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엇갈리는 생각
흐름이 달라졌다.
단 한방. 단 한방이었다.
하지만 강맹한 공세를 계속 가하고 있던 이성태가 오히려 먼저 상처를 입었다는 것.
그것이 흐름을 바꿨다.
이성태의 표정은 굳어졌으며, 공세에 치중하던 몸놀림은 어느샌가 신중해져 있었다.
마치, 자신의 움직임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혹은 혹시 모를 빈틈이 생겨나는 것을 경계하는 듯.
돌다리를 가만히 서서 기약 없이 두드리는 사람처럼.
‘하긴…… 방금 그 일격이 조금만 더 오른쪽이었어도 이 대결은 끝났을 테니.’
신중해지는 건 당연하리라.
하지만, 신중해지는 건 오히려 내겐 기회였다.
오히려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 그건 이성태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었으니까.
방어형세로 전환한 이성태에게 먼저 공세를 시작한 것은 나였다.
얼핏 보면 닿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녀석의 창에 비해 훨씬 짧은 검을.
마치 닿을 것처럼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마 밖에서 보면 우스울 수도 있겠는걸?’
나는 녀석에게 닿지도 않는 검을 마구 휘두르고 있었고, 이성태는 닿지도 않는 검을 막아내려는 듯 휘적이고 있었으니까.
희극도 이만한 희극이 없으리라.
하지만.
푸욱 ㅡ.
빈틈을 보인 한 순간.
아니, 빈틈이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그 순간.
내 검은 훨씬 더 길고 얇게 늘어나 이성태의 어깨를 찌르고 있었다.
창은 방패도 아니고, 방어막도 아니기에. 아무리 뛰어난 테크니션, 달인이라고 하더라도 전 방위를 막을 수는 없는 법.
더군다나 베지 않고 일점타격을 가한다면.
‘없는 빈틈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아무래도, 이 교류전의 끝이 이미 보인 것 같았다.
예상했었지만서도.
“그럼 이제 슬슬 끝을 내 볼까요.”
살며시 웃음 지으며 말했다.
처음의 정중하고, 배우는 듯한 컨셉은 지키는 게 좋겠지?
슬슬 이젠 진짜로 숙련되어가기도 했고.
***
이 싸움을 보고 있는 건 비단 PER팀원과 관심 있어서 몰려온 사람들뿐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이 싸움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 이근택과 이민석 또한 좋은 구경거리라고 생각해 찾아왔으므로.
“허어…… 무기를 변환하는 능력을 저런 식으로.”
“회장님이랑 손을 섞을 땐 저런 기예를 보여주진 않았었죠? 그럼 역시 새로 익혔다는 건데…….”
두 사람은 과거에 자신과 대련했던 이창현을 생각하며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고 새삼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창현이 이미 가지고 있는 무기들도 아주 강력한데, 이젠 근접전에서조차 다른 헌터들을 기술적으로 압도한다고?
그건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헌터. 그야말로 일당백을 할 수 있는 헌터가 된다는 의미였으니까.
전술에서 어떤 포지션에 넣어도 해낼 수 있는 만능 키. 그런 선수가 있는 팀과 없는 팀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큰 결과의 차이를 불러오는 법이었으니까.
“에…… 근데 저게 대단한 거예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창현이 형도 평소답지 않고…….”
반면 이 대결의 대단함을 모르는 이도 있었다. 평소라면 이창현을 찬양하면서 눈을 번뜩이던 이정훈이 그랬다.
그리고 그 외에 2부나 3부 선수. 그리고 몇몇 1부 선수들까지도. 이근택과 이민석의 평에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그 분위기에, 이민석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확실히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지금 보기엔, 서로 닿지도 않는데 열심히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으니. 우습게 보이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이창현은 검이 닿지도 않는데 허공에 휘두르고, 이성태는 그걸 또 막는다고 허공에 쉐도우복싱을 한다.
아까 이창현의 일 수.
검이 순간적으로 늘어나 이성태의 뺨에 붉은 상처를 자아낸 찰나의 공격을 포착하지 못했다면.
이해할 수 없는 공방이겠지.
하지만 이민석은 굳이 이해시키려고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다.
단지, 살며시 웃으며 이정훈에게 말해줄 뿐.
“하지만 그냥 보고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저게 장난질인지 아닌지.”
아니나다를까. 이민석이 말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분명 중간에 꽤 거리를 두고 서로 허공에 휘두르는 쉐도우 복싱을 하고 있었을 텐데.
이성태의 어깨에 피가 솟구쳤다.
“…….”
“봤지?”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르는 듯한 이정훈과, 의기양양한 이민석의 표정.
실력의 차이에서 나오는 ‘볼 수 있는 것’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민석이 이창현의 새로운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창현이의 검이 닿지 않았는데, 계속해서 이성태 선수에게 상처가 생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사실은 창현이가 휘두르고 있는 저 검. 아주 순간적으로 형태가 변해 성태의 급소를 노리고 있는 거야.”
“무기의 형태가…… 변한다구요?”
“형태가 변하는 거라면 지금까지 많이 봤을 텐데?”
이민석의 말을 듣고 떠올려보니, 맞는 말이었다. 지금껏 이창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쌍권총을 저격총으로, 검으로, 방패로 바꾸었으니까.
그렇다. 심지어 최근 미국에 갔을 때는 [마나 입자가속기]……랬나? 그런 걸로 표적을 맞췄으니 신기한 일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단순히 다양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금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주 순간적으로 검의 길이가 늘어나거나 형태가 변해 상대의 급소를 노리는, 마치 살아있는 맹수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거리에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계속 위협하던 이성태 선수가 방어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야.
창의 이점으로 거리를 의도적으로 조정하며 공세만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이창현은 그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을 뿐더러, 무기의 형태도 마치 살아있는 것마냥 변해 이성태의 공격보다 훨씬 날카로우니까.”
그제서야 함께 교류전을 구경하던 일부 선수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단순히 허공을 향해 휘두른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심리전의 일환이었으며 수싸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여전히 그들이 알지 못하는 대단한 점 또한 있었다.
“저…… 민석 선배. 그런데, 그럼 무기의 무게 중심과 형태 같은 게 변한다는 건…….”
윤한결은 그걸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 무기의 무게 중심도. 공기저항도. 사용감도. 바뀔 때마다 그 차이를 현격하게 느끼겠지.”
누구보다 전투에 예민한 헌터에게 있어서. 그것도 테크니션인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들이 휙휙 바뀐다는 것은 굉장히 큰 문제였으니까.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움직임으로 최소화해서 피하고, 맞추는 헌터들인 만큼. 그 작고 사소한 차이는 실제 전투에선 엄청 크게 다가올 텐데……
이창현은 그런 전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수행하고 있었다.
심지어 점점 더 정확한 일격을 가하면서.
“다른 녀석들은 모르더라도, 너라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7개의 이기어검을 쓰니까.”
윤한결은 그 사실에 다시금 가슴이 두근거렸다.
지금껏 익숙함을 위해, 모든 검의 무게와 형태. 관리까지도 같게 해 왔는데.
오히려 그 익숙함을 버리고서 저렇게 나아갈 수 있는 녀석이 우리팀의 리더로 있으니. 어쩌면 윤한결 자신도 저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굉장한 녀석이야…… 저 녀석은.”
지금 이 순간도 점점 예리해지는 일격에, 승부는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
[마도공학무기변환]은 강력한 무기이다. 특히나 마나가 충분하다면 더더욱.
[만개]했을 과거에는 더욱 그 효용을 잘 알고 있었다. 마나의 사용을 조절해가면서, 세심한 사격에는 권총과 저격총을.
그리고 마나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무너뜨릴 때는 무기를 변환해 상상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무기의 강대함과 강력함. 마나가 많다면 찍어누를 수 있는 그 힘이 있었기에.
가장 세심한 부분을 오히려 살피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창현의 검이 계속해서 이성태에게 쇄도했다.
계속 방어가 뚫려 자포자기한 이성태는 창으로 막다 못해, 아예 화살을 막듯 창을 빙빙 돌리며 항전했지만.
힘의 방향을 분명하게 하며 찌르고 들어가는 공격을 그런 식으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푹 ㅡ.
이젠 영점조정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으니까.
‘나도 무기엔 꽤나 민감한 편이라 반신반의했는데…… [완전한 몸] 능력 덕분인가? 생각보다 조정하는 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지도.’
무기가 마치 흐르는 액체처럼, 순간적으로 변하더라도 계속 움켜쥐면서 찌르는 감각은 역시나 쉽사리 익숙해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표적을, 이성태를 맞추는 데 있어서는 점점 정확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물론 이성태도 창술로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한 녀석인 만큼, 이 테크닉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꿰뚫어봤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이제 더 이상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었던 것일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던 순간.
이성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패배다.”
***
꼴사나운 패배였다.
힘이나 능력이라면 밀릴지 몰라도, 근접전에 있어서는 테크닉. 기술로는 한국 1부리그에서 최강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 있었던 창술도. 그리고 근접전의 기초에서 심화능력까지도.
‘……그리고 몸을 쓰는 능력까지도.’
그 녀석은 상상을 아득히 상회했다.
이근택 회장이 녀석이 미국에 가서 자신 있는 분야를 고르라고 해놓고 현역 헌터를 꺾었댔나.
실제로 그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유물로 인해 나온 표적 훈련에 아나와 웨이가 나왔다고 했나.
그건…… 역시 아직 잘 모르겠다. 싸워 본 상대 중 가장 강한 녀석이 나온댔는데 그럴 수가 있나?
이력을 보니까, 거의 신인이더만.
하지만…… 녀석이 그 표적들을 맞췄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아…… 완전히 패배해버렸구만. 변명의 여지도 없이.”
교류전을 끝내고 나니, 김종하가 옆에서 키득키득 비웃고 있었다.
“어때? 제대로 깝쳤다가 매운 맛을 본 소감은? 그래서 내가 막 올라온 신인에 가까워도 자만하지 말라고 했잖아. 괜히 내가 그랬겠어?”
“자만은 무슨. 그냥 실력 차이다. 아까 시상식 때 영상을 봤는데 자만했을 리가 없잖아. 룰도, 무대도 나한테 제일 유리한 곳이었어. 이건 그냥…… 진 거다.”
하필이면 사람도 이렇게 잔뜩 모여서 보고 말이야.
이근택 회장이 했던 이야기가 과장과 허풍이 섞여 있다고 생각하며 이야기했었는데.
심지어 이근택 회장 당사자까지도 보고 있었다.
얼마나 비웃었을까.
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이번만은 실제로 내가 틀린 말을 했고…… 녀석은 상상보다도 훨씬 뛰어난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이 분함은…… 반드시 1부 헌터스 리그에서 갚는다.
유리한 조건에서 이렇게 와장창 깨지고 나니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결코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내 잘못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수많은 사람 앞에서 입은 수모……
반드시 경기에서 이기고 인터뷰로 갚든, 어떻게든 해야 했다.
그런데.
한참 수치심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막 교류전이 끝나고 나온 건너편의 녀석. 이창현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증명은 뭐…… 이만하면 되었을 테고. 창이 굉장히 매섭던걸요? 저희 팀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놀러 와 주셨으면 좋겠네요.”
팀에 한 번 놀러 와 달라. 구단주가 하는 말이니, 일종의 영입제의로도 볼 수 있는 말.
하지만, 이성태에게는 그 말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한 번 스치지도 않았으면서 창이 매서웠다고?
팀에 어울릴 것 같다고?
살며시 웃으며 저 말을 하는 건, 100퍼센트 맥이려고 하는 말일 수밖에.
진짜로 팀에 갔다간 다시 한번 꼬드겨서 싸움을 유도하고, 이기고는 다른 녀석들 앞에서 지금처럼 깔깔거리며 수치를 주겠지.
그 생각에 여기서 일갈하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너무 많다…… 이 녀석…… 이것까지 계산하고. 내가 거절하지 못하게…….”
화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지금의 이성태는 패배자의 입장.
자존심을 억누르고 고개를 수그렸다.
“꼭…… 놀러…… 가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로 입술을 꽉 깨물고라도 말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