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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플레이어의 귀환-183화 (183/270)

183화 흉내내기

“이번 연습경기에 저는 참가하지 않습니다.”

한국리그의 떠오르는 별로 유명한 PER의 감독 이창현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말에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네?”

“감독이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어이가 없기도 했다.

새로운 선수와의 합을 맞춰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기거나, 좋은 경기를 하기 위해서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 어정쩡한 태도에 RQM의 감독의 감독인 나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이창현이 나이가 어리고,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많았어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PER의 저력을 인정하면서 RQM측에선 새롭게 딱 한 선수만 끼워넣었는데. 저쪽 측에서는 새 선수도, 이창현이 참가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짓씹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이창현 감독이 선수로서 참여하지 않는다면…… 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확실히 이창현 감독은 강하다. 이것은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RQM의 감독은 이창현이 빠진 PER이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아무리 RQM이 1부 리그에서 경쟁에 뒤쳐진 9등 팀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한들 1부에서 나름의 경험과 컨셉. 강점을 가지고 어떻게든 살아왔던 팀.

다른 수많은 1부 팀에 고춧가루를 뿌렸던 경험은 수도 없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자신만만해 있는, 저 젊은 친구의 팀에게 1부의 관록을 보여줄 때였다.

***

‘이게 맞는 거냐…… 이창현.’

지금 막 시작된 연습경기는 벌써부터 약간 부산스러운 감이 있었다.

이창현의 부재로 인한 약간의 부산스러움. 그리고 확실한 오더의 부재로 평소랑은 분위기가 달랐으니까.

이 경기 전, 이창현이 비장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던 팀 회의 때가 생각이 났다.

“이번에 잡힌 연습경기에 나는 참가하지 않을 거야.”

때는 RQM과의 경기 전날. 이창현이 조금 뜬금없이 통보했다.

“에? 참가를 안 한다고? 그날 어디 다른 곳이라도 혼자 가는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경기에만 참여를 안 한다는 거잖아.”

묘하게 대화의 포커스가 서로 안 맞는지 티격태격하는 이창현과 김도준의 모습.

그만큼 팀원들로서는 이창현이 참가하지 않는 PER의 경기라는 것이 생소했다.

‘창현이가 참가를 안 한다…… 라.’

조금은 의외였다. 지금껏 이 팀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자, 에이스 플레이어인 이창현이 연습경기에 참여하지 않는다니.

그렇기에 이창현의 의도가 무엇인지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굳이 말하면 이 팀 자체가 너를 에이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팀인 건 너도 알고 있을 텐데. 왜 굳이 연습경기에 안 끼겠다는 거지?”

지금까지는 당연히 전술도 에이스 스트라이커인 이창현을 위주로, 선발 선수도 이창현과 이창현의 오더를 구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짜여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 핵심인 이창현이 빠지면 팀의 방향성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 말의 답변은 꽤나 의외의 것이었다.

“좋은 질문이다. 재준아.”

마치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일종의 중간평가 같은 거지. 경기 안에서가 아니라, 바깥에서의 객관적인 관찰. 미국에서의 훈련과, 지금껏 내가 개인에게 내줬던 과제를 얼마나 소화했는지.”

요컨대 경기를 하면 한 명 한 명 세세하게 들여다 볼 수 없으니, 바깥에서 관찰자 입장으로, 실전 테스트를 보겠다는 건가.

‘그래도 결국 이 팀에서 중요한 건, 에이스인 이창현과의 궁합일 텐데 왜 그걸 굳이 이창현 자신을 빼고 경기를 해서 보는 거지…….’

약간의 의구심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는 확실했다. 다른 속셈이 있더라도 이창현이 말해줄 것 같지는 않다는 것.

그렇기에 차라리 다른 걸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 그 의도까지는 알겠는데. 그럼 경기 운영과 오더는 누가…….”

사실 이 질문도 또 다른 핵심이었다. 그야, 지금껏 이창현 중심의 팀이었기에, 경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오더의 중심도 이창현이 잡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창현이 사라졌으니 그걸 대신 오더할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그 말에 이창현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나를 보더니 씨익 웃고는 깜짝 발표를 한 것이었다.

“이번 경기의 메인 오더와 전략은 재준이가 담당한다.”

“이렇게 갑자기? 내가?”

“한 경기 동안 새 캡틴이니까, 너희들은 잘 따라주고.”

그리고 이제 돌아와서 다시 경기.

약간 혼란스럽다고는 하나, 아직 경기는 초반. 여느 때처럼 이연주의 위치 브리핑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맵 특성 탓인지…… 다들 전반적으로 상대팀과 전반적으로 떨어져 있어…….”

“어떻게…… 할까. 창현아. 아, 아니 재준아.”

이연주도 어색했던 것일까.

지금 이 경기에서 있지도 않은 이창현을 자꾸만 찾아대고 있었다. 습관이라 그렇겠지만.

“당황할 것 없어. 창현이가 빠지고, 대신 방어적인 유현이가 있는 거니, 그 부분의 전략만 조금 수정하면 돼.”

“……아!”

눈을 감고, 경기에 집중했다.

그래, 이창현의 의도 같은 건 사실 이 경기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경기에서 이기는 것뿐이니까.

다만, 이창현이 없으니 전략에 전반적인 수정은 필요했다.

한 명의 절대적인 스트라이커를 받쳐주는 형태의 경기운영에서, 전반적으로 방어적인 진영을 짜며 상대를 조여나가는 것이 아마 정석적이겠지.

‘창현이가 선호하는 전술은 아니지만…….’

아마 이게 정론이리라.

“일단 다들 연주의 브리핑에 따라 합류하자.”

***

경기는 아직 초반.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은 상황. 하지만 RQM의 감독 코치. 그리고 나와 PER측의 코치가 있는 대기실은 꽤나 부산스러웠다.

일방적으로 PER측 때문이었다.

“그…… 창현아. 그래서 애들만 내보낸 이유가 뭐야?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잖아.”

이종규 코치가 몸이 달아오른 듯 안절부절 못하며 계속해서 물어왔다.

“계속 이 자리에 있었으니까, 알 것 아니에요. 뭘 그런 걸 자꾸.”

“그건 표면적인 이유고, 왜 그랬는지 그 속 뜻을 묻는 거잖아.”

오? 이종규 코치는 멘탈 케어 전문가 및 식모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레만의 지원이 빵빵해지고 밥 챙겨주는 요리사가 생기고서 눈치 보는 능력도 좀 늘어난 것일까?

어쩌면 남몰래 슬금슬금 이종규도 조금 성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여긴 애들도 없고 이쯤 되면 이종규에게만 이야기해주는 건 큰 문제는 없겠지.

“……모든 전투에 제가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뭐어? 너 혹시 어디서 입단 제의라도 받은 거야? 팀 옮기게? 어디야 그 팀. 1부 LTD? 아니면…… 혹시 네가 갈 정도면 저번에 그 미국에서……??”

순간적으로 놀랐는지, 이종규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것도 오해하기 딱 좋은 단어만 골라서 하는 말이었다.

근데 어째 맞는 건 하나도 없네.

“조용히 좀 해요 조용히 좀.”

그랬기에, 나는 이종규의 입을 틀어막고는 다시금 작게 속삭였다.

“팀을 옮기느니 그런 멍청한 소리 하지 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요. 팀원들이 하는 모든 전투에 제가 오더를 내릴 수 없는 게 당연히 정상 아니에요?”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지금까지는 별 문제 없이 애들한테 다 세심하게 오더해줬잖아.”

“오더를 한다는 건, 제 전투 이외에 다른 부분에도 신경을 할당해서 생각한다는 거고. 그럼 당연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럼 지금까지는…….”

“네. 팀 전체의 승리를 견인하기 위해 직접 계속해서 오더했지만, 팀의 체급을 더 올리기 위해서는 각자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3부에서 2부로 승급할 당시. 우주 맵이 나왔을 때 서로 각개격파하는 전투양상이 또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개개인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고 작은 세부 전략을 짜서 움직이는 것.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생각을 이해해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한 방향으로 같이 움직이는 것.’

대화하지 않고도 그것이 일원화될 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팀이 되겠지.

“이번 경기는 그런 의미입니다. 경기에서 제가 부재한 것으로 인해. 녀석들은 처음으로 ‘창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를 생각하면서 제 의도를 상상하고 맞춰가며 움직이게 될 테니까요.”

물론 그게 실제 내 생각과 일치할지,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렇게 움직이고 있는 녀석도 있었다.

‘일대일이라…… 한결이 덕에 경기가…… 재미있겠는걸.’

***

류재준의 합류 오더가 내려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발생했다.

다름 아닌 윤한결이 합류 도중, 홀로 떨어진 상대 팀을 하나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앞에 적 발견. 합류하지 않고 먼저 암살을 시도할게.”

류재준의 허가가 들어오기도 전, 윤한결이 단독행동을 시작했다.

“잠깐……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혼자 뛰어드는 건 위험하다!”

류재준이 빠르게 오더를 따르라고 했지만, 한 순간에 지휘봉을 잡은 사람이 바뀌었는데 지휘가 잘 될 리가.

“미안…… 이미 상대도 이쪽을 알아챘다. 미리 알아본 RQM의 선수 중엔 1대1이 특출나게 강력한 선수는 없었으니 괜찮을 거야.”

윤한결은 아무래도 상대와 먼저 부딪힌 모양이었다.

“그리고…… 창현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

윤한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투에 들어갔는지, 이어폰 너머로 딱히 새롭게 들려오는 말은 없었다.

***

“합류 완료. 이제 이연주만 오면 한결이를 제외하고 다 합류가 끝난 것 같은데?”

“음…… 그래.”

“한결이는 어떻게 할 거야? 그쪽으로 본대를 움직일까?”

“……재준아?”

윤한결이 마지막에 한 말이 무언가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창현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라.’

그래. 확실히 이창현이 경기 중 했던 선택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때론 과감했고, 패배를 눈앞에 둔 것 같아 보여도 결국은 모두 승리로 이끌었으니까.

때론 정석적이었지만, 때로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달랐다. 이창현의 오더도. 이창현이라는 크랙 플레이어도 없었다.

‘이창현이 없으면, 우리 팀의 기본 컨셉을 살린 스트라이커 한 명을 중심으로 짠 전술은 불가능해.’

그리고 그건 필시 전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왜 자꾸 윤한결이 마지막으로 한 그 말이 귓가를 맴도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는 가운데, 엉뚱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어쩌면. 이 경기에 이창현이 빠진 이유와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창현은 나름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이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다른 팀원들을 보고 분석하거나…… 혹은 경험을 습득하길 원하는 거겠지.

이창현이 없는 상황에서 습득하길 원하는 것?

그게 뭐지? 오더가 딱딱 떨어지지 않고 모호할 때 임기응변 하는 법? 메인 크랙 플레이어가 존재하지 않을 때 대처하는 법?

아니…… 그런 지엽적인 것일 리가 없었다.

이창현이라면…… 이창현이라면.

“…….”

어쩌면.

‘자신이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했을지를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것인가.’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지며 빠르게 상황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창현이 이 경기에서 빠진 이유.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이창현이 이 경기에서 알아주길 원하는 것. 깨달아주길 원하는 것.

그건 이창현 자신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의도를 읽어 하나의 생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윤한결은 나름의 결단을 내리고 이창현이었다면 했을 오더를 미리 생각해서 움직였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이창현은 어떻게 했을까.

“재준아. 이제 슬슬 다 합류한 것 같은데. 한결이한테 지원 갈 거야? 아니면 상대 본대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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