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한번 더
훈련실로 이성태를 안내한 후. 나는 다시 훈련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대기실로 돌아왔다.
통유리로 된 한 벽에서 이성태가 훈련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창현아. 계약을 하긴 했지만, 아직 완전히 확정된 것도 아니고…… 나는 피드백까지 해주는 게 맞나 싶다.”
아무래도 [이상동몽의 지휘관] 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 했다.
하긴, PER에서 선수를 기르는 능력이 앞으로도 특출 날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 능력 덕분일 테니까.
헌터업계에서는 개인정보에 아주 민감하다.
능력에 대한 정보의 디테일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경우도 허다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능력 [이상동몽의 지휘관]의 존재까지 들켜가며 피드백을 해주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많이 내어주는 건 맞긴 하지.’
그 능력에 대해서는 직접 대련하면서 당한 이근택으로서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고급 정보였다.
끽해야 전투 중, 상대에게 강한 환각 따위나 보여줘 혼란을 주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겠지.
누군가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압도적인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하지만, 능력에 대한 정보를 그렇게까진 숨길 필요는 없죠. 결국 숨기는 건 능력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면서 파훼되고, 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인데. 이건 그런 경우가 아니니까요. 게다가…….”
“게다가…….?”
“오늘 온 것도 자기 할 말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제대로 말을 못하던데. 자기 팀 감독이라고 해도 팀을 끊어내는데 명분 하나 정도는 쥐어줘야죠.”
이 말에 이종규는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는 듯,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지만 원래 좋은 선수를 가지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진 패가 좋은 것을 알려줘야 딸려 들어오지 않겠는가?
이번 훈련이 끝나고, 피드백을 받은 후의 이성태가 어떻게 반응할지. 솔직히 조금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기술을 갈고 닦았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향상심이 가득하다는 것.
그런 녀석에게 더 나아질 수 있는 확실한 가능성을 보여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는 뻔했으니까.
***
‘헹…… 뭐야. 생각보다 별 거 없잖아?’
훈련실에 막 들어간 이성태는 막상 생각한 것과 달리, 훈련에 조금 실망하고 있었다.
꽤나 1부 팀들을 둘러보면서 여러 시설을 접했던 이성태에게, 훈련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중립몬스터를 상대하는 기본적인 훈련이나. 1대1 대련, 그리고 1대 다인 상황을 상정한 생존훈련까지.
그런 건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개인 훈련이었다.
‘호언장담한 것 치고는 별 게 없어도 너무 없는데…….’
이 정도면 혹평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창현이 말한 것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훈련 중에도 흥미가 가는 것이 있었다.
이런 평범한 훈련을 하고 있으면서도, 상당히 힘들어 하는 PER의 팀원들이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 저번에 피드백 받았던 부분인데,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네. 살짝이라도 집중이 풀린 순간에, 균형이 무너져.”
“확실히. 감각을 알고 있으면 하는 게 훨씬 수월해지지만…… 그걸 계속해서 유지할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할까. 그 심상 속의 감각을 유지할 땐 어느 때보다도 그리는 대로 완벽하게 되지만…… 그게 깨지는 순간, 그렇지 않았던 때보다도 못하게 어정쩡해지니까.”
“그래서 육체단련과 체력을 강조했던 건가…….”
저마다 PER의 팀원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이야기가 어쨌건, PER 팀원들이 받는 훈련들에 비해 지나치게 힘들어하는 것 같았으니.
‘저번에 경기에서 만난 녀석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가뿐히 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저렇게까지 땀을 뻘뻘 흘릴 일인가?’
이성태는 기분 좋을 정도로만 가볍게 난 땀이 벌써 식어있었지만, PER의 팀원들은 같은 훈련을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땀이 범벅이었다.
어쩌면 이 녀석들이 잘한 것이 아니라, 저번에 창술에 대한 감이 흔들린 이후로 자신의 폼이 낮아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생각을 하며, 이제 슬슬 이런 훈련은 더 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나가려던 무렵.
녀석이 들어왔다.
“훈련은 어땠어?”
뻔뻔하게 물어오는 이창현. 그 모습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나 받을 수 있고, 너무 뻔한 훈련이라 재미없었다고. 고작 이것이냐고.
그렇게 말하려던 무렵.
“생각보다 특별한 건 없지? 뭐, 근데 원래 훈련이라는 게 그래. 하루하루가 쌓여서 힘을 발휘하는 거지, 특별한 성과를 내는 팀이라고 해서 훈련이 특별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물론. 그렇다고 준비한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녀석이 선수를 치며 말했다.
뻔한 레퍼토리. 성실한 훈련이야말로 지름길. 어이가 없어 혀를 찰 수밖에 없는 진부한 대사였다.
그런데…… 녀석의 말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대신 우리 팀은, 피드백 과정은 조금 특별한 편이거든…… 이런 느낌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빈틈을 찌르고 들어오는 녀석의 손.
마치 저번에 대련할 때, 무기가 변하는 것처럼 파고드는 손이었기에, 약간 당황하던 찰나.
녀석의 손이 닿은 곳은 어느 위협적인 곳이 아니었다.
단지, 선생님이 어린 학생을 가르치듯, 머리 위에 포근하게. 그 얹은 손으로부터 하얀 빛이 쏟아져나가며, 눈 앞이 점멸했다.
‘……뭐지?’
당황스러웠다.
혹여 정신계열 공격이거나, 세뇌 같은 특별한 능력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주머니 속의 마나장비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해가 되는 능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금 전의 훈련 때로 돌아온 것 같았다.
시간을…… 되감은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세상에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방금 전에 훈련은 끝냈을 텐데. 지금 이 대련 훈련 중에 느껴지는 생생한 감각은.
……하지만 역시나 이창현과의 싸움 이후로 무언가 어긋나버린 창술의 감각은 여전했다. 미묘하게 느껴지는 그 차이가, 적을 완전히 가르지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그 감각이. 손 끝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 몸에서 감각은 분명 똑같이 느껴지는데…… 왜 나는 내가 생각한 거랑 다르게 움직이고 있지?”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내가 움직이는 것처럼 감각이 느껴지지만, 마치 자신은 관찰자에 불과한 것처럼. 몸은 내 의지와는 ‘약간‘ 다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훈련과정에서의 흐름은 약간 다르게 흘러갔다.
한 번에 베어 넘기지 못했던 중립 몬스터를, 대련 상대를. 마치 원래 그렇게 되어야했던 것처럼. 한 번에 베어넘겼다.
‘맞아……! 이 감각이었어.’
머릿 속이 환해지는 것만 같은 감각. 마치 자신을 정답으로 이끌어주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이 감각으로 창을 조금만 더 휘두르면 분명 다시 예전의 그 폼과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그런데 그 환희에 찬 가운데에도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과거로 회귀한 건가? 게다가 왜 내 몸은 제멋대로 이렇게 움직이는 거야?’
그런 생각도 잠시.
마치 오래된 TV의 화면이 한번 번쩍이고 꺼지는 것처럼. 시야가 암전했다.
“……때?”
.
.
.
“PER식 피드백을 처음 받아본 기분이 어때?”
머릿 속을 울리는 듯한 소리. 그 소리에 깨어나니, 아까 이창현이 머리에 손을 올릴 때로 돌아와 있었다.
“대체 뭐지? 이건…….”
어안이 벙벙한 상황.
환상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면 되찾는 감각에 대해 신기라도 들렸던 것일까? 아니…… 아니다.
이 일을 촉발시킨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의심되는 건…… 역시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번쩍이는 빛을 자아냈던 이 녀석.
이창현이었다.
“PER식…… 피드백? 이게 대체 뭐냐. 무언가…… 과거를 본 것 같은데.”
“과거……?”
이창현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마치 생각도 못한 것처럼.
그 말에 설명을 이은 것은 이창현이 아니라 PER의 팀원이었다.
“훈련할 때의 이미지였죠? 그건 창현이가 능력으로 보여준 거예요. 훈련하는 순간, 당신이 어떻게 움직였어야 했던 것인지.”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서야 모든 장면이 하나로 이어졌다.
훈련. 그리고 이창현의 난입.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번쩍인 후, 실제로 했던 것과는 다른. 이상적인 움직임으로 움직여졌었던 반복되는 훈련 장면.
.……그리고 다시 손 끝에 그 감각이 남아있는 것만 같은 지금.
‘이럴 수가…….’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보지도, 듣지도 못한 능력이었으니까.
정확히 어떤 능력인지는 감이 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했다.
저 능력으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감각으로, 몸으로 느낄 수 있었으며. 그로서 완벽한 답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
심지어 단순히 보거나, 이야기하거나, 깨달음을 주는 차원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감각이, 창을 휘두르던 손끝의 느낌이 지금도 온 몸에 남아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으므로.
전율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얼마나 연습해왔던가. 한 끝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더 나은 창술을 위해서. 수만 번의 휘두름. 대련. 그리고 훈련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 능력으로 훈련하고 매번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그 감각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면.
과거의 그 괴로웠던 나날들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었다.
그뿐만이랴?
‘필연적으로 더 높은 경지를 바라볼 기회가 생겼겠지.’
지금만 하더라도 이창현과의 대련 후, 생긴 미묘한 간극으로 슬럼프가 와 있었는데. 그것이 해결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전율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누군가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어땠어? 이번 훈련은?”
당연히도, 이 훈련에 참가시킨 당사자, 이창현이었다.
“말도 안 되는 능력이군…… 확실히 이런 식으로라면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음 경지…….”
다음 경지를 바라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이창현의 모습이 한 눈에 비춰졌다.
생각해보니, 이 악랄한 녀석한테 계약을 파기하려고 왔던 것이었다.
무조건 이 훈련이 별로였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었으니까.
계약을 파기한다면, 당연히도 다시는 여기서 피드백을 받지 못할 테니까.
그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 훈련이 방금 전에 일어났기에, 그때의 창술을 펼치던 감각이 두 손에 생생하게 아직 남아있었지만……
대화하면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점점 그 때의 감각이 흐려지는 게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때의 감각을 정확히 잡지 못한다면, 슬럼프를 탈출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괴로운 가운데. 이성태가 한 말은 이것이었다.
“음. 그래 확실히 말도 안 되는 능력이야.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긴가민가하군…… 한 번 더 해볼 순 없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