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깨달음
“물론 그 사이에 낀 적을 먼저 처리하구요.”
윤한결. [더 헌터스 제네레이션]에 참가했던 유망한 신인 지원자였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 메아리 쳐 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직후. [쇠락의 저주]에 걸려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검이 꽂히는 것까지도.
아팠다.
그 검 끝이 자신을 찌르는 것이 전신을 불태우듯 아팠다.
헌터스 리그의 통증시스템 때문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무대에서, 자신 있었던 전술로 경기가 무너졌다는 것이 아팠다.
나는 심사위원이고, 상대는 지원자일 텐데. 나는 선배이고, 상대는 한참 후배일 텐데.
질 수 없는 이야기일 텐데. 졌다.
이기는 길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압도적으로 진 것도 아니고, 분명히 이길 수 있었는데.
한 번의 헛발질이.
남색 머리 녀석의 목을 꿰뚫지 못한 한 번의 칼질이. 경기를 망쳤다.
분해서, 화가 나서 얼굴에서 눈물이 흘러 넘쳤다.
심사위원 시절. 자신을 선망하는 눈길로 바라보던 윤한결. 그 녀석은 이기어검으로 찌르면서 날 비웃고 있었을까.
이제 퇴물이 되어버린 녀석이라면서. 뒷 세대에 자리를 물려주지 못할 망정 아둥바둥 자리나 지키려고 한다고.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는다고 욕하고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지금껏 내가 쌓아온 것은 무엇이었는가. 지금껏 쌓아온 우승도. 전략도. 전술도. 경험도 의미 없다면.
선수로서 대체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가.
더군다나, SSA처럼 조아라 자신이 캐리해야 하는 경기에서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시즌 중 SSA가 질 때마다 경기 평가에 달렸던 댓글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왜 자꾸 혼자 떨어져서 달려들다가 죽음? 조아라 상대 팀한테 돈받았냐?]
[조아라 영입할 돈 이면 다른 팀 에이스 둘인데 그냥 조아라 방출하죠?]
[과거 향수에 젖어 캐리병 걸린, 캐리 안 되는 에이스]
맞는 말이었다.
‘캐리하지 못하는 에이스라니.’
어쩌면 지금껏 이창현에게 모질게 대했던 것도.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알게 모르게 이창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참해도 이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하……하하하.”
헛웃음만 나올 따름이었다.
연습경기인 것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지원자였던 녀석들이, SSA의 신인들이 내 등을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꼴사납게 폭사했다는 것이 문제였지.
거기에 아마 경기는 조아라의 죽음으로 SSA 쪽에 크게 불리하게 되었을 터.
이제 남은 건, 처참하게 SSA가 무너지는 일만이 남았으리라.
그렇게 생기 없는 눈으로, 그저 관전 화면을 바라보았다.
‘…….’
조아라가 쓰러져, 이제 막 6대 7의 한타가 열린 전장.
그 한타는 예상치 못한 형태로, 비등비등한 힘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저건…… 연습 때 나한테 보여준 적 없는 무기인데. 호진이가 저런 마나장비도 다뤘었나? 그런데 이 맵에선 오히려 좋아.’
‘저 방어 포지션은…… 가르쳐 준 적도 따로 훈련한 적도 없었을 텐데?’
평소 SSA의 팀 지분은 에이스인 조아라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도 게임이 비등비등하다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럴 수 있던 이유는, 다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던, 가르쳐주지도 않았던 새로운 기술과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일까.
자신이 절대적 에이스이고, 자신이 잘 해내야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전 시즌에서는 그 말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껏 조아라가 거의 모든 게임 전면에, 원 톱 에이스로 나서서 잃었던 가능성의 분기들이 눈 앞에 보이고 있었으므로.
신인들이라고 은연중에 책임지지 않게 하고, 뒷 선에서 서포트하게 하고.
조아라의 등 뒤를 지켜보도록 하게 했지만.
……어쩌면 인정하지 않으며, 조아라 자신만을 위해 아득바득 살아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밀려나기 싫어서. 폼이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어쩌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자라나는 새 재능들을 보고 열등감을 느껴서.
더더욱 악에 받쳐 안되는 걸 알면서도 더더욱 앞으로 나왔던 게 아닐까.
PER은 인원 수가 앞서는 것을 내세워 앞으로 계속해서 들어왔지만, SSA는 그에 맞서 더 단단하게 대응했다.
어쩌면 조아라가 저기에 껴 있어, 7대 7로 싸웠으면 쉽게 이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조아라는 깨달을 수 있었다.
과거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폼이 약간 떨어진 시점에서는 적어도 저렇게 싸우는 전술이 맞았다는 것을.
원 톱 에이스에 의존하는 전술이 아니라, 함께 싸워나갔어야 했다는 사실을.
모든 헌터스 리그의 선수는 폼이 변한다. 때론 잘하는 시즌도, 못하는 시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먹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젊고, 팔팔한 녀석이 이기는 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헌터스 리그에서 버텼다면, 그 경험으로 떨어진 피지컬을 채우기도 했으며.
마나장비에 대한 노하우를 익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기도 했으며.
그것도 아니라면 맵과 전술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익혀 오더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꼭 앞에 나서야 한다는 법은 없었다. 그저 오르내리는 폼에 맞게 알맞은 자리를 찾아가야 했을 뿐.
그것에 좋고 나쁨은 없다.
승리를 위해. 그리고 순리에 따라, 부족하면 다른 것으로 채우면 되는 것을.
자신이 있었다면 승리했으리라고 생각되는 그 마지막 SSA와 PER의 한타를 보며.
조아라는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했다.
과거의 영광과 승리에 고여버리지 않도록. 저곳에서의 우승 경험을 잊고, 오늘의 경기를 새기면서 계속 변화하고 성장해야겠다고.
그렇게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던 찰나.
마지막 한타에서 아쉽게 패배한 SSA의 팀원들이 대기실로 쏟아져 나왔다.
다들 아쉽게 패배해서 그런지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다.
“고생했어. 연습경기인데도.”
어설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경기에 패배한 것에 대해 화가 나거나, 전술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미안하다. 오늘 먼저 짤려버려서. 솔직히 말하면 한 끗 차이였는데…… 이젠 좀 늙어버렸나? 다음 시즌부터는 원 톱 전략이 아니라, 다르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내뱉자, 꽤나 의외라는 듯 SSA의 팀원들이 쳐다보았다.
심지어는 속닥거리는 녀석도 있었다.
“조아라 선배…… 원래 이런 이미지였나? 원래 연습경기 포함해서 경기 한 번 한 번 질 때마다 완전 무섭게 피드백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야 너! 다 들리거든?”
패배했음에도 평소처럼 무거운 분위기는 아니었다. 비단 이 경기가 시범운행의 의미를 가진 연습경기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마음이 가벼워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오…… 뭐야. 조아라. 너 평소랑 다른데? 까고 말해서 쟤들 말이 맞지 않냐? 한 번 지기만 하면 아주 하나부터 끝까지 지랄지랄을…… 아주. 심사위원 시절 지원자였던 녀석들한테 코 깨지고 정신이라도 든 거야?”
“호진아. 죽고 싶니?”
한 대 쥐어박으려고 했는데, 날뛰며 피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대기실에는 평소에는 잘 느껴지지 않았던 활기가 느껴졌다.
평소와 다른 패배한 SSA의 대기실.
그래, 바뀌어 가야 하는 것이리라.
세상이 바뀌고, 선수들도 능력도. 전술의 유행도 바뀌어만 간다.
승리의 경험도. 과거의 영광도, 모두 소중하지만. 나 역시도 변해가는 만큼, 언제까지고 같은 방식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으리라.
***
“아니. 선배님 검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아니 전위에서 합을 맞추려고 하니까, 너무 경우 없이 이기어검이 날아가서 뭘 맞출 수가 없던데.”
“경우가 없긴, 원래 의외의 지점을 찔러야 상대에게 크게 작용하는 법인데.”
이연주의 가스라이팅 때문인가, 팀원들에게 모두 꼬박꼬박 선배라고 부르고 있는 이성태와 윤한결이, 아까 전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투 톱으로 같이 전방에서 합을 맞추는데 어째 싸울 때 합이 하나도 안 맞았으니까.
그 대화는 어째 계속 스케일이 커졌는데, 하나 둘 이번 경기에 참가했던 훈수꾼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아까 그 뭐야. 성태 없이 조아라 심사위원님 잡을 때는 다들 합 잘만 맞추더만. 또 너야? 막내야?”
아예 막내라고 부르면서 놀리는 한지수나
“그래도 선배 된 사람으로서 다들…… 후배가 제대로 합을 맞출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죠!”
이성태 후배 가스라이팅의 주모자 이연주까지.
‘아주 개판이다 개판.’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번 경기에서 같이 오더 역할을 맡은 류재준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는 것을 보면.
“그나저나 이창현. 왜 상대방의 에이스를 처치하고 난 이후로는 오더를 해주지 않은 거냐. 따로 이야기되지 않은 부분이다.”
“에.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떠먹여 줄 거라고 생각했어?”
“뭐야, 중간서부터는 창현이가 아니라 재준이가 오더한 거였어? 어쩐지~”
가만히 있다가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김도준이 깐족거렸다.
“좀 그런 것 같긴 했어. 에이스를 격퇴할 때까지는 치밀함이 돋보였는데, 그 다음에 상대 본대를 상대할 때는 뭔가 엉성했달까.”
“그렇게 엉성했으면 네가 오더를 내리지 그랬나.”
류재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지만, 김도준은 이미 홀랑 자리를 떠버린 채였다.
‘그나저나 김도준도 최근에 이상하리만치 잠잠한데. 저번처럼 마나공방이랑 짜고 뭘 또 만들고 있는 건 아니겠지?’
뭐, 어차피 이제는 경기 시작 전에 나한테 말하고서 시작할 테니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세세하고 즉각적인 문제는 내가 하나하나 오더로 짚어줄 수 없으니까. 적어도 연습할 때는 지금처럼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오더를 줄일 거야.”
내가 직접 경기 내에서 짚어줘야 하는 오더가 늘어날수록, 내 플레이에는 신경을 필연적으로 덜 쓰게 될 수밖에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SSA의 분위기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아라는 심사위원의 위치에 있기도 했었고, 경기를 졌으니 굉장히 가시방석같은 느낌일 텐데.
평소에도 조금 날카로운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번 경기에서 궁지에 몰아넣은 순간에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은 듯 보였으니까.
하긴. 후배 선수에게 따라잡힌다는 그 공포감은, 사실 말도 못할 정도이긴 하다.
나보다 더 적은 경력, 더 어린 나이로 나랑 비슷한 위치나, 나보다 뛰어난 선수가 되어버리는 걸 보고 괴로워했던 선수들을 많이 봐왔으니까.
아마 조아라도 그렇게 괴로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
SSA의 팀원들이 대기실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오늘 연습경기. 서로 각자 팀에게 꽤나 도움이 되었었던 것 같은데. 만족하지?”
평소의 날카로움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쾌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게요. 돌아가면 피드백 할 거리가 산더미에요.”
“우리 팀도 그래. 그런데, 다음에는 연습경기여도 너까지 나와줬으면 좋겠네.
SSA쪽은 나름 에이스인 내가 나왔는데, PER에서 네가 안 나온다면 좀 그렇잖아? 심사위원님 체면도 좀 챙겨달라고. 아. 어차피 다음 경기는 정규리그에서려나.”
조아라는 잠시 뜸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다시 한번 그때 혈전을 벌여보자고. 이번엔 내가 도전자의 입장으로.”
무슨 심정의 변화라도 있었던 걸까.
글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리라.
원래 같은 리그의 팀이라는 것이, 같이 연습경기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전체 리그로 보면 한 식구이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