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카운터
정규시즌 첫날, 개막전을 화려하게 알린 경기는 다름 아닌 LTD의 경기였다.
‘역시나 [마나전개] 사용자가 있는 팀들이라 그런지 한 끗 위네.’
한국 리그 우승횟수가 가장 많은 팀이기에, 기본기가 탄탄하고 선수 풀도 깊으면서 최강의 선수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경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물론 적팀도 그런 강준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대비를 해 온 것 같지만 상대가 쉽지 않았는지, 분전하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관중의 환호와 함께, 강준혁의 실력에 무너져내려 버렸다.
‘LTD 경기는 정규시즌에서 마지막이던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금 더 고민해둬야겠는걸.’
저번엔 분명 연습경기에서 강준혁을 쓰러뜨렸지만, 저번처럼 몇 명이서 강준혁을 상대했다간 승산이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때처럼 맵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따라줄지 모르는 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만개]를 개방하진 않았지만, 지금 정도로 폼이 올라왔으면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물론 아슬아슬하겠지만.
‘그리고 뭐…… 사실 회귀 전이랑 이야기가 다르긴 하지만 그때도 [마나전개]의 사용자를 여럿 쓰려뜨려 본 적은 있으니까.’
그나마 [마나전개]는 다른 일반적인 각성자의 능력보다 관심도가 높아, 세간에 더 쉽고 널리 알려지는 편이었다.
분석가의 입을 통해서건, 아니면 그 외 관계자를 통해서건. 대중들의 [마나전개]에 대한 관심도는 상상을 폭발할 정도로 컸으니까.
그래서 미리 상대의 [마나전개]능력에 따라 대처법을 상대해 두는 것 자체는 쉬웠다.
문제는 그게 얼마나 매끄럽게 실현이 가능하느냐. 그 부분인 것이고.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차에, 선수 대기실의 문을 열어재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경기 대기해주세요!”
경기 시작을 알려주는 스태프였다.
이제 나갈 시간이었다.
‘LTD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는데. 벌써 시간이 되어버렸나.’
이만 지금 당장의 경기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
평소보다 훨씬 긴 복도. 환호성으로 진동이 느껴지는 듯한 바닥과 벽면.
비단 들뜬 것은 그 배경뿐만은 아니었다.
“와…… 진짜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솔직히 오디션 프로그램 할 때, 통과해도 1부에 가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고 했었잖아. 창현아 넌 기억 나냐 그때?”
“기억이 왜 안 나겠어.”
조아라가 심사위원으로 있을 때, 지원자들에게 긴장하라면서 해 주었던 말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고, 필요한 말이긴 했어.’
실제로 그때의 동기들 중, 지금 1부에 와 있는 녀석들은 벤치멤버까지 포함하더라도 거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올라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디션에서 나름 유망주로 평가받고 올라온 너희들은 낫지.”
이연주가 대화 중, 끼어들었다. 이길한과 함께 빼꼼 끼어드는데, 이쪽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맞아. 완전히 3부에서 가라앉아서 그냥 그대로 은퇴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때 거기서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걸 상상이나 하겠어?”
새삼 이길한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첫 만남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는데.
‘내가 무승인 PER에 들어가서 죄다 형편없다고 깠고, 거기에 이길한이 대표로 덤볐던가?’
그때를 생각해보면 남은 이길한이 용하다 싶기도 했다. 자존심을 꺾고 배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한편 긴장감에 굳어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의외로 한지수라던가, 담담하고 진중하게 서 있는 윤한결. 약간은 떨리는 듯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김유현.
……유일하다면 유일하게, 어깨를 펴고 있는 이성태에게서는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평소 PER의 팀 홈에서는 다른 녀석들에게 선배라고 부르면서 쭈글쭈글해져 있었던 녀석인데.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인지.
그리고 다른 이유로 약간 곤란해보이는 녀석도 하나 있긴 했지만.
“재준 씨는 어떻게 PER에 들어오게 된 거예요?”
“그……저기 이창현이랑 친분이 있어서 헌터스데이에 대화도 좀 하고……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
경기에 나가는 녀석들보다 더 뻣뻣해 보이는 녀석 하나가.
곤란해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니, 역시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먼저 이서현과 앞서나가고 있는 류재준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했다.
“야. 그렇게 천천히 걸어가다가 경기 먼저 시작하겠다. 빠르게 빠르게 가자.”
회귀 전에도 그렇지만, 헌터스리그에서 경기를 할 때와 다르게 사람을 대하는 건 보는 사람의 속을 터지게 하는 게 패시브인가보다.
어느덧 긴 복도 끝으로, 경기장이 보이는 환한 무대의 빛이 들어왔다.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캐스터] : ……의 신인 PER을 소개~ 합니다!!
아무래도 딱 맞는 타이밍에 나온 모양이었다.
***
선수들의 소개가 모두 끝난 후, 어느샌가 맵 선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철저하게 랜덤으로 이루어진 맵의 선택 바늘이 가리킨 곳은 다름아닌 [대수림].
꽤나 특이점이 있었던 맵이었던 것일까, 관중석과 해설데스크가 꽤나 술렁였다.
[캐스터] : 이번 맵으로 선정된 곳은 [대수림] 이군요! 압도적인 장관과 특이한 자연환경. 그리고 유적이 곳곳에 위치한 맵인데요, 이번 PER대 YYG전에 맵이 어떤 영향을 줄까요?
[해설자] : 안 그래도 최근 YYG는 전술적인 움직임에 호평을 받고 있는데, 엄청난 기회로 보입니다. 반대로 PER에겐 별로 좋지 않겠군요……
[대수림]은 그만큼 전술적인 움직임이 중요한 맵입니다.
맵에 유물들이 숨겨져 있는 유적은 물론, 각종 아주 특이한 식물들이 자리한 탓에, 사용처나 특성을 알면 마나장비에 준하는 수준으로도 사용이 가능하죠.
그뿐만 아니라……
화면의 볼륨을 줄여, 해설데스크에서의 소리를 줄이고 있었다.
장소는 다름아닌 YYG의 대기실. 감독과 코치진이 남아있는 공간이었다.
“저 맵이 선택됨으로 인해, 유불리가 변하거나 그렇지는 않겠지? 이 코치.”
“오히려 저희 쪽한테 좋은 변수입니다. 아이들에게 이미 저 맵에 대한 정보는 전해뒀으니까요. 안 그래도, 상대의 능력에 대해 철저하게 팀 단위의 훈련을 시켜놓았는데……
[대수림]의 식물들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불리한 전투도 이길 만큼 유리해질 테니까요.”
“이 코치만 믿으면 되겠군. 역시 든든해. 하핫.”
감독은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물론 그럼에도 물어보고 싶은 점은 있었다. 전략에 대한 검토 차원이 아니라, 순수하게 궁금증에서 나오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저번에 말했던 [차원문]을 가진 신입을 영입했다는 것 말이야. 그 경우에 대해서도 자네라면 다 대응책을 생각했겠지만. 대체 방법을 어떻게 찾은 거야?
PER이 보여준 전술들만 해도 거기에 [차원문]이 섞이면 상당히 상대하기 난해하고 어려운 것들이 가득할 텐데…….”
“아. 그러고 보니 감독님께는 아직 설명드리지 않았군요. 우선은 [차원문] 능력을 일차적으로 봉쇄하는 것을 기본전략으로 수립했습니다.”
“1차적으로 [차원문]을 봉쇄한다?”
“네. 기본적으로 관련자료와 데이터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보니 알겠더군요. 생각보다 상대할 방법이 많이 있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예를들면 비슷한 계열의 능력은 모두 ‘매개체’를 필요로 하더군요.”
“매개체?”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기에 흥미가 동했다. 희귀한 타입의 능력이라 정보가 있나 싶었는데, 그 정도로 정보를 쌓아왔을 줄이야.
“너무나 막대한 마나를 필요로 하기에, 보통 보조해줄 마나장비를 매개체로 이용하는 식이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원하는 대로 차원문의 입구와 출구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제서야 코치가 제시할 대처방식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냥 불시에, 원하는 곳에 차원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약점을 공략할 수 있으므로.
예를 들면, 저런 경우 상대 진영에 차원문을 뚫어 침입시키려고 한다면 매개체를 들고 진입할 인원이 필요하니, 그 인원만 제압한다면 역으로 유리해진다.
“예전 컴퓨터 게임 중에 우주전쟁 시리즈가 생각나는구만.”
코치는 그게 무엇이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세대차이 덕에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그 게임에도 ‘리콜’이라는 차원문 비슷한 능력을 가진 유닛이 있었거든.”
물론 그 게임은 7대7의 게임도 아니고, 그 매개체 유닛을 죽여도 다시 뽑을 수 있으니 큰 타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7대7로 이루어지는 헌터스리그는 한 명이 일방적으로 죽는다는 건 곧 직접적인 힘싸움에서 밀리게 된다는 의미였으므로.
“아이들도 이 코치가 말한 [차원문] 능력에 대한 대응도 몸에 익혀놨겠지?”
“물론이죠. 단단히 주의시켜놓았으니, 아마 접근해서 [차원문]이나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제압할 수 있도록 포메이션을 구축해뒀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판은 전술의 승리로군.”
이 코치를 보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
[대수림]이라……
흔하게 나오는 맵은 아니었다. 회귀 전 경력과 3부,2부에서의 경력까지 치면 5년 경력이 넘어가는 헌터인 나로서도 겪어본 적 없을 정도로.
물론 머리 속에 정보는 있었지만.
‘하필이면 첫 경기부터 이런 맵이 나올 줄이야…….’
자신 있는 무대나 전술이 마련된 상황에서 변수가 있다는 건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와…… 이건 뭐냐? 여기에 있는 꽃 엄청 커! 어? 어???”
콰콰콰쾅 ㅡ.
거기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어폰 너머로 윤한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겪어본 적 없고 지식으로만 안다는 것은, 경력이 짧고 학습의 기회가 적었던 우리 팀원들에겐 정보가 없거나 매우 생소한 게 당연한 상황이라는 것이니까.
그중에서도 더 큰 문제는, 우리 팀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상대 팀까지 이 맵이 생소하리라고 믿기는 어렵다는 점이었다.
1부 선수들은 틈틈히 모든 맵을 공부하기 때문에, 겪어보지 못했어도 나처럼 지식적으로는 이미 어느 정도 거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야, 윤한결. 괜찮냐?”
“어? 어. 갑자기 꽃 잎사귀가 거대한 파리지옥마냥 공격해와서. 그냥 다 베어버렸지.”
처음으로 습격당한 게 그나마 윤한결이라 다행이었다.
주의를 아직 주지 못한 상황에서 전투력이 부족한 다른 녀석이 당했다면 부상을 입거나 했을지도.
“다들 위험한 건 알겠지? 식물이 크기만 한 게 아니라, 특성도 다양하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전에 말했던 플랜 A로. 합류 후 차원문으로 상대 진영에 한번에 습격해 쓸어담는 전략으로 간다.”
이런 경우, 당연히 떨어져서 전투하면 힘이 분산되어 변수가 더 커질 수밖에 없으니 불가항력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차원문을 가장 써먹기 좋은 전략이 이것이기도 하고.
“차원문 설치할 마나장비는 말한 대로 챙겨왔지?”
“당연하지.”
이길한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럼 이길한만 상대 진영의 중심 축으로 잠입하고, 나머지는 연주가 불러주는 중앙 좌표로 모이자.”
방향성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