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자신 있는 무대
“와…… 연주 이거 너무 이쁘게 잘 찍혔는데? 근데 평소랑 이미지가 너무 달라서 동인인물이냐고 물으면 3부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도 많겠다.”
촬영된 사진을 함께 살펴보던 PER의 팀원들. 그중 이길한이 극찬을 쏟아냈다.
‘하긴…… 3부 때 엄청 낯가리면서 소극적이던 이연주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확실히 수도 없이 헌터스 리그에서 사진을 찍었던 내가 보아도 이 사진은 잘 찍혔다 싶었다.
근경에 시그니쳐인 총을 쥐고 앉아있는 나. 그리고 중간에서 고고하고 시크하게 내려다보는 이연주. 맨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류재준까지.
하지만 누가 씬스틸러 아니랄까 봐 작게 나왔는데도 류재준의 강렬하고 근엄한 표정은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잘 나와서인지 더 배 아파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 배가~ 아프다. 배가 아파. 저기 한 자리만 꿰찼어도 그림이 더 멋졌을 텐데.”
바리바리 싸들고 온 의상이 든 캐리어를 끌고있는 김도준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대신 PER의 멋진 한 컷이 아니라, 김도준의 패션쇼가 되었으리라.
것도 그렇고.
“너무 배 아파할 필요 없다. 어차피 정규시즌 시작 전에, 촬영하는 오프닝에는 팀 전원이 찍힐 테니까. 그리고 오늘 촬영만 있는 거 아닌 거 알지?”
이제 막 촬영을 끝내고 짐을 싸고 있는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물론이지.”
“그걸 까먹었겠어?”
“그럼, 가자.”
1부의 전장으로.
또 이제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PER에서 오디션을 봤던 선수들은, 이만큼 성장했다. 이런 모습을.
내 경우에는 메인오더로서, 그리고 선수로서 조아라보다 짬이 있는 만큼 오히려 더 연륜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잘난 심사위원한테, 중고 신인들의 매운맛을 보여주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
헌터스 리그에는 꽤나 흥미로운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리그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팀의 성향이나 전략. 컬러가 뚜렷해진다는 점이었다.
이를테면 우리가 이미 한번 연습경기로 상대했던 RQM의 경우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을 완벽히 알고 그 전투에 끼어들어 보조할 수 있을 정도의 “팀워크.”
LTD의 경우에는 한국에 몇 없는 마나전개의 사용자. 강준혁의 존재로 인한 “압도적 캐리력을 가진 원톱 캐리와 보조”.
그 외에도 1부의 다양한 팀들은 각자 다양한 주요 전술과 컬러가 있다.
2부나 3부에는 없는, 경기 수준이 올라갈수록 벌어지는 뚜렷한 차이였다.
‘각자 팀에서 선수들이 가진 능력이나 조화를 전술로 직접 연결시키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그중에서도 이번에 조아라가 있는 팀이자 연습게임의 상대. SSA는 LTD와 비슷한 성향이라고 볼 수 있었다.
국내리그 3회 우승, 2회 준우승이라는 무지막지한 커리어를 가진 조아라를 필두로 밀어붙이는 팀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창현아. 우리가 헌터스 리그 오디션 볼 때 커리어가 3회 우승, 2회 준우승이셨는데. 아직도 선수로 뛰시는 걸 보면…… 조아라 선배님은 진짜 굉장하긴 하네.”
“응. 아무래도 그렇지, 선수의 수명이라는 게 그렇게 길지 않은 게 보통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조아라가 완전히 건재하다고 보긴 또 어려웠다.
우리가 오디션프로그램의 아마추어 선수에서 1부 팀이 되기까지, 조아라는 저 커리어에 무엇 하나 추가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그게 또 의아해 SSA의 최근 조아라 경기를 찾아본 적도 있었다.
기본 전략은 아까 말했던 것처럼 LTD와 유사하게 강준혁 자리 대신, 조아라가.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나머지 SSA의 팀원들로 구성하는 식이었다.
이런 경우, 가장 중요한 건 캐리를 맡는 ‘강한 원톱’의 역할인 조아라.
[마나전개]없이도 뛰어난 커리어를 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영상에서 비춰진 조아라의 능력은 꽤나 뛰어났지만……
‘팀을 승리로 이끌기엔 조아라만으로 부족한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감안하고, SSA도 신인과 합을 맞춘다는 것까지 생각하니 나 없이 PER이 어느 정도 싸울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 하에 나온 연습경기였다.
다시 한번 그렇게 생각을 점검하던 찰나 슬슬 PER팀원들의 준비가 끝나고 연습실로 향했다.
도착한 연습실에는 이미 한참 전에 촬영을 끝냈기에, 몸을 풀며 가볍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SSA의 팀원들이 보였다.
……그리고 몸을 풀고 있는 팀원들과 달리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던 조아라도.
“생각보다 빨리 왔네. 처음 찍어보는 애들이 많아서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럼 슬슬 연습경기를 시작해볼까?”
자신의 팀원들이 연습하던 공간을 멍하니 응시하던 조아라가 말했다.
***
한참이나 앞서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뒤따라오는 사람은 빠르고, 이미 선두에 서 있는 사람은 더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가 더디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오디션의 지원자가, 이젠 같은 무대의 상대로 올라온다는 것.
그건 이루 말할 수 없이 오묘한 감각이다.
조아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도, 자신도 모르게 이창현을 보는 게 조금 꺼려진다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할 때, 완전히 인정하고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인정해도 여전히 찜찜하고 꺼려지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그것과는 별개로 선수로서는 완전히 인정하고 있으니. 그런 건 상관없나.’
아무리 정규 시즌 일전의 연습경기라고 해도. 오디션에서 내려다보면서 평가했던 입장에서 결코 지고 싶을 리가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이창현에게, PER에 연습경기 신청에 들어왔을 때부터. 철저하게 이 경기를 계획했다.
어떤 구도로 이루어질지. 어떤 전술이 필요할지. ……그리고 자존심? 그런 건 필요 없다고 느꼈기에. PER을 똑같은 프로 상대팀으로서 분석했다.
팀이 가진 것에 대한 분석. 그 취약점에 대한 공략. 신인이 참가하는 경기라고는 하지만, PER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인을 엔트리에 끼워넣는 것까지.
‘그래…… 프로는 항상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경기는 이제 시작이다.
주장이자 에이스인 이창현을 끼지 않고 연습경기를 하겠다고 하던, PER에게.
힘을 보여줄 시간이다.
***
내가 연습경기에는 오더로만 참가하겠다고 했던 말을 미리 전달해줬기 때문일까?
보통 이런 부분에서 노련한 선수들은 많이 자존심 상해하기도 하는데, 딱히 그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물론, 오더로만 참가하는 대신. 이번에 내가 볼 수 있는 건, 우리 팀 팀원. 그것도 우리 팀 팀원 중 한 명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었다.
이번 연습경기의 맵은, [쇠락한 도시]였다.
랜덤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런 맵이 나올 줄이야.
나는 그 맵의 특성을 생각하며, 곧바로 류재준에게 이어진 이어폰으로 오더를 전달했다.
“맵 자체가 상당히 위험한 맵인 건 알고 있지? 아마 이근택 회장님이 알려줬을 법 하기도 한 맵인데.”
“알고 있어. 오더는?”
“합류를 중시하되, 절대로 무리하면 안 돼. 평소처럼 상대방만 피하는 게 아니라, 중립몬스터가 가장 위험할 수 있는 맵이니까. 아무리 돌아서 가더라도 천천히. 안전하게 합류하도록 유도해봐.”
“알겠다.”
시야가 류재준과 이어졌다. 연결된 이어폰으로는 이연주가 상대편의 위치를 읊어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파괴되고, 무너져 굉장히 음울한 분위기의 유럽느낌의 도시에, 류재준의 오더 소리가 퍼졌다.
“그럼 합류 후엔 기본적으로 전에 말했던 대로, 윤한결과 이성태의 투톱을 위주로 진형을 짜서 싸우면 되나?”
“음. 그렇지?”
그런데 그 말을 하던 도중, 맵이 [쇠락의 도시]라는 것이 다시금 떠올랐다.
때론 변수가 많은 맵일 경우,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 그렇게 딱딱하게 접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무조건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항상 유연한 사고. 오케이?”
류재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한편, 조아라는 이 맵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헌터스 리그는 결국 상대와 합을 나누는 경기.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 또한 중요했으므로.
하지만 역시나, 별로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으리라. 중립몬스터가 위협적인 맵의 경우. 어느 팀이든 전력의 손실을 막기 위해 다소 방어적으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니까.
그리 파격적인 움직임을 할 수는 없을 테니.
‘물론…… 모이면 PER에선 파격적인 움직임을 줘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
이번 경기는 꽤 재미있는 흐름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편 조아라로서는 연습경기가 막 시작되고 [쇠락의 도시]가 그 맵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마자 얼굴에 화색을 띌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아라가 과거 우승을 거머쥐었던 맵 중 하나가 바로 이 쇠락의 도시였으니까.
그 맵에 대한 경험부터, 정보. 한타까지도 머릿속에서 하나로 끼워 맞춰져 완성되는 것만 같았다.
뭐 물론 이창현이 직접 참가한 연습경기는 아니기에 리턴이 적긴 했지만…… 충분히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지금 여러 팀을 돌아다니고 합을 맞춰보고 있을 이 신인들이나, 심사위원으로 조아라를 처음 접했을 PER의 선수들에게 압도적이고 경외의 감각을 심어줄 수 있었을 것 같으므로.
‘그리고 그렇게 한 번 상대 팀의 선수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면…… 그 다음은 쉽지.’
그 팀과 싸울 때마다, 마치 트라우마처럼 이전의 모습이 살아나서 괴롭히는 것.
그런 일은 꽤나 흔한 일이었으니까.
즉, 이창현이 단순히 PER의 최대한 많은 팀원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려고 했던 일은.
부메랑으로 돌아가 정규시즌에 SSA를 상대할 때의 비수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오더를 시작했다.
“다들 동쪽 방향으로 거대하게 무너져 있는 시계탑 보여?”
워낙 컸고, 잘 보이는 곳이었기에 이어폰에 답이 들려왔다.
‘어차피 연습경기에 참가한 SSA의 팀원 중 절반 정도는 합을 맞춰보려 임시로 참가한 선수인 만큼,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맞겠지.’
“다들 중립몬스터를 최대한 피해가면서, 거기에서 모두 모일 때까지 농성하도록 해. 그리고 날 제외한 SSA팀원이 모두 모이면, 그때 상대를 한 명씩만 격파하는 거야.”
“헉…… 그럼 아라 선배님은 혹시…….”
“너, 예전에 내 결승전 경기 했던 거 봤나보구나?”
“네…….”
“그대로 갈 거야.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전술은 단순했다. 6명의 SSA팀원의 본대와 1명의 별동대인 나.
‘중립몬스터정도는 쉽게 돌파할 수 있는 내가, 합류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 전장에서, 하나씩 암살하며 각개격파한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힘과, 연륜. 맵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가능한 전술.
외부에서 이창현이 PER의 팀원에게 오더한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전술이 아니었다.
또한 과거에 이 전술로 한국 헌터스 리그의 우승을 거머쥐었기에.
그렇기에 자신감이 더더욱 솟아오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