 한국 헌터스리그 문제가 아니라 저 전술이 그냥 가불기임.
[쩝. 근데 저거 진짜 금지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저러면 누가 살아감?]
ㄴ 꼬우면 강준혁처럼 [마나전개]해서 힘 빨리기도 전에 썰어버리던가 ㅋㅋ
ㄴ 강준혁도 진수혁이랑 정면 싸움은 슬금슬금 피하지 않음?
ㄴ 그래도 두 명이서 나름 한 명 조지는 거니, 팀원들이 잘 해줘야죠. 근데 PER팀원 나머지는 구경만 하네. 개노답.
ㄴ 둘다 지금껏 전승팀이라 기대했는데……소문난 잔치게 먹을 거 없네.
첫째는 이젠 끝났다고 생각할 만한 수준의 위기가 있었고.
[캐스터 : 아앗! 그런데 이창현 선수! 저건 또 뭔가요! 지금껏 온몸에 마나프로텍터로 만든 방벽을 껴입고 움직였던 건가요? 저게 무게가 얼만데……
[저 무거운 걸 몸에 달고 다녔네. 비도 맞고 쓰러진 줄 알았는데 덥썩 일어나니까 심장 멎을뻔ㅋㅋ]
ㄴ ㅋㅋ 근데 왜 굳이 저런짓을 한 거지. 좀 이해 안 되네
ㄴ 상대 원거리 무기라도 몇 개 빼겠다는 거지. 근데 결국 상황은 똑같음ㅋ
ㄴ 그래도 끈기는 인정한다.
ㄴ 시간 오래 끌어서 뭔가 하려나 본데?
둘째는 끝났다고, 쓰러졌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사소한 반전이 있었으며.
[캐스터 : 어…… 어어? 이창현 선수. 갑자기 방독면을 쓰는데요? 저거 혹시……
[해설가 : 아아! 불명의 마나장비. 드디어 등장하나요! 하지만 여전히 불리한 판국이거든요! 이 형세를 뒤엎을 수 있을까요?]
[이미 다구리 설계 끝난 판인데 뭘 뒤엎어 ㅋㅋ]
ㄴ 오스틴은 커녕 오스틴 할애비가 와도 못뒤집음.
ㄴ 인정하는 부분.
ㄴ 그나저나 저 마나장비 뭐냐? 방독면 쓰는 거 보면 가스라도 살포하나?
ㄴ 가스살포하는 마나장비는 또 처음 보네.ㅋㅋ
ㄴ 상식적으로 헌터는 그냥 에어앵커 타고 날아가버리면 가스 무용지물인데 왜씀?ㅋ
셋째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판을 뒤엎어버렸다.
뿌지지지직 ㅡ.
[소리 뭐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마나장비 사용하는데 난 소리같긴 한데……
ㄴ 아니 ㅋㅋ 저거 무조건 일부러 그런거임. 다른 마나장비가 저런 요란한 소리 나는거 본 적 있음?
ㄴ 저 팀은 진짜 쉽지 않네……눈뽕에 귀갱에다가 이제는……
[무친 효과음…… 이거 합성한 거 아니지? 진짜 싼 거 아니냐?]
ㄴ 한국 헌터스리그 1부 XXX선수……경기하다가 긴장해 싸버려……
ㄴ 뭘 씨 ㅋㅋ 선수가 애냐? 괄약근에 장애있냐고~
ㄴ 아니 저거 마나장비에서 나온소리같은데……진짜 좀 악취미네.
ㄴ 이창현 저런 이미지 아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장은 의미 없는 일. 그러면서도 어이없는 발악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겼지만.
실상 소리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중요한 건 그게 어떤 효과를 낼 수 있고, 이 경기를 어떻게 뒤엎을 수 있냐는 것.
똑같이 선수로 뛰는 강준혁의 눈에는 보였다.
그게 SAA에게 통렬한 한 수가 되리라는 것을.
‘와…… 저거 미친 새끼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미친놈이었다
***
가스가 이창현을 중심으로 미친듯이 뿜어져나왔다.
한 순간, 거리를 벌릴 수 밖에 없는 정도의 농도였다.
그렇기에 곧바로 거리를 벌렸지만.
“읏…….”
콜록콜록콜록.
켁……그어어억.
순간적으로 아주 짧게 들이마셨음에도 끔찍한 냄새와 함께 구역질이 올라왔다.
몇 초 지속되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라는 것임은 틀림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격.
지금까지의 데이터에도 없었으며, 지금까지 마나장비의 사례로도. 국제리그를 포함한 헌터의 능력들 중에서도. 가스를 뿜어내 공격하는 전략은 전례가 없었다.
‘그야 어느 헌터든 각성자이니, 가스에 어느정도 면역이 있고, 그걸 알아챌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히 그 위험지역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진수혁과 이창현은 [원형 투기장]에 쌍방으로 갇혀있고, 서로 이 구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뿐만인가? 숨을 오래 참기도 어려운 압력이 가해지는 맵.
거기에 진수혁이 가진 냄새를 일반인보다 훨씬 예민하게 맡는 능력까지.
모든 걸 꿰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착 들어맞았다. 압도적인 위기감이 엄습했다.
저 가스가 얼마나 위독한지는 전혀 몰랐지만,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성진! 그리고 뒤에서 바로 지원! 저 가스를 계속 풀어놓도록 하면 안 돼!”
막아야 한다.
농도도 농도이지만, 저것이 뿜어내는 가스의 양도 말이 안 되었다.
어떻게 저리 작은 통에서 끝도 없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다간 원형투기장 전체를 메워버릴 수도있다……’
그 능력은 강력한 만큼, 한 명이 끝장날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는 제약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진수혁은 자기가 만든 함정에 자기가 빠져 죽는 꼴이 되어버리겠지.
‘그렇게 되기 전에 어서…… 어서 붙잡아야 된다!’
“잡아!!!”
한 순간 그렇게 냄새를 맡고 이창현에게서 물러났던 것도 찰나.
마치 헌터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처럼, 미친듯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저 마나장비를 넣느라 이창현은 에어비트와 에어앵커를 둘다 챙기진 못한 모양이었지만.
슈웅 ㅡ!
대신 에어대시를 가지고 있었다.
“이이익…….”
이창현의 등 뒤에 맨 마나장비에서 가스가 계속 뿜어져나왔고.
녀석은 에어비트나 에어앵커가 없어 멀리 달아나지는 못하지만, 에어대시로 방향을 휙휙 바꿔바며 공격을 피해갔다.
‘윽…… 방향을 한 곳으로만 도망가면 차라리 멀찍이 돌아가서 가스가 퍼지지 않은 곳에서 녀석을 노릴 수 있을 텐데…… 자꾸 방향을 바꾸니…….’
결국 따라잡을 수도 없는 소독차를 하얀 소독연기를 맞아가며 따라가고 있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를 안 맞아가며 따라갈 수가 없잖아!’
아무리 도망가면서 가스를 살포하는 거라 아까 전에 비해 훨씬 농도가 얕았어도, 점점 가스가 누적되고 있었다.
켈록켈록켈록
컥……크억……
“케…… 으. 이성……진!!!”
팀원들이라도 동원해야 했다.
나보다는 코가 둔감하니, 그나마 더 잘 따라잡을 수 있겠지.
거기에 여러 명이서 한 명을 몰아세운다면 결국은 잡히는 게 당연했다.
그렇게 생각한 상황에.
“이야…… 거진 한 팀이 가스살포하는 한 사람을 다 같이 쫓아가고 있네. 저런 거 보면 막 동심이 뭉글뭉글 솟아나고 그래. 어릴 때 소독차 따라갔던 거도 생각나고 말이야. 안 그래?”
“이성태…….”
이성진이 빙결지대를 거둬들였던 까닭일까. PER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놓쳤다는 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성태는 이미 방독면을 쓴 채로, 창을 내밀고 있었으니까.
그 뿐만일까.
“너희들…….”
붙잡아줄 수 있으리라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SAA의 팀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만유인력(A)]을 가진 조진택은 원인 모를 검은 것들이 나와 속박하여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도록 방해받고 있었고.
냉기를 한 방향으로 쏘아낸 다음 일격을 쏘아내는 자신만의 콤보를 장전하던 이성진은, 마치 첨단 드론처럼 날아와 집중포화를 날리는 이기어검과 싸워야만 했다.
……점차 앞도 안 보일 정도로 가릴 정도로 차고 있는, 하얀 가스가 가득한 원형 투기장 안에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