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촬영 비하인드
촬영…… 촬영이라.
헌터스 리그는 엄연한 스포츠인 만큼, 당연하게도 꽤나 보여지는 요소를 중요하게 여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1부 정규시즌의 경우에는 그 리그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이 모두 나오는 오프닝 영상도 있고, 그 외에도 결승전 오프닝. 팀 별 컨셉 사진 같은 것들도 있다.
그중 오늘 찍는 건 아마도 후자, 팀 별 컨셉 사진에 가까운 것이리라.
‘보통은 이 때 찍는 건 팀의 에이스. 그니까 핵심 플레이어들이 찍긴 하지.’
가위바위보를 계속하며 티격태격 하던 우리 팀원들이 생각나 새삼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촬영이 시작되기에 옷과 소품을 갖추고 있는데, 이연주가 옆에서 물어왔다.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긴장…… 안돼?”
“긴장이라……”
확실히 이연주의 경우에는 누가보아도 긴장했다고 생각할 만큼 경직되어 있는 게 새삼 느껴졌다.
하긴, 요새 자신감이 많이 붙고, 낯가림도 덜해진 이연주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남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다는 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겠지.
3부나 2부에서는 없었으니까.
“평소에 하던 경기도 수많은 사람 앞에 나가던 건데, 이것도 그거랑 크게 다를 건 없지. 잘 꾸미고 와놓고는 그런 거에 쫄면 사진 제대로 안 나온다.”
그 말을 하며 격려의 의미로 어깨를 두들겨 줬는데,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마치 야생 고양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류재준이 한 마디를 얹었다.
“고작 사진을 찍는 것 가지고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
평소처럼 농담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진지한 분위기.
그나마 이쪽은 딱히 긴장을 한 걸로 보이진 않았다.
‘이럴 때 보면, 확실히 개인 포지션이라는 게 각자의 성격이 드러난다니까.’
보통 원거리 딜러나, 후위에 있는 서포터들은 직접적으로 손을 섞는. 상대의 눈을 보며 근거리에서 전투할 일이 없다.
그래서일까, 간혹 가다가 조금 부끄럼을 타거나 그런 선수들이 있으면 대부분 후위 포지션의 선수들이었다.
그런 반면 류재준을 보라.
평소 경기에서도 나와 둘이서 2대 7로 적진에 들어가는 게 일상다반사여서 그런지, 보통 웬만한 상황에서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게 대화를 잠깐이나마 나누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찰나.
준비가 모두 끝났던 것일까, 나름 옷과 소품들의 준비가 끝난 우리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촬영준비 끝났습니다. PER 선수들 올라와주세요!”
이번 촬영은 우리 팀이다.
***
이번 촬영은 말했다시피 약식. 보통 어딘가에 팀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쉽게 보여질 수 있도록 하는 컨셉샷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주장이자, 사실상 팀의 아이덴티티인 내가 조금 강조될 수밖에.
그건 그런데……
“배경이 도시 컨셉이네요?”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기에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밤 배경, 약간 분위기 있는 야경을 등지고 사진을 찍다니.
이런 적은 완전히 처음이었다.
주로 회귀 전에 찍었던 사진들은, 높은 어딘가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로 많이 찍었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위가 아니라 아무래도 건물 아래쪽에서 촬영하는 것 같았으니까.
“아…… 예 그렇죠 아무래도. PER은 신생 팀으로 3부에서 1부로 올라온 팀이니까요. 아래에서 위로 한 계단씩 올라간다는 느낌이랄까요?”
이 질문이 나올 거라 생각했었는지 꽤나 열성적으로 설명해줬다.
‘아래에서 한 계단씩 정상을 향해 위로 올라간다라……’
항상 위에서 아래를 조감하는 구도로 찍었는데,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꽤나 재미있는 소품들이 많이 보이는 군. 도시컨셉도 있지만, 약간 SF스럽게 느낌을 가져가는 것인가. 특히 이 소품이라던지…… 문양도 그렇고 뭔가 유물 같은 느낌도 드는데. 실제 아이템은 아니겠지?”
한편 류재준이 촬영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소품이었다.
이번 도시 컨셉 촬영에서 옆에 배치용 소품으로 있는 것들이 꽤나 특이한 것들이 많이 보였으니까.
야광 드론부터 시작해서, 무언가 근미래 SF 전쟁에나 나올 것 같은 특이한 모양의 보급상자. 그 외에도 왜 있는지는 모르겠는 네온사인 의상 부착용 띠까지.
“하하…… 실제 아이템은 아닙니다만,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거기. 노란 빛을 뿜는 상자의 경우 실제 유물의 디자인을 모티브로 비슷하게 재현해낸 물건이니까요.
아무래도 PER이 유명한 건 우주방어 전략. 폭격기전략 같은 것들도 그렇고, 이창현 선수의 독보적인 무기. 총 같은 것들이 굉장히 큰 아이덴티티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팀의 컨셉을 약간 과학 기술. 문명의 무기. 그런 어떤 문명이나 도시적인 느낌이 어울리다고 판단한 거죠.”
오…… 그런 관점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꽤나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잡담도 잠시. 어느새 소품 정리와 배치도 끝나고, 진짜 사진을 찍는 단계가 시작되었다.
***
“자, 긴장 푸시고. 다들 카메라 쪽을 봐주시고. 셋 둘 하나.”
찰칵.
그 말을 계속 반복하며, 세세하게 포즈를 바꿔달라. 구도를 좀 바꿔보자. 이런 컨셉은 어떻느냐.
하는 말들의 반복이다.
촬영은 보통 이런 상태로 꽤나 오래 이어졌기에, 실례라고 하더라도 하품이 쩍쩍 나오는 걸 어찌 막을 수는 없었다.
그야, 이런 일이 좀이 쑤시는 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우린 선수이지, 모델이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지루한 촬영 속에서도 오늘은 꽤나 재미있는 점들이 있었던 것이……
촬영에 워낙 익숙하기에, 사진기사가 원하는 구도나 뉘앙스. 분위기가 뭔지 대충 아는 나.
그리고 항상 진지해가지고는, 촬영할 때도 긴장 하나 안 하고 마치 능숙한 배우처럼 뛰어나게 포즈를 잡고 구도를 잡아내는 류재준.
그 사이에 뻣뻣하게 굳어서 마치 오면 안 될 자리에 온 듯,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고 정면으로 카메라를 중간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연주.
‘너무 튀잖아.’
찍힌 사진들을 보면 실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랑 류재준은 각자 능력이나 컨셉에 맞춰서 포즈를 적당히 취하고 카메라를 엄격 진지 근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연주의 경우에는 두손 모으고 어색할 정도로 공손히 한 것이 너무나 웃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표정은 나름 진지하고 근엄했지만……
나와 류재준은 전쟁터에 나와 상대를 노려보는 근엄함과 비장함이 서려있다면, 이연주는 상견례에 나와서 상대측 부모님에게 긴장해서 나오는 진지함 같은 거랄까.
포즈도 그렇고, 표정도 미묘하게 풋풋한 게. 보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자…… 연주 선수. 너무 굳어있어요. 조금만 릴렉스. 릴렉스 하시고. 다시 한번. 셋 둘 하나. 찰칵.”
그런데 역시 포즈부터 잘못되어서 그런 것일까. 사진기사가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지 계속해서 촬영이 길어지자, 역시나 한 마디를 해줘야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이연주에게 한 마디를 해 주려던 찰나. 이연주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답답했던 것인지, 류재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도 이야기했는데, 사진이라는 걸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 경기하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
“그치만…… 사진을 찍어본 적이 거의 없어서 포즈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이연주도 자신의 센스 때문에 촬영이 길어지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기에, 목소리가 바닥을 기어가는 듯 싶었다.
과거, 처음에 3부에서 이연주를 만났을 때와 비슷한 수준인 것이. 사진 찍는 것이 꽤나 힘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경험이 많은 내가, 그냥 포즈와 컨셉을 직접 정해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의외로 류재준이 말을 더했다.
‘그래. 굳이 내가 나설 필요까진 없겠지. 오늘 류재준도 포즈 잡고 구도 잡는 거 보니,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할지 고민을 꽤 많이 해온 것 같은데. 평소에도 진중하고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는 편이니까, 잡아주기엔 나보다 류재준이 더 좋을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류재준의 말을 듣는데……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래, 저기. 저기서 보고 있는 이성태.”
“이성태……?”
“저 녀석은 이제 처음 들어온 너의 1부 첫 후배지 않은가.”
“음…… 으음. 그렇지?”
“그런 후배에게 선배가 보여줘야 할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 잘 모르겠는데.”
“아니. 아니다! 너는 이미 답을 알고있다. 평소에 선배라고 부르게 시키는 것처럼…… 그래. 후배는 선배의 등을 보고 나아가지. 거기에 선배는 후배에게 있어서 하늘같으니 자애롭게 보되, 동시에 강자의 면모를 보여주도록 오만하고 내려다보듯이. 그래. 그렇게.”
‘후배……? 선배의 등을 보고 나아가?’
가만 듣고 있으니 이성태 입장에서는 기가 찰 말들이 가득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연주는 3부에서 올라와서 선후배가 팀 입단 순보다는 1부 경력으로 정해진다는 걸 모른다고 치고……
‘류재준이 모를 리가 없는데……?’
사실 선배가 이성태이지만, 팀에 처음 온 뉴비이기에 적당히 이연주에게 맞춰준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걸 그렇게 말한다고?
평소에 매사에 진중해서 믿고 있었는데, 대체 이연주에게 무슨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거야?
더 웃긴 건 그것에 대한 이연주의 반응이었다.
“오…… 그런 거야?”
이연주는 그 말을 듣고는 마치 신입 사원을 평가하는 재벌가 오우너의 모습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는, 고개를 크게 치켜들었다가 천천히 내리 깔았다.
그러곤 한쪽 팔로 허리를 잡고 건방지게 짝다리를 서고는 약간은 오만하게, 하지만 자신감 있게 아래를 내리 깔본다는 느낌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효과는 굉장했다.
약간은 우수에 젖은 듯한, 마치 신생 유니콘 스타트업을 이끄는 오너의 품격이 느껴지는 깊은 눈빛.
자신감. 그리고 믿고 따라가도 되겠다는 느낌이 드는 당찬 포부가 느껴지는 등.
이것들이 조화롭게 이어져, 이번 포즈는 진짜 모델 같았으니까.
물론 그 시선의 끝이 카메라가 아니라 이성태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저건 다음에 꼭 말해줘야겠군……’
실제로 사진기사의 반응은 아주 좋았다.
“오…… 아주 좋아요. 이대로 다시 두 분도 포즈 취해주시고, 연주선수는 그대로 계시고……셋 둘 하나 찰칵.”
상대도 프로정신이 투철한 사람답게, 최고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다시 셔터 세례가 쏟아졌다.
그런데 그걸로도 아주 조금 모자랐던 것일까.
“음…… 뭔가가 아주 조금 모자른데……아! 스탭분. 거기 그것 좀. 아. 좋아요 아주.”
촬영장 한 켠에 있는 아주 거대한 선풍기를 이연주 옆에 놓고는.
차가운 도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너무 레트로한 거대한 선풍기로 바람을 일으켜 이연주의 핑크빛 염색 머리를 휘날리도록 조정했다.
“아. 좋아요. 아주 좋아. 이대로 셋 둘 하나. 찰칵.”
그렇게 다소 다사다난했던 PER의 1부에서의 첫 촬영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