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과거의 실패 앞에서
회귀 전 헌터스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쌓고, 선수로서 꽤나 오랜 경력을 지녔던 것이 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선수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이름은 커녕 플레이스타일조차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선수들. 그런 선수들이 솔직히 말해 꽤나 많았으니까.
기억하는 선수들은, 나를 이겼거나, 나랑 함께했거나. 혹은 특별한 능력을 가졌거나.
어찌되었든 강한 인상을 남긴 선수들 뿐.
지금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조아라…… 심사위원으로 소개할 때 분명 한국리그 2회 우승에, 준우승 3번이라고 했었지.’
그건 이제 와서야 직접 붙으며 생각난 것이지만, 조아라라는 이름은 내게 꽤나 생소했으니까.
뭐 스쳐 지나가는 선수들의 경우 기억이 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그 정도로 톱급인 선수는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만났을 당시, 평범한 1부 리그 선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나…… 아니면 은퇴했던가.’
둘 중 하나이리라.
그 생각에 이창현은 경기 시작 전, 조아라가 참가했던 우승 당시의 경기. 그리고 현재 SSA에 있는 조아라의 경기를 돌려봤다.
거기에. SSA가 더 이상 우승하지 못하는 이유가 보이는 듯했다.
‘변했구나…….’
아주 약간이지만, 시간이 지났지만 오히려 퇴보했다. 딱 그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다른 신인 선수들과 베테랑 선수들은 오히려 실력이 더 늘어 격차가 더 커졌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기본 실력이 아주 뛰어났기에 그 갭이 좁혀지는 게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원 톱 전략을 주로 쓰는 SSA에게는 성적 하락의 주요 요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변화 없이. 서서히 나이를 먹고 쇠락해가면서…… 뒷물로 밀려나고 있구나.’
그게 이창현이 SSA의 경기를 잠깐 눈대중으로 살펴본 소감이었다.
조아라에게 별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썩 유쾌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뿐이다.
***
“피해!”
류재준이 낀 한쪽 이어폰에 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맞춰, 류재준이 빠르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목소리를 듣고 반응해서 움직였기 때문이었던 걸까.
고개를 돌리니, 이미 빠른 속도로 조아라가 검을 들고 달려들고 있었다.
피할 수는 없고, 마나실드 따위로는 막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강맹한 일격.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근택의 훈련으로 오만가지 상황이 류재준의 몸에 익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우우웅 ㅡㅡㅡ.
류재준이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는 상황에 한 최대한의 선택은 반격.
하지만 그 [파동]에도 조아라의 강맹한 기세는 멈추지 않고, 검을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분명 류재준의 [파동]의 충격은 분명 전해졌다.’
칼 끝이 흔들렸다.
샤악 ㅡ.
불행 중 다행으로 조아라의 검이 류재준의 목을 살짝 스쳤고, 핏방울이 공중을 휘날렸다.
‘다행히 치명상은 피했군…….’
“뭐지? 연주가 따로 접근한다고 말해준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마나를 차단시킨 방법이 따로 있을 거야. 능력이든, 장비든. 1부 정도 되는 시점에서는 이제 ‘절대’라는 건 없으니까.”
“후…… 어쨌든 덕분에 살았다.”
류재준의 긴장감이 내게도 전해져 왔다.
‘예상보다도 빠르고, 강하다. 역시 그 우승 경력은 아예 어딜 가지 않겠지.’
화면으로 보았을 땐 폼이 꽤나 내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류재준의 감각과 동화시켜 보았기 때문인 것일까. 아니면, 내 몸이 아니라 류재준의 몸이라 그렇게 느낀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과거에, 조아라가 한국 리그에서 우승할 때의 폼이었다면 류재준이 반응했더라도 분명 그 검이 류재준의 목을 꿰뚫었겠지.’
분명 빠르고 강하지만. [파동]을 이용해 저항했다고 하지만. 완벽하게 이연주를 속여넘기고 들어와 류재준을 노린 이 순간의 암습은 완벽했다.
‘……역시나.’
“암습을 받아넘겼는데, 이 정도 피해면 없는 수준이지. 긴장할 필요 없어 류재준. 플랜 B다.”
“……알겠다.”
***
때는 조아라가 PER의 진영에 도달해 류재준을 암습하기 전.
“플랜 B?”
류재준이 그게 뭐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진영 대 진영 싸움이 되기 전, 난장판이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혹은 에이스가 먼저 쳐들어오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었지? 지금 경기에 참가 중인 녀석들이랑 같이 들어.”
띠링 ㅡ.
이어폰의 보이스 설정이 바뀌고, 이윽고 내 입이 다시금 열렸다.
“그 때를 위한 플랜 B다. A는 전에 말했던 이성태와 윤한결을 앞세운 투톱전략이고.”
그 말을 시작으로 이어폰에 플랜 B 전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선 현재 상황. 이연주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SSA는 본대는 뭉치고 한 명의 에이스가 이리로 향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우리의 합류가 끝나기 전에, 그쪽의 에이스가 우릴 덮치겠지.”
“그럼 어떻게 되는데?”
“[쇠락의 도시]의 특성 탓에 합류가 어렵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짜르면서, 큰 피해를 주면서 SSA의 에이스가 게릴라전을 벌이겠지.”
정말이지, 이 맵이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뭐가? 이 맵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그건 맞지. 맞지만.”
사실 이 전략이 통할 수 있는 본질은 단순하다. 합류가 어렵다는 맵의 특성. 그리고 여기에 존재하는 특수한 중립몬스터의 존재.
“만약, 녀석이 하나씩 덤벼서 짜르는 건 좋아. 굉장하고 확실히 강력하니까. 그런데 만약 어느 한 명이 당하지 않아서, 살아서 물고 늘어지는 것이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
“아…….”
“조금만 버티더라도 지원이 오겠군. 하지만, 지원이 오더라도, 녀석은 도망가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추가되는 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지.”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이 나왔다.
‘압도적 원 톱’이 자기만 자유로울 수 있는 능력적 우월함을 이용해, 상대를 짤라먹으며 게릴라전으로 상대를 유린한다.
하지만, 그 원 톱이 상대하는 자의 기량이 뛰어나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어떻게든 그 녀석을 붙들어 놓을 수 있다면.
죽이려고 들어온 에이스는 오히려 스스로 상대편에 둘러싸여 함정에 들어온 꼴이 된다.
즉, 맵의 특성 때문에 가려진 것뿐이지.
본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라는 뜻이었다.
“오…… 생각해보니 그렇군. 이연주의 [속박]이라면 가능할지도.”
“뭐, 일반적인 선수나 2부에서라면 분명 먹혔겠지만. 1부의 팀 에이스급 되는 선수라면 힘들걸?”
“그러면 어떻게 붙들라는 거지?”
“머리를 써야지.”
그리고 후에 이어진 내 말을 들었을 때. 윤한결이 충격을 받은 듯 말했다.
“이것도 나중에 카페에 PER의 전술 분석 노트에 올려도 돼?”
되겠냐?
***
조아라의 눈에 목에서 피를 흘리는 류재준이 무언가 소통하는 모습이 보였다.
‘오더를 받는 건가?’
아무래도 이창현이랑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사실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다.
오더를 받아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점이려면, 아직 조아라 자신이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겠지.
지금 이렇게 코 앞에 있는 경우?
‘녀석의 오더보다 내 칼이 빨라!’
“뭔가 많이 듣느라 바쁜가본데…… 아쉽게도 이쪽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거든.”
아무리 합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들, 되도록 많은 녀석을 죽이고 빠지려면 서두르는 것이 좋았으니까.
“나머지 피드백은 죽고 나서 피드백 룸에서 하도록 해. 아프진 않게, 한 번에 보내줄 테니까.”
다시금 검을 세워 올리고는, 기수식을 취했다.
에어대시를 마치 자신의 다리근육처럼 자연스럽게 쓰는 매끄러움.
그 매끄러움으로 인해 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빠른 찌르기가 시작되려던 찰나.
샤라락 ㅡ.
이연주의 속박이 발동되었는지, 허공에서 검은 사슬이 흘러나왔다.
“이연주…….”
류재준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잠시.
“저런 건 이미 알고 있어.”
조아라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고, 이연주의 [속박]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큿…… 생각보다 귀찮은데. 이래서 거리제한이 없는 능력을 가진 것들이 성가시다니까.’
하지만 여전히 지금이 조아라의 턴인 것은 다름이 없었다.
한번 시작된 조아라의 초식은 멈추지 않고, 류재준을 향해 착실하게 다가가고 있었으므로.
그런데. 분명히 이연주의 [속박]을 피해냈는데도, 계속해서 무언가가 조아라의 뒤를 노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번엔 또 뭐……!’
이대로 찔렀다가는, 찌르고 난 후 멈춘 순간 따라오는 것에 역공을 받을 가능성이 컸다고 판단한 나머지. 슬쩍이나마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돌아본 조아라의 동공에 비친 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저건…… 윤한결의.’
원래는 저렇게 많지도, 그리고 이렇게까지 멀리 날리지도 못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내버려 두었다가는 정말 치명상을 당할 수 있었기에, 마나를 실어 강하게 쳐낼 수밖에 없었다.
챙!
다행히도, 윤한결과 많이 떨어져 있어 그 힘은 약한 것인지 쉽게 떨쳐낼 수 있었다.
물론 그 검이 한 개가 아니었다는 점은 여전히 귀찮았지만.
챙! 챙!
모조리 쳐서 떨쳐내면 될 일……
“……?”
콰콰콰쾅!
“크… 읏.”
‘윤한결 이 새끼가…… 남은 검 한 개에는 마나봄버를 달아 놨던 건가.’
조아라의 기본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충격을 입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체되는 것도 이걸로 분명 끝이리라.
어쨌거나, 녀석들이 합류하지 못하는 상황은 계속되고 있고 저런 잡기술들로 멀리에서 지원해 봤자 딱 저 수준이다.
귀찮게 하는 수준. 그 정도의 선인 것이다.
‘대부분의 능력은 어차피 사용자로부터 멀어지면 급격히 약해지니까. 귀찮게 하는 것도 이제 끝이다!’
그렇게 호흡을 가다듬고. 정보에 의하면 더 날아올 수 있는 것도, 지원할 수 없다는 것까지 깨달은 조아라는 눈 앞의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이 될 기수식을 취했다.
“하여간 심사위원 때나, 이제 와 연습경기를 하는 때나. 꼼수를 쓰는 것 하나는 능하네. 하지만 이창현. 꼼수로는 경기를 이길 수 없어. 잔꾀를 써봤자 결국 헌터스 리그는 힘이 강한 쪽이 이기니까.”
더 할 말은 없다.
조아라는 자신의 힘이 그것을 증명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저 녀석들의 능력과 호흡이 생각보다 뛰어나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조아라는 빠지면 그만이었다.
‘뭐…… 지금은 그마저도 아니지만.’
그렇게 마지막으로 에어대시를 사용해 찌르려고 들어가는 순간.
“잠까아아아안 ㅡ!”
미친 듯 거대한 괴성을 지르며, 조아라 쪽으로 돌진하는 사내가 보였다.
‘미친 건가? 이 [쇠락의 도시]에서 저렇게 큰 괴성을 소리를 지른다고?’
조아라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전개가, 이 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