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평가기준
“의외로 괜찮은 팀에 있다가 나온 녀석도 있네요. 차준규라…… 지난 시즌은 SSA에 있었네요. 벤치멤버이긴 하지만.”
“오…… SSA는 복지도 좋고 팀 성적도 나쁘지 않은 팀인데. 좀 의외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창현아?”
음…… 사실 이런 경우는 뻔한 상황이긴 하다. 흔히 말하는 팀에서 ‘방출’당한 상황.
아마 다른 팀에도 잔뜩 지원해봤다가 떨어져서 우리 팀에 지원한 것이 아닐까?
방출당한 이유는 당연히, 생각보다 선수가 너무 기대이하여서 그런 것이겠고.
‘그런데 능력이 [인챈트]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조아라가 왜 뽑았는지 알 것 같긴 하다.’
차준규의 기본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사실 이 능력만으로도 꽤나 전술적 다양성과 특색이 확실하게 잡혀 능력의 가치가 상당히 컸으니까.
그래서 방출당한 것을 감안해도, 갱생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되도록 긍정적으로 보려고 했는데……
첫 번째. 이성태와의 싸움.
“인챈트를 저렇게 밖에 사용 못하나. 심지어는 기본기적인 전투능력도 너무 떨어지는데. 연주가 싸워도 이기겠어.”
두 번째. 윤한결과의 싸움.
“경기를 하는 데 생각이라는 것도 거의 안 하는 것 같고…… 실망이 좀 크긴 하네.”
그리고 대망의 세 번째. 김도준과의 싸움.
뭐, 예상은 했지만…… 김도준과의 싸움은 특히 우리 팀에 대해 조금만 알아보고 왔더라도, 김도준의 전투방식은 유명해서 미리 정보를 접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당연하다면 너무 당연하게도. 김도준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직격으로 당해주는 차준규.
“기본기, 피지컬, 자기 능력에 대한 이해도, 헌터스 리그 전투에 대한 이해. 상대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기본적인 정보전까지 모두 미흡하네…… 총체적 난국인가.”
“창현아. 역시 능력이 좋아도 저런 애는 좀…….”
경기 보는 눈이 수준낮은 이종규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보다.
낙관주의적이고 항상 예스맨에 가까운 이종규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저건 다른 의미로 대단한 게 아닐까.
***
1대1이 시작되자, 이번엔 상대가 나라는 것에서 긴장했던 탓일까. 차준규는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내 플레이는 헌터스데이 시상식 때 직접 영상을 볼 수밖에 없었으니 그런 걸까?’
아까 테스트를 볼 때보다 훨씬 신중해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선공을 취하는 대신 말을 걸었다.
아까의 태도를 보아하니, 어차피 내가 압도적으로 이긴다고 해서 납득할 것 같진 않았으니까.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
“그러고 보니, 프로필을 보니 이전에 SSA에서 계셨던데.”
마음에 드는 화제였을까, 차준규는 그 말에 화색을 띄고는 대답했다.
“아. 뭐, 그렇지 무려 SSA에서 조아라 선수 알지? 그 조아라가 직접 뽑았었거든.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대인전 능력이 조금 떨어져도 말이야.”
조금 떨어지는 게 아니라 1부에서는 허접하기 그지없는 거겠지.
뛰어난 팀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이, 자신을 보증해줄 수 없다는 것을. 이 사람은 모르는 걸까.
아무리 별로인 팀에 있었다고 한들, 아무리 좋은 팀에 있었다고 한들. 결국 보는 건 원래 있었던 팀이 아니라, 그 선수 자신인 것을.
그 당연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그래도 우리 팀에 지원해 준 정이 있으니, 냉엄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으리라.
“능력이 좋아서 SSA에 들어가셨다라…… 확실히 프로필에 그렇게 적혀있었죠. 그런데 왜 이렇게 빠르게 방출되었는가는 생각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뭐어?”
답은 단순하다. 능력 하나만 보고 뽑긴 했지만, 다른 것들도 기본은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뽑았겠지.
그런데 그 기본조차도 안 되었으니, 다시 팽한 것이겠고.
“모르시는 것 같으니, 알려드리죠.”
[마도공학무기변환]으로 검을 만들어냈다.
“창술의 스페셜리스트이자, 테크니션인 이성태와의 싸움.”
그리고 쇄도하듯, 빠른 발놀림으로 차준규를 몰아붙였다.
역시나 검을 막아내는 몸짓에는 빈틈이 가득했다.
“창술의 날카로움뿐 아니라, 빈틈을 집요하게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노릴 줄 아는 선수가 이성태 선수죠. 그런 집요하게 약점을 물어뜯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그걸 보려는 게 첫 번째 1대1의 목적.”
빠른 속도도 아니었다. 속도를 확 늦춰 느긋한 손길로도 검이 차준규에 목젖에 닿았다.
하지만 이대로 시험을 끝내지는 않았다.
“1대1 대인전의 특별한 우세를 가지고 있는 이기어검 능력자 윤한결과의 싸움.”
이번엔 [마도공학무기변환]으로 최대한 부피를 줄인 펜싱 검 형태를 여러자루 만들어내곤, 바닥에 흩뿌려 꽂았다.
마치 이근택 회장의 기술을 흉내 내는 것처럼.
“사실 이건 1대1보다는, 다수의 상대에게 공격당하는 상황이랑 유사하죠. 그렇기에. 이 1대1은 여러 적에게 포위당해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게 두 번째 1대1의 목적.”
바닥에 흩뿌려 꽂은 검을 마나장비를 이용해 빠르게 기동하며, 마치 춤추듯 하나하나 날려대며 동시에 쥐고 있는 한 자루의 검으로는 차준규에게 직접 검술을 가했다.
당연히, 일부러 한 번도 제대로 맞추지는 않았다. 다만, 그 모든 찌르기 공격이 차준규를 스쳐 지나갔다.
뺨을 비롯한 온 몸에, 펜싱 검이 스친 상처가 길게 그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녀석이 문제삼았던 1대1 테스트이기도 했던 것.
“장비를 통해 변칙적인 상황과 약점을 공략하는 김도준과의 싸움.”
이건 굳이 직접 보여줄 필요도 없겠지.
“아무리 강한 선수더라도, 변수에 약한 선수는 상대방의 준비와 변칙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상대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오는 것.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걸로 인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능력, 순발력, 유연함. 그걸 보는 게 세 번째 1대1의 목적이죠.”
그런데 저 녀석은 상대를 공부해서 대비해 오지도. 그렇다고 기본적인 변수 대응능력이 출중하지도 않았다.
마지막으로 변환된 시그니쳐 무기.
완전히 제압된 차준규의 머리에 나는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이제 엉터리라고 했던 시험의 의도와 평가기준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녀석은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굴욕적인 표정을 짓고는 PER의 홈을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아무래도 자신의 부족함을 제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테스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차준규에게 알려주고 나오는데……
합격했다고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이서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
1부에서 벤치멤버로 한 생활이 꽤나 길었다.
나갈 수 있는 경기는 전략에 따라서 매우 한정적.
[차원문]능력은 정말 개성 있고 강력한 능력이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1부에서 자주 경기에 나가기란 쉽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번 이적 시즌이 다가오면서 팀을 구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하나였다.
‘일단 선수가 적어야 출전 횟수를 많이 보장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되도록이면 신생팀이나 좀 변하는 팀일수록 좋을 텐데. 자리가 아직 다 안 잡힌 팀에 들어가면 그런 걸 더 잘 보장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헌터스 리그 1부는 쉽게 말해 고인물. 몇 년간 1부 팀의 목록도. 이름도 변한 적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 갑작스레 변동이 일어난 게 이번 시즌이었다.
승강전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1부 팀 리스트에 변경이 생긴 것이었다.
마침 그곳에서 팀원을 공개모집 한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지원을 했다. 지금처럼 벤치에만 앉아있고. 특정 전술을 사용할 때만 출전해 [차원문]을 생성하는 도구처럼 쓰이는 것이 싫었으니까.
그런 생각에 테스트를 보러 온 것이 오늘이었다.
“와…… 신생이라고 해서 시설 같은 건 거의 기대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삐까번쩍해? 완전 말도 안 되네~ 너무 좋다 진짜.”
물론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1부 경력이 나름 있는데 괜찮지 않을까. 그때까진 그리 생각했다.
그리고 역시나 외부에서 본 것처럼 내부도 훌륭한 홈이었다.
안내를 받아 올라간 곳에서 테스트가 시작되는데, 1대1 테스트였다. 이미 테스트를 마치고 나온 사람은, 뒷 순번 사람들이 들어가 안에서 벌어지는 테스트들을 볼 수 있지만. 이서현의 차례는 마지막.
1대1이라는 정보, 그리고 기회가 세 번이라는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차례가 다가온 시험은 생각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았다.
‘이게 이제 갓 1부 올라온 팀이라고?’
무력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변칙에도 능했다. 테스트 종목이 1대1이었기에, 비 전투인원인 이서현으로서는 힘든 시험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차원문으로 아무리 버티고, 트랩을 설치하며 도망가도 이길 방법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까.
‘대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뽑으려나 보구나…….’
아쉬웠다. 시설도 좋고, 전망도 꽤 좋아 보이는 팀인데.
세심한 평가 기준을 위해 준비된 테스트의 의도도 곳곳에 보였다.
왜 다 다른 사람을 1대1 상대로 배치했는지. 그게 무엇을 평가하려는 의도인지도.
그래서 기대하고 있지 않았는데.
이렇게 뽑힐 줄이야. 근데 의외의 상황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 지원자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시험의 의도를 설명해 주면서, 결과에 승복하도록 유도하는데……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보고 있었구나.’
알기로는 이제 막 1부에 올라온 헌터일 텐데. 어떻게 저런 안목과 관찰력을 가질 수 있는지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배우고 싶은 마음도 끓어올랐다.
아무리 특출난 능력이 [차원문]밖에 없다지만, 저런 사람에게 배운다면 무언가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닦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특히나 벤치에서 썩다가 가끔 쓰이는 선수가 아니라, 경기에 자주자주 출전도 하고……
그렇지만 이것 하나는 물어봐야겠다.
“그…… 구단주님. 뽑아주셨는데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저도 말씀하신 그 평가 기준에 그렇게 잘 대응한 것 같지는 않은데. 뽑아주신 이유가 뭐죠?”
목소리 높이면서 하나하나 따지는 지원자에게 차분하고 냉정하게 조목조목 따지는 모습이 근엄하고, 조금은 압도되었지만.
그래도 이건 물어봐야 했다.
그냥 도구같이 [차원문]의 효용만 보고 아주 가끔만 쓰고 벤치에 앉혀둘 속셈이라면 곤란했으니까.
“그야 단순하죠. 첫째는 [차원문] 때문입니다.”
‘…….’
[차원문]능력 역시도 내 능력 중 일부이지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이렇게 된 거 계약조건에 출전 회수 보장 조항이라도 협상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하지만, 그것뿐은 아니죠. 처음 이성태와의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차원문]을 이용해 상대를 끌어들여 즉석에서 트랩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활용 능력.
그리고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윤한결에게서도 도망갈 수 있는 능력이면서도, 자신의 포지션적 특성과 힘을 잘 파악해 도망가는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김도준이 변칙적인 공격에도, 이미 상대에 대한 학습을 통해 대응 방법을 준비해두는 것까지…….”
이창현의 세심한 칭찬이 이어졌다. 이렇게나 자세히 봐주고 있었던 것인가?
“종합적으로 훌륭하니까요. 단순한 힘겨루기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능력의 성장성도 무궁무진하구요.”
조금 감동받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서현은 이창현의 속마음의 절반 이상은 모르고 있긴 했지만.
‘사람 능력이 어떻게 [차원문]? 이게 있으면 폭격기전략을 말도 안 되게 바꿀 수도…… 그리고 나랑 류재준의 [파동]과 쌍권총 난사 듀오가 난입했다가 게릴라처럼 빠지는 전술도. 아직은 모르지만 규모가 큰 것도 한번에 옮겨지면 ‘우주방어전략’의 진형 자체를 통으로 옮기면…….’
온갖 말도 안 되는 전술들의 실현이 새롭게 가능해질 것이라 생각하며, 이서현을 팀에 넣을 생각에 군침을 흘리고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했으리라.
하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