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악연?
186화 악연?
[제국의 다리]가 무너지고. PER과 RQM의 한타는 끝이 났다.
사실상 경기는 끝이 났다고 보아도 좋은 상황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상대 팀. RQM의 감독이었다.
다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씁쓸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긴…… 팀이 움직이는 걸 보니, 딱 봐도 팀의 호흡이나 움직임 자체는 좋았는데, 단순히 전술 아이디어 때문에 밀린 것이니.'
아쉬웠으리라. 선수들에게, 혹은 다양한 전술에 대해 알려주지 못한 자신에게.
미리 눈치를 챘더라면 충분히 RQM 측에서 파훼하고, 그리고 이겼을 수도 있는 경기였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인상처럼 담백한 사람이었다.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 팀의 강점이 끈끈함과 팀워크였기에, 한타로 싸우면 충분히 이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보완해야 할 점이 많군요. 이렇게까지 완벽히 패배할 줄이야."
"겸손이십니다. 사실 거의 진 경기인걸요. 막판에 뒤집는 그 전술이 통하지 않았거나, 거기까지 조금만 못 버텼어도 지는 건 저희 팀이었을 테니. 무엇보다 저희 팀은 7명 모두 기존 멤버였으니까요."
그렇다. 이점이라면 확실히 이점이었을지도.
물론 내가 이번 PER의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다는 엄청난 이점도 있긴 했지만.
하지만 RQM의 감독은 그런 잡다한 것들을 신경 쓰기보다는, 이제 차후에 다가올 정규시즌을 더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패배를 거름 삼아, 다음 시즌에서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튼, 이번 패배로 선수들이 많이 배웠겠군요. 피드백할 거리가 아주 많아요. 다음에는 지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를 보완해 올 테니까요. 그럼."
정말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며 선수들을 향하는 RQM의 감독이었다.
'교과서적이라는 건, 누구나 평범하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형태라는 뜻. RQM이라…… 회귀 전이랑 무언가가 달라진 걸까. 이번에는 꽤나 성장하는 팀이 될지도 모르겠어.'
아무래도, 나비효과로 무언가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나도 이번 경기를 토대로 애들이 나오면 피드백해야지.
음…… 그런데 그게 끝인가?
뭔가 더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음…… 근데, 왜 자꾸 무언가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죠?”
“그러게 말이야. 쟤넨 왜 경기도 다 끝났는데 안 나오고 말이야.”
“아…….”
“그래서 한결이는 어떻게 됐지?”
숨 막히는 본대의 한타 대결에 눈이 팔려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뭐, 어차피 지금의 윤한결을 1대1로 이겼을 리는 없을 테니 아마 1대1도 무난하게 마무리……가 되었어야 했는데.
사실상 경기가 끝나버린 거나 다름없는 상황.
윤한결 쪽을 비추는 화면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성태가 왜 저기에…….’
***
화면에 비친 윤한결의 상대. 그 정체는 놀랍게도 얼마 전에 부딪혔던 인재. 이성태였다.
'원래 꽤 괜찮은 팀에 있었던 걸로 아는데…… RQM에서 페이를 좀 세게 불렀나?'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 팀을 골랐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찌 되었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 팀에 시험 삼아 연습경기로 참여해 볼 수는 있지…… 근데 왜 우리 팀에는 놀러온다고 약속까지 했는데 안 오는데?'
약간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상세한 조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긴 하지만, 조건도 그리 나쁘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확실히 우리팀의 비전도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RQM에서는 연습경기를 참가하면서 팀에 대한 견학도 하고 그러는데, 우리팀이 밀리는 게 뭐가 있다고……!
게다가 이번만 하더라도 꽤나 멀끔하게. 팀의 에이스도 없이 RQM을 PER이 이기지 않았는가?
서운하다 못해, 조금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그런 개인적인 감상은 미뤄두고…… 이성태는 역시나 생각했던 만큼의 포텐셜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나전개] 같은 능력으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는 못하더라도, 1대1에 있어서 검을 7개나 날려대 압도적 공격력을 보여주는 윤한결을 상대로 거의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물건은 물건이었다.
"어……? 쟤 저번에 걔죠?"
경기 중 입고 있는 옷에 두건까지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이종규까지도 알아볼 수 있는, 특유의 창술 퍼포먼스.
일곱 개의 검이 펼치는 연격을 막아내는 극도의 효율 중심적인 움직임. 그야말로 기술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역시나…… 쟤 하나 있으면 팀 밸런스가 확 달라질 텐데.'
서운했던 마음이 가시고, 다시 데려오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솟을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렇게 윤한결과 팽팽히 맞서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이건 1대1 개인전이 아니라, 7대 7 팀전. 그리고 본대의 싸움은 PER이 이긴 상황이었으니까.
창으로 윤한결의 검을 쳐내려는 순간, 맹렬하게 이성태의 몸을 묶는 이연주의 [속박] 그리고 동시에 달려드는 PER의 팀원들까지.
균형이 깨지고 순식간에 7대1로 다굴당하는 형태로. 꽤나 비참한 결말로 경기는 끝이 났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거겠지. 7대1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거니까. 그건 그렇고, 이렇게 다시 마주쳤는데 한 번 더 권유해 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저번에 말한 건 약간 오해의 소지도 있을 수도 있었으니.
뭐, 다들 '다음에 밥 한번 먹자' 같은 말을 하는 것처럼, 의례적으로 하는 말처럼 들렸을 수도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말하려면 아무래도 좀 더 확실하게 말하는 것이 좋겠지.
그런 생각에, 경기가 끝나 선수들이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코치님. 가방에 계약서 넣어왔죠?"
"어……? 어. 그렇지. 네가 항상 챙겨다니라고 했었잖아."
이종규 코치의 가방에서 계약서를 빼서는, 바로 선수 대기실 쪽으로 향했다.
대기실로 향하자, 아무래도 RQM 본대의 싸움은 한참 전에 마무리되어서인지, 그 대기실엔 PER의 팀원 일곱과 이성태 한 명뿐이었다.
엄청나게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던 탓일까, 문을 열자마자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고 PER팀원들의 표정이 보였다.
'다행이다……' 싶은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
아무래도, 저번에 내가 이겼던 녀석이고 영입을 제안했던 녀석인데 안면은 트지 않아 뭐라 할 말이 없어 어색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좋은 상황이다 싶었다.
어차피 영입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팀원이 되는 건데. PER의 다른 녀석들한테 하나하나 말해 줄 필요도 없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저번에 놀러 오라고 했는데 안 왔더군.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건……!"
하기야 변명을 준비하긴 했겠지. 진짜인 줄 몰랐다느니 어쩌느니, 그런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이성태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물론 구미가 당길 법한 이야기, 우리 팀이 이성태를 원하는 이유를 섞어가면서. 살살 달래듯이.
“이번 경기만 하더라도 그래. 솔직하게 말하지. 대단했어. 윤한결의 일곱 개나 되는 이기어검을 받아낸다는 게 능력 없이 기술로만 받아넘기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거기에. 그래. 중간부터는 쉽사리 이길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을 내려, 팀의 지원을 기다리는 쪽으로 전술의 변화를 꾀하는 것까지.”
흠... 냉정한 칭찬은 이 정도면 되었으리라.
이걸 알아주는 눈썰미를 가진 팀은 별로 없었으니, 꽤나 좋아할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가치를 알고 기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따르기 마련이니까.
그럼 이제 남은 건 역시... 계약이겠지?
말로만 묶인 관계는 의미가 없으니까.
'이런 건 기세가 중요하니까... 일단 강하게 밀어붙여서, 분위기에 휩쓸려 계약도장을 찍는게 베스트겠지.'
물론 별로 윤리적이지는 않은 것 같지만 아무튼.
"어찌되었든 이렇게 다시 우리 팀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건, 우리 팀에 들어오겠다는 거겠지? 자, 어때 이성태. 우리 팀에 들어와라!"
문답무용. 나는 어안이 벙벙해 있는 이성태에게 들고 온 계약서와 펜을 건넸다.
그런데 의외로 우물쭈물, 이성태는 바로 사인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이상한 행태를 보였다.
왜 사인을 안 하지? 저번에 우리가 오간 이야기. 좋았잖아.
'우리 팀이 마음에 안 들어서일 리는 없으니… 의외로 결단력이 부족한 타입인가.'
아무래도 압박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이럴 땐 조금 도움을 줘야겠지.
이성태도 결국 우리 팀에 오면 좋을 테니까.
"자. 서명해라. 이성태!"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성태가 안절부절못해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이 계약을, 일반적인 상식으로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
무언가 오해한 것이 아니라면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겠지.
하지만 그래도 꾸물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한마디를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이러는 스타일은 아닌데. 역시 선수를 끌어들이는 데는 정규시즌까지 남은 시간도 있으니 빠를수록 좋으니, 재촉할 수밖에.
“자, 어서!”
“끄응…….”
결국 이성태는 성화에 못 이겨 사인을 했고, PER의 팀원들은 다 같이 환호하며 축하해 줬다.
봐봐. 결국 모두가 행복한 해피엔딩이잖아.
앞으로 우리 팀에서 승승장구하게 해 줄 테니까. 성태야.
***
[더 헌터스 데이]에서 이창현과 싸운 후부터였다. 창을 다루는 감각이 미세하게 틀어져, 영점조정이 제대로 안 되던 것이.
심지어는 감독님까지 그걸 어느샌가 지적하고 있었다.
“심적 부담이 많이 큰가 본데…… 머리 좀 식히고 와라, 성태야. RQM 감독님한테 명목상으로는 타 팀 트레이드를 견줘보기 위한 연습게임 참가라고 해 줄 테니까.
우리 팀이랑 다르게 그렇게 빡센 분위기의 팀은 아니니까. 한숨 돌리고 와라.”
후……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그렇게 어이없게 참가하게 된 것이 RQM의 연습게임이었다.
당연히 쉬엄쉬엄 적당히 즐기다가 돌아갈 작정이기에,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게임이었는데.
‘상대가 PER이라고?’
악연인지, 그 상대가 또 그 녀석이 있는 PER이라는 것에 놀라 나자빠질 뻔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녀석은 참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을까.
‘아니, 다행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지.’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던 손끝의 감각. 무기를 받아치는 감각. 어떤 무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창술의 기본이자 근간이 되는 기술들.
그걸 되살리며 녀석이 없는 녀석의 팀원들을 묵사발 낸다면 조금은 기분이 풀리지 않을까?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해서 천천히 갚아주려고 했는데……의외로 그놈이 나를 쪽팔리게 한 것에 대해 설욕할 기회가 금방 왔군.’
다행히 PER은 그 녀석을 빼면 꽤나 약한 팀이라고 들었기에 한 놈씩 두들겨 패면, 그것만큼 통쾌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이 틀어졌다.
검을 일곱 개나 사용하는 녀석.
‘어…… 이 녀석. 1대1 랭킹전에서 꽤나 이름을 날렸던 녀석 아닌가?’
이 녀석도 PER이었나?
쉴 새 없이 몰아치는 7개의 이기어검. 아무리 이성태의 창술이 날카롭고 기술적으로 잘 닦여있다고 한들, 상대의 무기는 7개.
게다가 그 검술도 현묘하기 짝이 없어, 팽팽한 싸움을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큭…… 이럴 수가.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PER보다 RQM이 팀 대 팀전력으로 우세일 테니 버티기만 해도 녀석의 얼굴을 패배로 일그러뜨릴 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유감스럽게도 정반대였다.
승리하고 싸움을 끝내,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던 RQM은 어찌 되었는지 전멸하고.
PER 측에서 원군이 와, 자그마치 7대 1로 이성태를 두들겨 팬 것이었다.
‘이…… 이런 부관참시를.’
패배해도 이렇게 질 순 없었다.
자신을 모욕한 이창현에게 되갚아 주진 못할망정, 이렇게 또 당하다니.
심지어 신나게 두들겨 맞고, 경기에서 허탈하게 나가면서 대기실에서 정리하던 도중에는 아예 녀석이 등장했다.
최악이었다.
‘그래……. 날 욕해라. 패배했다. 완전히 내 패배야.’
그래서 자포자기하고 패배를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이 녀석은 도대체 얼마나 계속 모욕하려는 것인지.
"저번에 놀러 오라고 했는데 안 왔더군. 나는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건……!"
진짜 오라고 한 의미의 말도 아니었으면서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어 내 허물을 만들어 냈고.
“이번 경기만 하더라도 그래. 솔직하게 말하지. 대단했어. 윤한결의 일곱 개나 되는 이기어검을 받아낸다는 게 능력 없이 기술로만 받아넘기는 사람은 흔치 않으니까. 거기에. 그래. 중간부터는 쉽사리 이길 수 없다는 냉정한 판단을 내려, 팀의 지원을 기다리는 쪽으로 전술의 변화를 꾀하는 것까지.”
심지어는 저번, 녀석과의 대결 후로 창술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까지 꿰뚫고 조롱하고 있었다.
게다가 거기에 역시 실력만큼 눈썰미도 좋은지, 지금 상태로 일곱 개의 이기어검을 다루는 녀석을 이기지 못해 버티기만 한 것도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다시 우리 팀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는 건, 우리 팀에 들어오겠다는 거겠지? 자, 어때 이성태. 우리 팀에 들어와라!"
이번 경기를 개같이 말아먹고 복날의 개처럼 두들겨 맞기만 한 패잔병인 나에게 또 팀에 들어오라는 말을 아예 직접적으로 하면서 맥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계약서와 펜을 내미는데, 아마 이것도 능욕의 일부이겠지.
이 녀석의 괴롭힘은 도대체 어디까지 계속되는 걸까. 허탈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용서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발심도 생겨났다.
저번에 이근택 회장이 말했던 이창현의 이야기는 솔직히 누가 봐도 딴지 걸 만큼 이상했지 않은가?
그런데 그걸 딴지 좀 걸었다고 이렇게까지 당해야만 하는 게 맞는가?
이젠 조금 억울해지려는 찰나.
“자. 서명해라, 이성태!”
뭐지? 이 녀석. 진짜로 나를 팀에 넣으려는 생각인가?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녀석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렇다. 녀석은 상상 이상의 악귀였다.
아마 사인을 하지 않으면 내 팀에 가서 내 폼이 떨어진 걸 까발리겠다는 말이겠지.
그렇다고 아마 팀에 들어간다고 해서 정상적인 취급을 받을 수는 없으리라.
팀에 들어가 봤자, 팀원들과 함께 나를 둘러싸고 비웃기나 하겠지.
“자, 어서!”
헌터스리그를 겪으며 다양한 압박감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인간 장난감이 되어버린 듯한 이 감각. 이 신종 괴롭힘의 압박을 버틸 수 없었던 걸까.
혼이 빠져나간 듯, 나는 서류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맞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