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역동하는 현재
‘아쉽게도. 이길 수밖에 없겠네.’
후배라고 해서, 후배들의 팀이라고 해서 봐줄 생각 없이 열심히 준비해 왔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헌터스 리그에는 가끔 이렇게 쉬운 경기가 실제로 있으니까.
헌터스 리그는 선수풀이 엄청 깊지 않은 이상, 한 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술은 그리 많지 않다.
선수들의 능력에 따라 특화된 전술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전술은 선수들에 따라 갈리는 것만이 아니라, 맵마다 유리한 전술과 불리한 전술이 갈린다.
그런 상황에서 팀원의 능력을 고려해 만들어진 팀의 기본적인 전술적 방향성과, 맵에서 유리한 전술적 방향성이 맞아 떨어진다?
‘그럼 보통 낙승이지. 우리 SSA가 4등으로 시즌을 마감했다고 해도. 이번 시즌을 우승한 LTD를 이길 수 있을 정도로 파워 밸런스가 변하니까.’
조아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 딱 그 비유에 맞는 상황이라고.
거기에 전술적 방향성과 유리함만 맞물리는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조아라가 이끌어 성공한 경험이 있다는 것도 엄청난 경험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다들 그리 걱정할 필요 없어. [쇠락의 도시]의 중립몬스터에 너희들이 합류하다가 갑자기 죽어나가지 않는 이상. 급하지 않게 진행하도록 해. 나는 상대방을 괴롭히다가, 돌입 타이밍이나 별도 오더를 내릴 테니까.”
“네! 조아라 선배님!”
이어폰 너머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생각해보면 이창현이 이어폰으로 오더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참가했다면, 지금 내가 펼치려는 전술과 비슷한 전술을 펼쳐 반반 싸움이 될 수도 있었으리라.
그 녀석의 전술은 실제로 가끔 보면 무릎을 탁 칠 정도로 본질을 꿰뚫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 이창현의 변수 때문에 원래 긴장했었지만…… 지금은 어차피 녀석이 참가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오더 능력만으로도 물론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 맵에선 오더만으로 변수를 만들기는 솔직히 어려울 것이므로.
‘미안하지만, 이창현. 오더만으로 어떻게 팽팽한 싸움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겠지만…… 네 생각 이상으로 다를 거야.’
이 맵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장애물은 바로 중립 몬스터인데, 중립몬스터의 상대는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각이나 경험이 중요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그런 아주 미세한 거리조절. 그리고 실시간으로 중립 몬스터가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전술이나, 행동 등.
아무리 이창현이 오더를 정확하고 빠르게 내린다고 한들, 그것은 결국 남이 해주는 말.
실시간으로 선수가 느끼면서 정확한 ‘직접’하는 것과는 찰나이겠지만 시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시간은 꽤나 치명적으로 작용하리라.
그렇기에. 이 맵에서는 아무리 오더를 한다고 치더라도, 죽었다 깨어나도 조아라의 손아귀를 넘어서지 못할 수밖에.
‘처참하게 깨뜨려주마…… 교육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해도 좋겠지. 아무리 너희들이 1부에 올라왔어도 여전히 나는 선배니까.’
조아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점차, 이창현의 팀. PER의 팀원들이 가까운지 마나가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에서 잘 보라고. 이창현.’
연습게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줄 테니까.
***
한편 이창현의 소리를 듣는 PER의 류재준은 미리 합류하기로 한 장소에서 팀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애들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지금 그대로 가나?”
“응. 다들 중립 몬스터를 잘 피해서 오고 있으니…… 순조로워.”
“그런데 솔직히 지금 잠시 틈이 났으니 말하는 거지만…… 아까 말한 ‘투톱 한타 전술’말이다. 이 [쇠락의 도시]에서 한타가 일어나는 경우는 사실 드문 경우잖아. 중립몬스터를 서로 피하면서 싸우느라 혼란스러운 교전이 많을 텐데…… 그게 그대로 될지. 의문이다.”
“물론 그대로 될 가능성은 적겠지.”
“……?!”
류재준은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 경기장 바깥에 있을 이창현을 떠올리며 괴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창현의 말이 이어졌다.
“그건 단순히 그냥 기본전술이자, 팀의 기본 지침일 뿐이야. 모든 건 상황에 따라. 맵에 따라. 상대방의 전술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해야지.”
“그럼, 그걸 미리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따로 그럴 필요는 없어. 다른 전술을 펼칠 경우에도 결국 어느 정도는 모여 있어야 하니까.”
그 말을 끝으로 류재준은 납득했는지, 말 수가 없이 다시 조용해졌다. 그래서였을까. 말을 하지 않더라도 류재준의 감각에 동화되어 있는 지금.
이창현은 눈 앞에 보이는 쇠락의 도시를 보며 과거를 떠올렸다.
회귀를 하기 전. 모든 경기에 승리했던 건 아니었다. 특히 마지막 시즌에 가까워질수록 그랬다.
그 중, 패배했던 경기에. 이 맵에서 있었던 경기도 있었다.
그때는 1부 리그, 준결승전 [쇠락의 도시]에서의 전투였다.
‘아직도 눈에 선히 떠오르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분하긴 했었네. 그때는.’
지금은 떠올려도 감정에 동요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든 패배 중 하나였다.
그때 이창현이 준비했던 전략은, 과거 [쇠락의 도시]에서 승리를 거뒀던 팀들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원 톱 스트라이커를 내세우는 전략이었다.
한 명의 뛰어난 에이스가 합류에 어려움을 겪는 상대를 하나 씩 모두 처리하고, 나머지 팀원들은 모여서 주인공을 백업하는. 그런 전략이었다.
실제로 그때, 그 전략은 꽤나 잘 먹혔었다.
과거에 그 전략으로 그 맵에서 선방한 것이 괜한 것이 아닌 듯. 날아다니며, 상대를 농락하고 하나씩 상대를 잘랐던 것이었다.
‘마침 그때도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플레이에 일가견이 있기도 했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간과한 것도 있었다.
바로, 상대팀에 헌터 전술의 귀재로 불리우는 사령탑이 있었다는 것.
그게 문제였었던 것일까.
원톱의 압도적 기량으로, 혼자 중립몬스터를 드리블하며 제쳐 상대를 쓰러뜨리는 그 전략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좋은 전략이었고, 딱 맞는 전략이었지만.
그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깨달은 한 가지가 있었다.
‘이전에 아무리 좋았던 전술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파훼법이 발견되고 대처할 방법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새롭게 연구하면서 나아가는 건 1부의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
그건 바로 변한다는 것. 아무리 좋은 전술이어도, 두 번 쓰는 순간. 파훼할 가능성이 크게 늘어난다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끊임없이 나아가지 못한다면 쇠락한다.
그걸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때, 류재준과 동화된 감각 때문에 귀 속으로 날카롭게 이연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 진영 측에서 굉장히 빠르게 PER합류지점 쪽으로 향하고 있어. 우리가 다 합류하기 전에 먼저 도착할 것 같은데?”
그 말에 류재준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규모는?”
“그게…… 좀 이상한데. 마나 반응이 좀 크긴 하지만 한 명 같은데?”
“어떻게 할 거지 이창현?”
류재준이 내게 물어오는 말에, 나는 쓰게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런 실수는 역시 나만 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은 모두들, 비슷비슷한 실수를 하는 모양인가보다.
빠르게 접근 중인 상대가 한 명이라는 것이. 그걸 생각하는 것이 회귀 전, 내가 패배했던 과거에 오버랩되듯 덧씌워졌다.
“어떤 전략인지는 알 것 같아. 좋은 전략이네. 좋은 전략이야…… 하지만 이젠 우리가 알려줘야겠지. 조아라 심사위원한테.”
“뭘?”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말이야.”
***
‘가까워지고 있네. 역시는 역시인가. 천천히 합류하고 있는 모양인데…….’
조아라가 접근하자 서서히 PER의 상대들이 어디에 있는지 더 잘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시작부터 이창현이 천천히 합류하라고 오더했는지, 모이는 모양새인 듯 했다.
‘확실히 정석이네.’
이창현의 전략은 일반적으로 [쇠락의 도시]에서 정석적인 움직임이었으니까.
강하고, 일반적으로는 혼자서 뿌리치기 어려운 쇠락의 도시의 중립몬스터도 모이면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조아라가 생각하기에 거기엔 큰 빈틈이 있었다.
‘모인다는 건, 둔해진다는 것. 그리고…… 그 모이는 도중에는 되레 자르기 좋은 빈틈을 제공하지.’
일단 모인다는 것은 진형을 짜고, 거기에 맞춰 서로 의사소통하며 움직인다는 뜻. 당연히 돌발 상황에는 다소 둔해질 수 있고, 유연한 움직임이 힘들어진다.
거기에, 모이는 직전이야말로 사실 가장 위험이 큰 순간인데, 그런 순간을 제공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직 모이지 않아, 한 명 한 명 따로 상대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한 명을 해치운 후, 또 다른 한 명을 습격하기까지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는다는 것.
그건 한 명의 에이스가 상대 팀을 한 명씩. 줄줄이 소세지처럼 짤라먹기 좋다는 의미였으니까.
이창현은 무언가 다른 오더를 내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역시 뛰어난 녀석일수록 정석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겠지.
‘하지만 너무 좌절하지 말라구. 헌터스 리그 우승을 3번 한 베테랑에게 지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리고 애초에 심사위원과 지원자의 입장이었지 않은가?
여기까지 온 것만 하더라도 감격해야 맞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조아라는 사냥감을 물색했다.
이제는 진짜 상대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거리였으니까.
‘중립몬스터를 피하지 않고, 이렇게 빠르게 넘어 올 줄은 상상도 못했겠지?’
이제 한 명씩 사냥하면. 이 게임의 추는 크게 기울어질 것이리라.
첫 번째 타겟으로 보이는 상대는 푸른 남색 머리를 한 녀석.
‘저 녀석은 아쉽게도 오디션에 참가했었던 녀석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리라.
모이기 전인 지금 시점에 빨리 죽여버리자. 그런 생각을 하며. 조아라가 움직였다.
전투에 있어서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이야기되는 스페셜리스트.
온갖 병장기를 다루는 웨폰마스터라는 이명을 가진 조아라가, 펜싱 검 형태의 검을 마나장비에서 꺼냈다.
되도록이면 말을 해서 팀원에게 알리지 못하도록 일격에 목을 꿰뚫는 것이 베스트.
조아라의 위치를 대충 인지하고 있더라도 피하지 못하도록, 동선을 살폈다.
그리고 몇 초가 지난 후.
‘지금!’
조아라가 일반인의 눈에는 잔상만 보일 정도의 속도로. 에어대시의 추진력으로 녀석의 뒤를. 목을 노렸다.
“…….”
바람 소리가 너무 강하게 났나.
생각보다 꽤 하는 녀석인데?
하지만 추진력까지 더해진 이 검을 막기엔 이미 늦었다. 방어특화 능력이 있어 길어지더라도, 다음 합에는 반드시 죽일 테니까.
그런데 예상보다도 이 푸른머리의 녀석이 뛰어났던 것일까.
우우웅 ㅡㅡㅡ.
반응한 녀석이 강렬한 파동을 쏘아내며 반격했다. 물론, 조아라를 밀어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샤악 ㅡ.
‘살짝 빗나갔나? 그래도 상관없어.’
목의 정중앙이 아니라, 목의 옆부분이 긁히는 것으로 첫 찌르기가 끝났다.
파동을 내뿜은, 남색 머리의 녀석의 목에 실선이 그어져 피가 뿜어져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