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여러모로 꼬여버린
막 경기가 끝난 이후, 한참 바깥이 시끄러웠다.
[마지막에 이상한 촉수괴물같은 거 다 베어버린 거 뭐임?]
ㄴ 총쏘는 애 아니었나? 칼 다루는 것도 말도 안 되네.
ㄴ 더 웃긴 건 검 날리는 애 공격은 박히지도 않음.
ㄴ PER을 몰라? PER은 무적이고 이창현은 신이다.
ㄴ 네 다음 듣보팀.
마지막에 상대가 준비한 함정을 힘으로 누른 것이 인상적이었던 것일까.
다들 그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면만 따지고 보면, 이번엔 이길한이 상대의 집중포화를 분신으로 견디고 차원문을 여는 게 가장 멋지긴 했어.’
칼로 무언가를 멋있게 슥슥 잘라버리는 건, 헌터스 리그에서는 흔하다면 흔하게 나오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번 전략은 그렇지 않으리라.
[차원문]이라는 능력 자체가 희소한데, 거기에 그 단점을 덮으려고 분신을 엄청나게 생성해 달려든다?
각 팀마다 독특한 시그니쳐 전술이 있었지만, 이런 거랑 비슷한 전술은 거의 없었으니까.
MVP가 나온다면 아마 이길한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번에 이길한이 MVP가 되면…… 이게 처음인가?’
아까 딜러의 기분이니 뭐니 하더니. 오늘은 정말 이길한에게 특별한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두들기고 들어온 스태프가 이길한을 찾았다.
“네 저요?”
이길한이 어벙하게 정신 못 차리는 걸 보니, 아마 오늘 인터뷰는 멀쩡한 게 나오지는 않을 것 같다.
***
처음 스태프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내가 돌입할 때는, 이 경기 최고의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꼽히리라고 생각했지만.
후에 이어진 이창현의 모습이 더 압도적이었으니까.
‘상대가 준비한 거대한 함정을 힘으로 찍어눌러서 무마시켜버렸는데, 이걸 내가 MVP가 된다고?’
의아함 반. 그리고…… 긴장감이 반이었다.
지금껏 MVP인터뷰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대답을 준비해 놓는 건데.’
가장 오래 있었던 리그는 3부. 그것도 무승이라 거기에선 애초에 MVP에 대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고, 이창현의 팀에 오고 나서도 거의 MVP는 딜러진이 먹었으니까.
조금 의외라면 이연주가 MVP를 받았을 때인데, 그때는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물론 그 인터뷰 내용은 빼고.
‘그때, 이연주가 앞으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속박해서 자빠뜨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던가?’
그때는 대기실에서 보고있는 내 얼굴까지 화끈거렸던 것 같은데.
당시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는지, 뒤늦게 이불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나는 절대 그런 실수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스태프가 부른 방향을 향해 걸어나갔다.
뚜벅. 뚜벅……
그런데 한 걸음 한 걸음 복도에서 바깥에 가까워질수록. 말도 안 되게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려퍼졌다.
3부나 2부 때랑은 비교도 할 수 없는 인파였다.
그땐 경기장에 있는 관중석도 비어있는 곳이 더 많았는데. 지금은 관중석에 빈자리는 무슨. 서서 보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두근거림과 극한의 긴장감이 공존했다.
‘으…… 떨린다.’
그 순간.
[캐스터] : 안녕하세요!!
상상도 못하게 큰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무대가 크고, 사람들이 많아서 이렇게 설정이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뒤에서 불쑥 나타나면서 캐스터가 그런 인사를 건넸다는 말이었다.
“끼얏!”
순간적으로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 버렸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반응이 왤캐 여고생같냐 ㅋㅋㅋㅋ]
ㄴ ㄹㅇ 목소리듣고 깜짝 놀람. 저 덩치에 저런 목소리가 나오나 ㅋㅋㅋ
ㄴ 사실 여고생이 본체일지도 모름. 저 덩치는 사실 조종중인 AI인형 같은 거지.
ㄴ아니 ㅋㅋㅋ 소리도 웃긴데 덩치가 산만 한데 몸 움츠리는 거 넘 귀엽고
처음 보는 신인인데, 첫인상이나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에 비해 드러난 모습이 상반되어서 그런 걸까.
관중석에서도 웃음이 쏟아져나왔다.
‘이런…… 시작부터 좋지 않은데.’
한 가지 말하자면, 나는 전혀 여성스럽다거나, 소심하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러다 진짜 잘못하면 이연주처럼 이상한 어록을 남겨 박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젠장…… 집중해야 한다.’
[캐스터] : 이길한 선수! 이번 1부리그 정규시즌에 첫 참가. 그 시작부터 MVP를 받으셨는데 소감 한 마디 들어보겠습니다.
신중하게, 한 마디 한 마디. 철저하게 반응을 생각하고 의미를 담아서 말하는 거다.
마음을 굳게 다지고 입을 열었다.
[이길한] : 음…… 우선은 첫 MVP라 기분이 너무 좋고…… 그…… 지금까지 많이 도와준……PER의 감독이자 선수 창현이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좋아. 문제가 될 만한 말은 없다.’
인터뷰라는 거, 생각보다 쉬울지도?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불티나게 올라오는 채팅창과 관중석의 반응이 뭔가 이상했다.
[아니 저 신인 말하는 거 나만 웃김? 왜캐 부끄러워하면서 말하냐고~]
ㄴ ㄹㅇ 여고생인 듯. 왜캐 수줍게 말함 ㅋㅋ
ㄴ 창현이한테.. 고맙다는 말을……(이하생략)ㅋㅋㅋㅋㅋㅋㅋ
ㄴ 그것도 그건데, 저 큰 덩치에, 두 손으로 수줍게 모아서 마이크 든 거 왜캐 웃기지 ㅋㅋ
ㄴ ㄹㅇ 쉽지않네……
‘뭐야. 이것도 안 되는 거야?’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랑 다르게 신중하고 어휘를 골라서, 겸손한 자세로 한 건데.
아닌가? 평소랑 다르게 너무 신경 써서 생긴 문제인가?
머리 속이 뒤죽박죽으로 꼬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캐스터] : 그럼 이제 경기 이야기 간단하게 해 보겠습니다. 이번 전술의 경우, 대인원이 이동할 수 있는 포탈을 여는 역할을 이길한 선수가 맡았습니다.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긴장이 되었을 것 같은데. 힘들었던 점은 없나요?
힘들었던 점?
뭐 따지자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길한] : 없어요.
[캐스터] : 네?
[이길한] : 없다구요.
아. 아닌가? 이 대답이 아닌 건가?
조금 뭔가 적당한 대답을 하려고 했을 때 항상 미묘하게 반응이 엇갈리는 것 같아서, 내가 평소에 했을 법한 대답으로 한 건데.
갑자기 정적이 흐르니, 등 뒤에서 미칠 듯이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이라도 커버해야 해.
힘들었던 점. 그래, 힘들었던 점을.
[이길한] : 랄까…… 농담이고. 음……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진짜 힘들었습니다. 원래 마나훈련도 안 시켰으면서 갑작스럽게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게 마나훈련을 새 스케줄에 넣는 이창현이나, 옆에서 제대로 못 다루는 저를 보고 낄낄거리면서 놀려댔던 김도준이나 그건 어쨌든 새로운 저의 가능성을 발견해서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저를 혼자 미끼로 넣는답시고 고독하고 힘든 자리에 몰아넣었던 이창현이나 뭐 아무튼 그래서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까지 닥쳤던 것이나. 사실 [차원문]열 때 분신 능력을 쓰는 것도 창현이의 오더가 떨어지지 않으면 쓰지 않기로 했던 건데. 그럼 또 저만 개죽음 당했을 것 같은데, 그걸 상상했을 때의 두려움이나…………
[캐스터] : 아…… 네. 정말 어려움이 많으셨군요.
캐스터의 표정이 상당히 복잡미묘해 보였다.
아닌가? 이것도 원하는 대답이 아닌 거야?
대체 어떻게 답했어야 하는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물론 그것과 무관하게 이 경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었다.
[보통 저런 상황에, 힘들었던 일 있어요? 하면. ‘팀원이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어요.’라던가. ‘없어요.’ 하면 ‘원래 제가 하던 거니까요.’라던가. 대답하는데……저 미친 장문의 찐 서운함 뭐야 ㅋㅋㅋㅋ]
ㄴ 아니 솔직히 처음 힘든점 물었을 때, ‘없어요’ 단답한 거 보고 오~ 좀 멋진데 했는뎈ㅋㅋㅋㅋ
ㄴ 저거 찐텐인 게 두 번째 물어보고 나서, 갑자기 감정 북받쳐 올랐는지 랩하듯 팀원들한테 서운한 점 쏟아냄 ㅋㅋㅋ
[이번 경기 보면, ‘없어요’할 수 있을 리가 없지 ㅋㅋㅋ]
ㄴ 애초에 상대방 다 모이고 있고 이미 4명 모인 상황에 혼자 들어가라는데, 힘든 점이 ‘없어요’하나로 끝나면 미친놈이지 ㅋㅋ
ㄴ 하지만 그렇게 끝났으면 좀 멋질 뻔.
ㄴ 그런 일 절대 없죠?
ㄴ 근데 훈련 때부터 정말 사소한 것까지 다 서운한 점 이야기하는 거 보니 진짜 서운했나보다.
아니……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저렇게 생각했으면, 첫 인터뷰 답변으로 이창현한테 고맙게 생각했다는 말을 했겠는가.
별로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팀에서 가장 중요한 전술의 중심인물로 삼아줘서.
헌터스 리그의 흥분을 느낄 수 있게 해줘서 힘들기보다는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힘든 일이 없었다고 하려고 했던 것인데.
‘모르겠다 그냥…….’
이제 아무래도 좋으니,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망해버린 인터뷰였다.
[캐스터] : 그건 그렇고 이번 경기에서 특별한 능력 중 하나인 ‘분신’능력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셨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오늘처럼 새로운 전술에 대해 기대해보아도 좋을까요?
[이길한] : 네 그렇습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힘든 일이 많았던 만큼, 이제 앞으로의 경기에서는 그 울분을 토해 분신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일종의 미디어 아트 같은 거죠. 한 쪽은 하지도 못하는 마나훈련을 시켜서 혹사한 이창현을 패는 듯한 분신모형을, 또 다른 쪽은 갈구면서 낄낄거렸던 김도준의 배에 주먹을 꽂는 재현을. 뭐 그런 식으로……
어차피 잘못 잡혀버린 이 컨셉.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미친 뒤끝의 화신ㅋㅋㅋㅋ]
ㄴ이쯤되면 다음 인터뷰는 이창현, 김도준 불러서 공개사과랑 반성 받아야 하는 거 아님?
ㄴ분신으로 그 상황 재현해 박제하겠대 ㅋㅋㅋ
ㄴ생긴 건 상남자인데, 실은 속에 다 쌓아놓고 있네. 살면서 제일 두려운 게 저런 유형임……님들도 조심하셈.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
한편, 이길한의 인터뷰를 지켜보고 있는 PER의 대기실에서도 난리가 나 있었다.
특히 나름 선수 교육과 성장에 대해 최근 들어 많이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그렇게 힘들었나…….’
이길한은 힘들어했어도, 성장할 때마다 뿌듯해하면서 감사를 표했었던 것 같은데……
이런 게 반말하는 야자타임의 비극 같은 건가?
그리고 마지막 저 말 뭐야……
‘마나훈련을 시켜서 혹사한 이창현을 패는…….’
계급장을 떼고 한 번 붙자 이런 말인가?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는데……
약간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교감하고 있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창현~ 그러게 내가 애들 갈굴 때 살살 갈구라고 했잖아.”
한지수가 실실 웃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내가 갈구긴 뭘 갈궈.
‘이럴려고 애들 가르치고 영입해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이서현이 불현듯 말을 꺼냈다.
“확실히 제 [차원문]이 불완전해서, 저 전략을 맡는 사람이 좀 힘들긴 해요…… 길한 씨가 많이 힘들었던 모양인데, 길한 씨 오면 위로파티라도 할까요?”
그런가? 맞는 건가?
인터뷰 보면 확실히 칼을 갈았다 싶은 대답이긴 했는데.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