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희비
“뭐라고? 중립 몬스터가 위험해서 조심조심 돌아서 합류하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합류하면서 소리를 지르라고?”
“들은 그대로다.”
오더를 받은 이길한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열변을 토해냈다.
“[쇠락의 도시]의 중립 몬스터, 악귀한테 걸리면 [쇠락의 저주]에 걸려서 사실상 전투불능이 되는 건 알고 있지?”
당연히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읽을 수 없었으므로.
“그걸 모르고 이런 오더를 할 리가 없잖아. 오히려 알기에 이런 오더를 내리는 거다.”
하지만 이창현의 오더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을 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측에서 에이스 스트라이커 하나로 게릴라전을 벌이겠다는 건, 그 한 명의 기량이 객관적으로 압도적이라는 거겠지. 최소한 공격에 실패하거나 집중공격 받더라도 ‘혼자서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그 말은 혹시 그 악귀를…….”
“그래. 유인해서 너랑 상대의 에이스랑 교전 중인 우리 팀이 [쇠락의 저주]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의 에이스랑 동귀어진을 하는 거다.”
그 말에 이어폰에 들려오던 팀원들의 의견교환 소리가 잦아들었다.
각자 이창현이 말한 상황에 대해 상상하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
“그럼 결국 최소한 상대 팀과 우리 팀. 1대2의 교환인데, 상대가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닌지?”
“아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말은 동귀어진이라고 했지만…… 우리 팀이 당할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게 이창현이 말했던 플랜 B의 전모였다.
***
‘첫 한 방이 빗나간 게 너무 컸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너무나 큰 실수였기 때문이었을까. 조아라는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첫 한 번에 정확히 목을 꿰뚫었다면, 증원이 오는 일도.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끌리는 일도 없었기에.
이미 두 번째, 세 번째 인원을 끝장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꼬여도 너무 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근거로, 예상에 없었던 적의 합류가 이어지고 있었다.
“잠까아아아안 ㅡ!”
‘한 놈씩 잡으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합류할 시간을 줘버린 이상…… 일단 빼는 수밖에.’
이렇게 되면 시간이 끌리면서 필연적으로 조아라에게 불리해질 수밖에 없으니.
불리한 전장에서 굳이 싸울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유리한 전장만 고를 수 있는 게 이 맵에서의 조아라의 장점이기도 했으니까.
‘빼자.’
그렇게 마음먹고 에어앵커를 빙 두르며 날아오르려는 순간.
우우웅 ㅡ !
광범위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중력의 힘이 조아라를 짓눌렀다.
광범위한 만큼,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은 힘이었다.
하지만, 공중으로 날아오르려던 조아라의 발목을 붙잡기에는 충분했다.
“…….”
PER측 녀석들이 서서히 한 명씩 합류하며 압박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후…… 구질구질하게 진짜. 하지만 공중으로 굳이 날아오를 필요 없어. 여기선…… ‘에어대시’만 이용해도 빠르게 빠져나갈 수………….’
일순간이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전투 상황에서, 그 상황에 맞게 빠르게 사고하고 전략을 수정하고 있었지만.
항거할 수 없는 묘한 힘이 들이닥쳐 조아라를 무력화시킨 것은.
마치 몸이 녹아내리듯, 온몸에 근육통이 온 것처럼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대체…… 당장…… 움직여야…… 하는데…….’
갑작스레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쇠락의 도시]에서 바닥을 기어다니며 저주를 퍼뜨리는 악귀가, 조아라를 보며 눈을 번뜩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평소라면 결코 그 악귀에게 덜미를 잡히지 않았을 터였다.
실제로, PER의 녀석들에게 접근할 때에도. 과거 결승전을 [쇠락의 도시]에서 치를 때에도.
다른 헌터들과 달리 이 악귀의 존재에 대해서 코웃음 칠 뿐.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뛰어난 기동능력과, 마나장비 사용능력. 민첩성. 그런 조아라의 종합 기동능력으로는 그 악귀가 전혀 위협적일 일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연주의 ‘속박’ 윤한결의 ‘이기어검’ 한지수의 ‘중력조정’까지……
수많은 능력들이 피할 수 있는 각을 좁히고 좁힌 나머지,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린 것이었다.
‘이걸 생각해서 저 악귀를…….’
PER 녀석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약간의 덜미만 잡을 수 있을 뿐. 결론적으로 조아라 자신이 도망치는 것을 완벽히 막을 순 없다는 걸 인지했던 것일까.
그 마지막 쐐기로 이 맵의 중립 몬스터를 온갖 어그로를 끌어가면서 끌고 온 것이리라.
그리고 아마 이 전술의 중심에는 아마 이창현이 있겠지.
‘이창현…… 이창현……!!!’
이게 이렇게 될 게임이었나? 저번 결승전처럼 분명 잘 풀렸어야 맞았다. ‘속박’도 ‘이기어검’도 ‘중력’능력도 모두 충분히 조아라의 기량으로는 돌파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머릿속이 헤집어지는 것 같았다.
악귀의 저주에 무력화 되어 바닥을 기어가듯 엎어진 조아라에게 악귀가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저 악귀를 유인해 돌격해 온 PER의 덩치 녀석도.
파동을 쏘아내던 녀석도 조아라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화면으로 경기를 보며 오더를 내리고 흐뭇해할 그 녀석을 보니 도무지 침착할 수가 없었다.
분명, 1대 2 교환 정도가 되더라도 충분히 팀이 꽤 유리한 고지에 설 텐데도.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마저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쇠락의 도시]의 악귀의 약점은 간단해요.”
PER의 두 명. 그리고 조아라가 악귀의 저주로 쓰러져 있는 상황. 도시에 나긋하게 울려퍼지는 목소리.
아무래도 폐허가 된 건물 잔해 어딘가에 숨어 있는 모양이었다.
‘또 증원이 온 건가…….’
악귀가 그 목소리의 근원이 어디인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 가운데.
“[쇠락의 저주]에 걸린 팀원을 발견했다면. 그 근원인 저 악귀를, 저주에 걸리지 않은 팀원이 죽여준다면 손쉽게 풀려날 수 있으니까요.”
‘그걸 지금 누가 몰라서…….’
“물론 그 사이에 낀 적을 먼저 처리하구요.”
그 말을 끝으로, 서너 자루의 검이 조아라를 향해 날아왔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
‘조아라 심사위원님을 이렇게 잡다니…….’
허무하리만치 쉬운 마무리였다.
새삼 생각해보면, 이런 비슷한 일이 오디션 프로그램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윤한결 자신이, 이창현에게 당했던 비슷한 전략이 있었던 것 같았다.
떠벌거리던 진 한과, 윤한결 자신이 이창현을 협공해서 몰아세웠다고 생각했을 때.
근거리에 숨어서 매복하고 있던. 한지수의 중력에 의해 추락했던 것 같은데.
미묘하게 다르지만, 한 명이 상대의 에이스를 유인하고, 나머지 팀원들이 근거리에서 기다리며 증원을 해 함정에 빠뜨린다는 점에서 같았다.
“너무 쉬운데? 네가 막 겁줘서 그렇지, 원래 좀 쉬운 경기였던 거 아니야?”
악귀가 보지 못하는 사각에서, 검을 빠르게 조작해 악귀를 죽여 이길한과 류재준을 구한 후 이어폰에 대고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이창현이 반문했다.
“그렇다면 보는 눈을 조금 더 길러야겠네.”
작전이 성공해서였을까. 약간은 신이 난 듯한 이창현의 이야기가 길어졌다.
“이번 전략은 완전히 한 끗 차이였어. 만약 류재준이 조아라의 첫 수에 완벽히 목이 꿰뚫렸다면 완전히 휘둘렸겠지. 류재준을 처치한 후, 숨었다가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을 그렇게 하나씩 처리했을 테니까.
반면 실제로는, 한 번 피해냈고 그렇게 벌어낸 시간을 다른 팀원들이 조금씩 더 벌어줘 이길한이 악귀를 유인할 시간까지 벌어낸 거니까.”
“요점은 그 첫 수가 빗나간 걸로 게임이 바뀌었다는 건가.”
“그런 셈이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런 작은 미세한 차이 하나가, 움직임 하나가 이렇게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조아라 심사위원님의 움직임은 무리한 활동이 되었지만, 사실은 그게 맞는 것이었던 걸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역시 창현이가 이야기하는 헌터스 리그는 복잡하네.’
틀린 적은 없지만.
한편 허를 찔렸던 조아라 심사위원님의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던데. 되레 그것이 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
한편, 같은 싸움을 끝냈지만 직접 오더를 들었던 류재준의 입장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몇 수 바깥까지 보고 있는 것이지?’
바깥에서 경기를 보는 일반인이나, 직접 조아라를 대면하지 않은 외부자의 시점.
그니까 윤한결 같은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류재준은 이창현의 전술의 면면이 명확하게 보였으니까.
지금의 경우 결국 PER이 손해를 하나도 입지 않고 끝났지만……
만약 상대방의 움직임에 맞게 플랜 B를 곧바로 제시하지 못했더라면?
만약 류재준과 감각을 동기화한 이창현이 조아라의 공격에 대해 0.1초만 더 늦게 위험하다고 알려줘서 빗맞지 않았더라면?
만약 이연주와 윤한결, 한지수의 원거리 지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이길한에게 악귀를 유인해 동귀어진 당하더라도 끌고 오라고 오더하지 않았더라면?
어느 부분 하나에서만 디테일이 떨어졌더라도, 조아라는 도망치거나, 혹은 조아라의 전술이 성공적으로 먹혀 PER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으리라.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미리 경기 시작 전 계획했던 전술도 아니고 이 전술이 시작하고 나서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나왔다는 것.
‘결국은 이 경기엔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 팀에서 누구보다 영향력을 강하게 행사했나.’
이근택에게 배웠기에 눈이 높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류재준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실력과 이해도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반대로 당한 조아라는 누구보다 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류재준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지만, 조아라는 자기가 직접 후배로서 조언하고 교육했던 오디션 지원자에게 패배했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이창현에게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이창현의 계획도 단 하나. 불완전한 부분이 있었으므로.
“그런데 이창현. 네 플랜 B에서 만약 내가 조아라의 첫 수를 피해내지 못해서 일격에 죽었다면, 완전히 상대 측의 노림수대로 되었을 텐데. 그 부분에선 어떻게 피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 거지?”
그래. 분기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크게 희비가 갈린 지점은 바로 그곳이었다.
게다가 완벽하게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는 지점이기도 했다.
“첫째는 류재준이 이근택 회장님의 교육을 받아 기본기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충분한 답은 아니었다.
조아라의 수준은 그것을 가볍게 넘을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둘째는 ……글쎄. 완벽히 예상한 건 아니지만, 조아라 선수의 지금 폼이 그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우승을 2회나 했던 선수인데, 폼이 별로 좋지 못하다고 평가한다라……
걸핏 외부자가 듣는다면 꽤나 과장되어 화제가 될 수도 있을 법한 말이었다.
“……시간이 지난다는 건, 잘못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면서 성장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고여버릴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니까.”
1부에선 신인인 이창현이 할 법한 말은 아닌데, 거기에서 묘한 감성과 뉘앙스가 느껴졌다.
마치 그것을 다 이해한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