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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84화 (184/270)

184화 재현의 순간

‘자…… 선택의 순간이다. 어떻게 할 거냐.’

내가 보기엔 이미 윤한결은 알고 있었다.

아니면 알고 있지 않더라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었다.

내 팬카페를 차리는 미치광이 같은 녀석답게, 나라면 내렸을 오더를 아주 정확하게 예측해서 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다른 쪽. 나머지 녀석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그 행방을 궁금해하며 경기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종규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전투야 그냥 하다 보면 더 경험 쌓여서 더 잘 할 테고. 네 오더야 뭐…… 스스로도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다 말해주잖아.”

맞다. 지금까진 확실히 그랬으니까.

하지만……

“당장에는 오더를 따라주지만, 선수들은 성장하면서 각자 경기나 헌터, 나름의 전투관이 생기죠. 그런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팀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하나로 묶여 움직이는 것. 완전한 오더의 일원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더 뛰어난 팀이, ‘하나의 팀’이 되기 위해선 정말 중요한 일이기도 하구요.”

이종규는 여전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확실히, 조금 지나쳐 보일지도.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필요한 일이었다.

“사람은 과거로부터 배우는 법이니까요. 나름의 피드백이죠.”

내가 회귀했다는 걸 모르는 이종규는, 지금껏 PER이 분열이 일어나거나 전투관이 달라 패배한 적이 없었기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쓴 웃음을 지으며 경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

“재준아. 이제 슬슬 다 합류한 것 같은데. 한결이한테 지원 갈 거야? 아니면 상대 본대측으로?”

경기가 시작한다는 건, 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민은 되도록 오래 끌지 말아야 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이창현이라면 어떻게 했지? 평소의 녀석이라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만 같았다. 그야, 평소에 해보지 않은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이.

“너무…… 고민하지 마. 윤한결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데 뭘. 애초에 연습경기이기도 하고.”

머리를 염색한 것의 효과인 것일까. 전보다 점점 더 활발해지는 듯한 이연주가 해온 말이었다.

‘윤한결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고?’

이연주의 한 마디가 윤한결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창현의 생각을 가장 잘 읽을 수 있는 것. 그건 어쩌면 윤한결일 테니까.

팀에서는 놀림거리였지만, 이창현의 플레이를 가장 진심으로 관찰하던 건 윤한결이었다.

팬카페를 만드는 것 같은 기행을 일삼아서 그렇지.

그러니 아마 윤한결의 선택은, 이창현이 내렸을 오더랑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러면 이 시점에서 본대를 이끄는 이창현은 어떻게 했을까.

“…….”

이 팀에 들어오고 나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어떻게 이 팀에 들어오게 되었었지?

이창현은 평소에 어떻게 오더를 내렸었지?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했었지?

이윽고 이어진 생각은 한 지점에서 멈춰섰다.

이창현의 말이 머릿 속에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헌터스 리그는 경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이미 어느 정도 승부가 결정 나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겠어?”

언젠가 녀석이 했었던 것 같은 말.

“물론 그건 우리팀의 승리이고. 그 이유는 내가, 이 팀을 결국 승리하게 만드는 상황에서만 싸우니까.”

이기는 상황에서만 싸우는 것.

그래. 생각해보면 돌고 돌아 이 말이었다.

이걸 어떻게 구현할까의 고민만 있었을 뿐. 최종목표는 이런 단순하고도, 또 어이없는 말로 돌아왔으니까.

눈을 감고, 빠르게 다시 상황을 부감했다.

1대1 그리고 아직 교전을 하지 않고 있는 각 측의 본대의 상황.

어떤 전술을 펼쳐야 하는가.

PER에는 에이스 스트라이커 이창현도. 전투력 하나는 그 다음가는 윤한결도 본대에는 없다.

대신, 이창현의 자리에 식스맨으로 종종 교체되어 변경되었던 변수창출이 능한 김도준. 그리고 [요새화]로 방어전략에 능한 김유현이 있었다.

그런 와중, 맵은 대규모 한타를 유도하는 거대한 다리가 있는 [제국의 다리]맵.

승리의 방정식은 가진 재료를 통해 이기는 상황을 완성시켜놓고 싸울 것.

‘아아…… 이런 건가. 이창현은 이런 시선으로 경기를 바라보고 있었던 건가.’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하나씩 생각해보니, 놀랍게도 이창현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못했었지만. 이창현은 언제나 PER의 팀원들에게 어떻게 승리하는지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

한편 RQM측.

“그 녀석이 그래서 진짜 혼자 가버린 거야?”

“후…… 그러게. 상위권 팀 선수였다고 유세 부리는 건지 뭔지.”

RQM의 주장은 맵이 [제국의 다리]인 만큼 한타를 대비해서 합류 오더를 내렸지만, 합류고 뭐고 혼자 뛰쳐나가버린 선수를 욕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팀에 한번 합을 맞춰보려고 연습경기에 참가한 일종의 외부인이 그렇게 비협조적이어서야.

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대로면 7대 6으로 싸우게 생겼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상대측도 한 명이 저쪽으로 빠졌으니까.”

가만히 쌍안경과 같은 것을 들여다보던 RQM의 팀원이 말했다.

“그리고…… 상대도 6대6 한타를 생각했는지, 다들 다리 위에서 대기하고 있기도 하고.”

“하…… 이게 잘 된 건지 아닌지. 그건 그렇고 그 화제라던 이창현도 안 나왔는데 이제 막 1부 올라왔다고 기세등등하게 한타 한번 꽝 붙어보자고 다리 위로 기어올라온 거야?”

RQM의 주장 입장에서는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헌터스 리그 1부에서 하위권을 담당하고 있는 팀이라고 한들, 1부에서 버틸 힘이 있다는 건, 그 윗단계의 팀들을 충분히 찌를 날카로운 칼이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리고 RQM의 칼은 바로 끈끈한 팀워크와 그로 인한 강력한 한타능력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맵이 [제국의 다리]라고는 하나 당당하게 한타를 걸어온다니.

조금은 기가 찰 수 밖에.

“자만하지 말고. 2부 전적도 상당했던 팀이니까.”

조심스레 RQM측에서 돌입을 준비했다.

***

류재준이 알기로, [제국의 다리]는 특별한 유물도 거의 없고, 중립몬스터는 아예 없는 정직한 전장.

심지어 지형적 특성도 완전히 샛길로 빠지는 게 아니면 결국 모두 어마어마한 크기의 [제국의 다리]에서 교전이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세상 단순한 맵.

그렇기에 이 맵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전투양상은 팀대 팀의 순수 힘싸움이었다.

아니, 단순히 전투양상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전투를 강요받는 맵이라고 보는 게 옳으리라.

‘결국 한타를 피할 수 없는 맵이야.’

이창현이라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빠져버린 PER에게는 불리한 맵이었지만, 다른 방법은 적어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걸 상대도 인지하고 있었던 걸까?

“저 녀석들도…… 와 있어.”

이연주의 말이 굳이 필요없을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서 RQM의 팀원들이 보였다. 이쪽과 같은 6대6의 대치상황.

그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건 김도준과 이길한의 몫이었다.

‘원래라면 윤한결까지 쓰리톱으로 운용했어야 했는데…….’

상대측도 한 명이 빠졌으니, 그나마 그걸 위안 삼아야겠지.

게다가, 김도준은 항상 상대 입장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녀석이니까 변수를 만들어주리라 믿을 수밖에……!

“저 녀석의 검을 조심해!!”

물론 그 정보는 모두 알려져 있는 상태. 김도준이 달려들자 상대 팀은 거리를 벌리며 중거리 딜러들이 견제 사격을 가했다.

상대 측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4개로 쪼개져 순식간에 김도준을 노려왔지만.

팅 ㅡ.

함께 달려드는 이길한이 지금껏 갈고닦은 방패기술로 무사히 튕겨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길한이 방패를 내리는 순간.

마치 성화를 들어올리는 듯 검을 들어올리는 김도준이 보였다.

번쩍 ㅡ.

‘괜찮을지 모르겠네…….’

일단 상대방의 시선을 끌고 침투하는 데는 성공한 상황. 하지만, 상대의 진형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공세를 가했다.

“준아, 형우야.”

“알았어.”

거리를 계속 벌리며 견제하던 RQM이 합공을 가해온 것이었다.

특공대처럼 먼저 파고든 김도준에게 쏟아지는 화살들.

거기까지는 다시 이길한이 막으면 괜찮았으나, 문제는 이번에는 화살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에어비트를 깔아 동선을 계산해주고, 그렇게 한 몸처럼 호흡해낸 RQM은 순식간에 팀 측의 근접딜러들을 김도준과 이길한 쪽으로 몰아넣었다.

화살이 사격이 빈 곳. 그곳은 정확히 RQM의 검이 동시에 닿는 곳이었다.

도저히 한번에 막을 수 없는 상황.

그때. 다행히도 PER에서도 구원의 손길이 뻗어져왔다.

우우웅 ㅡ. 퉁 투퉁 퉁!

김유현의 [요새화]. 포탑설치가 완료되어 견제사격으로 상대방의 접근을 막아온 것이었다.

“후…… 한숨 돌렸네.”

김도준이 고개를 돌아보며 따봉과 함께 씨익 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긴장감이 부족한 녀석이네. 왜 맨날 이창현이 김도준을 구박하는지 알 것 같기도……’

어찌되었든 김유현의 [요새화]가 발동되고 난 후는 전장의 판도가 꽤나 바뀌었다.

일단 준비가 오래 걸리지만, 끝나면 몇 인분의 화력을 보장하는 김유현의 능력이었기에. 전위 쪽이 한 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 크리라.

하지만……

전투가 점점 길어지고 장기화될수록 패색이 짙어지는 건 PER쪽이었다.

서로의 움직임을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근접 딜러가 원하는 이동경로에 에어비트를 던져 버리는 RQM의 원거리 딜러.

그리고 그 에어비트를 밟고 튕겨 날아다니며 공격하는 변칙을 보여주는 근거리 딜러까지.

단순히 호흡과 기본기의 문제였다.

오랜 세월 시간을 내어 맞춰왔던, 한 몸처럼 움직여왔던 RQM이 전투에서의 호흡을 강점으로 승기를 가져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크읏…… 창현이. 아니, 한결이라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게다가 PER은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면 그 숨통을 끊어버리는 결정적 스트라이커가 부재한 상황.

아무리 김도준이 누군가를 베거나, 김유현이 견제사격을 해 봐야, 마무리 지을 사람이 없었다.

공격력의 부족이었다.

상대팀은 그 모습에 급기야 거의 승리했다고 판단했는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러게 팀 에이스를 누가 빼 두고 오라고 했나.”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었으니, PER측에서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제로 한지수와 이연주의 커버. 김유현의 [요새화]로도 이번 경기는 팀원 간 호흡과 유기적인 전투능력이라는 측면에서 밀렸고.

그렇지만.

‘슬슬 준비가 끝난 것 같군…….’

상대가 유리한 전장에서, 상대의 장점으로 인해 밀린다고 인해 좌절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이창현은 항상 그런 상황에서 뒤집어 보였으니까.

그래, 이창현이라면 분명 이렇게 했으리라.

이길 수 없는 전장. 그걸 강요하는 상황이라면.

“판을 뒤엎어야지.”

왜 항상 이창현이 경기가 패배에 가까워져 위험해질 때마다, 웃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류재준도 자신도 모르게 살며시 웃음 짓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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