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12화 (212/270)

212화 정체

물론 장난식이긴 했지만, 이민석 심사위원. 아니 선배한테 문자가 왔을 때 진심으로 위기감이 들었다.

[이민석] : 창현아 ㅋㅋ 그러게 왜 사람들을 주먹으로 팼어.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고, 그냥 적당히 유머러스하게 한 농담인데. 바깥에서 보는 사람이 이런 농담을 한다는 거면……

확실히 어느 정도 꽤나 큰 가능성이 있음을 의심하고 있는게 보통이라는 거니까.

일단, 점수를 최상위권. 진짜 랭크전의 랭커들끼리 붙기 전까지. 이런 논란을 조금 확실히 잠재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솔직히 말해서 인터뷰에서 강한 단어를 써 가면서 깠기에,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 무른 생각이었다.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확실한 방법…….’

그런데 지금 내 행적까지 추적해가면서, 랭크전에서 가면의 랭크전 유저가 나올 때마다 내 행적은 어땠는지 알리바이를 찾는 상황에서. 확실하게 증명하는 건, 둘이 동시에 등장하는게 아니고서야……

그런데 동일인물인데 어떻게 동시에 보여주겠는가.

‘동시에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보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저번 경기에 이길한이 썼던 [분신]능력이라던가……

아니, 그 능력은 생각해보니 안 될 것 같았다.

단순히 얼굴을 비추는 것도 당분간은 의혹을 줄일 수 있겠지만. 이왕 하는 김에 더 확실하게. 아예 의문을 원천봉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나인 것처럼’행동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그 사람 때려패는 교양 없고 엘레강스하지 못하고, 뒷골목 양아치나 다름없는 아름답지 못한 의문의 관종 가면 랭크전 랭커가 너라고?”

김도준이 굉장히 눈을 빛내며 물어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도준한테 이런 말을 들으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저렇게까지 심하게는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마도.

“네가 해줄 일은 단순해. 그냥 한 번 어그로 끌어주는 거야. 평소에 하던 일이니까 어렵지 않잖아?”

“그래?”

김도준이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이걸 김도준에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분신과 달리,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등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할 수 있으면서. 내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사람.

‘일전에 몽환의 궁전에서 인비저블 클록을 개조한 걸로, 내 흉내를 내도록 김도준이 연습했던 것이 지금 와서 또 도움이 될 줄이야…….’

그건 이미 김도준에게 경력이 있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이건 김도준에게 개인적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니 만큼, 녀석도 가볍게 대꾸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대신 나도 네가 원하는 것 정도는 들어줄 테니까.”

김도준이 활짝 웃었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김도준의 도움이 있다면 그게 최고일 테니까.

“별 건 아니고…… 그럼 네가, 랭크전에서 가면을 쓰고 활약할 동안, 내가 네 흉내를 내는 거잖아?”

“그렇지?”

“그걸 좀 자유롭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자유롭게라……

김도준의 의도를 가늠해보려는데 쉽지 않았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뭐, 어차피 같은 팀이고 계속 얼굴을 봐야 하는 팀원이고, 팀의 감독이고, 구단주인데.

말도 안 되는 허튼 짓은 하지 않겠지. 무엇보다 랭크전을 할 그 잠깐을 제외하면, 다시 원래의 역할로 돌아가니 상관없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내 역할을 잠깐이나마 해야 하니까, 그 정도의 자유는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어.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그때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내 생각보다 나인 척 하는 김도준이 굉장히 큰 파급을 가져오리라고는.

***

관심은 좋다. 애초에 솔직히 말하면, 헌터스 리그 선수들은 다 관종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그걸 드러내는 정도가 다를 뿐이지.

‘그러니까 나보고 뭐라고 할 게 아니야 창현아…… 이런 걸 혼자 누리고 있었어?’

저번 2부에서 벌였던 몽환의 궁전에서의 경기. 그때 썼던, 인비저블 클록을 개조해서 이창현으로 변장하는 전략을 그대로 썼다.

목소리는 목소리 변조 기계를 써서, 조정했다.

다행히 이창현이랑 내가 키가 비슷해서 다행이었다.

준비가 끝난 후, 이창현이 랭크전을 시작하는 것을 확인하고. 마치 모델이 패션쇼에서 워킹하는 듯. PER의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한 눈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늘 짜릿해. 새로워.’

내 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기자들이 눈 앞에 있었다. 이게 PER 구단주이자 주장이자 감독인 이창현의 삶?

‘중독 되어버릴지도.’

이창현은 잘 안 웃어서, 표정 관리를 해야 하는데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걸어가던 도중, 긴장해서 쪼그만 여자애랑 부딪힌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좋았다.

“아, 미안합니다.”

기자들이 내 등장을 본격적으로 눈치챘는지, 다들 이름을 부르짖으며 인터뷰를 청해왔다. 바람직한 광경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단연 나. 주도권이 내게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줄 필요는 있겠지.

“조용.”

“질문이 너무 많아서 답을 하지 못하겠군요.”

단 두 마디에, 모두가 말을 멈추고 내 입술이 움직이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이게 톱 클래스 선수의 감각?’

정말이지 솔직한 말로 너무 즐거웠다. 계속, 가능하면 계속하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창현이를 도와주는거니, 어쨌든 해야 할 말은 해야겠지.

“우선. 대부분의 의혹은 사실 저번 MVP 인터뷰 때 답한 걸로 압니다.”

이창현이 나보고 대신 해달라고 한 건 결국 이런 내용이었다.

자신이 가면을 쓰고 랭크전을 돌리는 동안, 마나장비와 목소리 변조 기계를 이용해 자신의 행세를 해 의심을 접게 해 달라는 것.

그러니 사실 이쯤 하고 끝내면 되긴 하는데……

막상 하다보니 너무 즐거웠다.

이 사람들도 다 나름 팬이고, 팬들한테 보여줄 기사를 쓰는 사람들인데. 조금 더 서비스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제일 기대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가면을 쓴 의문의 랭커와 이창현의 1대1 혈투!’

트래쉬토크로 먼저 선빵을 한 이창현이 이윽고 직접 결투신청을 하는 것.

그리고 이게 진짜로 성사된다면 온갖 곳에서 이목을 끌어모을텐데. 팀 PER에도 상당한 이익이 될 터였다.

……물론 이창현이 시킨 건 단순히 의심을 접게 해달라는 정도의 이야기였지만.

“저는 결자해지의 차원으로, 그리고 제 말을 증명하기 위해. 가면을 쓴 랭크전 참가자에게 랭크전 룰로 1대1을 제안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내 입만 바라보면서 원하는데, 이런 건 말해주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미안하다! 이창현!’

만약 진짜 하게 된다면, 어차피 김도준 자신이 또 이창현 행세를 하면서 이창현과 랭크전을 해 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김도준은 이창현의 탈을 쓰고 말을 내뱉어버렸다.

반응은 당연하게도 폭발적이었다.

기자들은 폭탄발언을 빠르게 노트북에 옮겨적고 있었으며, 옆에서 듣고 있던 PER의 팀원들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창현이 형. 근데 그 녀석…… 좀 잘하더라, 절대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아.”

무기 없이 가면을 쓰고 싸우는 이창현을 높이 샀는지, 걱정의 말을 보내오는 이정훈.

“방심은 무슨. 격의 차이가 있을 텐데. 보여줄 거지?”

그리고 든든하게 이창현을 신뢰한다는 말을 전해오는 윤한결까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창현 행세를 하는 나랑, 가면을 쓴 이창현이 1대1을 만약 진짜로 하게 되면…… 누가 이기는 거지?’

당연히 서로 각자의 힘으로 싸우면 지는 것은 김도준이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창현은 주먹질이나 하는 녀석이라고 폄하해놓고 패배한 녀석이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이창현 행세를 하는 내가 이기는 걸로 했다간, 지금 한창 오름세인 의문의 가면 랭커의 명성이 훼손될 텐데.

‘모르겠다~. 이창현이 알아서 하겠지.’

***

4천점도 넘어, 이제 4500점이 코앞인 상황.

이쯤 되면 이제 다들 대인전에 대해서 스페셜리스트라고 보아도 좋았다. 지금만 해도 꽤 위험했다.

“마나장비를 이런 식으로 사용할 줄이야…….”

회귀 전에도 경험해본 적 없는 식으로, 처음 보는 마나장비를 자신에 맞게 개조해 쓰는 녀석들까지 있었다.

그야말로, 1대1을 최대한으로 갈고 닦으며 쉽사리 보기 힘든 무기들을 잔뜩 접할 수 있는 전장.

“하지만…….”

그런 변칙적인 것에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헌터의 진가.

[꿰뚫는 눈]을 순간적으로 사용해 상대의 공격의 본질을 파악했다.

‘마나실드같이 마나로 형체를 만드는 방식을 비틀어, 트랩을 만든 것인가.’

그리고 그 본질을 파악하면, 대응법도 따라오기 마련.

마나를 흩어버리는 마나더스트를 뿌리고, 탄탄한 마나배열이 무너지는. 마나실드가 있던 자리로 주먹을 꽂는다.

휘두르는 팔꿈치의 궤적에 에어비트를 둬 가속을 주는 것은 덤이다.

콰직 ㅡ !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 그리고 그와 함께 승리를 알리는 호각 소리가 울려퍼졌다.

삐익 ㅡ!

그나저나 이제 슬슬 확실히 빡세지는 것이 느껴졌다. 변칙적으로 마나장비를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다들 기본 능력이 출중한 터라.

‘최정상에 있는 선수들이랑 이제 점수도 몇 점 차이 나지 않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긴 한데…….’

생각해보니, 강준혁의 경우 4900점 정도에 위치해 있다고 했었던가. 아쉬운 점은, 랭크전을 거의 안 돌린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붙어볼 수 있다면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곧 윤한결도 비슷한 점수대가 될 테고……

과거 심사위원으로 대면했던 조아라나, 현재 한국 랭크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진수혁의 점수도 가까워졌다.

이젠 슬슬 이기기만 하는 것도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 MVP인터뷰 때도 말했다시피, 무기 없이 상대방을 이긴다는 건 꽤나 불리한 일이었으므로.

‘그래도 그대로 질 순 없으니 방법을 많이 연구해 봐야겠지. 마나장비 이용방안이라던가. 하다못해, 총을 제외한 무기를 이제라도 채용한다던가…….’

고민이 깊어졌다. 이제와서 다시 무기를 사용한다는 건 또 미묘한가?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김도준한테만 정체를 밝히고, 내 행세를 하도록 맡겨뒀는데. 잘 하고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어차피 이젠 김도준이 익숙해져서 무슨 행동을 하든 별로 놀랄 것 같지는 않긴 했다.

행동하는 게 워낙 뻔해서, 이젠 무슨 상황에 걔가 무슨 행동을 할지조차 다 훤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랭크전을 끝내고 대기실로 나갔는데.

기자들이 무언가 평소보다 훨씬 많이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인터뷰도. 대답도 거절하고 있어서, 지금껏 기자들이 별로 몰리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기자들이 한 첫 질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곧바로 알 수 있었으니까.

“이창현 선수가 1대1 대결을 제안했는데, 받아들이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저번 이창현 선수가 NGU전에서 주먹으로 사람이나 때려패는 무뢰한이라고 발언했는데, 이에 대해 반박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박주한 선수의 발언으로 이창현 선수와 무력으로 비교되는 경우가 잦아졌는데, 이창현 선수와 랭크전 룰로 비교하면 누가 더 강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자들의 질문이 봇물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