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새 기술
[대수림]. 기본적으로 변수가 많은 맵으로 분류되는 편이었다.
대수림엔 유물이 집중적으로 묻혀있는 유적도 있고, 사실 그것보다 더 큰 변수는 대수림의 동식물이었다.
다른 맵에서도 중립몬스터와 조우하다가, 동식물에 변수가 생긴다고 하면 굉장히 특이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수림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들이 크다.
만약 현실에 있는 것들이 그렇게 엄청 크다고 생각해보라.
예를 들면, 단풍나무 씨앗이 엄청 크다면? 그것을 타고 패러글라이딩 하듯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파리지옥이나 끈끈이주걱 같은 것들이 큰 것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문제는 단순히 그렇게 공격하는 것들보다,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식물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지. 마치 마나장비를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야.’
지식만 있다면 상황에 따라, 주변 식물들을 이용해 날아서 도망칠 수도, 상대를 공격할 수도,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하나하나가 함정이고 방해하는 것들이겠지만.
그 현격한 차이에서 유불리가 엄청나게 갈리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최악의 상황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을지도.’
무기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그래서 다들, 합류 상황은 괜찮아?”
“어. 아까 그 덮치는 식물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무난해.”
“앗…… 나도. 뭔가 굉장한 곤충 같은 게 다가왔는데 [속박]으로 묶어버렸으니까…….”
다행히도 지금은 전투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지, 크게 위협을 받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헌터쯤 되면 초인이니까 곤충이나 식물이 아무리 특별하다고 한들 그것만으로 치명타가 되지는 않는 것이 정상이긴 했다.
그럼 이제 가장 중요한 쪽은 이길한이었다.
급습할 수 있도록 [차원문]을 열어줄 이길한.
생각하자마자 통했던 것일까? 이길한에게서 곧바로 연락이 와 있었다.
“이제 슬슬 상대방 합류지점으로 예상되는 곳 앞이야.”
이길한에게는 상대팀의 합류 예상지점 3키로 즈음에 근접했을 때 말하라고 일러뒀으므로.
“그런데 지금 가서 [차원문]을 열면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기다리라고 한 거야?”
이길한이 기다리는 것이 답답했는지 물어왔다.
“[차원문]을 여는 건, 상대가 어중간하게 모였을 때가 가장 효과가 극대화되니까.”
한 명만 있을 때 차원문을 열어 돌입한다면, 분명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이고 파괴적인 전술을 한 명을 처리하기 위해 쓴다는 건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격이었다.
그렇다고 상대 7명이 모였을 때 쓰면, 상대가 당황하긴 하겠지만 그래봤자 동수 싸움. 유리한 고지를 강하게 가져가진 못한다.
“그러니 상대에게 유리함을 가져가면서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건, 그 중간의 언저리. 3~5명 정도가 모일 즈음이 최적이겠지.”
“……그렇구나.”
그렇게 이연주에게 상대 팀의 합류 동태를 살피며, 이길한의 진입 지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데……
“창현아…… 지금. 2명은 이미 모여있고…… 2명은 이제 거의 근접했어.”
이연주의 위치추적능력으로 정보가 들어왔다.
PER은 이미 이연주의 세심한 길 안내 오더로 다 모인 상황. 준비는 끝난 모양이었다.
“오래 기다렸다 다들. 상대방한테 최대한 근접해서 차원문 개방해!”
“알았어!”
이길한에게 오더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길한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단단한 방어구를 두르고, [파괴적 돌진]스킬을 사용해서.
일단 비집고 들어가기만 하면 성공이었으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순탄하리라고 생각했던 이 상황에 예상 밖 변수가 발생했다.
“헤에. 다 코치님 말대로네. 준비 끝났지?”
“물론이지. 마침 [대수림]이라 이것저것 더 준비해보기도 했고.”
YYG의 녀석들은 혼자 돌격 중인 이길한을 보고도, PER의 전략을 벌거벗긴 듯 이미 다 안다는 뉘앙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짝짝!
YYG진영의 누군가가 손뼉을 치자, YYG의 첫 대응 전술.
대수림의 풀숲에 감춰져 있던 수십 개의 마나 대응 요격 장비가 발포를 시작했다.
어떤 체계로 굴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나장비와 개인의 능력을 각각 활용해서 만든 김유현의 ‘포탑’과 비슷한 것이리라.
그뿐만이 아니었다.
YYG에선 기세등등하게 무기를 들고, 사정거리에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라면 돌진으로 뚫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상하리만치 준비가 잘 되어있는 상대.
불길한 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읽혔다는 생각이 이길한의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멀긴 하더라도, [차원문]을 여기에서라도 열어야 하나 고민하던 도중.
우물쭈물하는 이길한의 기색이 읽힌 것일까. 이어폰 너머로 이창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입하다가 안 되겠으면, 그냥 ‘그걸’ 써!”
“오케이.”
그 말에, 불안한 감정이 싹 가시고, 한 편으로 기대감이 솟아올랐다. 1부 PER의 첫 경기. 거기에서 시청자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자네 이러는 거 협회에서는 알고 있나? 아직 업무시간인데, 여기에 나 불러놓고 이렇게 경기 보는 거.”
“고까우면 내가 창현이 경기 보는 시간 맞춰서 감사 나오라고 해.”
한국 헌터협회장실. 이근택이 핀잔을 주는 조준호에게 말했다.
세상사는 낙도 없는데, 손주 같은 녀석들 경기 한번 좀 보는 게 뭐 어쨌다고. 일이야 아무 때나 하면 되는 거지.
“쯧쯧…… 그래서. 첫 경기는 잘 치를 것 같아 보여?”
“우리 애들이 누군데. 당연히 잘 치르겠지. 어디 보자…… 상대가 YYG? 얘들이 저번 시즌에 평소보다 좀 선방하긴 했는데.”
이근택의 눈이 화면 한 곳에 멈췄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경기 각 팀의 코치 감독을 포함한 팀원 전원의 로스터였다.
그중에서도, YYG의 코치란에 쓰여있는 이름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한솔이가 여기 있었구만.”
“이한솔?”
“그 왜, 기억 안 나? 예전에 한참 마무리 되어갈 때, 어린데도 현장 투입된 분석쟁이 녀석 하나 있었잖아.”
“아~ 걔? 협회에도 안 보여서 실직자라도 되었나 싶었는데. 저런 곳에 있었나.”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탑이건 던전이건, 몬스터건 보고 눈을 반짝이던 녀석. 능력이 좀 좋은 각성자면 직접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극적이던 녀석.
물론 능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언가 보조해서 분석해주는 능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쨌든 전투에 적합한 능력은 아니었다.
‘현장에서 꽤나 유능해서 기억에 남는 녀석인데…… 저기에 있었구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아들을 보는 듯한 반가움이 일었다.
PER의 상대 팀 코치라는 걸 빼면.
“아직도 가끔 저 녀석이 생각이 나. 막바지에 저 녀석이 조금만 더 빨리 컸으면, 사상자가 훨씬 적지 않았을까 했으니까. 몬스터 공략법도 잘 알아내고, 헌터 각각의 능력, 개성파악도 잘 해. 지금 와서 보니 코치로도 천직이겠구만.”
뭐,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러던 와중, 대기시간이 끝나고 막 PER대 YYG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맵은 [대수림]이었다.
“어휴…… 하필 저런 맵이. 창현이네는 좀 고생하겠네.”
“그러게 말이야.”
직접 선수로 들어간 건 아니지만, 이한솔의 번뜩임을 생각해보면 꽤나 골치 아플 것 같은 맵이었으니까.
[캐스터] : ……그래서 전술적 능력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 맵은 변수와 위험요소가 많아, 두 팀 모두 일단 합류를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해설가] : 아……! PER쪽에서는 약간 변화를 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길한 선수를 별동대로 파견해 YYG의 진영에 침투시키려는 모양이에요. 하지만 한 명이 들어가서 뭘 할 수 있을지 그건 의문이네요.
돌진하는 능력 외에 따로 널리 알려진 능력은 없거든요!
안 그래도 약간 쉽지 않아 보일 것 같은 상황. 그런 상황인데, 돌진능력 밖에 없는 전위를 혼자 상대 진영에 몰아넣다니.
‘무언가 또 재미있는 짓을 하려는 모양이군. 그런데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쉽지는 않을 거야.’
경기가 돌아가는 게 흥미진진했다.
재미있는 점은, 아예 상대 진영에 침투하는 게 아니라,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점이었다.
“어? 어. 저거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지? 새 팀원을 충원해서 새로운 전략이라도 들고왔나본데.”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할 일이 없겠지.”
그래서 뭘 준비한 거냐 이창현.
예상되는 것이 있긴 했다.
아마도 혼자 침투해서 상대방에게 굉장히 강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얹혀서 보냈겠지. 뭐 그런 정도로?
그런데, YYG에서는 그런 상황을 모두 예상했던 것일까.
이길한의 돌진을 원천차단하고 제압하기 위한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다.
[캐스터] : 아아!! PER에서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무슨 전략을 준비해 온 것 같은데. 하려면 지금이거든요! YYG에서 이를 악물고 대응하고 있어요!
[해설가] : YYG의 마나 요격 대응 장비가 모두 이길한을 향하고 있어요! YYG선수들도 가만있지 않을 거거든요! 원하는 타이밍 아니어도, 더 늦으면 준비한 전략이 아예 다 날아갈 수 있어요! 생각 잘 해야 합니다 PER!
“역시 이한솔. 아니 이젠 이 코친가. 우리는 뭔지 몰라도, 창현이 녀석의 정보를 입수한 모양이야.”
마치 수를 다 뻔히 읽고 있는 듯한 완벽한 대응.
어쩌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근택 회장의 주먹에 조금 힘이 들어가던 찰나.
마나 요격 대응 장비의 일회성 탄들이 이길한에게 발포되려던 찰나.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캐스터] : 아ㅡ아!! 이게 뭐죠? 이길한 선수! 갑자기 엄청나게 분열하고 있습니다!
돌진하는 능력밖에 없는 줄 알았던 이길한이, YYG인원들에 의해 위기에 처하자 갑작스레 분신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분명 하나의 인영이었던 것이 둘로, 둘이었던 것이 넷으로. 넷이었던 것이 또 여덟 명으로.
그렇게 전방을 뒤덮을 정도로 분신이 분열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해설가] : 지금까지 능력을 숨기고 있었나요! 놀라운 반전입니다!
그리고 그 분신들 또한 마나와 형체가 있었던 모양인지, 마나 요격 대응 장비의 타겟은 늘어난 수많은 분신들에 맞춰 순식간에 분산되어 버렸다.
본래 이길한 혼자서 막아내야 할 것이, 분신에게로.
물론 분신 하나에, 마나 요격 대응 장비 탄알 두 개도 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상관없었다.
상대의 공격보다 분신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므로.
공격을 한 차례 받아낸 후에도 분신이 남아있을 정도였으니까.
“끌끌끌…… 저런 걸 준비해놨을 줄이야. 그야말로 서프라이즈고만. 안 그런가?”
“확실히. 한솔이 녀석이 분석력이 좋아도 데이터에 없는 것까지 대응할 수는 없을 테니.”
[해설가] : 하지만 중요한 건 이제 그 다음입니다! 저렇게 수많은 분신들을 뿜어가면서까지, 어떻게든 혼자 돌진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전술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거든요!
이길한이 웃으며, 어느덧 상대 진영에 가까워진 상태로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