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창현 없는 창현팀
이성태가 패배를 인정함으로 인해,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대신 대결 자체보다, 이번 대결에서 신비한 능력을 보여준 내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특히 직접 편하게 말을 걸 수 있는 아는 사람들이 특히.
“하하핫. 이번에 쓴 게 저번에 미국에서 썼다던 [마도공학무기변환]의 응용이구나. 레만에게 들은 것보다 어째 한 수 위군. 이번 시즌은 진짜로 기대해도 되겠어.”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거는 이근택 회장님이나,
“그런 식으로 스킬을 응용해서 쓸 줄이야. 솔직히 심사위원 때부터 봐 왔지만 그런 게 상상은 가능해도 실전에서 쓸 만하다고는 생각은 안 했는데. 항상 예상 이상이네. 나중에 내 칠지도랑 겨뤄봐도 좋은 승부가 되겠어.”
이젠 심사위원과 심사받는 학생의 입장에서 벗어나, 눈에 호승심을 띄고 있는 이민석까지.
그리고 잘 아는 사이가 아니기에 흘끗거리기만 할 뿐. 내 쪽을 향해 시선이 집중된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아. 어찌 되었던, 원래 목적은 이성태를 영입하려는 목적이었으니…… 망각하면 안 되겠지.’
이쯤 하면 내 기술적 테크닉도. 호승심도. 그리고 우리 팀에 들어오면 얻을 수 있는 그런 이점들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을까?
영입제의나, 친분을 쌓는 건 이런 타이밍이 제격이겠지.
“증명은 뭐…… 이만 하면 되었을 테고. 창이 굉장히 매섭던걸요?”
일단 그래도 이긴 건 내 쪽이니까, 상대의 면을 세워주는 영업용 멘트 한 번 해 주고……
“저희 팀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놀러와 주셨으면 좋겠네요.”
놀러와주면 좋겠다. 흔히 영입 의사가 있는 팀이 선수들에게 격식 없고, 허물없이 호감을 보일 때 하는 말이었다.
이쯤 말하면 잘 알아듣겠지?
이성태가 영입되면 지금 PER에 부족한 부분. 특히나 근접 싸움에서 공방을 벌여줄 인원이 채워진다는 면에서 상당히 좋았으니……
들어…… 오겠지? 다른 조건도 잘 맞춰줄? 수 있을 테니까. 아마도?
아니나 다를까. 이성태가 대답했다.
“꼭…… 놀러…… 가겠습니다.”
역시나. 반응을 보니, 긍정적으로 보였다.
하긴, 이렇게까지 면도 세워주고, 기술도 보여줬는데 테크니션이라면 탐이 나지 않을 수가 없지.
그야말로 완벽한 영입작전이었다.
***
[더 헌터스 데이]는 그 교류전을 마지막으로 별다른 일은 없었다. 점 찍어둔 다른 몇몇 선수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아마, 이성태와의 교류전을 지켜보았던 걸까. 달리 교류전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연락처도 주고받고. 딱 그런 사소한 일들 뿐.
레만이라는 강력한 스폰서가 있어, 이번에는 비즈니스 파트에서 별로 참가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왜 이성태가 오질 않는 거지?’
그게 참 의문이었다.
“한결아. 넌 어떻게 생각해? 저번에 파티에서 봤던 이성태 말이야.”
“아…… 그 창 쓰던 사람? 나도 몇 번 랭킹전에서 떠 봤는데. 상당하지. 창술이나, 그냥 전투 센스나 기술 자체가…… 갈고닦은 게 남다른 부분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왜 안 오지? 저번에 꼭 놀러온다고 해 놓고는.”
온다고 마음먹었으면 진작에 와야 했을 시간이었다.
그야, 이제 시즌이 끝나고 선수들의 휴가기간도 다 지났기 때문이었다. 들어올 생각이 있다면 보통 공개 선수모집이나, 트레이딩. 본격적인 영입시장이 열리기 전에 오는 게 보통인데……
다른 스포츠는 몰라도 헌터스 리그는 이 타이밍에 마음이 간 팀이랑 사전에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흠…… 그러게. 나도 그날 내일이라도 당장 이성태 선수가 올 줄 알고, 열심히 무기를 정비해놨는데. 왜 안 오는 거지?”
역시나 윤한결도 의아해하는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한 녀석이네 그 녀석.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에. 딴지를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 개인 훈련을 마치고 개인실로 들어가는 도중, 우리의 대화 소리를 들었던 걸까?
“아니…… 진짜 그렇게 생각해? 전투할 때 보면 이렇게 천재적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의외의 부분에서 빠져가지곤.”
어이없다는 듯 빈정거리는 한지수.
윤한결과 내가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자,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갔다.
“너, 그날 이성태의 창에 스친 적조차 없지?”
“그렇지?”
“그런데 이성태한테 한 말이…… 창이 매서웠다고? 자존심으로 똘똘뭉친 테크니션이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겠냐?”
음……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어려울 것도 없지. 평범한 고등학교 고등 문학 문제랑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뭐 사실 고등학교 나이대엔 거의 헌터 프로가 되었어서 풀어본 적은 없긴 한데.
“그야…… 한국에서 가장 압도적인 테크니션이자, 신성인 이창현이 인정해줬으니 보람을 느끼거나, 좀 흐뭇하지 않았을까? 미국에서도 혀를 내두른 한국 헌터가 인정한 건데.”
“맞아. 그렇지?”
봐라. 윤한결도 내 말에 동감했다.
그런데 한지수는 오히려 더 표정이 우중충해지더니 한숨을 푹 쉬곤 말했다.
“멍청아. 100퍼센트 맥인다고 생각했겠지. 가지고 놀면서 농락해놓고 그런 말을 했다고 말이야.”
“에? 그런가?”
하지만 상대가 나잖아.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다면 이성태는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한 것이 아닐까?
하여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은 어렵구만…….”
***
놀랍게도 한지수의 말이 맞았는지, 찾아온다고 한다던 이성태가 실제로 오는 일은 없었다.
그 상태로 개인훈련과 팀 훈련을 하며,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 다가오는 것은 시즌 시작 전 연습경기 시즌.
내 예상대로라면 이 시즌 즈음, 저번 파티 때 뿌려둔 씨앗들이 돌아와 두 명쯤 선수가 영입되었어야 했는데.
영입 계약은 커녕, 찾아온 선수조차도 거의 없었다.
‘우리 팀…… 생각보다 아직도 다른 1부 팀원들에게는 매력이 없어 보이나?’
뭐, 일단 이렇게 고민해봤자 당장 해결되는 문제는 없었다.
어차피 당장 정규시즌 시작 전이라, 본격적인 영입시즌이 시작되지 않기도 했고.
우선은, 지금 당장 집중해야 할 것.
그건 바로 연습경기였다.
“그런데…… 다른 팀과 달리 아직 영입한 선수가 없는데도 바로 연습경기는 일정대로 진행하시는 건가요?”
일정관리를 도맡고있는 김성준이 내게 물어왔다.
보통 이맘때 즈음의 연습경기는 새 선수들과 함께 합을 맞춰보거나, 연습경기를 하며 서로의 궁합을 시험해보는 시기이니까.
아직 새로운 선수를 구하지 않은 상태로 연습경기를 들어가는 걸 보고, 의외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원래라면 새 선수를 껴서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실제로 있긴 했는데…… 안 왔는데 어찌할 도리는 없지. 게다가 어차피 연습경기는 필요하기도 하고.’
“그럼요. 빠르게 올라온 만큼 애들도 아직 경기 경험이 부족하니까요.”
“아……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우선 이번 경기는 1부 전시즌 9위를 차지했던 RQM과 경기를 잡았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일정대로 진행하죠.”
선수영입이야 뭐…… 연습경기를 돌면서 하다 보면 우리 팀에게도 기회가 생기니 너무 촉박할 필요는 없겠지.
우선은 이번 1부 리그에서의 성공을 가늠해볼 연습경기가 우선이었다.
***
헌터스 리그 1부는 2부나 3부와는 다르게 한국의 자본력이 가장 많이 들어간 스포츠였다.
즉, 팀 하나하나의 규모가 남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투자되는 것만큼이나, 리그도 상당히 치열했다.
‘저번 시즌 성적을 보니…… 1황이라고 불리던 LTD를 제외하고 2~8위는 거의 1~2경기 차이로 순위가 결정되었지?’
거기에 1황이라고 불리는 LTD또한 실수해서 만약 조금만 미끄러졌다면, 그 불같은 순위경쟁에 뛰어들 수도 있을 만큼 경쟁이 뜨거웠다.
아마 거기서 고고하게 약간이라도 위에 서 있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강준혁의 존재감 때문이겠지.
그랬기에, 연습경기를 처음 잡은 것은 전시즌 9위를 한 팀 RQM이었다. 실력이 거의 비슷한 2위에서 8위 팀과 달리 그나마 팀의 전력을 상대했을 때 해볼만 한 팀이라고 생각되었으므로.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건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이구…… 안 그래도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이창현…… 감독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편하게 부르시면 됩니다. RQM의 감독님이신데, 이 자리에서 저를 구단주나 선수라고 부르시면 조금 이상할 테니.”
“아무튼 먼저 연습경기 제의를 주셔서 놀랐습니다. 저번 시상식 때도 그렇고 최근 1부 헌터스 리그에 도는 소문도 그렇고…… 솔직히 저희 팀이랑 연습경기를 안 잡아주실 거라고 생각해서…….”
이근택과의 연줄도 있고 파죽지세로 PER의 주가가 상승하고 있어서였을까?
RQM의 감독은 꽤나 깍듯한 사람이었다.
“PER은 역시……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연습경기에 새로 들어가는 선수는 한 명뿐이거든요. PER측에서는 이번에 입단을 희망하는 선수가 많아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아뇨. 저희는 기존 팀원 7명으로 갑니다.”
“……?!”
상대측의 감독은 꽤나 놀라고 있었다.
하지만 지원자가 없었던 걸 어떻게 해.
아무래도 레만을 닥달해서 예산을 더 끌어내던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뭐…… 새 팀원이나, 팀원 보강도 좋지만, 역시나 제일 중요한 건 기존 레귤러 멤버들이 중심을 잘 잡아줘야하는 것이니까요.”
적당한 포장. 그리고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하하…… 맞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솔직히 이창현 감독까지 낀 PER을 새 인원까지 낀 저희 팀이 좋은 경기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군요.
압도적인 경기가 나오면 팀원 간의 궁합이나 그런 걸 당최 볼 수가 없을 테니…….”
아. 그러고 보니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 있었군.
“이번 연습경기에 저는 참가하지 않습니다.”
“……네?”
“감독이니까요.”
사실 그건 표면상의 이유이고, 실질적으로는 RQM의 감독이 말한 것처럼, 내가 끼면 저번 승강전처럼 압도적으로 되어버릴 양상이 컸기에. 일부러 참가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제일 많이 성장한 건 나겠지만, 저 녀석들도 뭔가 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팀을 점검하는 겸, 그리고 새 멤버가 뽑히면 7명의 정규선수 중 벤치멤버로 빠지는 선수가 있을 수밖에 없기에.
그걸 시험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참가한 인원은 나와 3부에서 혼자 분전하는 이정훈을 제외한 PER의 팀원.
이연주, 이길한, 윤한결, 한지수, 김도준……그리고 류재준과 김유현.
지금껏 팀의 경기에서 내가 빠져본 적은 없었기에, 한 번도 조합된 적 없는 이 멤버.
태생 3부의 무승의 선수들까지 섞여 있는 이 팀은.
지금에 와서 RQM을 상대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흥미진진하게 선수들의 성장을 살피려는 나와는 다르게, RQM의 감독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