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새로운 도전
이길한이 인터뷰를 끝내고 난 후, PER의 팀원들이 있는 대기실의 분위기는 가관이었다.
뭐라 말하고 싶긴 한데, 정작 말하는 사람은 누구 하나 없는. 그런 미묘한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말문을 연 건 이서희였다.
“길한 씨, 많이 힘들었죠? 고생했어요. 다들 박수~! 오늘 전술에서 길한 씨가 큰 일 해줬는데, 오늘 위로 파티라도 돌아가서 열어보죠?”
그래. 다들 마지못해 웃음을 짓는 그런 분위기였다.
박수치라고 하니까 어색한 웃음을 치며, 격려하는 분위기가 되었는데……
‘이게 뭘 하는건지…….’
그래도 힘들었다니까, 조금 칭찬해줄 필요는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긴 했다.
“고생했지. 이번에 혼자 집중포화를 맞아가면서까지 임무 완수했는데. 파티 까짓거 못할것도 없고. 어?”
그렇게 나름 이길한에게 맞춰주려는데, 꼭 이럴때 초를 치는 사람이 있는 법이었다.
“아니, 그거 연습 때 실수한 거 가볍게 웃은 것 가지고 뭘 사내새끼가 쪼잔하게 다 담아두고 있냐?”
김도준이 인터뷰 내용에 불만이 많았는지, 이 분위기에 딴지를 걸었다.
생각해보면 저것도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그 말이 맞다. 혼자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작전은 다른 팀원들이 한 적도 꽤나 많았다. 전에 이창현이랑 내가 듀오로 들어가서 전장을 휩쓸었던 때라던지. 흠흠.”
이번엔 류재준이었다. 이서희가 이길한을 위한 파티를 열자고 했던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근데 의도야 어찌 되었든 저것도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지금껏, 다양한 전술을 펼치면서, 힘들었던 선수는 이길한뿐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흠흠…….”
이길한이 뒤늦게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알았는지 덮어보려고 말을 꺼냈지만……
“……맞아. 혼자 들어간 걸로 치면, 지금까지 창현이가 해준 게 얼마야. 그런 걸로 쌓아두고 서운하면…… 창현이는 얼마나 서운하겠어…… 지금껏 1대4도 아니고 싸운 적도 있었는데. 창현이한테 서운하다니.”
몇 안되는 이길한의 우군이라고 생각했던, PER의 원년멤버 이연주까지도 등을 돌려버렸다.
그렇게 이길한이 ‘등치는 산처럼 커서 쌓아두고 있는 쪼잔한 놈’으로 몰리는 사이.
한지수가 내뱉은 한 마디가 트리거가 되어 터져버렸다.
“고마운 줄 모르는 녀석같은데. 그냥 한 번 멍석말이라도 해버리죠?”
“그게…… 그게 아니라.”
그 다음은 뻔했다.
우리 팀 홈도 아니고, 바깥에 있는 경기장 숙소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뻔뻔하게.
PER의 대기실에서는 멍석말이를 두들기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섞여 울려퍼졌다.
‘나 참…… 언제부터 우리 팀이 이렇게 된 건지…….’
원래는 좀 진중하고, 파이팅 하는 팀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좀 바뀐 것 같다.
뭐, 그건 그거고. 생각해보니 이번엔 애들이 한 말이 맞는 것 같긴 했다.
‘나도 굳이…… 참을? 필요는…….’
“이럴 때 또 두들기는 맛이 각별하지. 안 그래?”
“그렇긴 해.”
“대기실 밖에 사람 없어요?!! 여기 각성자들이 사람 패고있어요!”
이길한이 소리쳐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이제부터 엄살쟁이는 참교육. 이게 PER의 원칙이 되리라.
***
시끌벅적했던 YYG와의 경기가 끝나고, 1부 팀들은 각자 1경기를 끝내고 대략적인 순위가 나왔다.
첫 주차에 승리를 거둬 공동1등인 5개의 팀과, 1패를 쌓은 나머지 팀들.
물론 앞으로 남은 경기가 워낙 많았기에, 지금 순위는 그리 큰 의미가 없지만……
‘그래도 출발은 나쁘지 않아.’
그리고 당분간 앞으로의 대진도 그렇게 크게 위협적인 것은 없어 보였다.
예의주시하고 있는 팀이 몇 있지만, 그 팀들과의 대진은 좀 시간이 남아 있었으므로.
무엇보다, 지금 세간에서 가장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게 우리 팀이기도 했고.
‘차원문과 분신의 조합. 그리고 차원문을 열었을 때 강력하게 타격을 줄 수 있는 전술들까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 당장 나온 전술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특히 이번 PER의 전술은 완성도가 상당히 높았으므로.
그 말은 즉, 당분간 시간이 남는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남는 시간 동안 시즌 중에 휴가라도 주겠다는 말은 아니겠고……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회의실에 두런두런 앉아있는 팀원들 중, 한지수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 그걸 굳이 입으로 말해야 알겠어? 이번에 이길한이 분신을 쓰는 걸 보고 느낀 바 없어?”
“분신……?”
이렇게 말해도 아직 감이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꿰뚫는 눈]을 가진 나와는 다르게 녀석들은 상대방의 능력을 볼 수 없으니까.
“어떻게 이길한이 갑자기 새 능력을 얻었을까?”
그래도 이렇게 말하니 알아들었던 것일지, 다들 눈빛이 달라졌다.
하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건 알아듣겠지.
“[가능성을 닫는 함]. 기억 나?”
그 일이 있었던 이후에 합류했던 이서현이나 이성태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나머지 PER 팀원들의 경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이근택 회장이 좋은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는데 아직 대다수는 효과를 보지 못했던 그 유물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나름대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서 알아봤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새 능력을 개화시키기 위해서는 팀에 맞춘 전술이나 개인의 필요를 찾기보다는, 개인적인 훈련이 이야기.
도드라져야 한다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그 변화를 못 찾거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물론 [꿰뚫는 눈]으로 새롭게 개화 가능한 잠재능력까지도 볼 수 있었지만, 아직은 다른 녀석들에게 그런 낌새가 보이진 않았다.
아무 변화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 확실하게 명시적인 잠재능력이 생기지는 않는 상황.
이럴 때의 답은 ㅡ.
“그러니까, 개개인의 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당분간은 팀 연습보다는 개인 연습. 그중에서도 ‘랭크전’에 돌입해볼까 하는데.”
뻔하게도, 개인연습이다.
***
정규시즌이라고 정규리그의 경기만 치르는 것은 아니었다. 숙소생활을 하고, 경기에 할애하는 시간도 분명 있지만 그 외의 시간도 충분히 많이 있었다.
보통은 이 시간에 다른 팀과 연습경기를 잡으며 새로운 전략을 시험하거나, 팀의 합을 맞춘다던지. 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 가장 큰 성장 가능성을 앞두고, 당장은 탄탄한 전술을 되돌아볼 필요는 없었기에.
“도착했다. 내리자.”
평소와는 달리 팀 연습을 잡기보다는, 예고했던 대로 ‘랭크전’을 할 수 있는 헌터 연합훈련소에 도착해 있었다.
“와…… 이건 좀 오랜만이네.”
윤한결이나, 이성태같은 테크니션이면서, 개인의 날카로움을 갈고닦아 유지시켜야 하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꽤나 소홀했던 분야이기도 했다.
막말로 이연주같은 타입은 개인 대 개인으로 싸우는 시점에서 상당히 암울한 상황이 맞았으니까.
3부 때도 온 적이 있는 헌터 연합훈련소의 랭크전 대기실.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지만, 워낙 오랜만에 온 녀석들이 많아서 그런가. 긴장을 조금 한 모습이었다.
‘물론, 여기서 한두 시간 있으면서 계속 1대1을 하다 보면 풀리겠지만.’
재미있는 점은, 1부 선수들의 경우 자신이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전략이 들통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적당히 다른 사람인 척 분장하면서 랭크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아닌 선수들도 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연습하는 선수들일수록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다.
“아무튼, 당분간은 개인 연습이야. 봐달라는 부분은 같이 온 코치님이 봐 주실 거니까, 코치님한테 묻고. 그럼 해산!”
오랜만에 직접 하나하나 봐주고 코칭해주는 연습이 아니라, 시간이 좀 날 것 같았다.
랭크전 시간이 부족했는지 빠르게 먼저 달려가 상대를 매칭하고 있는 윤한결.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윤한결은 별로 상대하기 싫은지, 윤한결의 매칭상태를 확인하며 기다리고 있는 이성태.
1대1은 특기가 아니라 하기 싫었는지 눈치를 보는 이연주 등등……
각자의 모습으로, 기량을 늘리다 보면. 분명 [꿰뚫는 눈]에 각자 새 잠재능력이 발견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길한처럼, 새로운 능력이 나오면 아마 지금보다도 전술적으로 훨씬 풍요로운 팀이 될 터이니, 국제리그에서도 꽤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평소처럼 안 봐주면. 너는 그냥 앉아서 애들 감독이나 하게?”
옆에 앉아서 있던 이종규 코치가 물끄러미 말을 걸어왔다.
‘음…….’
사실 내 경우에는 [가능성을 닫는 함]의 효험을 이미 봐서, 따로 누군가와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필요는 없긴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엔 그렇게 시간이 남는다고 굳이 애들을 봐줄 필요도 없었다.
‘피드백은 이미 줄 만큼 주기도 했고…… 개개인이 새 가능성을 찾는 과정이니까, 그 과정은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애초에 스스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고.
그럼 남는 이 시간에 뭘 해야 하는가…… 팀원들을 가르치고, 상대팀들을 분석하느라 항상 시간을 써 왔기에, 무엇을 해야 하나 순간적으로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게 애초에 고민인 게 이상했다.
‘그럼 내 개인훈련을 해야지.’
원래 당연한 이야기인데, 워낙 앞서서 내려다보던 입장이었기에 망각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장소를 떠나는 건 조금 그러니까.
‘같이 랭크전이나 해 볼까.’
“코치님. 저도 이렇게 된 거, 랭크전이나 조금 하다가 오죠. 시간도 남는데. 어차피 저도 선수 아니겠어요?”
“어…… 응. 그렇지. 그러고보니 평소에 너무 잘해줘서 생각을 못했는데, 네가 요새 개인연습하는 걸 본 적이 없네. 이젠 창현이 네가 빠지면 안 되는 팀이 되어버렸는데, 모처럼이니까 알차게 시간 쓰고 와.”
“네. 그럴려구요.”
***
‘랭크전’의 특징과 문화는 다른 룰에 비해 꽤나 독특했다. 정규리그는 당연하고, 3대3 미니 헌터스 리그나 헌터 서바이벌과도 꽤나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 제일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블라인드 매치가 잦게 일어난다는 점이려나.’
비슷한 점수대의 상대를 만나는 것은 알지만, 앞서 말했듯. 새로 연습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키지 않게끔. 마치 가면 무도회처럼 서로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낮은 점수대라고 무조건 못하는 선수가 있는 건 아니고, 잘하는 선수인데도 잘 못하는 것을 연습하느라 점수가 낮은 경우도 허다했다.
또한 이게 재미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을 속이면서, 순위를 올려 조명을 받는 건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으니까.
가면을 쓰는 건 누구인지 들키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니만큼,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는 기술을 쓰는 것도 어렵다.
즉, 자신의 주 특기를 봉쇄한 채. 다른 사람인 척. 일종의 롤 플레잉을 즐길 수 있으니 색다른 재미가 있달까.
‘회귀전에는 막 데뷔하고 나서, [만개]의 능력으로 개화한 능력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이번엔 가면을 쓰고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이번 랭크전이 나에게 있어서는…… 그래. 가면 무도회정도의 컨셉이 아닐까.
그렇게 시시한 가면을 쓴 채, 매칭을 돌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