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전초전
쾅! 콰콰쾅!
수많은 폭발의 향연으로 어두운 공간 가운데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진 가운데.
[인비저블 클록]으로 완전히 숨긴 채. 기척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일격을 가한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삐익 ㅡ.
승리를 알리는 호각이 들리며 구성된 스테이지가 완전히 해체된다.
마나 프로텍터로 형성된 암흑지대도, 에어비트와 에어봄버로 인해 만들어진 위험지대도.
고요하게 혼자 서 있는 전장.
그제서야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다시금 성장했다는 사실을.
동시에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마나장비로…… 실제 헌터들의 전술을 재현한다.는 건가…….’
회귀 전, 정점에 올랐었지만. 세상은 아직도 내가 모르는 무기들로 가득했다.
이러니. 내가 멈출 수 없는 것이 아닐까.
***
“민솔 언니!”
이민솔이 시끌벅적한 대기실로 나오니, 조연화가 먼저 앞서가 이민솔을 맞았다.
의기양양했고, 이기리라고 확신했던 만큼 패배의 충격이 컸으리라는 것을 예상했으니까.
‘물론 개인적인 기대로는 가면을 쓴 녀석이 이기길 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민솔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은 건 아니었다.
아니나다를까, 조연화가 이민솔을 맞아주자, 이민솔이 조연화를 꽉 껴안았다.
“으…… 으…….”
시뻘게진 얼굴. 그리고, 화를 참을 수 없는지,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호승심도 뛰어나다는 뜻.
“흐어어어어엉ㅡ!”
제 분을 이기지 못했던 것일까. 이민솔은 조연화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
스스로도 이번 기회에 이겼다면 큰 기회가 될 수 있었음을 알았기에 그런 것이리라.
“괜찮아. 언니…….”
조연화는 등을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전했지만, 그렇다고 ‘고작 랭크전 한 판인데 어때.’하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팀 게임에서는 상대적으로 애매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이민솔이, 어떤 심정으로 랭크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번 전투를 보고 관심을 보여오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보호해주고, 안아주는 것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이민솔은 안정되었는지, 울음을 멈췄다. 체구가 작은 이민솔이 어느새 조연화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지막히 말했다.
“잘하더라…… 그래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아쉽겠지. 그래. 이민솔이 상대의 낌새를 먼저 알아채, 마나 프로텍터에 걸쳐진 에어앵커를 먼저 폭탄으로 제거했다면.
혹은 초반의 공세를 완벽하게 하려고 천천히 진행하기보다, 처음부터 예측할 수 없는 폭발력으로 상대를 제압했다면.
마나봄버가 가진 특성을 이용해, 상대가 약점을 찔러올 수 있었다는 걸 미리 예측했더라면……
……
수도 없이 이어지는 가정들이, 이길 수 있었던 길들이. 패배하고 나서야 보이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미 경기는 끝나버렸고, 되돌이킬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건 결정되었다.
‘……그래도.’
조연화는 오히려 더 이민솔을 꽉 껴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이번에 알았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다음엔 분명 더 잘할 테니까.”
이민솔에게만 전하는 말이 아니기도 했다. 아마 조연화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겠지.
지레 포기하고,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능력일 수도, 아니면 재능의 총체일지도 모르는. 그런 것들의 벽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미 한 번 좌절했던 조연화는, 그 가면의 남자를 보고 길을 알았다.
‘그래…… 나도 다음엔 더 잘할 테니까.’
능력을 쓰지 않고, 무기도 쓰지 않고, 거대한 벽을 마주쳤던 남자가.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지혜로 그 벽을 경기에서 끝끝내 넘어선 것처럼.
***
“흐음…… 저 녀석이랑 이창현이 대결을 하기로 했다고?”
“그렇다고 하던데.”
“왜 그렇게 부루퉁해 있어?”
진수혁이 조아라에게 핀잔을 줬다.
그들도 한참 최근의 헌터스 리그를 뒤흔들고 있는 랭크전을 보기 위해 대기실에 있던 참이었다.
“뭐가 맘에 안 들어?”
“맘에 안 들긴 무슨. 그냥 얼굴 가리고 저런 짓 하는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그건 진수혁도 동감하는 부분이긴 했다. 보통 이렇게 가면을 쓰고 점수를 올리더라도 슬슬 이 정도의 점수대가 되었으면, 능력을 숨긴 채로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보통은 정체를 밝혔으니까.
“마지막까지 정체를 숨기려는 모양인데…… 저렇게 그냥 두려고?”
조아라가 넌지시 진수혁에게 물어왔다. 조아라의 경우엔 사실 랭크전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아서 상관 없었지만, 랭크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진수혁에겐 꽤나 중요한 문제일 테니까.
가면을 쓴 채로, 본신의 능력을 숨긴 채로 점수를 기세등등하게 무패로 올리고 있다...
만약 저 녀석이 이 상태로 계속 올라와 진수혁과 매칭이 된다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었다.
진수혁은 진다면 명성에 굉장한 흠집을 얻겠지만, 저 녀석은 언더독인 만큼 아무런 피해도 없이 빠질 수 있을 테니까.
요컨데, 조아라의 말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저 녀석의 가면을 벗기던지, 혹은 미리 장외경기로 끌어내서 꺾어버리던지 하라는 건가…….’
확실히 조아라다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하긴 아직 이르지. 내가 심사위원 시절부터, 칭찬했던 이창현 선수가 보여줄지도 모르니까.”
“뒤에서 또 뭐 음습하게 준비하고 있을 테면서 숨기기는.”
진수혁은 씨익 웃을 뿐, 대답하는 일은 없었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민솔과 가면의 남자의 대결이 끝나고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기왕이면 가면을 쓴 녀석이 이창현도 이겨줬으면 좋겠는데…… 마지막 피날레는 내가 장식할 테니까.’
그게 한국 헌터스 리그 국가대표 최다 선출자이자 랭크전 1위 챔피언으로서의 의무일 테니까.
***
“……이런 식으로 연계에 있어서 마나장비를 더 매끄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이런 방법이 있었나…… 참고하겠다.”
여느 때처럼, 경기를 준비하는 PER의 홈. 평소처럼 피드백을 주고받는데, 그 느낌은 조금 달랐다.
“요새는 부쩍 마나장비를 많이 강조하는 것 같지 않아?”
“확실히 그렇긴 한데…… 야. 김도준. 넌 뭐 짐작 가는 거 없냐?”
평소랑은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지침에, 가장 먼저 지목된 대상은 김도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빛나는 검이든.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듯한 찢어지는 소리가 나는 무기든. 그런 것들은 다 김도준이 쓴 것들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김도준이 마나장비에 대해 조금 더 친숙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반영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흐음…… 흠. 글쎄. 나라고 뭘 알겠냐~.”
평소라면 몰라도 안다고 대답했을 녀석이 헛기침을 하며, 모르는 척을 하니 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뭐가 있긴 있나 본데. 그 이유는 모르겠는 상황.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 방향성으로 배우는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방향으로 마나장비를 사용하는 법을 익혀 전보다 훨씬 사고의 폭이 넓어졌달까.
유연해졌다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었으니까.
“김도준한테 물어보기보다. 그거 아니겠냐? 그거.”
“그거?”
“뻔하지. 전에 창현이랑 그 가면을 쓴 녀석이랑 결국 뜨기로 결정했잖아.
걔가 이민솔 선수랑 싸웠던 거 안 봤어?”
나름 정보통인 한지수가 이야기를 꺼냈다.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였다.
“……그렇게 해서 어두운 밀실을 만든 다음, 에어비트랑 마나봄버로 빈틈을 만들어서 이겼잖아.”
“오…… 생각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전투네. 창현이가 자극이라도 받은 건가.”
“곧 싸울 테니까, 상대법을 연구할 겸사겸사 해서 그런 거겠지. 인터뷰에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한지수가 흥미로운 듯 말했다. 물론, 그 말에 다들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니었다.
“창현이가…… 지면 어떻게 하죠?”
가면의 남자가 잘 한다고 하니, 이연주는 불안한 모양이었다. 최근까지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한 번 고꾸라지기라도 했다간 타격이 클 테니까.
“확실히. 전에 싸우던 건 나도 봤었는데. 이 녀석…… 점점 진화하고 있어. 지금 본 영상은 나랑 싸워도 장담 못하겠는걸.”
나름 PER에서 1대1 랭크전의 스페셜리스트인 윤한결까지 가세해서 이런 말을 내뱉자, 분위기는 더 묘했다.
한 사람 빼고.
“도준아. 왜 그래? 뭐 불편한 거 있어?”
불안해하는 녀석. 어디가 이길지, PER홈에서 이창현의 모습과 랭크전에서의 가면을 쓴 남자의 무력을 재는 녀석. 그리고 이창현이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녀석……
다들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지만, 김도준의 경우 다른 녀석들과도 약간 이질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혼자 웃다가, 긴장하다가, 이윽고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는 태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궁리 끝에 결국 나온 말은 김빠지는 말이었지만.
“뭐, 너희들도 곧 알게 될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김도준을 연습실에서 떠나 버렸다.
“뭐야, 저 녀석.”
“혼자 또 특이한 장비라도 건져냈나보지.”
김도준이 왜 그랬는지는 미궁에 빠진 채로.
***
내가 랭크전을 신경 쓰며, 개인 기량을 계속 관리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헌터스 리그의 정규시즌은 진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승패는 대충 예상대로인가…….’
2주차, 3전 3승. 여전히 공동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경쟁팀이라고 생각하는 LTD 역시 당연히 1등이었고.
스포츠뉴스에서는 연일, 언더독의 반란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미 헌터계에서는 PER의 인지도가 꽤나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일단 이번 주 까지만 하더라도 [차원문 전략]을 직접적으로 공략에 성공한 팀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계속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중간한 성적을 노리는 게 아니라…… 1등을 노리는 거니까.’
거기에, 아직까지 싸운 팀들은 대부분 최상위권 팀이 아니라는 것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경기의 경우에는 지금까지의 양상과 전혀 달랐다.
상대가 LTD는 아니지만, 한국의 또 다른 유명 헌터. 진수혁이 있는 팀이 상대였으니까.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패를 올리기 딱 좋은 상대이리라.
“근데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 진수혁이 있었는데도, 지난 시즌엔 결국 마무리가 다른 팀들이랑 차이가 안 났었잖아.”
이종규가 대꾸했다.
“그건……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데이터를 보면 알겠지만 진수혁 선수가 출전한 경기가 거의 없어요.”
……아마도 정신적인 피로로 쉬었을 가능성이 컸겠지.
헌터는 고통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누적해 쌓이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니까.
“이번 경기는 1부에서 계속 겪어온 지난 경기들과는 차원이 다를 가능성이 커요. 그러니까…….”
새롭게 랭크전을 하며 느꼈던 마나장비의 연계를, 시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미 준비는 끝내둔 상태였다.
“평소랑은 조금 다르게 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