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기본기 싸움
[파동]이라…… 생각보다 훨씬 짜증 나는 능력이었다.
‘초감각을 가진 헌터들이 괜히 저 파동을 맞고 휘청이는 게 아니었나.’
이사랑은 쓴웃음을 지었다. 맷집이나 정신력은 헌터들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대론 버틸 수가 없다는 냉정한 판단이 섰으므로.
거기에 몸이 온전해도 이기기 힘들 것 같은데, 코치님이 막을 수 있는 비법과 전술까지 다 알려준 [차원문]을 막는 것도 실패했다.
그 여파로 지금 당장 여기에 있는 YYG의 팀원은 넷. 반대로 PER은 7명 전원.
빠져나갈 구석은 분명히 없었다.
“크큭…… 하아. [파동]이란 거 더럽게 울렁거리네. 근데 너희. 그거 알아? 헌터스 리그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여기가 [대수림]이라는 맵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랬겠지.
이사랑은 [피의 흐름] 능력을 이용해, [파동]으로 한 움큼 뱉어낼 수밖에 없었던 피를, 무기로 구체화시켰다.
가늘고 길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뾰족하게.
이 [대수림]은 언제나 대역전의 기회가 있다. 이 코치님과 매일 매일 스터디 하던 맵의 특성이 생각났다.
‘대수림의 바닥 땅 깊은 곳에는. 보통 어느 곳이든, 그 식물들이 먹잇감들을 기다리며 삼킬 준비를 마치고 있을 거야.’
그러니, 언제가 되었든.
질 것만 같을 때. [대수림] 맵이라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격을 땅바닥에 내리꽂도록 해.
그러면. 이 [대수림]의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땅 속에서 거대한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그라운드 이터’가 나타날 테니.
이 코치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은 가운데.
[파동]으로 여기저기 쏟아진 피가 모두 모여, 하나의 거대한 창으로 빚어졌다.
“다 같이 죽자.”
그 창은 이사랑이 디디고 서 있는 바닥에, 맹렬한 기세로 쏘아졌다.
키에에에에에엑 ㅡ !
전투의 국면이, 또다시 변했다.
***
아비규환.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마치, 1세대 헌터들이 직접 탑에 들어가서 공략하다가 극한의 어려움을 겪었던 과거를 재현하는 것만 같았다.
땅 속에서 살아서인지, 무척이나 단단한 경도의 껍질을 자랑하며, 수많은 촉수와 줄기에 달린 거대한 입이 채찍을 휘두르듯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자, PER 측에서도 대응하기 위해 진영을 구축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하나가 아닌가.’
한 놈도 벅차 보이는데, 밟고 있는 땅이 흔들리는 족족 녀석들이 올라왔다.
이사랑이 이쪽을 보면서 웃고 있었다.
“모든 전략에는, 그 전략의 실패했을 때의 플랜B가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 코치님이 한 말인데. 너희들한테 필요한 말 같아서.”
얄밉기는.
하지만 익숙한 전략이기도 했다.
과거 [헌터스 더 넥스트제네레이션] 당시. 이근택 회장과의 싸움을 벌일 때에, 나도 썼던 전략이었으니까.
전력이 급격히 기울어졌을 때, 맵의 특성에 기대는 것만큼 쉽고 강하게 뒤집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다양한 맵과 지형을 익히고, 그 특수성을 익히는 것이 헌터의 기본 소양인 것이겠지.
그래. 그건 ‘기본 소양’이다.
“창현아! 이 녀석들, 검으로 어찌저찌 막는 건 되어도, 베어지지가 않는데. 이대로 가다간 무조건 밀릴 거야.”
“식물 녀석들이라 그런지, [파동]을 쏘아봐도 한 번 크게 휘청일 뿐. 순식간에 다시 공격한다. 뭔가 다른 약점은 없나?”
물론 기본이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듯. 다 익힐 수 없고, 평생을 익혀야 한다는 점이 있지만.
그래서, 그 기본에 밝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회귀 전부터, 꾸준히. 지금까지도, 매번 새로운 탑의 지형과 맵의 특성을 익히고 있는 나처럼.
“약점이 없을 리가. 그랬다면, 이 층을 지났던 탑의 헌터들은 다 죽었게?”
분명, 먼저 탑에 올랐던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리라.
마치 갑주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인 이 식물.
아마도 땅 위에 큰 진동이나 강한 에너지가 직접 쏘아질 때 반응하는 ‘그라운드 이터’ 이리라.
빠르고, 위협적이며, 단단한 껍질을 두르고 있지만……
단단한 여느 갑주가 그렇듯이.
그런 걸 차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움직일 수 있도록 적절히 이음매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마치 인간의 갑옷이 관절마다, 파츠가 분리된 것처럼.
그렇다면, 약점은 뻔하다.
회귀 후 김도준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난 후, 연습실에서 보여줬던 것도 비슷한 것이었던 것 같은데.
“어려울 것 없어. 이렇게 하면 되니까.”
마치 단단한 껍질을 가진 과일을, 결을 따라 베어내듯. 단단한 껍질이 가진 틈을. 하나의 맥을 따라서 베어낸다.
원래 따로인 것을, 다시 분리해주는 듯.
힘이 들어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베어지도록.
[대수림]의 맵의 특성을 이용한 전략이라. 꽤나 신선하고, 좋지만.
헌터스 리그에 참가하는 선수로서, 코치로서, 감독으로서 매일같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건 YYG뿐만이 아니었다.
“너희만 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도 똑같은 일이 계속 생길걸? 전략도 좋지만, 결국 마지막엔 직접 싸울 수밖에 없는 때가 오니까.”
그러니까. 둘 다 잘해야지 우승을 하지 않겠는가?
후두두둑 ㅡ.
땅을 울리듯 거대하게 [차원문] 부근을 울리던 ‘그라운드 이터’들이 마치 썰린 채소처럼 분리되어 무너지고 있었다.
경기는 더 볼 것도 없이 끝이나 다름없었다.
***
맵에 있는 주변 중립몬스터나, 특별한 특징을 이용하는 것은 헌터의 필수적인 소양이지만, 헌터의 수준에 따라 크게 갈렸다.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이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 헌터스 리그의 경우, 1세대 헌터들이 궤멸적 피해를 입었기에, 그걸 훈련시켜주거나 직접 교육시켜 줄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그 영향인지 헌터스 리그에도 맵의 변수를 잘 이용하는 팀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일까.
이사랑이 거대한 피의 창으로 땅바닥을 찌르고, 갑작스레 굉장한 식물괴수들이 나왔을 때 환호성이 미친 듯이 울려퍼지던 것은.
[캐스터] : 공간이동류 스킬로, 갑작스레 7대 4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YYG가 뒤집기를 시도합니다! [대수림]의 중립몬스터를 자극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설자] : 7대 4의 상황이면 팀 체급 차이가 나도 쭉쭉 밀릴 정도로 현격한 차이거든요!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면 이판사판이라는 겁니다. YYG가 피해를 입는 만큼, PER도 피해를 입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니면…… 혹시. 애초에 공간이동 포탈을 여는 작전을 막지 못하는 것을 상정해서 애초에 저런 장소를 YYG의 합류 장소로 삼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와 ㅋㅋ YYG는 어디까지 보고 있는 거냐? 그냥 두렵네.]
ㄴ 일단 모르긴 몰라도, 나X위키 급으로 오더하는 선수 지식이 방대한 듯. 맵 정해진 후엔 코치가 말 못해주잖아.
ㄴ 근데 저거 식물? 식물 맞냐? 헌터 때려잡는 식물 등장ㅋㅋㅋㅋㅋㅋ 인간 개같이 멸망
ㄴ 1대1 막 날아다니던 윤한결도 힘을 못 쓰네. 그냥 검이 튕겨나는데?
분석 데스크뿐 아니라, 채팅창에서도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조준호와 이근택의 반응도 뜨거웠다.
“헌터스 리그에 나오는 맵이 몇 갠데, 저런 것까지 준비해 갔나. 허허…….”
“그러게. 맵을 공부하는 것과 별개로, 그 맵에서 특정상황에 처할 것까지 상정한 모양인데…… 대응하는 속도를 봐서는 말이야.”
물론 저 자리에 이근택이나 조준호가 있었다면 쉽게 떠올릴 수 있을 만한 수였지만, 저기에 있는 건 탑을 공략하던 진짜 헌터들이 아니었다.
단지, 혼자서 책을 펼쳐놓고. 하나하나 적당한 사진과 영상자료, 그리고 기록들을 보면서 이런게 있구나~ 하는 식으로 공부했던 선수였던 것이었다.
YYG가 꾸준한 공부를 통해, 제대로 한 방 먹인 셈이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저건, 이창현이 그 녀석이 3부도 채 되지 못했을 때부터 써먹었던 방법이지.”
그때, 이근택이 모르는 것까지 파악해 맵을 이용한 공략을 해왔었는데. [대수림]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장면에서 미친 듯한 환호성이 퍼졌다.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면서도, 헌터의 검격으로도 뚫리지 않는 껍질을 가진 식물을.
이창현이 마치 공중에서 묘기를 하듯, 에어앵커로 한번 날아오르더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베어버린 것이었다.
생물이 가진 ‘결’을 이용한 일격이었다.
사전에 저 생물에 대해서, [대수림]에 대해서. 이창현은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이근택으로서도 정체를 모르는, 그 무언가를 통찰하는 듯한 능력에 의해 얻은 정보인 걸까.
그것은 모르겠다.
하지만……
“옛날 동료들이 생각나는 경기이구만.”
만약 이창현이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나서, 이근택과 같이 탑을 탐험하는 헌터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랬다면 분명, 앞 길을 열어주는 빛 같은 존재가 되었을 텐데.
***
“마지막에 그거 뭐야? 대체 그걸 어떻게 베어버린 거야?”
“뭐야, 보고도 모르겠어?”
이창현이 윤한결에게 면박을 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첫 경기에서 화려하게 승리했기 때문인지 다들 표정은 밝았다.
‘무엇보다 이번 하이라이트엔 내가 등장하는 장면도 제대로 나올 것 같은데…….’
물론 가장 흥분한 것은, 지금까지의 어떤 경기와도 다르게. 어쩌면 주인공이라고 할 법한 장면이 연출되었던 주인공인 이길한이긴 했지만.
“딜러들은 항상 이런 기분이냐?”
끝내 참지 못한 이길한이 입을 열었다.
물론 계획이 완전하지 못해, 상대의 [대수림]을 이용한 함정에 빠질 뻔했지만.
[차원문]에 자신의 분신 능력을 더해 홀로 훨씬 많은 상대를 대적하며 끝내 성공해낸 이길한이 느낌 감각은 각별했다.
상대를 물리치기는 커녕, 적당히 들이박고, 막아주기나 했었던 이길한에게.
무언가 ‘특별한 역할’을 했다는 이 감각은 정말이지 새로웠으니까.
마치 동네 순찰을 주 업무로 삼던 평범한 경찰이, 007 요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말에, 이창현이 씨익 웃으면서 다가왔다.
작당모의라도 하듯, 어깨에 팔을 얹고는.
“기분 끝내주지?”
나이도 더 어린데, 마치 나이 먹은 아저씨가 뭔가 해내고 기뻐하는 아이들에게 말하듯 말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선수로서는 훨씬 뛰어나고, 어른과 아이만큼의 차이가 있는 건 맞았으니까.
그냥 솔직하게 인정했다.
“왜 헌터를 계속하는지 알 것 같기도?”
이창현이랑 눈이 맞아 킥킥거렸다.
하지만, 심장이 쫄깃해지는. 마치 모든 것이 내 움직임에 달려있다는 이 미친 듯한 긴장감과, 내가 그걸 해냈을 때의 성취감.
그 치열함은, 다른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