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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19화 (219/270)

219화 설계 완료

"커버해야 돼!!"

"안 돼! 가지 마."

진수혁과 이성진의 콤비로 이루어진 SAA의 날카로운 공격으로 PER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팀의 중심이자 메인 오더를 맡고 있는 이창현이 물린 데다가, 거기에 이성진이 뻗어나가는 얼음을 덮어버려 PER은 전체적으로 뒤쪽으로 뺄 수 밖에 없었으니까.

"이대로 뒀다가는 창현이가……!"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서브오더 역할을 맡고 있는 류재준이 냉정하게 답했다.

지금 이창현이 상대방에게 물려 빠르게 오더를 내리지 못할 정도로 몰려 있는 상황.

그다음으로 팀을 지휘하는 건 보통 류재준이었으니까.

"어제도 이야기했었잖아. 진수혁과 이성진의 한 명을 노리고 들어오는 콤비 공세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어제 거기서 답이 안 나왔으면, 결국 그 전술은 우리 팀으로선 어쩔 수 없다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이걸 이대로 두고 보자고?"

"……창현이가 최대한 버티며 버는 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도록 해야겠지."

PER팀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SAA와의 경기가 있기 한참 전부터, 계속해서 시뮬레이션을 여러가지 방향으로 돌려 보았었는데, 결국은 이창현도 답을 찾지 못했었으니까.

물론, 이창현이 상대방에게 덜미를 잡혔을 때, 6명으로 무언가 저항을 해야 했기에 준비가 되어있긴 했지만…….

'당연하게도 그 경우 승산이 너무 적어…….’

“일단은 그래도 창현이가 최대한 시간을 끌 수 있도록, 최소한의 어시스트는 이어가자. 이연주, 윤한결!”

냉정하고 빠르게 나온 류재준의 판단에 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표정은 어두웠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그걸 대처한다 하더라도 상처는 크게 남으리라.

그렇게 그나마 원거리에서 지원할 수 있는 윤한결의 이기어검과 이연주의 [속박]이 작렬하려던 찰나.

"의미 없이 창현이를 엄호하려고 쓰는 [이기어검]이나 [속박]은 넣어둬. 곧 공격의 기회가 올 테니까."

작은 미소를 머금으며, 혼자만 위풍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도준이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 뭔 헛소리야?"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서 아무런 근거도 없이 오더에 이의를 제기했기에 어이없다는 대답이 들려왔지만.

"저기 있는 진수혁 선수의 능력이 강력하긴 하지만, 이미 다 알려진 능력인데. 창현이가 준비를 안 해왔을 리가 없잖아?"

"그렇지만 어젯밤에 회의를 끝낼 때까지만 해도……."

"그다음에 뭔갈 발견했다면……?"

"지금 오더는 일분일초가 중요하다. 의미 없는 말로 말다툼하고 있을 여유는 없어. 김도준 너…… 뭔가 알고 있는 거냐?"

김도준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휘파람을 불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

'사냥이 시작되었다.'

강준혁은 지금 경기를 보며 그리 생각했다. 진수혁이 1대1에 특화된 그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걸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그 능력으로 상대에게 족쇄를 채워버린 이후, 이성진이 엄호할 팀원들까지 물려버린다면…….

그래. 그 후에는 일방적인 사냥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캐스터] : 아아……! 이성진 선수의 얼음 능력 때문에, 엄호해 줄 팀원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진수혁 선수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원형 투기장에 연결된 빛의 실들이 이창현 선수를 계속해서 괴롭힙니다!

진수혁의 능력이 1대1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각성자들의 능력 중에서도, 뭐 이런 게 있어? 싶을 정도로 특별했으니까.

우선은 능력으로 소환해 내는 원형 투기장으로의 초대를 '피할 수 없다는 점'.

거기에다가 그 원형 투기장에 끌려 들어간 적은, 지속적으로 그 투명한 원형 투기장에서 뻗어져 나오는 정체불명의 투명한 실들에 발목이 잡혀 이동을 제한당하며, 마나를 빼앗긴다는 점.

그 투기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리스크는 진수혁도 감수해야 하지만, 나머지는 상대방만의 리스크였다.

그야말로 한정된 공간에서 1대1의 ‘압도적 유리함’을 제공하는 능력.

‘지금은 어떻게든 묘기에 가까운 수준으로 회피해서 움직이고 있지만, 곧 힘이 빠질 테지.’

에어앵커나 에어비트 따위도 사용은 가능하겠지만, 경기장에서 잡아당기는 힘으로 어차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무용(無用)

그렇다고 아마 다른 마나장비를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위기는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에. 경기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캐스터 : 그런데 해설자님! 어찌 되었건 이성진 선수는 상대 선수들이 엄호하러 들어올 수 없도록 능력을 집중시키고 있고, 진수혁 선수의 능력이 좋다고 한들 1대1로 이창현 선수가 이기면 또 문제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강준혁은 캐스터의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아마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일부러 물어본 것이겠지만…… 그런 게 되었다면, SAA를 다른 헌터스리그 팀들이 그렇게까지 경계할 일은 없었으리라.

[해설자 : 그것이 또……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은 진수혁 선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원형 투기장에 들어감으로 인해 상대방은 운신의 제약, 마나를 지속적으로 조금씩 빼앗기는 것도 무섭겠지만, 사실은 더 눈여겨봐야 할 쪽은 진수혁 선수입니다.]

그때 마침, 지친 것인지 이창현의 움직임의 빈틈을 노려 진수혁이 쇄도하고 있었다.

[해설자 : 뭐 여러 가지로 이 SAA의 트랩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마나장비의 파괴력을 이용한다든지…… 아니면 순수하게 완력이나 기술로 진수혁 선수를 이기려고 한다든지…… 그런데 이 선수한텐 그런 게 안 통해요.]

진수혁은 전에 같이 국가대표로 나랑 나갔을 때 자신의 '진짜 위협적인 능력'에 대해 말해 준 적이 있었다.

‘냄새를 맡는 능력.’

자신도 정확히 무슨 능력인지는 듣지 못했는데, 사실 전부터 느낀 적이 있긴 했었다.

수상하리만치 상대방의 행동도, 위험 요소도 잘 읽어 낸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상대방의 한 수를 읽어 낸 이후 차단하는 능력은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해설자 : 상대가 뭘 하기도 전에 귀신같이 알아채서 그걸 차단하거든요.]

[캐스터 : 아!!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수혁 선수의 시그니쳐, 비도술이 작렬합니다! 마나실드로는 뚫리고……아아. 이창현 선수! 검으로 열심히 쳐내 보지만 맞은 개수가 너무 많아요!]

실제로 이번에도 그랬다. 일반인들은 못 봤겠지만, 각성자에겐 확실히 보였던 찰나.

이창현이 무언가 품에서 장비라도 꺼내 들려 했던 그 찰나에.

‘그보다 한 템포 빠르게 비도를 날려 차단했어.’

무슨 마나 장비이더라도 사실 크게 대세에 영향은 없겠지만.

털썩ㅡ.

[해설자 : 아!! 이창현 선수!! 다운! PER 1부에 올라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위기를 맞이합니다!]

쓰러졌어도 움직이는 걸 보면, 아직은 완전히 다운된 건 아닌 모양이지만 애초에 저렇게 많은 비도를 몸으로 받은 시점에 끝이었다.

더는 변수가 없는 끝.

대기실 내의 다른 LTD팀원들도 그걸 느꼈던 걸까. 이진한 감독은 어느새 소파에서 일어나 말하고 있었다.

“애들아, 다음 경기 우리 경기니까 슬슬 준비하자.”

진수혁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이창현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이런 거 가끔 보면 헌터스리그도 꽤 잔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지.’

그리고 이창현의 바로 앞.

경기의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검을 높게 치켜든 진수혁을, 쓰러진 채로 올려다보는 이창현이 클로즈업되었다.

‘……웃고 있어?’

***

가끔가다 보면, 특정 상황에 한해. 아니. 그냥 아주 사기적인 능력을 가진 몹쓸 놈들이 있다.

세계적으로는 저번에 봤던 에단이 그러했고, 한국에서는 진수혁도 그런 축에 속하리라.

아니, 진수혁은 특히 더했다.

‘와 시발…… 이거 진짜 답이 없는데?’

회귀 전, [만개]를 개방했을 때는 사실 공략이고 전술이고 뭐고. 그냥 나를 가뒀던 진수혁을 1대1로 박살 내 버렸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원형투기장] 능력에 걸려보니 역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회귀 전엔 [만개]로 인해 마나량이 빵빵해서 조금 빨려 나가도 느끼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땐 그냥 조금 움직이기 불편하게 만드는 거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회귀 전 1대1의 황제라고 불렸던 진수혁에 코웃음 쳤던 게 멍청한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가 쪽쪽 빨려 나가는데, 투명으로 만들어진 원형 투기장 덕분에 [에어 앵커]나 [에어 비트]로 나갈 수도 없다.

그야말로 1인 한정 거의 무적에 가까운 능력.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아니, 말은 이렇게 쉽게 해도 김도준이 없었다면 이번엔 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걸 받은 이상 절대 질 것 같진 않았다. 맵도 맵인 데다가…… 상황이 너무 좋았다. 웃음을 참는 것이 더 힘들 만큼.

김도준한테 옮았나 싶어서 조금 소름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되었든, 지금은 ‘그걸’ 꺼낼 차례였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진수혁의 반격이 이어졌다.

파바바바박!

빈틈을 찾아 선수를 친 건 진수혁의 마나가 담긴 비도들이었다.

“이럴……수가. 한 ……타이밍만 더 있었으면.”

나는 억지로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연기하며 쓰러졌다.

‘오히려 좋아.’

진수혁의 허를 찌르는 일격. 그리고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는 걸 알고 완벽하게 마무리 신중히 다가오는 것까지. 완벽하다.

‘라고 진수혁은 생각하겠지?’

조금 더 빈틈을 보여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노련한 녀석이라 그 이상은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반드시 할 수밖에 없는 동작.

확실한 끝내기를 위해 바로 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순간.

진수혁과 내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워진 순간.

나는 빠르게 옆으로 구르며 검을 피하고, ‘그것’을 터뜨렸다.

펑!

마나봄버와는 달리, 아무런 파괴력 없는 폭발력. 그리고 푸쉬쉭 하는 김빠지는 소리까지.

“큿……크큭. 그럼 그렇지. 결국은 노린 게 그거였나? 쓰러진 척하고 지근거리에서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마나봄버를 터뜨린다라……”

진수혁은 아무래도 그렇게 이해한 모양이었다.

뭐, 그것도 확실히 나름대론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대신 나까지 큰 데미지를 입었겠지만.

“그런데 어쩌나. 마나봄버는 어찌 된 일인지 불발해 버리고, 한번 들킨 이상 똑같은 건 당해주지 않을 텐데. 어쩐지 계속 위험한 냄새를 풍기더라니. 정체를 알아서 속이 다 시원하네.”

진수혁이 이제야 긴장이 풀렸다는 듯, 편하게 자세를 편 후 말했다.

나는 그렇게 진수혁과 경기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지근거리에서 서로 아무런 대응 없이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아, 그런데 나는 준비할 게 몇 개 있긴 했지?’

잠시 장비를 뒤적거리는데 이제는 진수혁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제 위협적인 것은 모두 끝났다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보단 오히려 다른 게 궁금한 모양이었다.

“근데 비도는 분명 다 맞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한 거냐, 너.”

“아. 이거?”

이제 슬슬 준비도 끝났겠다.

나는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전투복 속에 입은 마나프로텍터 조각들을 몸에서 떼어냈다.

쿠쿵 ㅡ.

꽤나 나중에나 꿀팁으로 알려져 종종 쓰이는 것인데, 지금은 알려져도 괜찮겠지.

물론 활동성에 큰 제약을 주는 단점이 있긴 한데……마나실드보다 내구력이 훨씬 좋았다.

“뭐야. 마나 프로텍터를 저런 식으로 쓴다고? 그걸 무거워서 뭘 어떻게. 별종이긴 별종이네. 하.”

질색한 듯한 진수혁의 모습. 근데 어째 이 녀석, 설마 이미 이겼다고 생각하나? 왜 제일 중요한 건 안 물어보지?

“근데 비도까지 다 막아낸 이걸 왜 내려놓고 벗었는지는 안 물어봐?”

나는 이 경기의 마지막 퍼즐이 될 장비를 얼굴에 착용하며 나지막이 내뱉었다.

“……너!!!”

진수혁이 눈이 휘둥그레 뜨며, 내게 삿대질했다.

그제야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추측한 모양이었다.

같은 선수끼리 잡담하는 일은 흔하긴 한데, 삿대질이라니. 약간 무례하네.

‘김도준은 항상 이런 기분인 건가?’

묘하게 야릇한 쾌감이 올라왔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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