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의외의 활로
이근택이 이번 랭크전에 꽤나 군침을 흘릴 만한 상품을 걸었다고 한들, 모든 선수가 랭크전에 눈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랭크전에 좋은 무언가가 걸려있다고 한들, 헌터에게 있어서 가장 메인이 되는 것은 당연히 7대 7 정규 헌터스 리그.
1부에서 1황으로 군림하고 있는 LTD의 선수들 역시 랭크전에는 별로 눈길을 주지 않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단순히 지나가며 뉴스 기사를 읽고, 흐름을 보는 정도.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보다 더 큰 관심거리는 랭크전 따위가 아니라, 지금의 정규리그 상태가 어떻게, 앞으로의 향방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흠…… 생각보다 PER이 많이 선방하네.”
“그때, 연습경기할 때도 보셨잖아요.”
강준혁이 이진한에게 말을 툭 내뱉었다. 별로 달가운 기억은 아니었기에 그랬던 것일까.
“아직 몇 경기 진행이 안 되었다고 하지만, 경기력이 확실히 좋아. 이대로 가다가 포스트시즌에 진짜로 다시 맞붙을 수도 있겠는데?”
이진한이 PER의 경기를 돌려보며, 계속해서 가늠했다. 그러던 중, 분위기를 깨고 들어오는 팀원이 하나 있었다.
평소에도 건들건들하게 말하던 이가람이었다.
“그럼 이번 경기가 특히 중요하겠네? 아직까지 무패인 팀이 우리 LTD랑, 진수혁 있는 SAA랑 PER이잖아.”
이가람이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정규리그의 다음 대진표가 보였다. 무패로 표시되어 있는 SAA와 LTD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어느 쪽이 먼저 치고 나가느냐…… 인가.”
이 경기로 한 팀은 선두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컸다. 한 번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 헌터스 리그에서 다른 팀들이 분석관을 이용해 피라냐 떼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테니까.
‘물론 거기에다가, 패배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저력을 보여주느냐가 또 관건이겠지만.’
어찌 되어도 재미있는 경기가 되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위에서 잠자코 지켜보는 입장으로서.
“그런데, 준혁 오빠는 진수혁한테 연락이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쪽 팀에서는 이번에 패배하면 달갑지 않은 선수들이 잔뜩 있을 텐데.”
“가람 언니? 어차피 1부에서 PER에 진 팀 꽤나 있는데, 그냥 좀 패배가 쓰라릴 뿐, 별 문제 없는 거 아니에요?”
“별 문제 없기는~. 우리 LTD랑 SAA가 한국 헌터스 리그 국가대표 선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PER이 SAA를 이겨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니?”
“아……!”
물론 당장 큰 변화가 있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크리라.
“그래서 걔네들은 완전 칼 갈고 있을걸? 맨날 국제리그에서 승점 자판기로 대주고 다니지만, 그래도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까. 줬다 뺐기는 느낌이잖아. 안 그래?”
이가람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승점 자판기…… 라.’
오히려 강준혁은 누가 이기든, 그로 인해 국가대표가 어떻게 바뀌든 상관없으니.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심지어는 자신이 한국 헌터스 리그의 국가대표로 나가지 못한다고 해도 좋으니.
한국이 국제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막연히 품었다.
입맛이 썼다.
***
한편, SAA의 홈에서는 한창 PER에 대한 분석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나저나, 엊그제 [헌터스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에서 버르장머리 없게 굴었던 것 같은데. 벌써 그 녀석이 1부네.”
그 당시 마나장비 교육 교관을 참여했던 이성진이 진수혁에게 말을 건넸다.
“그때 내가 싹수 있다고 했었잖아. 인터뷰랑 전적 보니까 제대로 다 밟으면서 올라왔던데.”
“재능…… 이란 건가.”
“글쎄. 그건 모르지. 너도 알다시피, [마나장비]같은 것들은 재능이 조금 더 빠르게 익숙하게 몸에 익도록 해줄 수는 있어도. 결국은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알잖아.”
사용방식이 단순히 체육에서 알려진 기술을 익히듯, 몸을 잘 써서 따라하기만 한다고 마나장비를 잘 쓴다고 하진 않았다.
마나장비를 이용해 사고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그건 순수하게 그걸 사용해왔던 시간만이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아마 이름 모를 헌터에게 배웠거나, 어렸을 적부터 비슷한 것으로 연습을 하고 사고해왔던 것이겠지.”
각자 보낸 시간의 밀도도. 무언가를 하는데 몰두한 시간 자체도 달랐다.
단순히 빠르게 올라왔다고 해서 재능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렇게 잠시 둘이서 과거를 회상하며 넋두리를 하는 것도 잠시.
앞에 있는 코치진이 다시금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자자. 잡담은 그만하고. 그래서, [차원문 전략]에 대한 이 해결책은 주현이의 능력. [위대한 이끌림]으로 해결한다.
저쪽이 모이고, 차원문을 만든 후 동시에 이동해 수적우위를 이용하려 할 텐데. 주현이의 능력으로 먼저 합류해 진형을 짜 두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외의 전략은 기존에 먼저 우리가 준비해둔 대응책 그대로 간다. 알았나?”
감독과 코치진은 이번 경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더더욱 인지하고 있어서인지, 열을 내고 있었다.
“특히 진수혁. 너. 이번에 중요한 거 알고 있는 거 맞아? 그렇게 대충대충 들었다가 시합 때 실수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궁시렁거리며, 귀찮아하던 진수혁에게 감독의 잔소리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귀를 긁적이며 듣기 싫다는 표현을 온몸으로 해 보지만 아무런 효과는 없었다.
더더욱 잔소리가 늘어날 뿐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진수혁의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어차피 이번 경기의 맥이랑 우리 팀의 전략은 모두 확인했어. 변수는 아마 딱히 별로 없을 거다. 잔소리는 막 해대도 믿을 만한 감독이니까.
그것보다…….’
진수혁의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것은 다음 헌터스 리그 경기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랭크전에서 계속 치고 올라오고 있던 그 녀석.
그 녀석과의 싸움이 기대되어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마나장비 활용법은 대체 어떻게 생각해낸 것인지. 나와의 대결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정체는 누굴지……
진수혁이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엔 아마, 꽤나 경력이 긴 선수였기에. 그 후보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능력에, 무기까지 숨기는 걸 보면, 아예 강준혁 선배일지도 모르겠는데. 키나 분위기만 보면, 이민석 선배가 몰래 한국에 들어와서 장난질을 치는 걸 수도 있고.’
그 상대도 상대이지만, 가면을 쓰고 능력을 억제한 녀석한테 지는 건 결코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제아무리 상대가, 한국 최고의 헌터스 리그 선수 아웃풋인 이민석이더라도.
개인기 최강의 선수는 여전히 진수혁 자신으로 자리 잡았어야 하니까.
“감독님. 이번 경기는 어차피 결국 요약하면, 성진이 형이 제 백업하고, 제가 1대1로 상대 에이스를 꺾는 거잖아요. 세부사항까지 이미 다 봐 뒀어요. 시뮬레이션으로 전투도 좀 해봤고.”
“으이구…… 너 또 그러다가.”
한바탕 감독의 잔소리가 또 시작되었지만, 아무래도 좋으리라.
한국리그에서는 제아무리 어떤 선수가 온다고 한들, 1대1 개인기로는 자신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당연한 자신감이었다.
***
경기 전날 밤. 팀 PER의 분석실에는 불이 켜져 있을 뿐 아니라, 팀원 전원이 깨어 있었다.
평소라면 경기 전날이기에 편히 자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진수혁…… 전에도 봤지만, 1대1로 뚫기엔 최악인데.’
문제는 1대1로 뚫지 못한다면, 1대1을 강요하는 데 능숙한 SAA에 전략적으로 너무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 전략수립에 있어서 꽤나 답이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저번에 조아라 선수 상대할 때처럼, 뭐 방법이 없을까?”
“그때랑 지금은 달라. 그런 맵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모르는데다가, 상대가 당해줄지도 미지수다. 그런 거에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어.”
“아싸리, 이전 3부 때처럼 근거리에서 공격하지 말고 [폭격기 전술]같은 걸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박한 후 타격해버리는 건 어때?”
“1부 선수들한테 그게 되겠어요?”
한지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종규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나름 코치인데…… 선수한테 전략으로 까이고 찌그러지는 모습을 보니 우스우면서도 약간은 안쓰러웠다.
‘그래도 멘탈 케어는 제대로 하고 있는 모양이니 괜찮겠지…… 요샌 식단도 관리해주는 것 같던데.’
어쩌면 아예 선수 매니저로 직종을 바꾸는 게 더 적성에 맞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어지간한 전술로는 안 돼.”
“그래도요. 저번에 저희가 썼던 [차원문 전략]도 상당히 좋았잖아요. 길한 선배. 또 보여줄 수 있지 않아요?”
이번에는 이서현이 활짝 웃으며 이길한에게 동의를 구하며 물어봤지만……
그마저도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저으면서 냉정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터 항상 말했다시피, 전략 수립의 기본은 상대에 강점과 취약점에 맞춰 구성하는 거야. 그런데……상대방의 능력에는 합류를 굉장히 빠르게 돕도록 하는 능력이 있었다. [차원문 전략]으로 빈틈을 찌르는 건 아마, 안 될걸.”
팀원, 그리고 코치진과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해봤지만, 별달리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는 없었다.
다만, 대신에 근래에 마나장비를 많이 만져서인지, 이걸 활용해서 돌파구를 뭔가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계속 있었는데.
그 실체를 명확히 잡을 수가 없었다.
‘이민솔을 상대했을 때처럼, 유럽에서 유행했던 블랙아웃 전략으로 가?’
아니. 이미 한번 취약점을 보여준 상태였다. 진수혁이라면 아마 그 경기를 봤을 테니, 마나 프로텍터가 지붕을 채 닫아버리기도 전에 에어앵커를 끊어내고 달아나겠지.
그렇다고 다른 전략을 또 마나장비로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런 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애초에 헌터스 리그의 수많은 전략들은 그 팀에 있는 팀원들의 특별한 능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마나장비로 제작되는 능력들은 일부에 불과하니까.
고민이 깊어졌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다. 이렇게 회의한 거도 하루이틀 아닌데. 내일 어떻게 잘 해 보자고. 컨디션관리 해야 하니까. 그럼 오늘은 이걸로 해산!”
이종규가 모여있는 팀원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적당한 시점에 잘 끊었네.’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이종규가 괜찮다 싶긴 했다.
어차피 내가 고민해야 할 분량이기도 하고, 이종규는 나름 저래도 어느 선수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꽤나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많이 힘든 적이야?”
“아마도 그럴 것 같네요.”
선수들이 슬슬 다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고, 어느덧 분석실도 적적해졌다.
이종규가 브레인스토밍이라도 도우려는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말하고, 그리고 내가 답하고 있었지만 그리 생산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도준아. 시간 늦었는데, 마음은 알겠는데 지금 자러 안 들어가봐도 되는 거냐?”
‘……김도준?’
“뭐…… 별건 아니고. 저번에 내가 실수한 것도 있고. 좀 그래서.”
“뭐, 그런 걸 신경을 다 쓰고 있어. 내가 그렇게 쩨쩨해 보여?”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잘 안 풀리는 것 같아서. 아이디어 딱히 없으면, 내 마나공방이라도 보고 갈래?”
‘마나공방…… 일전에 홈에 공간 좀 내달라고 한 게 그거 때문이었나?’
그건 그렇고.
“무슨 그런 말을 애인한테 라면 먹고 가자고 말하는 것마냥 수줍게 하냐. 징그럽게 시리. 머리도 잘 안 돌아갔는데. 좋네. 안내해봐.”
마나장비는 주류 장비가 상당히 적어서, 나도 마이너한 것들까지 다 알고 있지는 않는데.
어쩌면 꽤 괜찮은 게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