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제안
MVP 인터뷰를 끝낸 후, 대기실에 돌아왔을 때의 분위기도 가관이었다.
하필이면 오늘은 일이 없어 함께 경기장에 왔던 이정훈이, 그 인터뷰를 보고 맞장구를 치며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니 글쎄. 제가 저번에 말했었잖아요. 꽤 하긴 한다고. 그런데 갑자기 거기에 왜 창현이 형을 붙이는지 참. 저 박주한? 인가 하는 사람 진짜 웃기네요.”
“그렇긴 해. 창현이가 주먹으로 사람 두들겨 패는 걸 상상을 못하겠네.”
“저희 창현이 형을 뭘로 보고 하는 말인지. 싸울 때도 딱딱 각이 살아있게, 엘레강스하게 뭐 하나 안 묻히고 깔끔하게 전투를 마무리 짓는데. 실력은 비교할 것도 없고. 진짜 그 사람…… 아무튼 마음에 안 들어요.”
……열심히 박주한과 함께 내 욕을 하고 있었다.
‘내 이미지가 그런 이미지였나?’
뭐 싸우는데, 상대를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지. 엘레강스하고 깔끔하고 뭐고가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정훈의 이미지에는 꽤나 중요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내 기척이 느껴지자, 대기실에 있는 팀원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올~ 야만적으로 싸우는 누구랑 다르게 엘라강스하고 화려한 테크닉으로 싸우는 창현이 아니야.”
한지수가 낄낄거리고 있었다.
내 입으로 엘레강스하다고 한 적은 없는데, 어째 오피셜이 된 분위기였다.
나는 그런 시정잡배 같은 무투를 하지 않는다. 뭐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걸까.
‘뭐…… 내 잘못도 있긴 한데.’
이미 결정을 내리고 인터뷰를 한 이상 무를 수는 없었기에. 이대로 가는 수밖에.
“허 참. 나로서는 좀 어이가 없네. 내가 랭크전을 하면 딱 당당하게 얼굴 까고, 무기도 다 까고 하겠지. 박주한인가 뭔가 하는 애 때문에 인터뷰하는데 당황했네.”
“그렇긴 해. 굳이 창현이가 체술을 연습하거나 새로운 전술로 준비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분위기가 박주한이 혼자 이상한 말을 한 걸로 적당히 덮어지는 분위기였는데……
김도준이 갑작스레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근데 그거 진짜 이창현이면 좀 쩔겠네.”
어이가 없어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김도준을 쳐다보았다.
천연 관종인 녀석이기에, 다른 사람의 이상행동을 잘 눈치채기라도 하는 것일까?
내 눈초리가 질책의 눈초리라고 생각했는지, 김도준은 변명을 이어갔다.
“아니 것도 그럴게. 그게 진짜 창현이면 팀에 개이득 아니야? 막 1부 올라와서 팀 인지도도 낮고 팬도 적은데. 화제성으로 인기몰이도 좀 하고. 로망도 좀 있을 것 같은데.
딱 이제, 총이라는 무기와 화려한 무기술. 테크니션으로 최고로 기대받는 선수가, 그런 걸 하나도 안 쓰고 랭크전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경기에 가면을 벗고 딱 공개해 버려?”
김도준이 혼자 망상을 지껄이면서 캬~ 하면서 의문 모를 감탄사를 내뱉었다.
“약간 음습하긴 하지만 팬들은 완전 좋아할 것 같은데. 내가 이창현이면, 무조건 했을 것 같은데…….”
이 녀석. 위험하다. 저런 의도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내가 대충 기획한 시나리오랑 거의 다 들어맞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거의 예언자 수준으로.
그래서 순간 입도 벙끗 못하고 있는 순간.
“도준아. 그래, 백번 양보해서 네 말처럼 좀 그런 게 있을 수는 있는데…… 상식적으로. 창현이가 정신분열 다중이 짓을 하면서, 인터뷰에서는 셀프디스하는 그런 관종 짓을 하겠냐? 너라면 몰라도.”
윤한결이 김도준에게 일침을 가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도 딜이 들어오는 것 같지. 분명 원대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마치 김도준과 다를 바 없는, 아니 더 악질인 관심종자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양심에 찔리는 상황과는 다르게, 입은 바쁘게 이성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한결이 말이 맞다. 내가 요새 너희 랭크전 돌릴 동안에 얼굴 안 비췄다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줄이야. 앞으로는 무서워서 쉬지도 못하겠네. 이제 경기도 끝났는데 잡담은 그만하고 가자.”
대화는 거기서 끝이었다.
물론, 이제 당분간 경기가 없었기에. PER선수들은 다시금 랭크전 훈련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정이 있었지만.
***
박주한의 의혹제기에 대해서 나는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강한 단어를 써 가며 반박했지만, 의혹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PER팀원에게 직접 기자가 취재한 결과, PER팀원들이 모두 랭크전을 돌릴 동안 자리를 비웠다는 점. 그리고 고도의 마나장비 활용능력. 그리고 비슷한 키 등등……
진짜 동일인물인 것 아니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선지, 숙소에서 쉬고 있을 때 심지어 이런 연락까지 받았다.
[이민석] : 창현아 ㅋㅋ 그러게 왜 사람들을 주먹으로 팼어
과거엔 헌터 오디션에서 심사위원과 지원자 관계였지만, 이제 형 동생 사이가 된 이민석.
다른 나라의 리그에서 뛰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도, 한국에서 화제가 되는 인터뷰 내용을 봤는지, 저런 문자를 보내온 것이었다.
‘하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사람들이 다 계속 주시하게 된다면 진짜로 들키게 되는 게 시간문제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나중에는 결국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 밝혀지는 건 타이밍이 너무 안 좋았다.
아직 무언가 원하는 점수를 달성하지도 못했고, 지금 공개되었다가는 관심 종자 프레임이 씌워지기 딱 좋았으니까.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방법을 강구해야만 할 때였다.
***
때는 문제의 박주한과 이창현의 인터뷰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랭크전에 1부리그에서 이어져 온 이슈로 한창 관심이 집중되었던 시기.
랭크전을 하러 헌터 연합 훈련소에 온 팀 PER에 대한 관심은 전보다도 훨씬 뜨거웠다.
“팀 PER에서 랭크전으로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두고 계신 윤한결 선수 맞으시죠?”
기자가 온 곳에서 몰려서 들러붙을 만큼.
“이창현 선수는 없네요. 저번에 그 가면을 쓰고 랭크전에서 기행을 벌이는 선수가 이창현 선수라는 발언을 박주한 선수가 했는데, 같은 PER 팀원으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간 복작복작하고 시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보통 같으면 이곳 랭크전 대기실은 관계자들만 있고, 평온하게 남의 경기를 지켜보거나 대결을 기다리는 장소였을 텐데.
‘연쇄 폭탄마’라는 이명을 지니기도 한 이민솔로서는 눈엣가시였다.
‘그깟 정체를 숨긴 게 뭐 대수라고.’
그 녀석 외에도 랭크전에는 정체를 숨기고 하는 녀석들이 많은데.
그깟, 무기 하나 사용하지 않고 체술만으로 올리는 관종짓 만으로 이렇게 화제가 되다니.
다른 선수들은 뒷전으로 밀린 것 같아 기분이 별로였다.
하필 그 선수의 정체라고 거론되는 대상이, 이창현인 것 또한 불편했고.
‘흥.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확실히 경기 보니까 좀 잘하긴 하던데.’
과거에 저평가했던 이민솔로서는 무언가, 잘못을 한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그런 것이 있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민솔 자신도 4천점 후반대인데,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다 남에게 뺐겨 그다지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보아하니, 그 가면의 체술남도 이창현이 자신에게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술수를 쓴 모양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투덜거리던 중.
너무 생각에 잠겼던 것일까, 누군가와 부딪혔다.
“아…… 씨!”
이민솔의 성질이 터져나오려던 순간. 얼굴을 올려다보니, 다름아닌 이창현이었다.
순간적으로 얼굴을 보자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음…… 그런데 뭔가 평소랑 분위기가 다르네.’
평소엔 좀 더 오만하고, 위풍당당하면서 내리깔보는 이미지였는데.
그래도 뭐 어떤가. 다른 사람일 리가 없었다. 또 금방 부딪힌 것에 대한 사과를 걸어왔다.
“아, 미안합니다.”
“……네.”
하지만 진짜는 그 다음이었다.
부딪히고 난 후, 다시 가려고 했던 길로 걸음을 옮기니, 그 앞에 그 유명한 가면남이 경기를 펼치는 게 라이브로 중계되고 있었으므로.
‘뭐야…… 쟤가 이창현이 아니었던 거야?’
이민솔은 내심 저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놀랄 수밖에.
그 반응은 비단 이민솔만의 것이 아니었다.
한참 그 가면남의 랭크전이 화면에 나오고 있는데, 이창현이 랭크전 대기실의 중앙을 가로지르자, 마치 패션쇼에서 워킹하는 곳을 주목하듯 시선이 쏟아졌다.
“아…… 이창현 선수.”
어느 기자는 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나지막이 이창현의 이름만을 부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평소에 랭크전을 하지 않고, 대기실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이창현이 나타났다는 것. 그것 또한 화제거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마침 잘됐다고 생각한 기자들의 질문세례가 쏟아졌다.
“이창현 선수! 원래 랭크전에는 관심이 없고, 대기실에도 잘 구경하러 오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오늘은 무슨 용무로 오신 건가요?”
“역시 저번 인터뷰에서 화제가 되었던, 박주한 선수의 발언 때문일까요?”
“저번 인터뷰에서 화제가 되는 가면을 쓰고 체술만으로 랭크를 올리는 선수에게 지는 것이 한심하다고 발언하셨는데요, 오늘 대기실에 온 건 직접 꺾으러 왔다는 의지의 표명이신가요?”
이창현은 수많은 질문세례에 질렸다는 듯, 한 번 한심하게 쳐다보고는 신중히 말을 고르려는 듯 입을 닫았다.
‘그런데 이창현 녀석…… 왜 저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지? 자신이 아닌데 동일시 되어서 헛소문에 끌려 나온 거면 조금 불쾌한 상황 아닌가.’
미묘하게 좋은지 웃음을 참으려는 듯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렇게 한 숨을 돌린 것도 잠시.
이창현이 이윽고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일갈했다.
“조용.”
역시 평소와는 무언가 조금은 다른 분위기. 하지만 그 묘한 분위기가 잘 맞물려 들어가서인지,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질문이 너무 많아서 답을 하지 못하겠군요.”
대부분의 기자. 아니 이민솔이나 PER의 팀원들까지도 이창현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대화의 주도권이 확실히 자신에게 있다는 걸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우선. 대부분의 의혹은 사실 저번 MVP인터뷰 때 답한 걸로 압니다.”
기자들이 움찔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말을 듣고 물러갈 기자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이창현 선수가 랭크전 대기실에 나타나는 등 이례적인 행보를 하고 있는 건 틀림없 ㅡ.”
“그만.”
이창현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치고 들어오는 기자의 질문을 사전에 차단한 것이었다.
‘묘하게 즐기는 것 같네…….’
이민솔은 어이가 없었지만, 저렇게 모든 기자가 질문하면 난장판이 되는 것은 눈에 선했기에.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여러분이 또 한 가지. 궁금해하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설마…….’
“저는 누군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데, 저번의 인터뷰 이후로, 그 가면을 쓴 랭크전 참가자와 많이 비교하시더군요. 뭐, 제가 그 사람한테 랭크전을 진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한 말 때문이겠지만…… 지금까지 무패라고 알고 있습니다.”
‘관심이 없다더니 무패인 건 잘도 알고 있네.’
“저는 결자해지의 차원으로, 그리고 제 말을 증명하기 위해. 가면을 쓴 랭크전 참가자에게 랭크전 룰로 1대1을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