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예상 밖의 흐름
PER. 확실히 기세가 심상치 않은 팀이었다. 최근 경기도 그렇고, 분석가에 따라서는 PER의 우세를 점치기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헌터스 리그의 제일 좋은 점은 길고 짧은 점은 대봐야 안다는 것이겠지.’
박주한은 씨익 웃었다.
이 경기. NGU의 새로운 에이스를 알릴 경기가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대기실에서의 한치의 떨림도 없이, 당당함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
[캐스터] : 이렇게 경기가 끝이 납니다!! 꽤나 치열한 접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는데,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해설자] : 아무래도 에이스 간 대결에서 이창현 선수가 상대를 압도한 것이 컸으리라고 봅니다. 그 싸움의 승패가 팀대 팀 대결의 균형을 무너뜨렸어요.
하지만, 너무 순간적이기도 하고 맵의 특성상, 아공간으로 이동되어 전투가 이뤄져 볼 수 없었던 게 너무 아쉽네요.
헌터스 리그도 이런 부분이 개선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
뭐지. 다짐을 한 다음, 분명 경기에 들어가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렇게 처참할 수가 있나?’
박주한은 어이가 없어졌다.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고 생각한 경기였는데.
아니, 그것보다도. 그거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이창현 그 새끼…… 걔잖아? 랭크전에서 만났던…….’
맵의 특성상 갑작스레 아공간이 펼쳐지며 둘만의 1대1이 펼쳐졌던 때가 다시 새록새록 기억났다.
‘어……? 쳇. 하필이면 갑작스레 아공간이 열리다니. 이러면 팀원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은 버티자는 생각을 했었다. 이창현의 데이터는 아무리 2부와 3부에서 쌓았다고는 한들 말도 안 되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그 녀석이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었다.
“헌터스 리그라는 거. 생각보다 기술이 덜 발전한 거 알아?”
“……?”
“예를 들면, 이 맵에서 차원 폭풍에 휘말려 만들어진 아공간은 지형의 특성이 그대로 재현되는 1부 리그 특성상. 경기장 바깥에 송출이 안 돼.”
그런 이슈가 있었나.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건 보는 사람들이나 신경 쓰는 이슈이고, 선수에게는 상관없는 이슈였으니까.
‘별 잡다한 걸 알고 있는 녀석이군.’
그런데, 아무래도 녀석에겐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요새 시험해보고 있는 게 있는데 말이야…… 그게 실전에선 또 써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실전에서 안 써보기도 좀 그런데. 이런 기회가 또 오다니, 좀 운이 좋다고 생각해.”
혼잣말만 잔뜩. 시간을 끌려고 하는 내 입장으로서는 좋았다.
그런데.
녀석이 움직이자, 그 영문 모를 말들이 무슨 말인지.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말을 멈추고 에어비트와 에어앵커를 다뤄 미친 듯한 변칙성으로 다가오는 녀석. 그 녀석이 무기도 없이 무릎으로 머리를 찍을 때.
완전히 저번에 랭크전을 돌릴 때, 가면을 쓰고 무기 없이 맨몸으로 상대를 때려눕히던 녀석의 움직임과 그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이 새끼. 저번에 랭크전에서 때려팼… ㄷ…….’
의식은 거기까지였다.
그 가면의 녀석이 이창현이었을 줄이야.
총이라는 헌터들 중 가장 특수성 있고, 유용한 무기를 다루는 녀석이 그런 기행을 벌일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처음 느꼈던 것은 어이없음. 그리고 충격. 그리고 날 일개 시험대상으로 썼다는 데에서 오는 분노.
‘이대로 당해줄 수만은 없지.’
박주한은 그 짜증 나는 녀석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물론 경기는 끝났지만, 그 녀석이 아마 바라지 않을 방식으로.
***
1부는 승자 인터뷰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방송으로 송출되지는 않지만, 기자들이 인터뷰룸에서 잔뜩 기다리고 있고, 패자에게도 기삿거리를 쓰기 위해 인터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보통 패인은 무엇이라고 분석하는지. 다음 경기에 임하는 각오라던지…… 그런 것들을 묻지만.
이번 경우에는 조금 다를 터.
차원 폭풍에 휘말려, 방송에 송출되지 못한 이창현과 내가 들어갔던 그때에 대해 아마 물어보리라.
‘그리고 그때 녀석의 정체를 다 까발려버리는 거야.’
가면을 쓰고 한다는 건, 뭔가 들키지 않고 싶은 이유가 있다는 것일 텐데…… 그게 남에 의해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들킨다? 그게 제일 이창현으로서 원하지 않는 일일 테니까.
경기도 끝난 마당이니까.
절대로, 랭크전에서 모욕적으로 쳐맞아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적을 X같게 만드는 건 크게 봐서 전략적으로도 옳으니까.
“박주한 선수! 그래서 그 말씀이 틀림없나요? 최근 [랭크전]에서 주목받는 가면의 무투파가 이창현 선수라구요?”
“네. 틀림없습니다. 오늘 분 방송에 송출되지 못했던 그 1대1의 양상도 그랬습니다. [랭크전]에서 가면을 쓰고 컨셉질을 하는, 그 녀석이 틀림없어요. 솔직히 같은 선수로서 어린애들이나 할 법한 컨셉질을 하는 것 같아서 조금 이창현 선수는 어리구나ㅡ .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후후……
네가 절대로 원하는 대로 되진 않을 거다. 이창현.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큰 기삿거리를 건졌다고 생각했는지.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기쁜 얼굴로 노트북을 두드리곤 나가버렸다.
***
한편, 큰 고비 없이 이겨 여느 때처럼 좋은 분위기인 PER의 대기실.
“이번에는 [차원문]을 쓸 새도 없이 끝나버렸네. 우리 팀, 생각보다 너무 강한 것일지도?”
“우리 팀이 강하긴. 해설에서도 말했듯, 에이스 간 싸움을 압도적으로 이긴 탓이 크다. 자만하지 말고 계속 정진해라 김도준.”
예상대로 팀대 팀 대결은 [차원문]전략으로. 그리고 에이스 대결은 내가 이겨줌으로써 팀은 무난하게 순항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름이 나쁘지 않은데?’
김도준도 저렇게 실없는 말을 내뱉고 있긴 해도, 나름 준비 중인 것도 있긴 하고.
무엇보다 이번 경기에는 꽤나 소득이 있었다.
‘랭크전에서 계속 무기를 쓰지 않고, 실전 연습을 하다 보니 감이 확실히 전만큼 계속 날카로워지는 것 같은데.’
1부의 실전에서도 충분히 통할 정도.
그 시험무대로 상대도 너무 약하거나 하지 않고 충분했기에. 꽤나 마음에 들었다.
물론 시험할 수 있었던 건 맵이 따라줬던 덕이었다.
“이창현 선수 계실까요? 오늘 MVP 인터뷰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무언가를 숨기면서 한다는 것이 처음이라, 숨길 때는 조금 더 철저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그 후폭풍이 어떻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
인터뷰 무대에 서는 건 익숙한 일인데, 시작부터 무언가 미묘한 낌새가 느껴졌다. 묘하게 무대가 부산스럽고, 대본을 교체하는 것 같은 게, 평소랑은 조금 다른 느낌?
하지만 그때까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한참 인터뷰가 진행이 되던 도중. 그 문제의 질문이 나왔다.
[캐스터] : 아~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PER의 앞으로의 행보도 정말 기대됩니다. 아, 그런데 혹시 이번 경기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게 있는데요. 이창현 선수와 에이스 대결을 했던 박주한 선수가 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박주한이 인터뷰?’
문득 그 녀석이 직접 평소에 내가 쓰던 무기를 다루지 않고 때려패서 눕혔다는 사실을 말했나? 싶었지만. 굳이 그걸 말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기도 안 쓰는 헌터한테 털린 거는 수치이면 수치였지, 자랑거리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다른 팀의 전술을 자기만 알아챘을 때, 다른 팀도 볼 수 있는 인터뷰에서 말하는 건 현명한 행동이 아니니까.
나한테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말이지.
[캐스터] : 최근 [랭크전]에서 그 정체가 누구인지, 뜨거운 감자인 가면을 쓴 무투 헌터에 대한 이야기인데. 박주한 선수가 그 정체를 이창현 선수다! 하고 폭로했거든요.
실제로 차원 폭풍에 휘말려 1대1을 했을 당시, 이창현 선수가 그런 체술을 보여줬다고.
박주한 선수는 [랭크전]에서 직접 당했었기에, 확신하다는 인터뷰를 했거든요.
‘…….’
순간적으로 벙찔 수 밖에 없었다. 박주한? 누군지도 잘 기억 안 나는 앤데. 걔가 나랑 [랭크전]을 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수십판을 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상대가 얼마나 많은데,누가 그걸 다 일일히 기억하겠는가.
다만……
‘하필 [랭크전]에서 꺾은 적이 있는 녀석을 상대로 실전에서 시험했을 줄이야…….’
실책이었다. 그러면 확실히 동일인물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랭크전에 패배해서 나한테 악감정을 품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인정하는 것도 말도 안됐다.
아직 원하는 점수를 달성하지도. 전략적인 목표도. 그리고 팀원들을 골려주지도 못한 상태에서 정체를 밝힌다고?
그럴꺼면 처음부터 가면 안 쓰고, 무기랑 능력을 한껏 쓰면서 다 도륙내면서 올라갔겠지.
지금껏 해왔던 것이 모두 물거품이 되니까, 인정할 수 있을 리가.
[이창현] : ……제가요? 물론 이번에 체술을 약간 섞긴 했는데, 총으로 커버하지 못하는 1대1에는 체술이 약간 섞이는 건 맞습니다만…… 박주한 선수가 착각하신 모양이군요.
게다가 저희 PER의 경기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에단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헌터스 리그에서 총을 사용하는 사람인데. 총이라는 범용성 있고 좋은 무기를 버리고, 굳이? 주먹질로 사람을…… 때려팰 필요가 있을까요?
캐스터와 관중들이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아직 의심의 눈초리가 완전히 지워진 느낌은 아니긴 한데……
그럼 어쩔 수 없다.
[이창현] : 저도 그 가면의 랭크전 헌터를 봤는데. 솔직한 감상은 이겁니다. 도구는 인간을 더 강하게 하죠. 실제로 저는 제가 그 헌터랑 싸우면 백이면 백 다 이길 거라고 장담합니다.
괜히 무투파가 헌터계에서 사장된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굳이 주먹으로 때려눕힌다는 건, 순수히 무기 없이도 내가 너보다 낫다. 이런 거라도 말하고 싶은 모양인데.
솔직히 말해서……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생각합니다.
뜻하지 않게 무지막지한 셀프 디스를 해버렸다.
이것 참 가슴이 아프구만.
나는 저런 걸 말하고 싶어서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닌데.
[캐스터] : 하핫! 굉장히 강한 자신감을 표출하셨습니다만, 그렇다면 향후 이창현 선수와 그 의문의 무투파 헌터와의 랭크전도 기대해볼 만 하겠군요.
[이창현] : 기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애초에 총 쓰는 사람이 마구 주먹질하는 사람한테 지는거 보신 적 있으십니까?
관중석에서 푸하하 ㅡ.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창현] : 그런 녀석한테 랭크전을 지는 사람들도 조금 한심하네요.
그래도 이쯤 되면 내가 그 가면의 인물이라고 의심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댓글은 가관이었지만.
[‘이창현’ : 주먹쓰는 길거리 왈패, 총으로 Shut out 시켜주겠다]
ㄴ 3천점 이하 모든 랭크전 헌터들 개같이 오열ㅋㅋㅋ
ㄴ 근데 이창현 말이 맞지. 무지성 주먹 돌격하는 애랑 미친 화려한 테크닉으로 예술적인 전투하는 이창현이랑 어떻게 비교함?
ㄴ 확실히. 이창현 입장에서는 한심하다고 할만 해.
[박주한헌터도 눈이 별로긴 하네. 그걸 헷갈리고.]
ㄴ ㄹㅇㄹㅇ 뭔 총잽이 헌터가 주먹질이여~
ㄴ 백번 양보해서 가면 쓰는 경우 전략 숨기려고 그러는 건데, 총이랑 기타 등등 무기까지 다 쓸 줄 아는 이창현이 그럴 이유가 있나 ㅋ
ㄴ 박주한 의문의 오열ㅋㅋㅋㅋㅋㅋ
ㄴ 팩트 : 그냥 이창현이 다 잘하는 건데, 총 쏘면서 섞어서 견제한 근접 격투보고 격투파로 오해하고 헛 저격함ㅋ
[근데 솔직히 랭크전도 즐겨보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도 로망있고 좀 쩔던데 ㅋㅋ]
ㄴ 이창현이랑 전투하면 가슴 웅장해질듯 ㅋㅋ
ㄴ 뭔ㅋ 인터뷰 안봄? 그냥 엘레강스하게 총 한방에 컷.
ㄴ 애초에 아직 점수도 탑급은 아님.
ㄴ 승률안봄? 그거 보면 이미 탑급이랑 같은 수준이다.
댓글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