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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200화 (200/270)

200화. 포부

팀원들이 한 명 한 명 늘어난다는 건. 그리고 그 팀원들이 베스트는 아니더라도 내가 손수 뽑았다는 건 꽤나 특별한 느낌이었다.

과거엔 아무래도 팀원을 내가 온전히 고른다는 느낌보다는 잘 어울리는 선수들이랑 같은 팀이 된다는 느낌이었는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이제 금방 시즌 시작인데, 뭐 심란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

촬영 중 쉬는 시간이 되어, 앉아있던 중 류재준이 말을 걸어왔다.

정규시즌 시작을 앞에 두고, 시즌 오프닝 영상 촬영 및 미디어데이가 일정에 잡혀있는 날.

자신감 있게 포부를 전달해야 하는 날인데. 조금 궁상맞게 앉아있는 구단주의 모습을 걱정한 것이려나.

‘뭐, 걱정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옛날 생각이 조금 났을 뿐이지만.’

“그럴 리가. 그런 것보다 새로온 팀원은 좀 어떤 것 같아?”

이서현이 팀에 합류하고 며칠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연습경기나 훈련도 당연히 있었다.

“기량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더군. 그런데 역시 그 [차원문] 능력이 주는 변수는 무궁무진해. 전술적으로 감독 코치진이 궁리를 좀 해볼 필요가 있어 보이더군.”

인간적으로 어떻냐는 말이었는데. 누가 항상 엄격 진지 근엄한 녀석 아니랄까 봐, 선수로서 전술적인 평가를 늘어놓고 있었다.

하여간 재미없게 산다고 생각하던 무렵.

“……그리고”

“그리고?”

“쾌활한 게 보기 좋더군.”

류재준이 눈을 피하며 말했다. 평소에 무덤덤한 모습과는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다.

‘호오…….’

방금 대답한 것만 봐도 그렇지만, 저런 이야기를 보통 하지 않는 녀석인데. 인간적으로 꽤나 마음이 들은 모양이었다.

뭐, 아직은 인간적인 호감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겠지만.

“팀 내에서 연애는 안 되는거 알고 있지?”

“연애는 무슨……!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냥 단순히 남자 녀석들만 많은 칙칙한 그런 팀에서 변모해서 좀 더 사람 냄새 난다는 의미였다.”

원래 하던 짓을 안 하다가 변명하면 말 꼬리가 길어지는 거랬나.

대화하던 도중,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이던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준 씨! 다시 촬영 시작한대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부른 사람은 다름아닌 이서현이었다.

“네……? 네! 지금 가요.”

나한테도 안 쓰는 존댓말을 써가면서 대답하는 류재준을 보니, 어이가 없긴 했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그래도 뭐, 서로 싫어하는 것보다는 서로에게 애정이 있고,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이 좋겠지.

회귀 전 류재준의 연애사를 생각해보면 전혀 잘 될 것 같지도, 진전될 것 같은 관계도 아니긴 하지만.

보는 재미는 있을지도 모르겠다.

***

이미 한 번의 간이 촬영을 마친 후의 촬영이었기 때문일까. 이날, 간략한 정규리그 오프닝을 위한 촬영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이 났다.

이번엔 저번 촬영과 달리 오프닝 영상이었기에, PER의 모든 선수들이 나왔는데 촬영과정이 그래서 더 재밌게 느껴지긴 했다.

평소처럼 우직하게, 하지만 중세 판타지 게임의 탱커마냥 혼자 방패를 비롯한 방어구를 바리바리 차고 온 이길한.

패션쇼하듯, 아니 마치 어디 스페이스 오페라에 나올 법한 개성적인 컨셉의 의상을 입고, 빛나는 검을 휘두르던 김도준.

그와 반대로, 이기어검이라는 자신의 능력의 컨셉에 맞춰 무협지에서 튀어나온 듯한 컨셉과 복장을 한 윤한결.

온갖 명품 현대복과 악세서리를 휘둘러 입어 벼락부자인지, 선수인지 구분이 안 가는 패션을 하고 온 한지수까지.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도 없을 수가 없었다.

헌터스 리그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아무래도 개성과 캐릭터성 또한 하나의 상품이다 보니 이런 면에서 자유로운 면이 있긴 하지만……

어깨에 찬 엠블럼을 제외하곤 정말 한 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괴멸적인 통일성이었다.

그래도 막상 완성되면, 정규시즌 시작될 때 보는 맛은 있지 않을까.

‘물론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안 되긴 해.’

어디 스페이스 오페라에 나올법한 광선검 비스무레한 걸 휘두르는 김도준과 무협 컨셉의 한복과 이기어검을 다루는 윤한결이 한 화면에?

아마 그리고 그 옆엔 누가보면 PPL 광고를 받았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샤X 루이X통 따위 로고가 잔뜩 박힌 의상과 백을 든 한지수가 웃고 있겠지.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시간인가.’

촬영이 끝나고, 선수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인터뷰 장소였다.

“재준아, 한결아. 애들 인솔해서 성준 씨랑 같이 먼저 돌아가 있어. 좀 걸릴걸?”

이제 곧,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 헌터스 리그 1부의 미디어데이가 시작될 예정이었으니까.

“이종규 코치님. 갑시다.”

***

미디어 데이 행사장.

이전 2부나 3부에서 할 때와는 다르게, 장소 자체가 굉장히 널찍한 곳이었다. 아무래도 직접 이 자리에 서본 적은 회귀 전에도 없었기에, 시작부터 꽤나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의자들을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앉은 각 팀의 감독 및 코치들이 보였다.

1부 리그는 이번에 승급한 PER을 제외하면 다들 토박이처럼 오래 붙어있는 팀들이었으니, 그 자연스러움은 아마 당연한 것이리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기자들이 보고있을 이 자리에서 긴장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수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삐끗하면 지는 전장에서 싸워왔던 게 누군데.’

이런 자리에서 긴장할 리가.

대신 집중하고 있는 건, 역시나 오늘 미디어 데이에서 어떤 말을 할까에 대한 부분이었다.

3부나 2부에서는 어땠더라, 하고 고민하던 사이. 어느덧 질의응답이 시작되고 있었다.

[캐스터] : 이제 곧 다시 새롭게 정규 시즌이 시작되는데 소감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뭐……사실 미디어 데이는 조금 뻔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이미 얼굴도 다 서로 익었고, 연습경기도 오랜 기간 하면서 친분을 쌓아온 감독들일 텐데.

시즌 우승이 목표고, 성장해서 좋은 목표를 내겠고. 대충 뭐…… LTD가 잘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겠지.

거기에 한두 팀 정도 더 언급될 수도 있을 테고.

아니나 다를까, 한 명씩 감독들이 소감을 말하는데 너무 판에 틀어박힌 질문이라 하품이 나올 뻔했다.

[캐스터] : 그럼 이제, 각 감독님들께 정규 시즌에서 우승하리라고 예상하는 팀을 들어보겠습니다!

한국 헌터 중 몇 안 되는 [마나전개]가 가능한 강준혁을 보유한 LTD.

대부분이 LTD를 말했고, 간혹 저번 정규시즌의 2등이나 3등 팀이 언급되기도 했다.

‘늘 이런 법이긴 했지.’

이건 회귀 전이나. 회귀를 한 지금에나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리라.

누구나 예상하는 답변을, 현실에 맞춰서 적당하게 이야기한다. 재미없게.

물론 그 이유는 이해한다.

크게 한 번 질렀다가, 실패하면 비웃음을 사기에 딱 좋으니까.

이미 팀들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있는데 그런 짓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리라.

이미 1부 헌터스 리그 10개 팀 중,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괜히 큰 포부를 말했다가 눈총을 사는 건 피하고 싶은 것이겠지.

가령 당당히 1황으로 군림하고 있는 LTD를 앞에 두고, 이번 시즌 목표는 우승이고 LTD과 정면대결을 해서 이긴 후 국제리그에서 성과를 거두겠다고 말한다면.

이미 친분이 있는 LTD의 감독도 불편해할 테고, LTD의 팬들은 그 팀을 조리돌림할 것이며, 국제리그를 언급하는 대목에서 비웃음을 살 터였다.

이득은 그리 크지 않은데 리스크는 크다.

하지만, 그곳에 로망은 없다.

[캐스터] : 이번에 1부에 새로 합류한 PER…… 2부와 3부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1부로 승급해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는데요.

물론 한편으로는,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1부에서까지 그런 활약을 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런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창현] : 3부의 미디어데이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꽤 지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캐스터] : 어떤 말씀을 하셨었나요?

[이창현] : 그 당시…… 저는 무승 팀인 PER을 이끌게 되었고. 감독 겸 구단주 겸 선수로 들어간 제게 이목이 쏠리고 있을 적.

3부리그 경기를 꽤 봤는데, 그닥 잘하는 팀은 없었다.

그러니까 특히 3부 LTD 감독님은 긴장 좀 하셔야 할 거다. 1위 팀이 꼴등 팀한테 발리면 특히 쪽팔릴 테니까.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네요.

그때를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한참 회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막 끓어오르던 시절이긴 했나보다.

[캐스터] : 오……그렇군요. 그러니까 지금 그 말씀을 1부의 LTD 감독님께도 드리고 싶다? 뭐 그런 건가요?

캐스터가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물었다.

[이창현] :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런 말을 하는 건 지금 와서 보면 너무 무례한 것 같더라구요. 대신 이런 말은 하고 싶네요.

[캐스터] : 이런 말이라 하심은……

[이창현] : 전문가 분석이 1부에선 활약하기 어렵다라…… 5~6위 정도의 중위권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한다……

뭐 이런 말씀들을 하셨는데.

그 전문가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헌터스 리그를 몰라도 참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사전에 있었던 감독 코치진 대상 설문조사 결과 정도겠지. 안 봐도 뻔하긴 한데.’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PER은 많은 걸 쌓아왔으며. 이젠 그 날개를 펼칠 차례였다.

굳이 말을 아낄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이창현] : PER은 지금껏 3부, 2부에서 모두 신기록을 세웠고, 1부에 왔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이창현] : 순수히 1부에서 신기록을 세우는 데 그 제물이 되어주셨으면 좋겠군요.

주변에서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던 감독들의 표정이 굳고, 조용해지는 가운데 기자들의 셔터 소리만 크게 들리고 있었다.

패배했을 때의 리스크가 두려워서 몸을 사리고, 포부를 말하지 못하는 겁쟁이들.

이해는 하지만, 그 장단에 어울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한계를 인정하고, 뒷걸음질 쳐서. 포부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국제리그에서 예선 광탈하는 리그의 일원이 될 바엔.

그냥 모 아니면 도. 망하거나 스타가 되는 길을 향하겠다.

라이브였기에 촬영 무대 건너편에 채팅창의 반응이 보였다.

ㄴ 1부의 제물이 되어달래 ㅋㅋ 미친 거 아님?

ㄴ 이제 막 승급했는데 리그 무서운 줄 모르네

ㄴ 감독들 다 모인 자리에서 트래쉬 토크 해버리기~

ㄴ 와 근데 실제로 계속 신기록 쓰고 있던 팀이긴 하지 않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ㄴ 2,3부랑 1부가 같냐? 상향평준화 된 곳에선 명함도 못 내밀음.

대부분의 관중은 1부 리그만 보고, 거기에 승강전 자체는 관심도가 낮은 편이었다.

아마, 이번 미디어데이로 우리 팀을 처음 알게 된 사람들도 다수이겠지.

그러니, 이 반응은 지극히 당연했다.

낙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다.

‘그 비웃음 환호성으로 바꿔줄 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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