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재구축
헌터스 리그 랭크전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 느낀 위기감이었다.
자신의 무기를 잘 살릴 줄 알고, 상대의 능력으로 인한 변수를 잘 고려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물론 상위권이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필요한 능력이지만…….’
그 두 가지는 결국 기본이며 완성이다. 그걸 완벽하게 하면 불리한 무기를 가진 상대는 질 수밖에 없으니까.
계속해서 심리전을 걸어보거나, 상대를 흔들어보려 해도 전혀 걸려들지 않았다.
초지일관 이민솔, 자신의 전략만을 내게 강요할 뿐.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
마나장비는 아무 근원도 근간도 없이 만들어진 장비가 아니었다. 본디, 헌터들이 탑을 개척하던 시절.
마나를 다루는 데 능숙했던 공학자 기질의 헌터와, 각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협업해 그 기전을 그대로 쓸 수 있게 장비화 시킨 것이었다.
즉, 근간은 헌터들의 능력이라는 뜻이었다.
‘물론 장비화가 가능했던 능력은 굉장히 한정적이었지만…….’
그럼에도 그건 분명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실제 헌터들이 사용하는 능력에 비해 화력도, 능력도 조악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기존, 자신의 능력만으로 헤쳐나가던 헌터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나갔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나장비는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차곡차곡 쌓여갔다.
가히 헌터 능력의 역사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였다.
에어비트의 근원이 되었던 것은 십수년 전 아멜리아라는 헌터의 [엑셀 페달] 능력이었다.
에어앵커의 근원이 되었던 것은 알렉산더라는 헌터의 [폼레스 로프] 능력이었다.
마나 프로텍터도. 마나 실드도. 인비저블 클록도…………
모든 마나장비는 그 근원이 있었다.
모든 마나장비는 하나의 헌터나 다름없었다.
‘그럼 이론상 마나장비만 써서 싸우더라도 크게 불리한 점은 없어야 할 텐데…….’
물론 능력은 원본에 비해 딸리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가짓수가 있으니까.
이민솔에게 밀리는 것은, 분명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슬슬 안 된다는 걸 깨달았나 보지?”
이민솔이 씨익 웃으며, 내가 가능한 공격들을 모조리 차단한 후. 슬슬 적극적인 공세로 전환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마구 폭발시키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쳐왔다.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게 누가 그렇게 오만하게 무기 하나 안 들고 오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억울하면 가면벗고 원래 쓰던 무기라도 들고 오던가~.”
‘무기…….’
아니, 나는 지금 무기를 쥐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날붙이나 총 따위를 들고 있지 않을 뿐이지, 수많은 종류의 마나장비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원래 쓰던 무기를 쓰지 않고 있을 뿐, 마나장비로 그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어째서....'
무기... 마나장비... 사용자...
...!
그제서야 생각이 미쳤다.
무기가 바뀐다면 사용자도 바뀌어야했다.
나는 지금 원래 쓰던 무기를 쓰던 것이 아니었다. 원래 내가 생각하던 전투방식이나, 센스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했다.
내가 기존에 가진 격투술. 그리고 무기술. 경험은 분명 뛰어났지만, 수많은 마나장비를 다룰 수 있다는 건. 그리고 그것을 주 무기로 삼아 전투를 풀어 나간다는 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조합과 전술을 짜, 그 어떤 헌터도 될 수 있다는 강점을 이용해 싸워야만 진가가 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원래 싸우던 방식으로 싸워봤자, 그 힘이 극대화 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전투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은 비워야했다. 내 자신을. 내가 생각하는 전투 구도. 승리 방식. 싸우는 방법. 등등...
‘자신을 비운다.’
그리고 동시에 치열하게 재구성하여 생각했다.
내가 아니라, 그 능력의 오리지널을 가졌던 헌터가 싸웠을 방식을.
그 방식들의 조합을.
이민솔의 폭발이 점차 영점조정이 끝나고, 내 움직임을 따라잡고 있지만 상관없었다.
나도 점차 보이고 있었으니까.
아무것도 들지 않은 이 맨손은, 무엇이든 쥘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기존의 내가 사용했던 전략과 사고방식을 비우고 마나장비의 근원이 되었을 다른 헌터들의 사고를 역산했다.
‘남의 것을 채움으로써, 사람은 배우면서 강해지니까.’
새삼 회귀 전, 1부 헌터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오를 때. 어떤 과정을 겪었었는지의 기억이 살아났다.
매일같이 한국과 외국의 헌터들을 분석하고 공부하던 나날.
결국 돌고 돌아온 곳은 여기였다.
‘물론, 나를 비운다고 해서 지금껏 내가 쌓아온 경험이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ㅡ.’
내 전술과 전투방식을 비운 곳에 채워지는 것은, 국제리그에서 쓰였고 상대하고, 경험했던. 상대방들의 수많은 전술들. 그 전술들을 수많은 마나장비의 조합들로 역산해 재현해낸다.
이를테면 이렇게.
에어비트를 공중에 흩뿌린 후. 충격을 견디는 강도가 각자 다른 마나봄버를 에어비트에 던져넣는다.
수많은 마나봄버가 예리하게 설계된 에어비트의 각도에 맞춰 핀볼을 하듯 계속해서 튕겼다.
“하아? 아직도 마나봄버에 미련을 못 버린 거야? 그런 것쯤이야 내 능력으로 ㅡ!”
콰콰쾅!
그래. 이민솔은 [고유마나 : 폭발]로 마나봄버를 던졌을 때, 확실히 폭발을 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마나봄버를 던지는 게 아니라, 아주 강한 힘으로 때린다면. 직접 타격한다면. 에어비트의 타격이 가해진다면.
‘폭발시킬 수 있다.’
이민솔의 능력으로 폭발을 제어하는 것은 한 순간, 마나봄버의 폭발을 저지시키도록, 가라앉히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강한 타격으로, 질서정연하게 차 있는 마나봄버를 파괴해버린다면 그 한 순간을 막더라도 결국은 폭발할 수밖에.
“큿…….”
물론 모든 것들이 한번에 다 폭발한 것은 아니었다.
던져올려, 계속해서 튕겨지고 있는 저 모든 마나봄버는 각자 힘을 견딜 수 있는 강도가 달랐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쿠쿠쿠쿠쿵 ㅡ.
지금 이 무수히 많은 에어비트로 마나봄버가 위협적으로 팍팍 튕겨지고 있는 이곳을 이민솔이 떠난다면 그만인 상황.
심어둔 [마나 프로텍터]가 양 쪽의 벽과 천장을 막기 시작했다.
이민솔에게 전장을 제한시킨다.
물론 바닥에서 솟아나는 마나프로텍터를 보고 낌새를 눈치챘는지, 아직 비어있는 윗 공간으로 나가려는 듯했지만.
“어딜.”
그건 분명 비어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막아둔 공간이기도 했다.
뻥 뚫려있는 윗 천장으로 이민솔이 날아오르려고 하자, 무언가 보이지 않는 줄이 이민솔을 튕겨냈다.
다름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있는 에어앵커가 마치 촘촘한 그물망처럼 얽혀있었다.
“대체 언제…….”
이민솔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이 숨겨지지 않았다. 본래라면 이민솔이 마나봄버로 쉽게 뚫어낼 수 있겠지만.
‘이미 에어앵커의 그물에 튕겨난 순간 이미 늦었어.’
그리고 애초에 짜인 각본이었다.
에어비트를 던질 때, 존재감이 강한 에어비트에 비해, 존재감이 약한 에어앵커를 동시에 던져 공중에 설치했다.
에어앵커는 고정할 것이 없더라도 공중에 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출할 수 있는 방향과 길이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이용한 셈이었다.
이민솔이 튕겨나감과 동시에, [마나 프로텍터]는 온전히 설치가 끝나며 닫혔다.
남은 건 안쪽에 여전히 떠다니는 수많은 에어비트와 마나봄버.
……그리고 어둠과 혼란스러운 마나반응을 틈타, 인비저블 클록으로 몸을 숨긴 나뿐이었다.
과거에 모아왔던, 내 경험 속에 쌓이고 쌓였던 국제리그 상대들의 전술들이.
마나장비를 통해 새롭게 재탄생되어 발현되고 있었다.
***
“와 씨…… 저거 뭐임?”
“아니 내 말 맞지? 저거 진짜 말도 안 된다니까.”
갑작스런 호응에 조연화가 뒤돌아 본 곳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가면의 남자는 마치 자포자기하듯 속에서 셀 수도 없이 마나장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에어비트를, 마나 프로텍터를. 이민솔의 제어에 터지지 않는 마나봄버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들이 무언가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하자. 그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에어비트는 각자 정확한 위치와 임무를 부여받은 것처럼 마나봄버를 튕겨내며, 때론 강한 반동력으로 터뜨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도의 계산된 폭발지대를 벗어나려 하자 마나 프로텍터가 일어나며 이민솔과 가면의 남자를 가둬버렸다.
연속적인 시나리오를 머릿속에서 모두 계산한 고도의 전략이었다.
동시에 트랜드에 밝은 조연화로서는 생각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혹시…… 유럽 리그의 블랙 아웃 전략?”
분명 형태는 달랐지만, 유럽리그가 아마 국제리그에서 사용한 적 있었을 한 전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점은, 저 랭크전의 경우 헌터가 가진 각성자로서의 능력이 아니라 모두 마나장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
그 점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본디 주변지역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능력이 필요했었던 것을, 마나 프로텍터를 사용한 실내를 만듦으로써 만들었고.
다중개체 염력을 이용한 마나봄버의 연쇄추돌을, 에어비트를 씀으로써 흉내 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의 마지막 호흡을 빼앗는 어둠 속의 암살…….’
많은 마나 장비 사용으로 마나반응이 어지럽고, 어두워진 상태에서, 어떻게 정확히 이민솔을 노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마지막까지도 분명.
우우웅 ㅡ.
빠악 ㅡ.
비록 칼로 깔끔하게 상대를 양단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닮아있었다.
수많은 헌터들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그 전술의 결정체가. 아마도 수많은 궁리 끝에 만들어졌겠지만. 그래도.
‘능력 하나 쓰지 않은…… 한 사람의 손에서…….’
가면을 쓴 남자의 승리를 알리는 소리가 대기실에 울려퍼졌다.
***
한편, 그 경기를 보고 있던 또 다른 곳. 헌터협회의 협회장실.
이근택이 침음성을 내고 있었다.
“맨손이 패널티라고 생각했거늘…… 되려 ‘자유’를 얻었구나.”
물론 헌터스 리그에서는 저렇게 할 수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나장비에 한계를 뒀으니까.
하지만, 저건 저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개인이 각성자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어쩌면 그 어떤 전술이라도 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그 너머를 바라본다는 것인가.’
처음엔 분명 저 가면을 쓴 녀석이 밀리고 있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근택의 눈썰미를 속일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싸움 방식을 버리고. 오롯이 비워낸 후, 새롭게 채워냈다.
다른 나라의 정상리그에서 펼쳐졌던 전술을. 그리고 그걸 재현해낼 수 있도록,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기술을, 마나장비를 이용해 다시금 사용해냈다.
먼저 스쳐지나간 수많은 헌터들의 유산을 엮어낸 것이었다.
“좋은 경기였군. 확실히 좋은 경기였어……”
하지만 동시에 이근택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경기였던 만큼, 가면을 쓴 저자의 면모가 많이 드러났으니까.
일반적으로 헌터들이 잘 모를만한 경기의 전술까지 알고 있는 해박함. 그리고 경기 도중에도 그게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전술의 구사.
그리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쓰고 능력은 물론 무기도 쓰지 않는 자.
더 볼 것도 없었다.
‘어쩐지 아래쪽 턱 라인이 닮았다니까…….’
“이실장! 따로 랭크전 데이터를 찾아서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는 없겠어.”
“네?”
“그런 게 있어. 그런게.”
원래는 저 가면을 쓴, 능력을 쓰지 않는 남자가 슬슬 힘을 잃고 패배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게 상황이 흘러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오늘 말도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위에 남은 녀석들도 그에 준하는 녀석들뿐이었으니까.
[마나전개]를 사용하는 강준혁이나, 결국은 1등을 하기 위해 피해갈 수 없는 상대인 진수혁까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꽤 볼만하겠다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