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마도공학 무기변환
“놀랍게도 전부 사실이라면요?”
그 말에 이성태는 순간적으로 표정을 굳혔다. 농담이 지나쳤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뭐…… 제 딴엔 사실을 정확하게 정정할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겠지.’
그건 회귀 전에 만났던 이성태의 단점이기도 했다. 혼자 오랜 시간 갈고닦아온 기술. 그 기술이 뛰어나긴 했으나, 남의 것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이 상황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이겠지.
“……‘상대해본 적 중 가장 강한 녀석’. 대충 그런 녀석이 훈련에 나온다고 했는데, 유럽의 여제 아나나 중국의 웨이가 나왔다더군요.”
“그렇죠.”
“그럼 이창현 선수는 그 선수들을 상대해봤다고 하는 건가요? 국제 리그에 나간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음…… 이건 확실히 타당한 질문이었다. 까놓고 말하면 ‘회귀 전 과거에 맨날 두들겨 팼던 애들 중 하나예요’ 라고 말하면 되겠지만……
그런 주장이 먹힐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단순히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도…… 당연히 선택 사항에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던 와중에. 입을 연 것은 PER의 팀원들이었다.
“유물은…… 밝혀지지 않은 게 많죠…….”
평소에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입을 잘 열지 않는 이연주였지만, 머리를 염색하고 스타일을 바꾼 것의 영향이었을까.
평소보다도 훨씬 또렷하고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그 용도나 발현 메커니즘을 모르고,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만 보고 유추하는 때도 많을 정도로요.”
“게다가 직접 봤는데 증거가 뭐 또 따로 필요하나요 아저씨.”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정훈을 비롯한, 다른 PER의 팀원들도 눈앞에서 직접 본 사실이었기에 나를 두둔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납득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하게 인상을 굳히면서, 한숨을 쉬었을 뿐.
아마 최대로 쳐 봐야, 적당히 짝퉁이나 비슷한 형상을 맞춘 거라고 상상했던 것이 아닐까.
‘직접 그 표적들이 피하는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타당한 의문이라고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럼, 역시 답은 직접 보여주는 것뿐.
“모호한 답변이라, 아무래도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는 모양이네요. 그런데 굳이 헌터끼리는 말로 이랬다 저랬다 할 필요는 없죠.”
나는 연회장의 의자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뭐가 되었든, 궁금한 건 보여드리죠. 그리고 미국 헌터에게 했던 ‘상대가 가장 자신있는 종목으로 대결’하는 것도…… 뭐, 재미는 있겠네요.”
일부러 이성태를 자극하는 말투로.
***
뭐? 내가 가장 자신있는 종목으로 대결을 해?
한 발 물러서서, 그 이전의 것. 유물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던가, 그런 부분은 그나마 아닌 것 같아도 그럭저럭 수긍은 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창현이 한 말은 가볍게 흘려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나름, 근접 딜러중에서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려, 1부 상위권 팀에서 러브콜이 매 시즌마다 오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다?
이건 자신의 프로로서의 능력. 기술을 오랫동안 갈고 닦은 장인 정신. 그 세월과 자존심에 도전하는 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성태는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약간은 비꼬는 말투로.
“아이고. 그렇겠죠. 과장된 사실이 단! 하나도 없다고 하시니…… 아까 말씀하셨던 능력들을 다 보여주면, 저랑 1대1 10미터 이내 근접 전투도 자신 있으시겠죠?”
아마 저 녀석은 절대로 OK할 수 없을 것이다.
아까 녀석의 하이라이트 영상도. 저 녀석이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결국은 녀석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중-원거리 전투.
괜히 헌터스 리그가 헌터들을 분야별로 분리해서 지표를 측정하고 상을 주겠는가?
헌터마다 강점이 발휘되는 분야도, 상황도 다르고. 아무리 뛰어난 국제 리그의 헌터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영역에서 싸웠다가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든 것이 헌터스 리그였다.
그러니, 차마 알겠다고 하지 못하겠지.
아마 기껏해야, 룰을 흥정하려고 들거나. 혹은 그 조건 자체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할 터였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근택 회장이 말한 미국에서의 일은 거짓인 것이 증명되겠지.’
분명 미국에서는 헌터 현업 종사자에게, 그쪽이 가장 자신있는 종목으로 겨루자고 했었다니.
즉, 녀석은 완전히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음…… 10미터라. 근접전투 룰로는 적당하네요. 전투 룰은 어떻게 하시겠나요? 순수 체술? 아니면 역시…… 무기술을 포함한 헌터스 리그 룰의 전투?”
전혀 의외의 대답이었다. 한 치의 흥정도 없이 녀석은 이야기를 그대로 진행시키고 있었다.
‘어라……?’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이런 선택은 이창현 저 녀석이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을 뿐.
시간만 유예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좋아요. 그럼 바로 가죠.”
허튼 짓을 하거나, 흥정하려 들기 전에.
***
[더 헌터스 데이] 파티에는 항상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저번에는 2부의 누구였지…… 기억도 안 나는 빌런과 중립몬스터 처치 대결을 했었고. 이번에는 1대1 근접 전투인가.
그런데,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파티 회장에서 여기뿐만은 아니었다.
이미 시상식이 끝나고, 이곳저곳에서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한 수 가르침을 위해서…… 다른 선수와의 교류를 위해서…… 혹은 단순히 재미 삼아.
다양한 이유로, 평소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고, 함께 손을 섞는다.
그러니, 이런 일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팀 PER도 이미 한 번 이런 일을 겪어서인지,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기도 했고.
“근접전투라…… 내가 보조해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조금 걱정될지도…….”
“걱정은 무슨. 나한테 가장 많이 검을 가르쳐 준 게 창현인데. 안 그래?”
걱정하는 이연주도, 자신의 전투도 아닌데 자신만만해하는 윤한결도.
다들 이미 완벽하게 한 풍경에 녹아들어 있었다.
“파티니까, 재미있는 걸 보여주도록 노력해볼게.”
오늘의 전투는 파티에 맞게 꽤나 특별할 테니까. 잘 보라고.
***
미국에서 겪었던 일은, 나에게 꽤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능력이라는 건.
확실히 경험이 쌓이고, 다양한 훈련과 싸움 방식을 익힐수록 다양한 발상이 이어지기 마련인 걸까.
특히 저번에 표적을 맞추는 그 훈련.
거기에서 얻은 [마도공학무기변환]능력에 대한 새로운 고민.
그것에 대한 결론을 이번에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거리 딜러라더니, 순순히 받아들이는 건 좀 의외인데.”
물론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생각치 못하고 있을 이성태는 꽤나 여유만만해 보였다.
“총만 최고로 잘 다루는 게 아니라서.”
“총이랑 검은 좀 다를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네. 특히 ㅡ.”
녀석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작스레 공세를 시작했다. 빠르게 찔러오는 창의 일격에 빠른 몸놀림으로 피해 갔다.
“근거리에서의 싸움방식이랑 원거리에서의 싸움방식은 이론 자체가 다르거든!”
이어지는 공세. 확실히 뛰어난 창술이었다.
‘근접 격투…… 거기서 10 미터라는 상세한 룰을 정한 것도 무기가 창이라는 점을 고려한 거겠지.’
녀석은 이 원 안에서 어디에 있던지. 나를 노릴 수 있었다. 도망이란 불가능. 원의 중심에서 내가 공격할 틈을 주지 않고 계속 공세하려는 듯 보였다.
‘확실히 이 상태에서 총을 꺼내는 건 무리겠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을 꺼내더라도, 녀석에게 우위를 잡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술이 뛰어나고 말고 그런 차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창은 근접 무기 중에서도 거리감을 이용해 전투를 지배하는 무기.
[에어비트]나 [에어앵커]를 쓰기에는 너무 좁고. 그렇다고 [신속]같은 스킬은 없어서 그 거리를 파훼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
그랬기에, 이성태의 공세는 불이 붙은 듯 계속해서 강해졌다.
하나 둘. 점점 피하는 패턴을 익히고, 학습하는지 점점 날카로워지는 창끝에 놀라움이 들 정도였다.
“하핫. 이 정도면 미국 현업 헌터보다 창 맛이 매우려나요? 어째, 피하는데 급급한 게 전투라고 보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하지만, 역시나 아직 이 녀석은 애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챙 ㅡ .
그 녀석의 도발을 시작으로, 진정한 맞대결이 시작되었다.
총을 [마도공학무기변환]으로 검으로 변환시켰으니까.
물론 방금 이야기했듯, 검은 창을 상대하기에. 특히 이런 상황에 사용하긴 좋은 무기는 아니지만……
쉬익 ㅡ.
내 무기는, 변할 수 있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창을 휘두르던 이성태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아무래도, 이번 일격을 느낀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늘어나 이성태의 얼굴을 스친 검은, 녀석의 뺨에 얕게 베인 상처를 그려냈으니까.
“…….”
한 번에 보내버릴려고 했는데.
형태를 한 번에 너무 많이 변환했나.
그립감과 무게중심이 변하는 바람에, 얼굴을 한 번에 날리지 못하고, 빗겨나가버린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일종의 교류전인데. 너무 빡빡하게 할 필요는 없죠. 상대의 공격을 견식하는 것도 공부니까.”
젠틀하게 포장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멋이 있지 않을까?
***
한편 그 일격에 이성태는 굉장한 충격을 받은 채였다.
‘뭐지…….’
그 칼이 자신에게 닿을 일은 없었어야 했다. 창술사와 검사의 싸움이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이성태의 테크닉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고, 거리감각도 완벽했다.
정신공격을 한 것도 아니고, [신속]같은 능력으로 강렬하게 한 번에 거리를 좁힌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마치 검이 살아있는 것처럼, 닿지 않으리라 생각한 검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자신을 향해 뻗어져왔다.
그것도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정면에서. 얼굴에 날을 향한 채로.
흑빛 총이 변환되어 날아온 그 칼날은, 그렇게 얼굴을 향해. 살짝 빗겨나가, 새하얀 이성태의 피부에 새빨간 균열을 만들어냈다.
근접전의 스페셜리스트. 테크니션이라고 불리웠던 이성태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검이 살아있을 리는…….’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단순했다.
검이, 늘어났다.
그것도 자신을 일순간 눈속임할 만큼, 녀석이 검을 내뻗는 그 순간에만.
‘저건…… 위험하다.’
이 순간, 이성태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이점.
창술의 달인이며, 거리가 긴 창의 이점을 극대화 할 수있다는 그 이점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냉정함을 되찾았기 때문일까.
녀석의 허점 또한 찾을 수 있었다.
‘아까 그 검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면 스치는 데 그치지 않고 끝났겠지. 역시 무기의 숙련도 자체는 현저하게 떨어질…….’
생각이 끝나기도 전.
“일종의 교류전인데. 너무 빡빡하게 할 필요는 없죠. 상대의 공격을 견식하는 것도 공부니까.”
마치 녀석이 지금까지는 네 특기가 무엇인지 봐 주기 위해 시간을 줬다는 듯.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위압을 내뿜으며 웃고 있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건 이성태 자신이었다.